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구원받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자세히 가르친 성경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사도가 로마교회에 보낸 서신이죠.
로마교회의 구성원은 다수가 로마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신화를 믿는 문화 속에서 나고 자란 로마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겠죠.
바울사도는 그런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위해 이 로마서를 보낸 것입니다.
1장부터 8장까지는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타락과 심판,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는 이치에 대해 아주 체계적으로 써 놓았습니다.
전에 이 부분은 설교에서 나눴습니다.
9장부터 11장까지는 특이한 주제를 다룹니다.
하나님께 선택된 이스라엘이 왜 예수님을 믿지 않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바울사도가 세세히 따지고 가르치는 게 로마서입니다.
사실을 먼저 이해해야만 믿음이 따라오기 때문이죠.
사람은 이해되고 설득되어야 믿지, 절대로 무턱대고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 12장부터 마지막까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도하는 내용입니다.
오늘부터 함께 살펴볼 때 잘 이해하고 기쁘게 행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두 절이, 우리가 세상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이자 당위성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고 넘어가야 뒤에 이어지는 삶의 지침들을 기꺼이 수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단 두 절이니까 한 절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구절의 주안점이 되는 단어를 찾는다면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죠.
우리 믿음과 삶을 논의할 때, 제일 먼저 어디서 시작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배와 예배를 받으실 분이시라는 것이죠.
우리가 부모를 존경한다 해도 경배하지는 않습니다.
높은 사람을 존경한다 해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다릅니다.
사람이 경배하고 예배할 대상은 하나님 밖에 없으십니다.
성도들은 항상,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것입니다.
지금은 제대로 예배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가면 참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저절로 엎드려 경배하잖아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때 자기들과 급이 같은 줄 알았잖아요?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주님께 경배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유월절 식탁에선 예수님께 기대있던 사랑받던 제자 요한은 계시록에서는 그렇게 못합니다.
자기가 주님 발 아래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하죠.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경외하며 예배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길 때 이 출발선이 분명해야 합니다.
아담은 처음에 분명히 자신을 창조해 주신 하나님을 경배했을 것입니다.
뛰어난 피조물인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처럼 자신이 경배받을 자리를 탐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뛰어남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피조물의 본분도 삭제 된 자손들을 출생시킨 것이죠.
성도들은 무엇이 달라진 사람들입니까?
본래 창조된 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던 자리로 내려왔다는 게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본성에 새겨진 자아 숭배는 수시로 하나님의 지위를 끌어 내리고 내가 모든 걸 지휘하는 자가 되려고 하죠.
우리가 그렇다는 경계심을 갖고 하나님을 항상 예배 받으실 자리에 모시고 섬기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이 관계를 먼저 인정해야 이후의 말씀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야 하냐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제사에는 제물이 필요하죠.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 피값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간곡한 권면은 이젠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러고 싶기도 하지만 항상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데는 난관이 있습니다.
여전히 죄의 본성은 나를 위해서 살고 싶어합니다.
또 성경대로 산다면 당연히 세속적인 삶과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유행만 좀 지난 옷을 입고 나가려해도 남의 눈이 의식되잖아요?
전에 한 청년 래퍼가 이런 간증을 하더군요.
젊어서 그런지 참 솔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 인생 보따리를 풀어 놓으면 온갖 애환이 쏟아져 나오죠.
나이도 많지 않은 청년인데, 보따리 속에 들은 것들이 만만치 않더군요.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는데, 어찌 된 일인지 보통 청년들의 삶이란 게 우리 때보다 별로 나아진 게 없어 보였습니다.
이 가수가 우여곡절 끝에 교회에 나가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몇몇 청년들과 함께 열심히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게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든, 성경을 보든,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게 너무 확실하게 믿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교회를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지금처럼 살면 안되는 거잖아요?
지금까지의 자기를 바꿔야 한다는 데에 대한 부담감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죠.
새신자였기에 더 솔직하고 정직했던 것 같습니다.
오래 믿다 보면 ‘육신의 약해서’ 그렇게 타협도 하게 되잖아요?
이 새신자 형제는 제대로 못할 바엔 차라리 하나님을 모른 척 하고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 후 1년간 아예 교회를 안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평생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1절에 어떻게 시작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여기서 그러므로를 놓치면 안됩니다.
이것은 ‘앞에서 내가 진술해 온 복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러므로,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한다는 것도 원문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면 ‘하나님의 자비가 이처럼 크시니’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하나님의 자비가 이처럼 크시니, 너희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얼마나 큰 사랑으로 희생하셨습니까?
그걸 안다면 우리가 열심히 섬긴다 해도 받은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반환인 것이죠.
청년 래퍼는 교회를 떠났지만 마음 속에 계속 하나님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하는 데, 내가 그렇게 힘들 때 언제 사랑을 주신 적이 한번이라도 있나?’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 걸 알지도 못하겠는데 왜 내가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살아야 해?’
아무리 창조주시고 통치자시라고 해도, 내게 해주신 게 없다면 나도 요구대로 안 살겠다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성경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하나님 생각을 털어버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데, 바로 ‘이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게 맞네.’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게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구나’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 외에는 달리 찾을 수 없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은혜를 받고 기도응답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지만 다 일시적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되자 다시 교회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래퍼인 이 청년가수는 랩에 친숙한 사람들에게 랩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실 랩의 차별성은 신랄한 가사와 반사회적인 퇴폐미잖아요?
그 세계에서 랩으로 복음을 증거한다는 게 얼마나 불리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나를 위해 아들을 보내주신 그 사랑을 깨닫게 되면 어떻게든 자기 위치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죄의 형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해야 하고, 그게 우리에게 더 좋다는 걸 알아도 그쪽으로만 살기는 힘듭니다.
청년 래퍼처럼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예수님을 통해 증명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기쁘게 우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큼 내 행복을 생각해 주시는 분은 없습니다.
부모라면 그 마음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자식들이 내게 밤낮없이 봉사하고 수종 드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바라는 건 자식들이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 자식들이 행복하고, 존중받고, 사랑하며 살고, 보람 있는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도 같은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의 소중한 삶을 믿고 주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죠.
바울사도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드리는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영적 예배라고 번역했지만 원문에 사용된 단어는 ‘합당한, 이성적인 예배’라는 뜻입니다.
영적인 예배가 신비한 분위기나 열정에 사로잡힌 예배가 아니라 이성과 성경의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해선 말씀의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사람을 미워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항상 하나님을 섬기되, 말씀의 지식으로 섬기는 것이 합당한 예배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믿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변화를 받으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이 세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려면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를 이 세대에 순응시켜 살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대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다투어 이 세대를 따라갑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이 세대를 분별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 세상은 하나님과 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뭘 그렇게까지 세상이 나쁠까 생각되십니까?
지난 주 기가 막힌 기사가 났더군요.
독일 국민들이 자기 성별을 스스로 바꿔서 등록할 수 있는 성별자기결정법이 발효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법원 판결이 없어도 이제는 누구나 주민등록에 성별을 원하는 대로 기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내가 여자이길 원한다면 여성이라고 올려도 됩니다.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남자가 여성으로 등록하면 여탕에도 들어가고, 여자 탈의실도 들어갑니다.
교도소에 들어간다면 남성이 분명한데, 여성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겨루는 각종 운동경기에도 참가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독일이 자기성별선택권이 합법화된 열일곱번 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세대가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차별금지법을 저지하려고 교회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죠.
이 차별금지법이,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단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정도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신념을 불법화 시키는 것이고, 결국은 독일과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악은 블랙홀처럼 강력하게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SNS, 인터넷, 유튜브, 이런 것들에 현대인들은 거의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마약 문제가 비상입니다.
우리나라 마약 환자가 삼백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더 많겠죠.
더 걱정인 것은 청소년들 열 명 중 네 명이 도박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통계가 이해가 되십니까?
인터넷 도박을 하는 아이들은 보통 천만원 이상씩 빚을 지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빚을 갚기 위해 마약 운반책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마약에 손을 대고, 점점 범죄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대학생 아들이 마약에 빠졌던 한 어머니의 간증에, 마약 문제가 이젠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들은 정말 착실하고 바른 고등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그냥 선배들에 이끌려 클럽에 가게 됩니다.
거기서 술에 탄 필로폰 계열 마약을 모르고 받아 마신 것입니다.
단 한번에 아들은 마약중독자가 됩니다.
이후로 이 아들과 부모와 모든 가족들에게 지옥이 시작된 것이죠.
우리 자녀들을 이 세대에서 지키기 위해서는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가르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 시대가 앞으로 얼마나 더 무섭고 끔찍하게 변할까요?
얼마 안 가서 우리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모든 사람이 가는 길에서 나만 용기있게 다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다수가 가는 길이 안전해 보이고 옳게 보이잖아요?
2. 이 세대에 순응하지 않으려면 마음이 새롭게 되는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우리가 이전에 가졌던 마음은 이 세대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사실, 세상이 주는 생각을 다 받아들이면 사람이 더 불안하고 불행해집니다.
세상은 성공하지 못한 것, 건강하고 아름답지 못한 것, 가난한 것, 고통, 이런 것들은 실패이고 무가치하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니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자기 가치를 생각하니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약한 것을 자랑하고 가르치시잖아요?
세상은 그 말을 비웃을 것입니다.
요즘 문제 중에 안락사에 대한 이슈가 있습니다.
고통스럽게 살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우아하게 자기 생명을 중단할 결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스위스에서 안락사 캡슐에 들어가 생을 마감한 사람이 나왔죠.
캡슐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면 질소가 뿜어져 나와 30초 안에 질식사한다고 합니다.
임신 중단권, 자기생명 중단권, 성정체성 선택권.
이런 것들에 사람들은 야금야금 설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지 않으면 이제는 무엇이 옳은 지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마음을 변화시키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를 받아라’, 즉 수동적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시는 것이죠.
이것은 성령께서만이 우리 마음을 새롭게 변화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마약 중독 청년은 자기 스스로는 마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자수하고 교화소에 들어갑니다.
그걸 수없이 반복해도 약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어머니가 교화소에 들어간 아들을 면회를 갑니다.
그때 아들이 ‘엄마, 나 하나님을 한번 믿어볼까 봐.’
그런 말을 하더랍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나서야 마약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 것이죠.
사람들이 스스로 이 세대에서 빠져 나온다는 것은 마약을 끊는 것처럼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대는 인간의 죄의 본성이 만들어낸 것이잖아요?
오래 입었던 옷처럼 몸에 잘 맞고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 세대가 멸망을 향해 가는 것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왜, 무엇이 문제야?’
우리가 이미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또 이런 세상 풍조와 조직 안에는 강력한 악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마약을 하고 난 뒤 이 청년에게 휴대폰으로 수없는 유혹의 메시지들이 날아왔다고 합니다.
마약상들이 보낸 마약 사진만 보면 홀린 듯이 그들을 만나러 나가는 것이죠.
우리는 기도와 말씀의 힘으로 변화 받은 마음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죄 본성과 이 시대는 최신 무기와 힘을 장착했는 데, 거듭난 속사람은 근육 하나 없는 약골이라면 싸움의 결과는 뻔한 것이죠.
믿음 이후에 벌어지는 이런 영적인 상황들을 잘 이해하시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이 세대에 저항할 수 있는 변화와 힘을 주시길 매일 기도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그 다음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행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선하게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죠.
또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하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 마음에도 그 기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우리는 점점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의 잣대로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AI가 쏟아내는 가짜 세상도 분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 마지막 때 많은 사람의 신앙이 무너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고하신 것이죠.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전에 개그맨 김기0씨가 과거 술광고를 거절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고, 또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데 도저히 술광고를 하지 못하겠어서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에 쪼들릴 때마다 몇 년을 후회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 해도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생각하며 사는 것은 성도들의 본분입니다.
며칠전 한 기독교방송의 간증프로를 맡은 MC 연예인이 아이들 셋과 아내를 데리고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상을 찾아보니, 아이들과 함께 명상을 배우고 발우공양을 하며 하루를 보냈더군요.
아이들이 참선 자세를 배우고 승려의 말대로 명상을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주일학교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직업이라 해도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인지를 생각해 보았다면 어땠을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영상 아래 댓글들을 보면 ‘집사가 이럴 수가 있냐’로부터 ‘기독교인들이 저렇게 타종교를 무시해서 난 안 믿는다’ 까지 야단이 났습니다.
신자들에게도 비신자들에게도 상처뿐인 결과이지 않습니까?
정말 고집스럽게 하나님 말씀을 지켜내지 않으면,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맞춰 줄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관행이다, 직업이다, 시대의 조류다, 남들이 다 그런다 해도,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지 살피고, 지켜나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와 섬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도 항상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종종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떠올립니다.
나를 위해, 내 죄를 대신해 저 십자가에 달리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더 믿어집니다.
그러면 나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겠다는 마음이 더 듭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반드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지게 될 것입니다.
거대한 시대의 악에 세상 사람들이 분별을 못하고 밀려서 삽니다.
그 흐름의 끝이 심판의 나락이라는 걸 우리는 단단히 주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을 감춘 이 세대는 웃으며 매력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성령님의 변화를 구하며, 말씀의 지식을 잘 배워,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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