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서 성도답게 사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주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해 성도들이 어떻게 답례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 살펴보았죠.
거룩한 삶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합당한 예배라고 했습니다.
또 이 세대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따르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부터는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제일 먼저 교회 생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는 교회는 일주일에 한번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교회와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가 온도차가 큽니다.
성도의 삶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사실 교회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거듭나잖아요?
교회에서 배우며 살다 이생을 마감합니다.
성도들의 삶은 교회라는 구원 공동체에서 분리되는 적이 없는 것이죠.
또 교회 생활에서 중요한 것으로 은사에 대해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와 은사에 대해 잘 이해하고 내게 주신 은사로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되길 바랍니다.
1. 본문에서 교회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구절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5절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구 역사 이래로 시간과 지역을 초월한 모든 성도들의 총회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떤 조직이나 관계도 영원할 수 없죠.
때가 되면 평생 다녔던 직장과도 이별합니다.
좋았던 모임이 깨지고, 영원할 것 같던 관계도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구성원은 영원까지 함께입니다.
우리는 영원까지 갈 사이입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격변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세상 질서가 무너지고 많은 사람의 삶이 파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의 재림인 지구의 종말까지,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끝까지 지켜주시고 함께 해주십니다.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더욱 교회와 가까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도들이 지역마다 모인 곳이 우리교회와 같은 지역교회입니다.
서신서는 주로 지역교회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지역 교회를 통해 성도들을 구원하시고 양육하십니다.
교회에서 배우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교회를 통해 우리를 연단하고 성숙하게 하십니다.
교회 생활이 때로 힘든 것은 우리가 훈련을 받기 때문인 것이죠.
교회 밖 신앙은 장성한 믿음으로 성장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래 나오지 않는 신자들을 보면 그 영혼과 삶이 퍽퍽한 걸 느끼게 되죠.
교회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물 없는 곳에서 수영하겠다는 것처럼 성립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사도도 개인 각각을 전도하고 끝낸 게 아니라, 그 지역에 교회 공동체를 세워놓고 떠났습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하나님을 섬기는 게, 신앙의 생태계입니다.
성도들이 모인 지역교회가 어떤 성격의 교회가 되는가는 구성원들에 달려 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 책망하며 회개하라고 하신 교회가 있고, 칭찬하고 상급을 약속하신 교회도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로마교회가 예수님께 인정받는 바른 교회가 되길 바랬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지상의 모든 교회가 좋은 교회 되길 바라십니다.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주시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2.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은사를 주십니다.
3절부터 8절까지, 교회에 주신 은사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1) 하나님께서 교회를 섬기도록 모든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은사는 초대교회 때 일시적으로 성령께서 주셨던 초자연적인 능력 같은 은사가 아닙니다.
본문에 나오는 은사의 종류를 보면 그게 아닌 것을 알 수 있죠.
은사는 선물이란 뜻인데 교회를 섬기는 탤런트, 재능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느 교회든지 성도들이 이런 은사에 따라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볼 수 있죠.
교회가 생기면 예배를 위해서, 전도와 친교를 위해서 봉사자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수익 단체가 아니잖아요?
교회가 유지되고, 성도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 봉사와 섬김은 필수적입니다.
그 섬김을 위해 하나님은 각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이죠.
필요한 곳이 다양하기에 은사도 다양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균형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마구잡이로 성도들을 교회로 보내지 않으십니다.
내 임의로 교회를 정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게 주신 은사로 주님을 섬겨야 할 교회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성도들이 교회를 섬긴다면 모두가 행복하고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죠?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오늘 은사에 대한 말씀을 꺼내며 제일 먼저 바울사도가 강경한 어조로 주의를 줍니다.
3절인데요, 원문에서는 우리 말 번역보다 훨씬 더 강한 명령조의 말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사도의 권위로 명령한다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 은사와 봉사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는 선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봉사하고 헌신을 많이 하는 성도들이 시험에 들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시험도 잘 이겨냅니다.
은사와 봉사 문제가 제일 심각했던 교회는 미숙했던 고린도교회입니다.
로마교회가 그런 일이 없도록 바울사도가 은사에 따른 봉사의 원칙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는 내 봉사니 내 생각대로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재능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알고 분수를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월하게도, 열등하게도 생각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경쟁하고 비교하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세상 재능이 하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서로의 은사를 존중하고 섬김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교회를 섬기도록 주시는 은사는 타고난 재능과 일치합니다.
가끔 내게 없던 은사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잠재되어 있던 재능일 경우가 많습니다.
사용할수록 더 완성되는 것이죠.
타고난 재능과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나의 재능이 성령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일에 쓰이면, 그것은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평소 요리에 재능이 있는 성도들이 음식 봉사를 하면 은사입니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이 성가대 봉사를 하면 은사입니다.
음치인 성도에게 갑자기 노래 잘하는 은사를 주실 필요는 없잖아요?
우리의 타고난 재능이 은사가 되면 주님의 교회에서 선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은사는 재능을 사용하되, 성령님의 은혜를 받아 동기도, 과정도, 결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간혹 교회에서 육신의 재능 상태로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지만 동기와 목적이 나의 영광이죠.
거기에서 잡음이 발생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빌립보서에서 ‘성령으로 봉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생업을 감당하고, 교회에서 예배하고 봉사하는 것은 소중한 헌신입니다.
그 헌신과 봉사가 성령 안에서 이뤄지도록, 믿음으로 기도하며 행하면 아름다운 봉사가 될 것입니다.
3) 또 은사에는 이런 면이 있습니다.
내 재능으로 교회를 섬기면 그 재능이 세상에서도 더 빛나게 사용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재능을 사회에서도 훌륭하게 사용하시는 것이죠.
영화배우 조정0 씨는 군면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사실이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뭔가 비리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왜 면제를 받게 되었는지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군면제 이유가 생계곤란자였다고 합니다.
생계곤란 군면제는 당시 재산액1300만원, 월수입 18만원 이하인 사람들에게 해당되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끝까지 감추고 싶은 과거의 상처가 있죠.
조정0 씨에겐 그것이 지독히 가난한 과거였던 것입니다.
조정0 씨가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찬양 봉사도 하고 성극을 했다고 합니다.
그걸 보며 교회 전도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정0 아, 너 연기를 한번 해 봐라’
조정0 씨는 그게 하나님의 음성 같았고 자기 달란트라는 걸 깨닫고 배우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드라마출연료가 회당 1억원 정도라니 성공한 배우죠.
내게 주신 재능으로 봉사할 때, 그 재능을 사회에서도 인정받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옛날에 권사님들이 하던 말이 있죠.
‘물질로 봉사하면 물질 축복받고, 몸으로 봉사하면 건강 축복 받는다’
그런 말이 오래 교회생활을 해 본 경험에서 나온 말들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가진 것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모든 성도님들께도, 심은 것들을 풍성히 거두게 하시는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사의 종류가 무엇인지입니다.
6절부터 8절까지에 나오는 은사들은 일곱가지입니다.
교회에는 이 일곱가지 은사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예언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위로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긍휼의 은사입니다.
내가 그중에 어떤 은사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은사를 받으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오늘은 간략히 이 일곱가지 은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예언의 은사입니다.
예언은 개인의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점치는 은사라고 썼을 것입니다.
성경은 미래를 점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미래를 알고 계시지만, 미래를 정해 놓으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정해 놓으신 미래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받으시고 영생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언제 결혼을 할까요, 이 사업을 하는 게 맞을까요, 지금 집을 사는 게 좋을까요, 그런 것 절대로 물으러 다니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왜 그런 것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스스로 분별하라고 하셨잖아요?
예언은 그런 게 아니라, 교회를 지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택하신 종들을 통해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그런 말씀들이 예언이고 이것을 기록한 성경이 예언서입니다.
사도시대에도 교회에 주실 말씀을 사도들에게 직접 주시기도 했고, 신약성경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시대가 끝난 뒤로는 더 이상 새로운 말씀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랬기에 성경 기록이 끝난 것이죠.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다면 계속해서 성경이 기록되어지고 있겠죠.
완성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교회시대에는 주신 성경을 잘 해석하고 선포하는 것이 예언의 은사입니다.
목사들이 하는 설교를 생각하면 됩니다.
뒤에 나오는 가르치는 은사와 좀 다릅니다.
예언의 은사는 성경을 기록할 때 감동하셨던, ‘성령님의 감동’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배운 것을 가르친다면, 예언의 은사는 거기에다 말씀을 해석하고 깊이 이해하는 성령님의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배운 것만 가지고는 설교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간혹 목사들 중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하라’는 것은 성경의 기준선을 넘어가지 말라 입니다.
(2) 섬기는 은사입니다.
섬기는 은사는 재능과 몸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은사입니다.
말씀으로 봉사하는 것만큼 교회의 필요를 위해 섬기는 봉사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언의 은사에 이어서 섬기는 은사를 놓은 것입니다.
좋은 교회는 좋은 말씀만큼이나 섬기는 좋은 성도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어느 교회 못지 않게 섬기는 은사가 풍성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이 은사대로 충성되게 섬기는 성도님들에게 오늘 히브리서6장10절로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은 (너희가)..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3) 가르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성경을 잘 배워서 가르치는 성경교사들과 성경공부 리더들이 해당되겠죠.
가르치는 은사는 성경과 교리를 잘 배워서 성도들을 지식과 지혜로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설교만으로는 방대한 성경의 내용을 풍성하게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든 그룹으로든 성경을 계속 배워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개인적인 성경공부가 잘 되도록, 내년부터는 교회에서 매일성경을 준비해서 배부할 예정입니다.
수요기도회에서 매일성경 진도를 따르기 때문에 설교를 잘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잘 배우는 은사가 있는 성도들이 가르치는 은사도 있습니다.
가르칠 정도로 성장하면 하나님은 배울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4) 위로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힘든 처지를 잘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은사가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을 만나면 위로가 되죠.
위로의 은사는 상대의 마음에 아주 가깝게 공감합니다.
대화를 하면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고 알게 되죠.
어떤 사람은 말과 표정으로 상대의 마음을 긁고 흠집을 냅니다.
저는 많은 은사들 중에 우리 모두가 이 위로하는 은사를 받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누구나 상처받고, 불안하고, 속상한 일들이 많잖아요?
성도가 하나님을 통해서만 위로받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얻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5) 구제하는 은사입니다.
구제하는 은사는 물질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은사입니다.
부유하면 구제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울이 유럽에서 구제헌금을 모을 때 부유했던 고린도교회는 처음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고난이 많던 빌립보교회가 풍성한 연보를 했다고 바울사도가 말했습니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라고 합니다.
‘성실함’의 원어는 순수하다는 뜻입니다.
구제하면서 계산하는 게 보이먼 본뜻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상대가 기분 나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구제는 순수한 마음으로, 후하고 관대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내 것으로 구제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아시기에 성경은 우리의 구제를 잠언11장25절에서 이렇게 격려합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6) 다스리는 은사입니다.
성도들 사이에도 어떤 서열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교회의 경영이나 성도들의 교회생활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책임져야 할 자리입니다.
다스리는 은사는 ‘총대 멘다’는 의미 같은 것입니다.
과거 총기가 귀할 때, 총대를 멘 사람을 제일 먼저 피격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하더군요.
교회 뿐 아니라 가정이나 회사에서도 보면 총대 메는 사람이 있죠.
왜 내가 항상 앞장서야 하냐고 불만일지 모르지만 그게 은사입니다.
아무나 ‘내가 하겠다, 내가 총대 메겠다’ 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총대를 멘, 다스리는 자들은 부지런함으로 하라고 합니다.
지도하는 은사를 받은 리더들이 나태하고 귀찮아하면 성도들이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죠.
지도자는 자기가 낙담하면 안됩니다.
지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낙담한 영혼들을 이끌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은사인 이유는, 성령께서 함께하지 않으면 주님의 일에 끊임없이 열의를 갖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직분자들은 그런 부지런함에서도 정말 본이 되시는 귀한 은사자들이십니다.
(7)긍휼의 은사입니다.
실의에 빠지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긍휼 사역이 필요합니다.
대개 병들고, 가난하고, 무력하고, 거동하지 못하는 노인분들을 섬기는 사역이죠.
동0 교회 강창0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기도 중에 강목사님이 거지처럼 사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크게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설교시간에 선포합니다.
우리교회는 이제부터 거지 전도를 시작합니다.
구걸이 생업인 사람들, 노숙자들, 쪽방촌에 기거하는 거동이 어려운 분들 전도하는 게 쉽지는 않죠.
그런 분들이 교회에 많이 오가면 불평하는 성도들도 있고, 나중엔 교회를 옮길 수도 있죠.
강목사님은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하고, 쪽방촌을 찾아 전도를 시작합니다.
한 가정이 전도가 되었습니다.
심방을 가야죠.
강목사님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날 동행한 사모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심방 갔던 집이 완전 쓰레기 집이었다고 합니다.
너저분한 물건들이 꽉 찬 방 한가운데엔 더러운 이불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 위에 앉았는데, 얼마나 오래 깔려 있었는지 때가 굳어서 딱딱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고역이었죠.
강목사님은 새가족 성도 앞에서 정말 열심히 성경말씀을 전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은 집주인이 일어나더니 이것 좀 드시고 가라고 합니다.
비위가 약했던 사모님은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습니다.
가져온 것은 때가 찌든 컵에 타온 커피믹스였습니다.
목사님은 그걸 다 마셨는데, 사모님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여전도사가 자기 커피를 마시려다 계속 구역질을 한 것이예요.
그걸 보고 목사님이 화를 벌컥 내며 나가라고 하는 데, 사모님도 얼른 따라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남은 커피 두 사발을 다 들이키고 나오셨습니다.
물론 그분들에 대한 차별보다는, 사는 환경 때문에 생긴 일화입니다.
이후 소문이 나서인지 정말 거지와 다름없는 분들이 교회로 몰려 왔습니다.
기존 성도들이나 이분들이나, 편하게 예배를 드리도록 교회에서는 예배시간을 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로 교회가 크게 부흥해 교회를 더 크게 건축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긍휼 사역은 한두 번에 끝나질 않습니다.
계속 돌봐야 합니다.
어둠과 절망에 있는 사람들인 만큼, 밝은 주님의 나라로 올 수 있도록 우리 안의 즐거움으로 기쁘게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건 성도들의 의무입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격려하시죠.
마태복음 5장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지만, 교회에 대해서는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교회를 가까이 하는 게 안전하고 복되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섬길 때 우리도 성장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재능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면 교회도 세우고 세상에서의 내 일도 세워주실 것입니다.
남의 눈을 생각하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과 교회된 서로를 잘 섬기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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