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마지막 부분입니다.
느낌이 왠지 쓸쓸하고 비장하다는 생각이 좀 드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사도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두 번 째 로마감옥에 투옥된 때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교회사의 기록을 보면 이 편지를 받은 디모데가 바울을 찾아왔을 때, 이미 바울은 순교 당한 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더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바울의 유언과 같은 마지막 인사 부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 믿음의 인생 전체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길 소망합니다.
1. 현재 바울의 상황과 디모데를 부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9절,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얼마나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지 느껴지죠.
바울사도는 6절에서 이미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고 합니다.
이번 투옥은 1차 때 가택연금 상태로 구금된 것과는 다릅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시기는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했던 네로황제 때입니다.
이 화재는 로마에 있는 빈민촌을 없애버리려 했던 네로황제 소행이라고 알려졌죠.
네로는 국민의 원성이 자기를 향하자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 잡아서 처형했습니다.
바울사도가 이때 붙잡혔기에 1차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하며 죽기 전에 가장 사랑했던 디모데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소원도 이루지 못하고 떠난 바울사도의 마지막이 더욱 쓸쓸함을 줍니다.
평생 예수님을 위해 헌신한 사역자들의 이런 마지막을 보면 생각이 많아지죠.
저랑 기도로 동역하는 여성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삼십여년을 사역하고 올해 은퇴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지 못하고 아직도 인도 사역지에 계십니다.
후임자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는 돌아와도 마땅히 살 곳이나 살아갈 대책도 없습니다.
그동안 인도 현지인들에게 얼마나 뒤통수 맞은 일이 많았는지, 머리카락도 뭉텅 빠지고 잇몸도 다 망가졌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한국에 오고 싶었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계십니다.
평생을 주님을 위해 헌신했지만 지금 현실은 안타까울 뿐이죠.
어떤 분은 남편과 함께 개척해서 평생을 헌신했는데, 남편 목사님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경우가 있습니다.
사모와 아이들은 후임 목사를 위해 사택을 비워주고 나와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다 드렸더니, 기적은 없고 아무 것도 없는 현실만 남은 것이죠.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그렇게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안 챙겨주시니 내가 정신 차리고 실속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사역자들은 스스로가 그런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받은바 은혜와 믿음이 너무 커서 아무리 다 드려도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이 사역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헌신과 마음을 기꺼이 다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휴양지에서 지중해에 지는 해를 유유자적하게 바라보는 노년을 원했겠습니까?
그런 마지막은 예수님을 향한 바울사도의 열정에 대한 모독일지 모릅니다.
순교는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다는 성도들이 스스로 순교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강압에 의해서 억지로 십자가 지는 걸 바라지 않으십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 대신 억지로 십자가를 졌지만 그것은 골고다 언덕까지만 입니다.
시몬이 이후 온 가족과 함께 평생 예수님을 위해 십자가 지며 따른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당연히 힘이 들죠.
그러나 억지로 할 정도라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랑을 먼저 더 알아가는 게 좋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이 알길 원하십니다.
바울처럼 모든 걸 쏟아부은 사역자들이 없었다면 교회가 세워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동역하는 성도들의 수고를 똑같이 여겨주신다는 것이죠.
어디서든, 누가 되었든, 주의 일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귀하게 여기고 항상 동역자가 되어주시길 축복드립니다.
2. 바울사도에게 평생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만 남아 있습니다.
본장에는 바울의 마음에 새겨진 17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중 두 사람만 살펴보겠습니다.
1) 바울을 떠나간 사람 중에 아픈 상처로 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10절,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같고
한때는 함께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지만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있죠.
데마는 바울의 가까운 동역자였습니다.
골로새서를 보면 이렇게 바울이 썼습니다.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빌레몬서에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바울사도가 데마를 특별한 동역자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랬던 그 데마가 바울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것도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합니다.
바울사도가 받았을 충격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실망과 낙담도 예수님을 따를 때 견뎌야 할 십자가입니다.
아마도 바울사도는 데마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데마 자신도 자기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끝까지 믿음의 경주에서 이탈하지 않을 경각심을 항상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과거엔 바울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지금은 유익한 사람도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11절,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마가는 사도행전에서 기억나는 이름이죠.
바나바와 바울이 떠났던 1차선교여행 때 동행했지만,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혼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전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가는 바울에게 단단히 찍힙니다.
단기선교여행을 갔는데, 일행 중 누가 힘들다고 혼자 비행기표를 끊어서 돌아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일행에게 얼마나 낙담을 주고, 일정에는 얼마나 차질을 주는 것입니까?
그런데 2차전도여행 때도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를 데려 가려고 합니다.
그 일로 바울과 바나바가 싸우고 각각 다른 선교팀을 꾸렸었죠.
그 마가가 지금 바울사도에게 유익한 동역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가를 섣불리 판단했던 것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과거가 있다면 서로 꺼려했겠지만 바울과 마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사랑과 충성이 있는 성도들은 서로에게서 큰 위로와 기쁨을 줍니다.
성도 각자가 예수님을 잘 따르고 헌신할 때 교회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마가와 같이 예수님의 일군으로 성장하는 분들이 많아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올 때 겉옷과 가죽 성경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13절,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가보의 집에서 로마로 올 때는 겉옷이 필요치 않은 날씨였겠죠.
바울은 아마도 로마에 잠깐 들려서 돌아오겠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겉옷과 가죽 성경을 두고 왔던 것이죠.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까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차가운 감옥에서 겨울을 나려면 겉옷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대 사도의 계획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야고보서에서, 미래 청사진을 길게 뽑아 놓은 사람들에게 경고하죠.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지난 주 유튜브에서 석 달 전에 올라왔던 한 심리학교수의 강의를 하나 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 패널로 나온 배우가 송재0씨였습니다.
바로 지난 주 세상을 떠난 배우입니다.
이 분도 악랄한 스토커에게 고통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영상에서는 자신이 미국 주식에 투자했다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얼마나 어둡던지, 곧 무너질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는 말씀이 실감이 났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생각하고, 일 년 뒤를 계획하지만 단서를 붙여야 합니다.
‘주의 뜻이면’
간절히 기도하고도 ‘주의 뜻이면’을 생각한다면 기도 응답이 없다고 섣불리 실망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2) 바울이 가죽 종이에 쓴 성경을 가져오라고 하죠.
율법학자였던 바울사도의 머리 속엔 아마도 구약성경 많은 부분이 암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감옥에서 보내는 시간, 바울사도가 가장 읽고 싶은 것은 또 성경이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가득 차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 음성 한번 들어볼까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 어디를 열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복음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의 그 음성을 읽을 때 은혜에 젖고, 때로 전율이 일어나고, 마음에 용기가 생깁니다.
평생을 연구하고 가까이 했지만 여전히 바울에겐 성경이 가장 읽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경을 읽고 또 읽어도 계속 읽고 싶게 되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4. 모두가 떠났지만 바울 곁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16절,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그 많던 동역자들은 바울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 곁에는 끝까지 주님이 계셨습니다.
17절,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바울에게 예수님은 보좌에 앉아계신 분이 아니라 곁에 서 계신 분입니다.
우리의 주변에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도 결국은 다 우리 곁을 떠납니다.
그 고독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이 내 곁에 서 계신다는 믿음이 모든 상실과 결핍을 이기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다만 주님이 내 곁에 계신 것을 경험하고 계속 관계를 맺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질듯한 위기에서나, 홀로 눈을 감아야 하는 순간에 곁에 계신 예수님을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이 내 곁에 예수님이 서 계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바울이 예수님 곁에 서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누구에게 가까이 있냐를 보면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사랑하는 줄 알게 되잖아요?
데마는 세상을 사랑했기에 그 곁으로 간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했던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곁에 서 계시듯, 우리도 항상 주님 곁에 있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024년11월20일 주는나의산성교회 수요기도회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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