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예레미야29장4절-7절 (사로 잡힌 자에게 보내신 편지)

남수연 2024. 7. 13. 03:35

미국 뉴저지에서 혼자 살고 있는 한 노인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노인이 토마토를 심기 위해 딱딱해진 밭을 일구려고 했지만 도와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해마다 밭을 일궈주던 아들이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 이래저래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그래서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푸념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네가 없어서 밭도 못 일구고 있다.

그런데 아들에게서 날아 온 편지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밭을 파지 마세요. 그곳에 시체가 묻혀 있어요.

사랑해요 아버지.

편지는 교도관들의 검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집에 수사팀이 파견되어 며칠에 걸쳐 밭을 샅샅이 뒤집어 놓았습니다.

며칠 뒤 또 아들의 편지가 아버지에게 도착했습니다.

이제 토마토를 심으세요.

지금의 상황에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입니다.

사랑해요, 아버지.

어떤 죄였는지 모르지만, 그런 아들을 여전히 아들로 여기고 있는 아버지와아들의 끊을 수 없는 혈육의 정이 느껴집니다.

그리기에 부모와 자식인 것이죠.

 

1. 오늘 본문도 하나님아버지께서 감옥에 간 이스라엘 아들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법하게 살다 바벨론의 침략을 당해 망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멀리 바벨론까지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예레미야선지자에게 이 편지를 대필하게 합니다.

불러주는 대로 써라

마침 바벨론으로 떠나는 왕의 사절단을 통해 이 편지가 포로사회에 전해집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도 이 편지를 받을 이스라엘 포로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시 바벨론제국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속세상의 대명사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늘 무엇엔가 속박되고 자유롭게 사는 날이 많지 않습니다.

힘겹게 결박을 벗어나면 다른 또 무엇이 우리를 속박하죠.

그러니 바벨론 포로들에게 보낸 이 편지는 이런 우리 삶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이 내게 보내신 편지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를 읽어보면 이걸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너무 많으시다는 거예요.

정말 하나님이 투 머치 토커처럼 끊임없이 말씀하고 또 하고 하십니다.

예수님도 침묵하고 명상하시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도 매일 사람들 몰고 다니시며 얼마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까?

특히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역시 말씀하고 또 하고 그러십니다.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바꿔서 읽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예수님 밖에 없잖아요?

예수님은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니까 구약의 하나님은 예수님과 똑같은 분이십니다.

그렇게 말하기 좋아하시는 하나님이 지금은 침묵하실까요?

그렇지 않죠.

성경을 통해서 계속 우리에게 말을 걸으시는 거예요.

또 흔들리는 나뭇잎으로도, 천둥소리로도, 친구의 입을 통해서도, 우리가 주님을 잊지 않도록 계속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우리 성도님들 바쁘시지만 성경을 더 읽으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자꾸 읽으셔야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고, 알아야 믿음도 생기고 말씀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지지리도 말씀을 안 듣다가 결국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또 편지까지 써가며 여전히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정말, 사랑은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죠.

말을 너무 안 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말 수가 적은 가족들도 다 하나님 닮아 말이 많아지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2.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것이 자신이 그러셨다고 실토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것은 역사로 본다면 강대국 바벨론이 약소국 이스라엘을 집어 삼킨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은 약소국이라서 바벨론에게 당한 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벨론 제국과 전쟁하면 이스라엘은 당연히 패전할 약소국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인 구약성경은 전쟁 상대가 강대국이라서 진 적이 없다는 걸 많은 역사로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세상 원리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성도들의 성공과 실패는 세상사람들의 성공과 실패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모든 실패와 성공을 관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실패인 것이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왜 우리가 망했냐고 물을 때 이렇게 대답하라고 하십니다.

예레미야 519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땅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리라 하라

성도들이 하나님 섬기기를 싫어한다면 무자비한 인생의 폭군들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피하면 이제부터 자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는 우리 의지로 도망이라도 칠 수 있고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 주인은 옴짝달싹 할 수 없게 우리를 노비로 부린다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3. 그러나 무수한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이런 상황을 마주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지시하십니다.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마치 텃밭이나 가꾸며 편안히 살라고 하시는 것 같죠?

이들이 지금 이민 간 게 아니잖아요?

포로로 잡혀 가서 노비가 될 사람들인 데 어떻게 이런 일상적인 삶이 가능하겠습니까?

생전 처음 겪는 두려운 경험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십니다.

1) 하나님은 비록 징계를 내리시는 중에라도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과 상황은 수시로 변합니다.

삶이 돌변해도 변함없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여전히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어제 살던 대로 살라시는 것입니다.

2) 다만 하나님은 일상을 유지하라고 하십니다.

포로들이 땅을 사서 농사를 짓고, 가정을 이루고 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 과정들이 절대로 쉽게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잘 견뎌내려면 지금의 삶일지라도 소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가정에 변고가 생기고, 병을 얻고, 사업이 망하고, 전쟁이 나고, 천재지변으로 재난이 닥치면 당연히 그동안 일구었던 삶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때도 남아 있는 일상이 있습니다.

그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의 회복이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난 중이라면 슬프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없는 것 같은 중에도 다시 시작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은 떠다니는 게 아니라 항상 내 일상에 굳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믿음과 일상을 잘 붙들고 살아간다면 다시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는 날이 옵니다.

다시 논밭을 갈고, 가정을 이루고,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와 에스더서는 그렇게 해서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다시 삶을 일군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포로 다니엘을 바벨론의 총리가 되게 하셨고 부모가 없는 포로 소녀를 페르시아의 왕후의 자리로 올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 잃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다면 이 말씀을 잘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남아 있는 일상에 감사하며 작은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하면 언제나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은 그런 환경에서 기도하라고 지시하십니다.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12절에서 거듭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이 말씀 속에서 기도에 대한 원리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왜 기도하라 하시고, 심지어 부르짖으라고 하십니까?

고난에 억압된 현실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으면 이겨내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또 우리의 모든 위기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서 만날 수 있는 복된 기회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는 매일 기도해야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 때는 더욱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환난 중에 성도들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에서 조금씩 하나님을 더 알아갈 수 있는 것도 환난 중의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아무 일이 없어서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 살이 베어나가는 시련을 당하고 기도하는 게 낫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게 가장 큰 복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바벨론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이 지금 바벨론을 걱정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벨론 제국의 평화와 안전을, 죄짓고 끌려 온 이 포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에 맡기십니다.

완벽하게 살아가는 불신자를 하나님은 신임하지 않으십니다.

차라리 죄를 좀 짓고 부족하다 해도 성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겉으로는 바벨론이 다스리는 것 같지만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이죠.

성도들은 태연히 이 나라와 세상을 위정자들에게 맡겨 두어서는 안됩니다.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국가와 사회의 평안은 곧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평안과 직결됩니다.

우리가 예배와 기도회마다 나라와 세계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시는 일입니다.

4) 또 부르짖어 구하라는 것은 이미 결정하신 것도 이뤄지길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 바벨론포로로 끌려가서 포로사회에서 활동한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다시 강조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포로사회를 향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 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진짜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서 얻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나님의 창고에는 준비했다 전달되지 않은 선물 보따리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만들어 낸 예화만은 아닐 것입니다.

구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메카니즘이고 공식적으로 보장해 주신 루트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항상 기도하는 복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024년7월10일 수요기도회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