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성탄주일설교-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누가복음1장26절-38절)

남수연 2024. 12. 25. 16:15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감사드리는 주일입니다.

올해는 특히 어지러운 우리나라 시국을 주님의 은혜로 속히 평온케 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성탄절에 나눌 말씀은 뭐니뭐니 해도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예수님 탄생에 대해 동방박사와 베들레헴 마굿간만 알고 있으면 아쉽고 안타깝죠.

매 성탄절을 보내며 우리 주님의 탄생에 대해 점점 더 알고, 설명할 수 있을만큼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게 아직도 믿음이 없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몰라서입니다.

오늘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에 대해 더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1, 2천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출생의 비밀이 빠지면 드라마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출생의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출생의 비밀은 사실 비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모든 사실이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구약성경에 6백 번 정도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실 것도 이미 예언 되어져 있습니다.

이사야서714절에 나오죠.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사람이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세계의 종교 창시자들은 사람입니다.

우리처럼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죠.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을 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석가든, 공자든, 양심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없이 태어난 인물이 있다면 팩트가 아니라 신화의 인물입니다.

르네상스시대에 보티첼리라는 화가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큰 조개 껍데기 위에 막 태어난 미의 여신 비너스가 서 있는 그림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이 비너스여신은 바다의 물방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지어낸 신화입니다.

모든 인간은 부부관계를 통해 태어나죠.

참고로 이 누가복음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 준 누가는 직업이 의사입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당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의 사건들이 일어난 뒤 삼십여 년 이내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의 의미와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죠.

의사 누가도 이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조사해서 예수님에 대한 이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서두에 이렇게 예수님이 처녀 몸에서 태어나셨다고 밝히는 것입니다.

어떤 의사가, 남자 없이 여자 혼자 임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추호의 의심이라도 있었다면, 누가는 의사의 양심상 이 내용은 뺐을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처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바다의 물방울 속에서 비너스가 탄생한 것처럼 기독교의 설화인가 생각하겠죠.

이것이 사실이냐로 논쟁이 붙는다면 말도 안되는 신격화라고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냥 이천년 전, 지금 포화가 터지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다가 죽은 한 사람으로 겨우 알 뿐입니다.

그래도 주님의 생애가 진실되셨다는 건 인정해 4대 성인 속에는 끼워줍니다.

성경이 진술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우리 믿음과 구원의 기초석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고 믿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공중누각처럼 됩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모든 진리들이 공중에 세워지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태어난 단지 위대한 성인이라면 우리가 뭐하러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2.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왜 이 세상에 왔느냐는 것입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태어나셨냐는 미스터리가 남는 것이죠.

마태복음에서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에게 현몽한 가브리엘은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 이렇게 전합니다.

이는 저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니라

세상에서는 우리의 죄를 지적하지 않죠.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너희가 죄인이다, 그 죄에서 내가 구원하시겠다는 걸 말씀해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인간은 죄인이고 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를 주시고,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닙니다.

죄인들의 죄값을 대신 속죄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마리아의 아기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어떻게 남이 내 죄값을 대신 받을 수 있느냐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입니다.

사람 사회에서도 보증이라는 게, 남이 잘못한 것을 대신 담당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 죄값을 누가 대신 담당해 주겠습니까?

하나님은 대속의 법도 정하셨고 대속해 줄 사람도 정하셨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굳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기로 오셔야만 했을까요?

이 답은 아주 쉽습니다.

사람들 중에서 남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내가 너를 죄에서 구원해 줄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인생들은 자기 죄의 짐을 지고 살기에도 허덕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평생 죄를 짓고 삽니다.

죽은 뒤 하나님의 법정에서 지은 죄에 대한 판결을 받는다면, 형량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세상 법정도 얼마나 무섭습니까?

정치인들이 무슨 생각으로 법에 저촉되는 정치활동을 하는지 참 의아하죠.

요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일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다 드러난 정치인들이 수갑을 차잖아요?

작년 11월 스페인에서 한 남성의 실종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리무중이던 사건이 이번에 단서를 찾게 되었습니다.

구글에서 제공하는 스트리트뷰 화면에 한 남자가 시신을 트렁크에 싣는 장면이 찍힌 것입니다.

경찰의 탐문수사로 그 시신까지 발견했다고 합니다.

완전 범죄인 줄 알았는데, 구글 카메라가 돌고 있는지는 몰랐던 것이죠.

세상에는 죄가 드러나도 법망을 피하는 법꾸라지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역사가 심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모두의 죄는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죄값을 공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물으십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이 그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죄값을 대신 치러줄 대속자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어느 인간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속죄할 처지가 못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태를 빌어 완전한 인간이 되어 우리 모든 죄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믿는 우리에게 영원히 죄책을 묻지 않으십니다.

죄가 아예 없는 것으로 인정하시고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위해서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되신 것입니다.

이게 성탄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의 복중에 얼마 동안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마리아의 복중에서 태아로 열 달을 지내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여인의 복중에 열 달을 계시며 영아로 성장하신다는 게 이해가 됩니까?

예수님이 모친의 복중에서 천국을 왔다갔다 하신 게 아니잖아요?

계속 태에 머물며 오장육부가 만들어지고, 영아로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한 달만 계실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성령으로 잉태도 되셨는데, 한 달 만에 나오신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하나님은 완전한 인간이 되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인간의 대속자로서의 조건을 정직하게 갖추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입법자로서 스스로도 그 법을 완벽하게 지키십니다.

사람들은 작은 권력만 있어도 얼마나 법을 무시하고 야합하고 이득을 나눕니까?

법과 원칙을 중시하시는 하나님의 경영 방식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말씀의 법을 지키며 살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저절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무도한 신앙은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적에만 열광하는 믿음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런 신자들이 기적 같은 응답을 기대하고 기도만 열심히 하다 실망하는 일이 많습니다.

절박하게 기도해야 할 때도 있지만, 기도는 쉬지 않고 하는 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법입니다.

그 법대로 살면 기적이 아니라도 많은 문제들이 때가 되면 풀어집니다.

예수님도 기적은 성령으로 잉태되시는 것까지고, 이후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법칙에 스스로를 맞추셨습니다.

세상 출생의 원리대로 열 달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뿐입니까?

십자가로 대속할 공생애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삼십년을 성장하셨습니다.

우리처럼 아침에 일어나시고, 식사를 하시고, 목재로 생활도구들을 만들어 파시며 하루 하루 삼십년을 사셨습니다.

부자가 되지도 않으셨고, 유명해지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 삶에도 성장의 주기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 되면 세상에 안될 일이 뭐가 있겠어요?

변하지 않고 답답한 시기에는 인내하고, 현재에 감사하는 게 제일입니다.

지금 상황과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 막혀있던 시간도 서서히 지나갑니다.

또 인생에 주신 패턴이 있습니다.

곤고한 날과 형통한 날을 병행해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그대로 잘 살 것 같지만, 곤고한 날이 오면 삶이 참 되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도 견디면 하나님이 다시 평안한 날을 주십니다.

내년엔 우리에게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의 역사를 보면, 계엄과 탄핵에 대한 재판들이 지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각자의 입장으로 볼 때, 답답하고 화도 나겠지만 기도하며 이 역사의 주기를 잘 넘어가도록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

내년에 여러 경제상황과 사회문제들도 녹록치 않을 것입니다.

부족하고 염려되는 상황들도 기도하며 말씀에 충실히 살아간다면 내년도 큰 어려움 없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잉태하기로 받아들인 마리아에 대해서입니다.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살고 있던 처녀입니다.

다윗의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도 다윗의 가문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가브리엘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우리는 이런 말을 듣는다면 무슨 소리인가 의아하겠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너무 쉬운 말입니다.

다윗의 왕위를 받고 다스릴 왕이 온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해 온 메시야의 출현입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알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 뒤에 보면,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리는 여러 사람이 나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성전에서 기도하던 시므온과 안나.

이런 사람들이 이미 메시야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성령을 통해 알고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좋은 마리아도 자기 민족을 구원하러 오실 다윗의 자손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했던 메시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내게서 그 메시야가 오신다는 것으로 알아 들은 것이죠.

34절을 보면 마리아가 이렇게 묻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사실 이 말은 좀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하고 곧 결혼할 사이잖아요?

그렇다면 천사의 말을 요셉과 나 사이에서 아기가 생긴다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자연스럽죠.

그런데, 마리아는 그 아기가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지는 않는다고 이해했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태어날 아기가 메시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워질 아기라고 했잖아요?

그럼 요셉과의 사이에서 태어날 보통의 아기는 아니라는 걸 직감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나이가 아마 아직 십대의 어린 처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좀 자세히 보면 얼마나 당찬 소녀인지 모릅니다.

천사를 보고 두려워했지만, 절대 밀리지 않고 물을 걸 다 물어 봅니다.

경이로운 존재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마리아가 어렸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죄가 많다면 벌벌 떨었겠죠.

가브리엘은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아멘 하시겠습니까?

처녀가 임신할 거라는 말씀인데요.

마리아가 오케이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다른 처녀를 물색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자유의지권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사람을 이용하신 적은 없습니다.

사람은 힘이 있으면 사람을 억압하고 조종해서 자신의 뜻을 이룹니다.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위압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사람을 대하지 않으십니다.

나사렛 촌에 살고 있는 십대 소녀라고 하나님이 막 대하시겠습니까?

자유의지를 무력화하시려면 뭐 하러 처음부터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겠습니까?

구원조차도 그렇잖아요?

구약에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강제로 믿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면 그것을 존중하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옳은 선택을 하도록 지혜를 주시고 마음도 감동하시지만, 모든 일의 최종 선택은 우리가 스스로 하게 하십니다.

마리아가 천사를 보고 두려워 예수님의 잉태를 받아들였겠습니까?

마리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민족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본문 뒤에 이어서 나오는 마리아의 기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두려움에 순종했다면 천사가 떠나고 얼마나 후회했겠습니까?

처녀가 임신한다는 게 지금 사회에서도 쉽게 용납되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유대사회에서 처녀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 죽어도 마땅하다 생각했습니다.

약혼자 요셉에게는 뭐라고 말하겠어요?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걸 어떤 남자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약혼자는 분노하겠고, 파혼 당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현실 앞에서 하나님께 선택된 자신의 운명을 원망할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까지 억지로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게 때로 억지로 하는 것 같지만, 얼마나 억지로 하겠습니까?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내게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믿음이 있고 자원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28절에서 가브리엘이 말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결혼도 안 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는 것은 은혜이고 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은혜이고 복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한 마리아를 불명예와 괴로움과 모욕에 처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순종한 우리를 위해서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자식들이 누구에게 욕을 먹고, 모욕을 당하면 부모 눈에 불이 켜집니다.

전에 우리 딸이 밤에 귀가하는데 골목길에서 차가 바짝 붙어 지나가다 발에 타박상을 입은 적이 있습니다.

운전자가 나와서 상태를 보고 사과해도 모자랄 텐데, 오히려 부주의하다고 욕을 했다는 거예요.

딸이 얼마나 억울했는지 차 뒷번호를 외웠더군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요.

오금동 대림아파트로 그 차가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그 밤에 가서 주차된 차 번호를 전부 다 확인하고 다녔습니다.

못 찾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자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시련을 당하며 모욕, 멸시당하는 걸 원치 않으십니다.

할 수만 있다면 최소한의 시련만 감당하게 하십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요셉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조용히 파혼하려고 합니다.

마리아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감당하기가 두려워서였다고 기록합니다.

가브리엘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을 데려오라고 지시합니다.

하나님은 정혼자가 없는 처녀를 택하시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요셉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안전하게 아기를 낳게 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순종하기만 하면 그 외에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예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좁은 길을 선택하면 하나님은 가장 안전한 방편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평생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는 것에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세상은 지금의 세상이 아닙니다.

보나마나 전 세계가 전쟁터에서 신음하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 나의 삶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지금의 나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탄절에,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 예수님을 마리아처럼 마음에 모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때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특별한 뜻을 위해서 내게 순종을 원하실 때, 마리아처럼 순종하시길 축복드립니다.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우리 앞에 문을 계속 열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