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예레미야36장1절-8절 (기록된 시나리오)

남수연 2024. 7. 26. 01:52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했고, 나라가 망하는 걸 직접 눈으로 본 선지자입니다.

조국의 멸망을 보며 예레미야는 나중에 눈물로 예레미야애가를 기록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하죠.

우리가 사는 날 동안 그런 세상을 눈으로 안 보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다시 한번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결과로 보면 이스라엘은 이 기회마저 버립니다.

1. 본문은 역사적인 연대와 배경을 참고를 해야 합니다.

1절에서 연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제사 년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때가 여호야김 제4년이라고 되어 있죠.

연대로는 주전 605년입니다.

이스라엘은 북으로는 바벨론, 남으로는 이집트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위로는 중국, 아래로는 일본 사이에서 수난당한 역사와 비슷하죠.

이집트는 바벨론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북쪽 갈그미스까지 올라가 바벨론과 싸웠지만 패배합니다.

학창시절에 갈그미스 전투라고, 들어봤던 기억이 가물가물 나실 것입니다.

당시 국력이 약할 대로 약해진 이스라엘은 한편으론 이집트에 내정간섭을 받고, 한편으론 바벨론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런 격변기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23년째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예레미야의 경고의 메시지는 바벨론에 의한 국가의 멸망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바벨론에 항복해 목숨을 보전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운명이 걸린 그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집트가 바벨론에 승리할 것을 전망하고 이집트에 의존하는 정책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2.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국운이 걸린 큰 문제를, 세우신 단 한 사람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대홍수도 노아 한 사람의 입을 통해 경고하셨죠.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 그대로 바벨론, 애굽, 앗수르, 이스라엘의 종말이 세계사에서 성취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을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종을 통해 기록된 성경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으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권고와 그에 대한 결과들도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제는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에게 성경이 전해지게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죠.

2, 너는 두루마리 책을 가져다가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나라에 대하여 내게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거기에 기록하라

그동안 예레미야는 말로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모든 경고들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해서 낭독해 들려주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시나리오 종합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마지막 기회인 것이죠.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기대를 하십니다.

3,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의 원문은 처음이 혹시로 시작됩니다.

혹시 그들이 내 말을 듣고 악한 길에서 돌이킬지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실망시킨 사람들이지만 다시 한번 혹시하고 기대하시는 것이죠.

따져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가나안의 우상숭배를 하기 시작한 게 벌써 팔백여 년입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사사시대에 이미 우상숭배가 만연하잖아요?

하나님은 포기하실 만도 하신데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며 악한 길을 돌이키라고 끊임없이 경고하고 책망하십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추악하게 살다 바벨론에 멸망 당할 것을 아시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겨서 시나리오대로 칠십 년이 지나면 다시 고국으로 데려오실 것입니다.

하나님 계획을 그냥 쭉 진행하시면 되는데, 왜 끝까지 이스라엘에게 바른 길을 기대하시는 것일까요?

안되는 건 안되는 거잖아요?

3.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택한 자녀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그 약해 빠진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품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변할 것을 믿기라도 하는 듯, 최선의 노력을 다 하십니다.

사랑은 끝까지 기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 자녀로 대하신다는 거잖아요?

우리에게도 거룩한 자녀의 모습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을 향해서도 그런 기대를 하셨는데, 성령을 받은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야 더 큰 기대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전에 개그맨 김기0 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김기0 씨가 하나님을 만난 뒤 성경과 기도에 푹 빠지게 되는 데, 그때도 담배를 끊지 못했다고 합니다.

굳이 끊어야 되겠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0 씨는 운전을 할 때도 짧은 대화 기도를 자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중요한 미팅을 가면서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 미팅이 중요한 데 잘 되게 해 주세요,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빨고 연기를 내뿜는 자기를 본 것입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한 손은 하나님께 들고, 한 손은 담배를 들고 있는 자기 모습에 너무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담배를 끊게 되었다고 합니다.

담배 피우는 게 무슨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조금씩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결점이 없길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신앙을 갖게 되면 하나님의 계명이 부담스럽고, 나하고 먼 이야기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김기0 씨처럼 무언가 하나씩 내가 버리고 고쳐야 할 것을 성령께서 지도해 주시는 것이죠.

우리에게 기대를 가지시고, 주일에도, 수요일에도, 말씀해 주시는 것이죠.

말씀대로 회개하고, 돌이키고, 순종하며 조금씩 더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예레미야와 마지막 기회마저 순종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빛과 어둠처럼 대조됩니다.

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예레미야의 동역자인 바룩은 서기관입니다.

서기관은 주로 왕과 국가의 기록을 맡았던 직책이죠.

5절에 보면 예레미야는 붙잡혀 있고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처지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예레미야가 불러주고 바룩이 기록합니다.

그 두루마리를 바룩이 사람들 앞에서 대독해야 하니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아니, 왜 내가 이 일을!

그러나 두려움 중에 했던 순종으로 바룩은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때에 하나님은 바룩의 목숨을 보존해 주십니다.

8,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명령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니라

그즈음 국가의 위기 앞에서 금식기도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는 않으면서 금식기도를 한다는 게 의아하죠.

사람이 이렇게 엉망입니다.

그 사람들 앞에서 두루마리의 모든 내용들이 낭독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크게 술렁였을 것입니다.

본문 다음에 보면 신하들이 두루마리를 여호야김왕에게 가져 갑니다.

그리고 왕 앞에서 예레미야의 경고의 두루마리를 읽어 내려갑니다.

서기관이 서너 페이지를 낭독하면 왕이 그것을 칼로 잘라 화롯불 속으로 던집니다.

그렇게 계속 두루마리를 잘라서 화로에 던져서 전부를 태워버립니다.

자신과 국민들이 용서받을 마지막 기회도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이죠.

여호야김왕은 사년 뒤 예루살렘을 침공한 느브갓네살왕에게 붙잡혀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시신도 수습되지 못한 참혹한 죽음을 당합니다.

4.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거역한 결과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지금 주님의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결과도 성경대로 될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어떻게 살던 결말이 다 비극인 것이죠.

우리도 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을 받은 것 밖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우리도 늘 하나님 말씀을 듣지만 칼로 자르듯이 외면할 때가 많잖아요?

전신화상 장애를 입은 이지0 씨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대학을 다닐 때 음주운전차가 와서 충돌해 차가 전복되고 화재가 발생합니다.

정신을 잃은 지0 씨는 차안에서 불타고 있었죠.

같이 타고 있던 오빠가 극적으로 구조했지만 화상은 끔찍했습니다.

뼈가 보이도록 화상피부를 다 긁어내는 고통스러운 수술, 그리고 40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받게 됩니다.

지금도 화상의 흔적이 얼굴과 몸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국내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당시 병실에서 지0 씨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엄마, 만약 지금 내가 당한 일을 엄마하고 바꿀 수 있다면 바꿔줄 수 있어?’

그랬더니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천 번이고 만 번이라도 엄마는 바꿔주지

하나님 눈에 괴물처럼 변해서 살다 죽어가는 우리를 보실 때 그런 마음이 아니셨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랬기에 우리와 바꿔서 그 십자가의 고통을 택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최근 지0 씨가 어머니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만일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엄마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어머니는 답을 빨리 하지 못합니다.

그러더니, 만일 돌아간다 해도 또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데, 차라리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고통을 견디고 이겨낸 지금이 더 낫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우리도 그런 생각이 들죠.

2회차 인생도 싫고,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가는 것도 바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교회에 오는 중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벌써 74세라고 하더군요.

자신이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행복을 느낀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이를 먹어가는 인생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건 아니라는 것이죠.

맞습니다.

지금 구원받은 이 상태로 남은 인생을 조금만 더 주님을 잘 섬기다 영화로운 구원에 이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정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