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후서

말씀을 전파하라 (디모데후서4장1절-8절)

남수연 2012. 2. 2. 17:19

디모데후서는 바울사도가 교회들에 보낸 편지 중 제일 마지막 서신입니다.

주후67년에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순교했고 이 편지는 그 바로 일 년 전인 66년에 디모데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서신에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치열한 영적 싸움을 싸웠던 바울사도의 삶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순교 할 날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한 노사도의 이 마지막 편지를 읽으면 왠지 로마 감옥의 황량함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본서의 뒷 부분에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두고 온 겉 옷을 가져오란 내용이 있습니다.

로마 감옥의 냉기를 견디고 있을 바울사도의 고통이 어땠을지 참 안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다메섹 노정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오직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며 일생을 불태운 노사도의 확신에 찬 권면이 또한 본문에 있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라는 제목으로 오늘은 전도에 대해 나누길 원합니다.

전도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에 부담이 느껴지시죠.

예수님의 지상명령이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의무이고 교회의 존재목적이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들 전도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을 나름 갖고 사는 것이죠.

그러나 시간과 열정과 능력이 다 부족함을 이유로 그 명령을 순종하지 못하기에 마음 한 구석에 송구한 마음과 위축 된 마음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마음 한 켠에 밀어두었던 전도에 대한 관심을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전도가 다만 우리에게 주신 무거운 책임 뿐 아니라 가장 값진 축복임을 깨닫는 은혜의 시간되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먼저 1절과 2절에 나타난 복음 전파의 명령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사도는 복음 전파의 긴박성과 당위성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 땅을 심판하실 예수님의 나라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도래 할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걸고 전도할 것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밧모 섬에서 마지막에 벌어지는 지구의 심판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요한 계시록에 그 본 내용을 생생하게 기록했죠.

바울사도 역시 서신의 여러 곳에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4장16절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고린도후서12장7절에는 천국에 다녀왔던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가 받은 계시가 지극히 크기에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에 가시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사도 역시 천국과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의 모습을 미리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므로 그에게 가장 중요하고 긴박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경험하고 심판의 날을 보았다면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고 쿨쿨 잘 자고 있는 우리 가족을 내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한 네팔 선교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 데 그 분이 십일 간 금식하고 잠을 자고 있는 데 귀에 선명한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물 한 방울만 주세요.

그리고 연이어 몇 번 더 물 한 방울만 주세요란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교사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다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물 한방울을 달라던 그 말씀입니다.

부자는 자기 형제들을 고통 받는 이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의 소리는 우리 형제 네팔 사람들을 구원해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그는 선교지에서 얻은 병으로 한국에서 치료를 받아야 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네팔에서 복음을 전하다 죽어 자신의 사역지인 네팔 우딩 교회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묻히겠다는 글이었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죄인에게 절실한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이 눈으로 보았고 확신하는 이 심판하실 그리스도 앞에서 엄히 명령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 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예수님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영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수 백억의 사람들을 죄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 할 능력이 있으십니다.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석궁테러 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이란 영화가 요즘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재판에서 어떤 사건을 오류 없이 공정하게 판결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폐부를 살피시고 마음을 감찰하시고 머리카락 수까지 세고 계시지 않다면 어떻게 전 인류를 심판 하시겠습니까?

우리 주님이 모든 사람의 삶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계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모든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미 값을 치루고 깨끗하게 공제되었다는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사도는 그 심판을 알기에 평생 복음을 전하기 위해 쉬지않고 달렸던 것입니다.

바울사도와 같은 열정을 갖고 평생을 복음을 전하고 죄인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느새 우리 마음엔 요즘은 전도가 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의무를 슬그머니 덮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심령이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뜨겁지 않다하더라도 전도는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방법으로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을 택하셨다고 성경이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할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전도하지 않기에 지금도 하루에 10만명이 복음을 믿지 않고 심판의 자리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전 인류의 죄를 속죄 할 십자가의 형벌을 치루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렸지만 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모른 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까?

분명히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서죠.

모태신앙이라면 부모님의 전도를 통해서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를 시도해 보아서 알겠지만 거절 당했을 때 창피합니다.또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면 왠지 사이가 거북해지기도 합니다.

뭔가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 같아서 싫죠.

그래서 사람들이 전도를 자꾸 회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다른 봉사라면 다 하겠어도 전도하는 일은 기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건 전도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과 그 가정을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어쩌면 전도는 우리 가정의 막힌 축복과 묵직한 문제들의 돌파구가 될지도 모릅니다.

가장 힘들고 하기 싫고 부담스런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행할 때 당연히 축복하셔서 주님의 기뻐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안산제0교회의 0훈 목사님은 청년 때 폐 결핵에 걸렸습니다.

잘 못 먹던 옛날에는 참 결핵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0목사님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었는 데 자기와 같은 처지의 결핵 환자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상대방이 그 말을 듣자마자 즉시 믿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전도한 0목사님이 더 놀라 얼마나 기뻤는 지 그날 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너, 정말 기쁘냐?"

"네, 너무 기쁩니다"라고 목사님이 감격하며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아들아, 네 병이 나았다."

그래서 그는 곧 하산해서 지금 안산에서 큰 교회를 이루어 목회하고 계십니다.

영혼을 전도한 다음 느끼는 마음의 행복을 이 땅에서 어떤 좋은 것을 얻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전도를 그렇게 기뻐하시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또 전도할 때 우리는 영적인 세계를 알게 되고 우리 믿음이 강건해 지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자연의 공간 속에는 영적인 공간이 함께 존재하고 있어요.

보통은 자연의 공기와 분위기만을 느끼게 되지만 때때로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이 임하시면 영의 세계를 이 가운데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영적인 세계를 많이 접촉하고 체험하고 누릴수록 우리 믿음이 추상형에서 실제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보통 예배와 기도, 찬양 말씀 묵상들을 통해 영적인 세계가 실재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런 영적인 은혜가 막혀 있고 자연의 세계만을 느끼게 될 때 우리의 영이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게 되죠.

그러나 우리가 전도를 하는 그 순간 순식간에 영의 세계 속에 접촉됩니다.

그 순간 성령이 역사하시고 숨어있던 마귀도 정체를 드러내며 방해 공작이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방법으로든 전도를 하려고 마음먹고 시도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에 정말 공기가 알 수 없이 묘하게 바뀌는 것 느껴보셨습니까?

권태롭고 무미하던 공기가 무언가 굉장히 각성되고 집중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전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점점 믿음이 실제적이 되고 굳건해지는 은혜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지 않고 사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자연인들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전도에 열심을 갖고 틈만 나면 복음을 전하려고 기회를 보고 애를 쓰는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이렇게 강건해져 가면 이 땅의 육적인 삶도 강건하고 축복을 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마음을 어지럽히고 환경으로 장난을 치고 함정을 파는 마귀의 세력을 대적할 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면 알 수없는 생기와 에너지가 우리를 사로잡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의 기쁨과 활력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전도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우리 생활 보다 더 실제적인 영의 세계를 감지하고 영혼을 죽음에서 건져오는 감격이 없다면 어떻게 선교지에 나가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그 분들도 우리와 똑같이 육신의 안위를 염려하고 좋은 것을 누리고 싶은 소원을 가진 인간입니다.

전도해보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최근 침체되고 있는 한국교회를 걱정하며 많은 전도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튼 어떻게든 전도를 해서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전도방법들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일인 줄 믿습니다.

그 중에 0용수목사님의 가족세트 전도방법이 있는 데 참 특이합니다.

우선 전도 세미나를 마치면 직접 거리로 나가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침 거리에 배우처럼 차려입고 검정 선글라스까지 쓰고 가는 범접하기 힘든 사람을 만납니다.

0목사님은 다가가서 말을 겁니다.

교회 다녀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리고 대답과 상관없이 머리에 손을 얹고 다짜고짜 기도를 시작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리고는 자 따라하십시오.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영접기도를 따라하게 시키는 것입니다.

그럼 사람들이 희한하게도 꼼작 못하고 그 기도를 따라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 전화번호, 가족들의 신상명세까지 다 불러줍니다.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기로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도장찌고 복사까지 하고 화기애애하게 헤어집니다.

과일가게에 들어가서도 무조건 머리에 손을 얹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주인이 아니, 왜 이러십니까?하며 고개를 빼면

가만히 계세요 따라하시면 매일 삼 백명의 손님들이 오는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면 우물쭈물 따라 하고 순순히 교회로 따라나온다는 거에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을 영접한다니 너무 놀랍죠.

물론 강하게 거부하는 사람도 만나지만 거의 대부분이 교회까지 나온다는 것을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도 실습을 통해 경험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전도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전도방법을 통해서도 성령의 역사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삶은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생명과 기쁨의 생수가 공급되고 윤택해지는 축복의 삶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물론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전도하는 방법이 무례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우리가 말씀을 전파하려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전도할 방법을 구하면 어떤 방법이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0수관 박사님은 환자들을 진료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한번은 세브란스 병원에 환자 하나가 피를 토하며 급히 들어왔습니다.

응급실에 넣고 수술해 주고 입원을 시키고 보니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됩니다.

전도대상자가 나타난 것이죠.

다음 날 새벽예배시간에 먼저 기도를 합니다.

“주여, 전도대상자가 나타났습니다. 전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집에 가서 사모님에게 일주일 간 녹두죽 좀 끓여달라면 사모님은 정성껏 죽을 만들어 주십니다.

다음 날 그 환자를 찾아가 녹두죽을 전하며 건강을 회복하라고 위로합니다.

대부분 마음과 몸이 약해진 환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죽을 먹는다고 합니다.

의사가 녹두죽을 가져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겠죠.

다음날도, 그리고 삼일 째에도 녹두죽을 가지고 가면 환자가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0박사님이 믿는 예수님을 저도 믿어도 됩니까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녹두죽 세 그릇으로 세상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한 것입니다.

그는 전도하다가 연세대 교수로 가게 됐다고 말하며 전도야말로 최고의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장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며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올해 우리가 한 사람을 마음에 작정하고 그 영혼을 한번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려보면 어떻겠습니까?

2012년 구원받는 수가 날마다 늘어가는 교회가 되라는 표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도를 하고 또 하나님의 집을 예배자들로 가득 채워간다면 반드시 우리의 집도 축복으로 넘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말로만 하고나면 스스로 지키기가 좀 힘들죠?

이 한 주간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주시는 열매가 누구일까 생각하고 다음 주 예배시간에 한 사람의 전도대상자를 작정하겠습니다.

태신자라고 하죠.

우리가 한 명의 성도를 잉태하는 단계입니다.

출산할 때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함께 그 영혼을 섬기고 6월과 10월 두 차례 초청예배를 드릴까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교회와 성도님들을 축복하셔서 전도의 열매를 풍성하게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다음은 3,4,5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고난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하고 그러나 그 명령을 지키면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시죠?

아니 말씀에 순종했으면 축복을 받아야지 왜 고난을 받습니까?

이런 믿음의 역설이 사실 우리를 어렵게 하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전도하는 대로 열매가 되어 우리 곁에 매달리고 말씀대로 순종하면 즉각적인 축복을 보여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분명히 말씀대로 순종했고 믿음으로 기도했고 최선을 다해 주님을 의지했는 데 축복이 아니라 더욱 곤경에 빠지게 되다니요.

이럴 때 하나님께 대한 섭섭함이 우리 속에 아주 쪼금은 내비치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어쩌면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는 바울사도에게도 복음을 위해 몸 바친 자신의 노년에 닥친 투옥과 외로움으로 아주 조끔 주님께 대한 섭섭함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본서의 여러 곳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거론하며 섭섭함을 내비칩니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섭섭함 속에는 그런 상황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섭섭함도 있기 마련이죠.

아무리 믿음을 추스르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려 해도 내 안타까움과 절실함에 묵묵히 보고 계신 하나님께 그런 마음이 조금은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곰곰이 왜 하나님이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명령대로 전도를 하는 데 왜 열매를 말하기 전에 고난을 말씀하는 것이냐는 것이죠.

전도를 위해 도시락점을 열었으면 매출이 껑충 뛰어 빨간 글씨가 좀 흑자로 바뀌면 얼마나 좋습니까?

기도한 대로 병도 좀 시원하게 낫고 바라던 대학에 합격도 좀 하고 빠듯한 가정 경제에도 숨통이 좀 틔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정말 밤 잠을 안 자고 생각하고 생각하며 여쭙고 또 여쭈며 얻은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죄의 결과인 자연적인 상황 가운데서 똑같은 조건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자녀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죠.

대통령 아들이라고 병역의 의무를 면제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정의와 공평으로 이 땅을 통치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문제를 의논하고 지혜를 구할 때 결과가 어떻든 모든 것이 합력해서 반드시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가족의 병으로 기도했는 데 낫게 하실 수도 데려가실 수도 있습니다.

부도를 막아달라고 기도했는 데 부도가 날 수도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구했는 데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 직장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문제건 하나님께 맡겼다면 하나님이 문제를 이끌어 가시고 그 결말은 반드시 좋게 끝난 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분명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치명적인 나쁜 결과가 되었습니까?

아니요, 그것이 결코 지금 내 삶을 나쁘게 바꾸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모든 일들로 인해 우리 믿음이 견고해지고 인내를 배우고 또 닥치는 인생의 파고를 보며 심호흡을 하고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죠.

칭얼대며 기도하는 것을 바로 응답해 주셨다. 그 다음은요?

그 다음에 또 시련이 올 때 그 땐 또 어떻게 합니까?

또 죽겠다고 기도하고 즉시 응답해주신다, 그 다음은요?

이래가지고는 우리에게 성숙도 인내도 없습니다.

자원해서 선을 행하고 옳은 일을 감당할 능력이 생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해도 혹시 고난이 올 것이나 담대하게 인생을 대면하라는 것이죠.

특히 복음을 전할 때 마귀의 세력은 총공세로 대항하니 그 고난을 대비하고 담대하게 전도자의 일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의 간증은 은혜롭고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 더욱 우리를 낙심시키기도 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모든 사람이 다 듣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노련한 전도자 바울사도의 권면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외면당하고 창피당할 때 위로가 되는 줄 믿습니다.

일생 복음전파를 위해 생명을 다해 달려 온 노사도의 쓸쓸한 옥중서신은 지금 응답받지 못한 문제들로 무너져 가는 우리에게 결과가 나 때문에 나빠진 것은 아니라고 격려하는 줄 믿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할 때 섭섭해할 것도 창피할 것도 좌절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주관하고 계시는 한 절대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좀 아프고 괴로워도 그렇다고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고생과 좌절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고난이 필요하고 이 기도의 과정이 필요하기에 이 낙심되는 상황도 허락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구겨지고 찌그러지고 망가진 문제 같아 보일지라도 가장 아름답고 선한 결과물을 창출하시는 창조주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십니다.

우리만 계산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산법은 더 정확하십니다.

고난을 통한 연단과 인내의 크기 만큼 우리의 지경을 넓히시고 관리할 것을 배분하십니다.

주님을 위해 인내하고 수고하셨습니까?

아무리 작은 것으로 심었다해도 주님은 결코 계산을 빠뜨리지 않고 축복하심을 믿으실 바랍니다.

우리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시련 가운데 있을지라도 인내하고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삶을 선택할 때 하나님은 저울에 달아보시고 반드시 오케이 사인과 함께 소원하는 모든 일에 풍성한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7절과 8절에서 이런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마친 전도자에게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울 한 사람 뿐 아니라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천국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입니다.

현재 0성그룹의 창업주인 0수근 장로의 부인이신 고 0귀옥권사님에 대해 지난 주에 나누었죠.

젊은 시절 순교자가 되겠다고 각오한 0권사님은 여늬 가정집 여인 처럼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안락한 삶만을 살 수 는 없었습니다.

0권사님은 서울역 앞에 대한기독교절제회 건물을 세워 무작정 상경하는 시골 처녀들이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도하며 양육했습니다.

당시 0권사님이 이끄는 여성절제회가 다른 모든 선교단체를 제치고 가장 많은 전도지를 뿌렸다고 합니다.

권사님은 생활비의 80%를 떼어 매년 50명의 장학생을 키워냈고 수많은 선교사와 목회자를 후원했습니다.

당시 부족할 것 없는 중견회사 자녀들의 생일상에 미역국 외에는 더 올라온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몇 년 전 0권사님이 소천하신 뒤 둘 째 딸인 0정주교수가 한 이야기입니다.

돌아가시기 전 혼수상태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는 데 막 소천하신 순간 그의 마음에 확실한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정주야! 내가 부활했다. 기뻐해라.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슬픔을 압도하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시신을 냉장 보관하러 모시고 가는데 어머니의 음성이 다시 또렷하게 들렸다고 합니다.

"정주야!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 이제 의의 면류관을 받으러 간다.

너도 잘 달려서 의의 면류관을 받도록 따라 오너라."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매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우리 모두에게도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는 줄 믿습니다.

매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평안을 누리며 사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리고 복음과 함께 고난 받으려는 아주 작은 믿음으로 말씀을 전파할 때 하나님은 주님의 기쁨을 우리 안에 폭포수와 같이 부어주시고 능력의 삶을 살게 하실 줄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