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뱅킹을 하려고 인증서로 접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잔액이 0으로 나오는 거예요.
모든 거래내역도 다 삭제되었고 금융거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은행 시스템에 에러가 났나보다 하고 다시 접속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았습니다.
몇 번 시도를 하다보니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해킹당한 건가?
돈은 별로 없지만 금융사기에 사용될 수도 있으니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겨우 상담원과 통화가 되었습니다.
상담원이 조회를 해 보더니 은행 사이트엔 현재 접속한 기록조차도 없다는 것예요.
인증서를 재발급 받아보라고 해서 서둘러 재발급을 받았지만 똑같았습니다.
당황한 마음에 다시 상담원과 통화를 했더니, 인터넷 설정에서 방문 기록과 쿠키를 다 삭제해 보라고 했습니다.
상담원 말대로 했더니 다행히도 정상적인 계좌로 접속이 되었습니다.
설마 하며 살았는데, 보이스 피싱이나 금융사기 같은 걸 당할 수도 있겠구나 좀 실감이 났습니다.
설마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랴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엔 그런 일들이 일어나잖아요?
전세사기 같은 걸 당할 줄 누가 알겠습니까?
저도 당해 봤습니다.
개그맨 김기리씨가 얼마 전 결혼을 했는데, 결혼 전 전세 사기를 당한 게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설마 나한테? 하고 살지만 건강검진 결과 큰 병원을 가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죠.
저도 그런 말 들어봤습니다.
우리가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하고 살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죠.
오늘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제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설마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망하기야 할라고?’
그 설마가 사실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전쟁은 참혹합니다.
고대 전쟁은 야만적인 면에서 상상을 초월합니다.
성경엔 점령군들이 임신한 여인들의 배를 베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설마 했던 일,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던 참변이 그대로 일어난 것입니다.
칼에 무수히 죽고, 남은 남자들은 포로로 끌려가 노예가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정복에 대한 앗수르의 비문을 보면 사마리아 남자 27,290명을 잡아갔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숫자는 당시 사마리아 인구의 1/3에 해당합니다.
아이와 여자들만 남아 치욕을 당하고 남자들은 다 끌려간 것이죠.
이런 끔찍하고 참혹한 일이 어떻게 하나님이 선택했던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일어난 것일까요?
2. 북이스라엘의 패망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이라는 데 우리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물론 강대국의 영토 야심으로 당시에도 그렇고 역사 속에서 전쟁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나라들이 생겼다 사라지는 게 당시 상황입니다.
그런 세속나라들의 멸망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멸망과는 다릅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죄와 악에 대해 최종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테러와 사람들의 범죄와 악행으로 당하는 고통이 전부 하나님의 심판은 아닙니다.
순천에서 찜닭 식당 점주에게 찔려 안타깝게 숨진 학생의 경우, 하나님이 심판하신 게 아니잖아요?
세상에 인간의 악, 사탄의 악이 개입 되지 않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 관계에 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악의 굴레를 사람들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도 없고 대비한다고 다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피할 수없이 당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징계이고 심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들을 방관하지 않으신다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악의 소용돌이에 우리가 저항 불능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것도 성립됩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겼다면 주변국들이 다 앗수르에 망해도이스라엘은 건재했을 거라는 것이죠.
성도들도 자기 죄로 인한 징계 뿐 아니라 세상의 구조적인 악과 환경, 그리고 악인들로 인해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상황에서 우리에게 관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그때는 참 전쟁 같았지’ 싶은 힘든 일들도 많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재난에 무너지지 않았잖아요?
하나님은 그런 가운데 우리를 최선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당한 모든 역경까지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오늘 북이스라엘 국가가 공중분해 된 것은 세상 악인들의 멸망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겐 그 심판을 통해 뉘우침과 돌이킴이 있는 것이죠.
에스라서에 보면 마침내 성전을 완공하고 난 뒤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를 드립니다.
그때 이미 사라진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까지 포함해 숫염소 열두 마리로 속죄제를 드립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해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록한 열왕기서의 저자는 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런 엄청난 불행이 왔는지 그 원인을 분석합니다.
남은 자들과 후손들은 이걸 통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죠.
3. 열왕기서를 기록한 후대의 역사가는 이 멸망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꼽습니다.
우리도 잘 살펴보고 반드시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부족하면 우리 믿음도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7절,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여
이들이 마치 처음부터 자기들이 가나안땅에서 살고 있던 자유민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출애굽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지금도 애굽의 한 잡족이 되어 노예로 살고 있었을 거잖아요?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대신 심판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신앙이 대속의 은혜를 자신이 인식할 만큼 체험하기 전까지는 아직 그 구원의 결과를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의 극적인 체험이 없다 해도, 특히 나의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잘 알고 확고하게 동의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기 이전과 비교할 때, 지금의 삶이 어떠십니까?
이전에 없던 소망과 평안이 분명히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이런 지금의 내 삶을 당연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원과 평안을 위해 주님께서 내 대신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을 늘 묵상하고 감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가나안 민족들과 똑같이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 어떤 우상숭배도 배격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왜 이스라엘은 그렇게 쉽게 하나님을 배신하고 가나안의 조잡한 우상종교로 바꿔 탔을까요?
인간이 만든 종교가 더 믿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상 종교는 인간의 탐욕, 정욕, 소원, 미래를 점치는 것, 종교적인 호기심 같은 인간 본성을 위해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종교가 끊임없이 사람의 악을 부추기는 것이죠.
전에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인도의 힌두교에 대해 나온 적이 있습니다.
힌두교 신앙이 추구하는 네 가지 목적 중에 성적 쾌락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힌두교 사원 중에 노골적이고 외설스러운 형상들이 빼곡이 조각 된 사원도 있는 것이죠.
힌두교가 인도 사람들을 네 계급으로 나누고, 벗어나지 못할 족쇄를 채운 것이잖아요?
성스러운 강이라고 정한 갠지스강에선 빨래하고, 목욕하고, 샴푸로 머리를 감고, 24시간 화장한 재들이 뿌려집니다.
상류에선 화학물질이 하수시설 없이 강으로 보내지는 데 성스러운 물이라고 그 물을 떠 먹죠.
기안84도 강물 맛을 보더군요.
종교가 인간의 정신세계를 망치고 기이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우상숭배를 엄히 차단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7절을 보면 다른 신들을 경외했다는 말이 나오죠.
이것은 다른 신들을 두려워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귀신 이야기, 신접한 무당의 점쾌, 그런 것에 관심이 끌리면서도 두려워하잖아요?
사람의 인격을 비정상적으로 지배하고 조종하는 악한 영이 그런 종교 안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무당에게 가스라이팅 당해 가정이 파탄 난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잖아요?
하나님이 영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나친 호기심과 맹목적인 추종을 차단하기 위해서 우상숭배를 금지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도들 중에 무속과 점괘, 미신 같은 것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내에서의 신앙에도 그런 요소들이 교묘히 스며 들기도 합니다.
모든 우상숭배의 본질은 그런 것들을 이용해 내 안전과 번영을 이루겠다는 마음입니다.
절에 가서 빌고, 점집에 가서 묻지 않는다 해도 나를 위한 탐심이 커지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골로새서3장5절은 말씀하죠.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
우리의 신앙이 나를 번영케 하기 위한 종교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무엇을 욕심내고 있는지 탐심으로부터 멀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계명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라고 지정하신 율법과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도덕적 성품과 안전한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 곧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라시는 말씀을 억지로라도 지키려고 한다면, 잘 관찰해 보십시오.
분명히 그 순간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고 주님과 교통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주의해서 거기에 나를 맞춰가야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본성대로 살면 멋있는 사람이 될까요?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이 있죠.
우리의 본성이 이기심이잖아요?
이기심을 따라 살면 속으로 마음 쓰는 게 꼭 밴댕이 소갈딱지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나를 자꾸 맞춰가다 보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웅장해집니까?
주님의 겸손, 오래 참으심, 온유, 사랑, 섬김, 정의, 긍휼, 이런 것이 성도들을 존귀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 우상숭배 금지, 말씀에 대한 순종, 이상의 세 가지를 제대로 행하지 못한 이스라엘이 결국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걸 겪고 나서야 오늘 역사가는 그것을 후회하며 이렇게 과오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후손들이 주님의 이 말씀에 다시 순종하며 섬긴다면 과거의 영광으로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를 잘 명심하고 지켜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2024년10월2일 수요기도회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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