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향유를 부은 여인 (마가복음14장1절-11절)

남수연 2011. 4. 3. 22:04

 

그레이스 켈리라는 미국의 유명한 여배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흑백 사진 속에서 만났던 우아한 미소의 기품 있는 배우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모나코왕국의 왕자 레니에 3세와의 영화 같은 사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던 배우입니다.

당대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로 전성기를 누리던 그녀가 잡지 사진을 찍으러 모나코 왕국에 갔다가 운명적인 사랑을 만납니다.

1956년에 있었던 그들의 결혼식은 20세기 최고의 볼거리였다고 합니다.

일주일간 진행된 결혼식 행사 동안 그레이스 켈리가 몸에 걸쳤던 고가의 화려한 명품들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정작 이날 신부를 감동시킨 왕자의 진짜 선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하나뿐인 향기’였습니다.

신랑은 영국왕실의 공식 향수 브랜드인 크리드회사에 신부인 그레이스 켈리를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향수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1억이 넘는 주문 향수를 만들기 위해 크리드는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그레이스 켈리에게 어울리는 향기를 모아 세상 유일의 향수 플러리시모를 만들어냈습니다.

결혼식에 그레이스 캘리가 두른 모든 명품을 감싸는 이 향수의 은은한 향기가 신부가 가장 좋아했던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고가 향수 역시 크리드가 만든 임페리얼 마제스티라합니다.

약 30밀리 한 병에 2억 원이나 한다니 굉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크리드 향수 같은 명품 향수가 있었습니다.

히말리야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감송향의 뿌리에서 짜낸 나드향유였습니다.

한 트럭을 실고와 짜내도 겨우 한 두 방울 나온다는 아주 진귀한 이 향유는 사향노루의 향과 같은 신비한 향기를 내 뿜으며 주로 남성에게 사용 된 향수였습니다.

당연히 팔레스타인에서는 구하기 힘든 고가의 향수였겠죠.

구약성경 아가서에 보면 솔로몬 왕의 침상에 나도향기를 토하였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솔로몬 왕가에서 사용한 향수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읽은 본문대로 베다니 촌구석에서 이 값진 향유의 옥합을 깨뜨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은 예수님을 모시고 여러 사람들이 식사할 때 일어났습니다.

같은 사건이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 데 세 복음서의 내용을 종합해야 완전한 메시지가 드러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 식사가 예수님을 위한 잔치라고 기록했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식사가 한창인 데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오더니 향유 옥합의 뚜껑을 깨뜨려 예수님 머리에 부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맡게 된 향기가 그 당시 최고가의 나드향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어부 출신의 제자들로서는 평생 구할 수 없고 맡아 보기도 힘든 귀한 향유였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그 양이 한 근이라고 기록되었는 데 요즘 단위로 환산하면 300그램 좀 넘는 많은 양입니다.

이 옥합에 가득 담긴 향유를 여인은 남김없이 주님께 부어드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니 그 가격이 무려 삼백 데나리온이나 나간다고 합니다.

신속하게 그 가치를 계산해 낸 것은 가룟 유다였다고 요한복음은 말합니다.

일 데나리온이 그 당시 하루 임금이니 거의 일 년치 연봉에 해당됩니다.

요즘 시세로 보면 적어도 이천만원 이상이 되죠.

식사하던 방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이 좀 민망합니다.

어떻게 이런 고가품을 이렇게 허비하냐고 여인을 책망하며 화를 이기지 못합니다.

선물 받은 당사자를 앞에 두고 왜 이 사람에게 이런 과분한 선물을 하냐고 호통을 치는 격입니다.

마치 죄라도 지은 듯 송구하게 서있는 여인을 향해서 주님은 6절에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9절에 보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라고하십니다.

여자의 행한 일을 반드시 복음과 함께 전하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고가의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마리아의 헌신이 귀하긴 하지만 예수님께서 왜 유독 이 사건을 중하게 다루라고 하셨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미 제자들도 상당한 희생과 헌신을 하며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주님의 이 명령은 고가의 향수를 단 번에 부어버린 여인의 행동 만큼이나 제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 대단한 향유 사건의 의미와 여인의 믿음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진리를 깨닫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 예수님께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여인의 향유 사건을 함께 전하여 기념하라고 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향유를 부은 여인의 믿음이 복음과 짝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죄로 사망판결을 받았던 인류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전파 될 때 바로 이 여인과 같은 믿음으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것을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짝을 이룰 만한 이 여인의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이 여인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을 초청한 사람은 베다니에 사는 나병환자 시몬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 나병을 고침 받았고 감사한 마음에 식사를 대접하는 것 같습니다.

초대받은 주님의 열두제자와 주님이 살려주신 죽었던 나사로가 함께 있었고 그의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잔치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고 요한복음은 기록합니다.

시기는 본문1절에 보니 유월절 이틀 전이라고 기록되어 있죠.

예수님이 유월절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다음날 잡히셨으니 주님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흉계로 잡히시기 이틀 전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여러 차례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26장2절에 보면 식사 장면이 있기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에 대해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선 아랑곳도하지 않음을 본문의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단 한 사람 이 여인만이 예수님의 죽음을 예견하며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요한복음에는 이 여인의 이름이 마리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 정확한 증언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좀 더 자세히 향유를 붓는 모습을 기록했는 데 예수님 발에 흘러내린 향유를 자신의 머리털로 닦았다고 합니다.

정말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입니다.

과연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견하고 향유를 준비했던 것일까요?

이틀 후면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유월절 양이 되어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오르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18장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당시 그 누구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수제자 베드로도 절대로 예수님이 죽어선 안된다고 핏대까지 올리며 항변했었습니다.

그는 주님이 죽지 않으시면 자기의 구원도 없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마리아 홀로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고 주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입니다.

마리아의 별명은 발아래 마리아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말씀을 하실 때 발아래 앉아 순수하게 말씀을 사모했기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깨달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예수님이 여인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여인이 이런 고가의 향유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힘을 다해 비용을 장만하고 주님의 몸에 부을 가장 값비싼 향유를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보통 한 두방울로도 충분한 나드향유를 단번에 남김없이 다 부어드립니다.

향수를 이렇게 사용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향유를 남긴 들 다시 주님께 드릴 시간이 없다는 걸 마리아는 알았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기념하라 하신 것은 마리아가 드린 최고가의 향유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믿음과 헌신인 것입니다.

본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 있습니다.

각각 자기의 속셈과 의도가 있어 주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날도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구원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을 섬기려는 생각보다 무언가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한 마음이 더 큰 것을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의 이런 마음을 다 아시면서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로마제국의 통치를 벗어난 독립왕국의 새로운 지도세력을 꿈꾸던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은 가려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실이었죠.

주님이 오늘 장례에 대해 말씀하자 가룟 유다는 주님을 쫒다 낭패를 당하겠다는 것을 재빨리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죽음 뒤에 있을 후폭풍에서 자기의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주님을 제사장들에게 넘겨 줄 것을 작정합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주님이 잡히는 현장에서 모두 달아나 버립니다.

지금도 우리 마음에 주님이 주실 축복과 이익만을 계산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회피한다면 시험이 올 때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우선입니다.

진정한 믿음이 있어야 헌신이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마리아가 삼일 후 돌아가실 예수님을 위해 2천만원 짜리 나드향유를 구입해 부어드린 것은 주님의 대속의 사랑과 부활을 믿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죄와 상관이 있다는 게 믿어지십니까?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어느 날 2천년 전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내 죄 때문임이 깨달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죄송해요. 미안해요, 감사해요 라는 눈물의 고백을 하며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헌신하며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는 것 만큼 우리는 주님께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여성 최초로 미국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웨슬리신학대학의부총재를 맡고 있는 신0림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분은 자기 인생에서 주님의 사랑을 두 번 크게 깨닫고 그의 모든 것을 주님께 헌신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한번은 그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신목사님은 어려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는 병약한 몸이었습니다.

여학교 시절 결핵성 관절염과 신장염으로 죽게 되어 친척들이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겠다고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갑자기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려 부랴부랴 목사님을 모시러 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신 어머니가 혼자셨습니다.

왜 혼자 오시냐고 물으니까 목사님이 기도를 하고 1시간 뒤에 오신다고 했답니다.

잠시 뒤 오신 목사님은 기도 중에 신기한 환상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이 앞서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예수님 지금 어디로 가시나요, 지금 경림이가 아파서 제가 거기 가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나도 지금 경림이에게 가고 있다라고 하시더라며 나을 테니 아무 걱정말라며 간절히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기도해주신 목사님을 대접하느라 닭을 잡아 상을 차렸는 데 몇 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목사님이 그 날 일어나 앉아 닭고기를 맛있게 먹고 삼 일 후에 교회 야유회까지 따라 갔다고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신목사는 그의 삶을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작정하고 이화여고를 졸업한 뒤 감리교신학대학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여자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사모라도 되어야겠다 생각하고 신학생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신목사님의 신학공부의 길을 열어주셔서 결국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두 번 째로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것은 미국에서 목사가 되어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였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영어로 설교를 하고 여자 목사기에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남편 교회의 일까지 도와주다 보니 목사님에게 감당할 수 없는 탈진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 심정이 달려오는 트럭이라도 들이 받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합니다.

마침 영성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 부랴 부랴 짐을 싸서 도피하듯 수련장으로 떠났습니다.

첫 프로그램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1시간을 침묵하며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위스콘신주의 큰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올라 앉았는 데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시간이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절부절하며 15분을 앉아 있는 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살면서 힘들었던 일이 한꺼번에 생각나며 그동안 뭐든지 죽어라하며 악으로 버텨왔다는 생각에 눈물이 복받쳤습니다.

한 번 터진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눈물바다가 되었는 데 문득 눈을 떠보니 호수 위 쪽에 예수님께서 서서 바라보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화들짝 놀라 야단을 했을 텐데 서러움에 겨워 주님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 생각이 나 고개를 들어 보니 주님이 여전히 거기 서 계셨는 데 자세히 보니 목사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울어주시니 더 서러워서 한 참을 더 울다가 그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울어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내가 왜 다른 사람들 눈에 들려고 그렇게 애를 썼을까 완벽하게 잘하지 못하면 또 어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내 마음을 다해서 주님의 일을 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이 드니 한순간에 무거웠던 모든 짐이 다 벗겨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의 모든 사역에 기쁨이 넘치고 삶에 새 힘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웨슬리 신학대학의 새 프로젝트인 해외 신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선교활동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아는 만큼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가룟 유다와 같은 계산이 앞선다면 성령님의 은혜가 더 많이 필요한 줄 믿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향유가 얼마짜리 인가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머리에 값싼 감람유를 부어드린다 해도 우리 마음에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있다면 주님은 우리에게도 마리아에게 하신 것처럼 네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구나라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심령에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깊은 감동과 믿음을 더해 주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아멘.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마리아는 예수님을 섬기는 때와 방법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을 자신이 이해하는 정도에 맞게 대합니다.

마리아는 죽었던 오라비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왕으로서 받아 마땅한 최상의 향유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태복음의 기록을 보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했다고 합니다.

주님께 드린 것을 서슴없이 허비했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영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로마의 왕을 초대해 식사를 하고 향유를 부었다면 그에게 부은 향유를 놓고 낭비라는 둥의 말을 했겠습니까?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태도에서 과연 천지와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의아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말한 대로 수 천만원을 호가하는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섬겨야 할 때와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가난한 자를 돌볼 때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실 주님을 섬겨야 할 때입니다.

섬김에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지금은 주님의 장례를 위해 섬겨야 할 때임을 알았습니다.

마가복음16장1절에 보면 안식일이 지나고 예수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들고 무덤을 찾아간 다른 여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은 부활하셨고 무덤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위한 섬김에도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영광의 왕으로 재림하시고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이르러서는 이미 때가 늦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기쁨과 즐거움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맛 본 그 어느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헌신한 자녀들에 대해 이 땅의 수고를 보상해 주신다는 성경의 약속도 주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9장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리아가 주님을 섬기는 때를 알았고 그 방법을 알았듯이 주님을 위해 내가 드릴 수 있는 헌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기쁘게 주님을 섬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또한 우리가 온 마음과 정성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우리 곁에 있는 가난한 영혼을 섬겨야 할 때인 줄로 믿습니다.

7절에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우라는 말씀이 우리를 향한 축복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성경에는 다른 사람을 도우라는 말이 2천번이나 나옵니다.

잠언 19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지금도 수없는 아름다운 선행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기부천사로 불리 우는 가수 김0훈씨의 기부 총액은 100억원이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그는 지난 연말 자신의 선행을 당당히 공개했었죠.

의미 있는 여러 기관과 단체에 10억원을 추가로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10억원의 기부를 공개한 목적은 단순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기부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가난한 시절 철저한 부모님의 신앙교육으로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돕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톨릭 영화이긴 하지만 최근 많은 사람들을 울린 울지마 톤즈란 다큐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이0석 신부는 삯바느질하는 가난한 어머니의 자랑스런 의사 아들이었습니다.

신부가 되어 주님을 섬기려는 그를 보고 어머니는 우셨습니다.

그는 고통스럽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끌리는 데 어떻게 하냐고.

그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나라 "수단의 톤즈"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다 48세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루에 평균 300명을 진료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 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환자들은 100킬로미터를 걸어서 톤즈의 유일한 의사를 찾아 끝없이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수단 남부 톤즈 마을 사람들을 위해 12개 병실을 갖춘 병원을 지었습니다

절망 속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손수 벽돌을 구워 학교를 세웠고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주었습니다.

이0석 신부가 늘 가슴에 새겼던 주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드린 한 사람의 헌신이 절망의 땅에서 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같은 나라 수단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케빈카터란 사람이 있습니다.

거의 뼈만 남은 소녀가 땅바닥에 앉아 머리를 들 힘도 없어 고개를 숙이고 죽어가고 있는 데 그 뒤에 독수리 한 마리가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 참혹한 사진입니다.

뉴욕타임즈에 이 사진이 소개되자 전 세계가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뒤덮은 기아의 실상에 놀랐습니다.

생생한 기아의 현실을 보여주었다는 찬사와 함께 퓰리처상을 받았으나 곧 이어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식량배급소에 갈 기력도 없는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나 이걸 촬영하려고 기다린 기자나 다를 바가 무어냐는 것이지요.

결국 카터는 삶의 고통이 모든 기쁨을 앗아갔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나이 33세 였습니다.

한 사람은 주님의 이름으로 젊음을 수단에 바쳐 생명을 구했고 한 사람은 수단의 고통으로 명예로운 상을 받았으나 결국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기쁨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봉사는 이 땅의 어느 상이나 명예와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것인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마리아가 오늘 부은 나드 향은 주님이 잡히셔서 심문 받고 조롱당하신 중에도 여전히 우리의 왕이신 주님의 기품 속에 은은하게 퍼졌습니다.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실 때 피 냄새 대신 주님이 맡으셨을 나드향은 사랑하는 자녀가 드린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구원받을 자녀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그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이기셨습니다.

그 때 주님의 눈에 바로 우리의 모습이 있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드리는 나의 헌신은 주님의 사랑을 아는 만큼입니다.

내게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 만큼 조금씩 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께 헌신할 때 우리의 삶에 놀라운 축복이 임하고 우리의 믿음이 견고하게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은 우리 곁에 섬겨야할 영혼을 보내주시는 줄 믿습니다.

내 곁에 있는 가난한 영혼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기도로 돕고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귀한 축복이 임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