https://www.youtube.com/watch?v=jo43pNaulxg&t=2420s
가정의 달 둘째 주일입니다.
오늘은 우리 가정을 어떻게 마지막 때의 재난과 위기로부터 지켜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은 주님의 재림, 지구 역사의 마지막 날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즘 신자들은 약아서 종말, 재림에 대한 말씀에 별로 긴장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봐도 내 세대엔 일어날 일 같지 않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을 목격할 세대에게만 이 경고를 하신 것은 아니겠죠.
이것은 분명히 모든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35절에 보면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죽은 과거의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들이나, 재림 때 살아있을 사람들이나 모두 결국은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본문과 연결된 앞 부분을 보면 주님은 한 가지를 더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일어날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국가의 멸망입니다.
실제로 성경 속의 이스라엘은 서기 70년에 로마제국에 의해서 멸망하고 역사에서 사라졌죠.
현재 가자지구에서 전쟁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이 멸망 뒤 거의 이천년이 지난, 1948년에 기적같이 본토에 재건 된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먼저 예언하시고, 확대하셔서 지구 역사의 마지막 날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역사적 이스라엘의 멸망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그것처럼 마지막 날도 반드시 올 것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날은 더 가까이 왔을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 나와 내 가정의 삶과 구원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1. 주의 날, 즉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다가오되 징조를 통해서 그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구약부터 무수히 지구 마지막 날과 심판을 가르쳐 왔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죄를 대속하실 것에 대한 분량이 1이라면 마지막 날에 대한 분량은 8정도의 비율로 재림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예언대로 주님이 오셨듯이, 남은 예언대로 주님의 재림과 종말은 올 것입니다.
앞에서 예수님은 지구 역사 끝에 있을 징조들을 이야기하셨습니다.
11절에, 국가 간의 전쟁, 큰 지진과 기근, 전염병과 하늘의 징조 등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만약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난 주 브라질 남부 농업지대를 덮친 80년만의 대홍수가 뉴스에 나왔죠.
활주로에 비행기가 배처럼 떠 있더군요.
홍수에 쓸려 도로와 다리와 주택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장면이 충격이었습니다.
이 홍수로 농장이 물에 잠겨 옥수수와 콩 가격의 폭등이 우려된다고 합니다.
중국 남부도 며칠째 계속되는 폭우와 토네이도로 도시가 잠기고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하죠.
반대로 동남아엔 극심한 가뭄으로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커피 농장들이 직격탄을 맞아 원두 가격이 50프로나 치솟았다고 합니다.
커피 산지의 가뭄으로 생산량 감소는 진작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미래에는 커피가 아닌 커피 맛 음료를 마시게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교회 맛있는 커피를 계속 먹을 수 없을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상 기후로 사과, 배 값이 치솟더니 지금은 양배추 가격이 급등하고 있죠.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로 극심한 기후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왠지 이런 일이 재난 영화 같고 현실 같지가 않죠.
기후 문제에 대한 다큐 영상 몇 개만 봐도 정신이 번쩍 납니다.
지금 속도로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 상승으로 수많은 도시들이 수년 내에 물에 잠긴다고 합니다.
물의 도시로 각광받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몇 년 전부터 바다가 범람해 도시가 여러 번 물에 잠겼습니다.
태풍이 온 것도 아닌데 그냥 바다가 도시를 삼키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베네치아를 지키기 위해 해안 가까운 바다에 8조원을 들여 강철로 만든 거대한 방호벽을 만들었습니다.
평소엔 물 속에 잠겨있다 범람 위기에는 솟아오르도록 작동되는 방호벽입니다.
한번 솟아올랐다 내려가는 데 2억원이 든다고 하네요.
뉴욕도 해수면 상승을 대비해 방호벽을 건설 중에 있습니다.
지금 같은 속도로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그린피스가 추측하는 시나리오에 의하면 2030년엔 인천과 부산, 서울까지 물에 잠길 수 있는 확률이 50%라고 합니다.
몇 달 전 SBS뉴스에서도 이 상태로라면 7년 안에 수많은 도시들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보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기후변화는 이미 재앙 수준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벌써 침수가 진행 중이라고 하잖아요?
성경은 마지막 때에 이런 극심한 기상 이변들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25절을 보면 놀랍죠,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특별히 바다가 입힐 파괴력을 지목하시잖아요?
또 주님이 경고하신 것 중에 전쟁은 급격한 종말을 불러올 것입니다.
지금도 큰 전쟁이 두 군데서 진행 중이잖아요?
성경의 예언대로라면 결국 지구의 자멸을 불러올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나고 1/3의 인구가 죽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다 파괴하고 스스로도 멸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인간의 탐욕이 지구를 재생 불능으로 파괴할 때 쯤, 아마도 예수님의 재림의 날, 지구 역사가 완전히 막을 내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날이 몇 년, 몇 월, 몇 일인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날을 하나님은 아시지만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구라는 삶의 터전을 지키고 전쟁이라는 탐욕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도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요엘서에서도 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한 뒤 말씀하죠.
2장12절,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그러나 예수님의 예언대로 성경의 이스라엘이 서기 70년에 멸망한 것은 그들이 끝까지 복음을 받지 않고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죠.
지금의 사람들도 결국 지구의 종말을 늦추지도, 막지도 못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경고하십니다.
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알지 않느냐?
31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지금 정신 차리고 보면 그날이 분명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보다 안일한 낙관을 좋아합니다.
마지막 날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혹시 세상은 언제까지나 저렇게 잘 나가는 데 나만 믿음지키느라 허덕인다고 생각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끝이 옵니다.
그러면 우리와 우리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는 재난을 그냥 받아들여야 하냐에 주님은 대비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 날을 대비해서 라면을 사놓고 현금을 금으로 바꿔놓고 그런 것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오늘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일러 주십니다.
2. 스스로 조심하고 일상에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34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사람들이 벌어지는 무서운 일에 두려워 떨 때, 우리의 다져진 믿음이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1) 주님은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조심하는 것은 남이 내 신앙을 부축해 주길 바라지 말고 자주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올수록 더욱 내 믿음을 스스로 관리하고 지켜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즐기고 죄 지을 때는 내 의지로 하잖아요?
그런데 왜 믿음은 내 의지로 힘쓰고 강화하지 않습니까?
믿음에는 내가 힘써야 할 분량이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도와주려 해도 자기 의지가 없으면 한 걸음도 구원을 향해 나가지지를 않습니다.
2) 우리가 마지막 때를 인식해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두 가지 덫에 빠지게 됩니다.
첫째는 방탕함과 술취함처럼 세상이 주는 쾌락의 덫에 빠집니다.
세상의 문명은 사람의 천성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방탕까지는 아니라 해도 저절로 세속 문화 쪽으로 기웁니다.
사람의 본성은 어떻게 하면 좀 재미있을까 궁리합니다.
돈이 많이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범죄자들이 사기 쳐서 뺏은 돈을 다 사치품 사고 유흥비로 탕진했다고 하잖아요?
둘째로는 염려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또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염려에 빠집니다.
살면서 염려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를 불안하게 하는 일 한 가지만 묵상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염려가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염려는 내게 부족한 것 때문에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내가 더 갖고, 더 성공하려는 욕구가 끝이 없기 때문에 염려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일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살면서 한 편으로는 계속 어떻게 하면 좀 즐거울까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그렇기에 직장에서 힘든 일과를 마치면 내게 즐거움으로 보상하기 위해 술집으로 향하고 취미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을 다 보냅니다.
그렇게 살면 주의 날이 구원이 아니라 덫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래도 구원받았으니 괜찮다는 뜻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3)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렇게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36절,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자연적인 상태로 있으면 세상 즐거움이거나 아니면 염려에 빠진다고 했죠?
고민거리가 생기면 염려에 푹 빠졌다가 해결되면 어디 즐길거리 없나 금방 세상에 눈을 돌리는 것이죠.
영혼의 성장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못하고 인생을 허비하며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감지하고 경각심을 갖고 사는 걸 말합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만든 지구종말 시계가 돌아가고 있듯이, 주님의 날에 맞춰진 시계도 돌아갑니다.
그뿐 아니라 내 정해진 생명의 시계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에 대해서 깨어 있으면 내 시간을 신중하게 보내게 됩니다.깨어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도하게 되고, 기도할수록 더욱 깨어 있게 됩니다.
이 두 가지는 같이 가는 거예요.
바빠서 기도할 시간 내기 힘들다, 기도가 안된다, 기도가 안 나온다, 그러면서 기도 생활을 못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하는 법을 스스로 훈련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도 내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기도 한 마디를 못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가 저절로 되는 사람 없고 기도가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도 기도하며 살지 않으면 염려에 짓눌리고 세상이 주는 하찮은 즐거움에 빠져 어느날 덜컥 덫을 밟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마지막 날만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수많은 덫이 있기에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인생의 종말과 같은 무서운 덫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건강도 잃고, 가정도 깨지고, 사업도 엎어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때도 기도만이 나와 가정을 지키는 방도입니다.
항상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큰 문제가 닥쳤을 때도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매일 똑같은 것 같은 우리 기도가 사실 많은 재난과 악을 이미 방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일상에서 훈련된 기도가 있어야 큰 위기를 만났을 때 비상한 기도로 돌파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간증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헬리오시티 상가에 가면 TJ버거라는 수제햄버거 가게가 있습니다.
과거 청와대 셰프였고 여러 호텔 대표셰프를 지냈던 김태0권사라는 분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이분이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가게 오픈 준비로 한창 바쁘던 몇 년 전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교회 수련회에 참석 중인 아들이 갑자기 걷지를 못하는데 눈에 띄게 발에 혹이 튀어나왔다는 교사의 전화인 거예요.
그냥 놀다가 좀 다쳤거니하고 수련회에서 돌아오는 날 아들을 데리고 동네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건대병원을 갔는데 거기서도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울대병원이나 원자력 병원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뭔가 불안한 낌새가 느껴지는 것이죠.
서울대 병원에 가서 밝혀진 병명은 골육종암이었습니다.
뼈에 암이 생긴 것입니다.
발목에 암덩어리를 제거할 때 보니 혈관에도 암이 보여서 혈관의 일부도 절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 후 폐혈증이 생겨서 결국 발가락 열 개가 전부 떨어져 나가고 말았습니다.
한창 뛰어다닐 아들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뒤 잘려져 나간 위치에 다시 암이 재발합니다.
결국 발목까지 절단하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세 번째로 암이 재발 되어서 또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중3이 된 아들은 아이스하키를 배워서 파라아이스하키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네 번째로 허벅지 안쪽에 암이 발견되어서 또 항암치료를 해야했습니다.
암이 재발될 때마다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절망, 공포,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얼마나 떨었겠습니까?
암이 재발 될 때마다 이 가족을 버티고 이기게 한 것은 기도였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시 소망을 주시고, 아들에게는 운동을 하면서 장애도 잊고 고통도 잊게 하셨습니다.
지금 아들의 목표는 파라아이스하키 국가 대표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스하키 종주국인 캐나다로 유학도 가서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날, ‘큰 병원에 가셔야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권사의 머리 속이 하얗게 되고, 모든 현실이 신기루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삶에 이런 종말과 같은 일들이 있잖아요?
물론 수없이 ‘하나님, 어째서죠?’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그렇게 묻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러나 그 모든 물음은 하나님 앞에 가서 뵐 때 눈 녹듯이 사라져 질문할 필요도 없어질 것입니다.
욥이 내 문제를 하나님께 따지고 싶다고 얼마나 친구들과 언쟁을 벌였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셨을 때, 욥은 그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답’이십니다.
우리가 이제는 방법이 없다 생각될 때도,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면 그 의문과 근심이 스스르 사라지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인하기만 해도 내 문제가 문제 될 게 아니라는 걸 직감하게 되는 것이죠.
매일 그 힘으로 죽음의 골짜기도 건너가는 것입니다.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앞으로 우리 인생에 어떤 문제들을 만나게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절망에 빠져 삶이 붕괴되지 않으려면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지혜를 주시고, 말씀대로 살아갈 힘을 주시는 데, 그것만으로도 우리 가정과 내 인생의 많은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게 꿈이었던 한 의대생이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의 말에 분노와 절망으로 정신이 무너졌습니다.
여자친구의 경동맥을 찔러 살해하고 그 인생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인생에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어떤 덫에 걸려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하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인생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보다 더 힘든 지구환경 속에서, 더 많은 전쟁과 테러와 범죄와 경제난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우리와 자녀들이 기도를 배우지 않으면 매일 생활의 염려와 세상의 쾌락을 오가며 덧없이 살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를 배우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이 반드시 도와주셔서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성 밖 감람원이라는 산에서 쉬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주간 중간 쯤 되었을 때입니다.
십자가를 앞두신 주님은 이런 말씀들을 성전에서 여전히 가르치신 것입니다.
세상의 끝은 반드시 온다고 주님은 가르치셨고 우리는 그대로 믿습니다.
소돔이 멸망하던 날 롯의 사위들은 심판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농담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앞으로의 세상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기에 우리와 자녀들이 살기 위해서는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 자꾸 대화하십시오.
주님을 향해 아버지, 한 마디만 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이미 우리가 영화로운 천국의 기업을 소유했다는 사실이 현실로 깨달아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심판의 날에 대한 설교는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는 큰 은혜가 됩니다.
곧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무거운 육신의 옷을 벗고 날개같이 가볍고 영화로운 의의 옷을 입고 살게 될 것이잖아요?
예수님께서 앞에서 말씀하셨죠.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우리 구원의 날이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땅에서 함께 살았던 우리 가족들 모두가 함께 천국가정에서 영광을 누리게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호세아서 말씀으로 마칩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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