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기쁜 성탄절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다 영원한 생명을 주러 오신 예수님을 믿고 평화를 얻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아기처럼 태어나셨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을 밟고 이 공기를 호흡하셨던 때가 있었던 것은 역사이고 사실입니다.
그 시대에 태어나진 못했지만, 오늘 누가가 그려놓은 지도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마리아의 길을 함께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다윗의 족보를 가진 마리아와 요셉이 살던 곳은 갈릴리의 나사렛이란 동네였죠.
지난 주 처녀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 사실을 살펴 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여자 혼자 아기를 가질 수 있느냐, 신격화고 터무니 없는 조작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아니라면 그냥 관심이 없는 것이겠죠.
조작했다는 것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조작하는 건 뭔가 이득을 얻기 위해서죠.
교회 역사를 보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같은 사건이 조작된 게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 수많은 순교자들이 예수님이 성령으로 나신 하나님이 아들이란 것을 증언하다 순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도덕적인 가르침만 전파했다면 죽을 이유가 없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한 것은 유대교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이고, 당시 지배하던 로마제국에도 황제에 대한 반역입니다.
양쪽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이익도 없이, 죽으면서 말했다면, 진실이라고 믿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마리아는 당시 누구보다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리던 경건한 소녀였습니다.
아기가 복중에 자랄 때, 가브리엘의 말대로 그 기적이 진짜 이뤄진 것에 놀랐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평범한 집에서 태어난 이 아기가 어떻게 구원자가 될지 의구심도 들었겠죠.
아기는 어떤 신비한 조짐도 없이 태 중에서 자라갔습니다.
그리고 해산이 점점 가까워 옵니다.
이 아기는 어디서 태어나야 합니까?
반드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이, 메시야가 태어날 곳이 베들레헴이라 예언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이어야 한다고 했죠.
이스라엘사람들이 가장 호감을 가졌던 선왕 다윗에게 메시야의 이미지를 입혀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셨다면 세종대왕의 후손 정도로 정하셨을지도요.
그리고 그 메시야는 다윗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만 했습니다.
마리아가 살던 갈릴리 나사렛에서 태어났다면 메시야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에 주님이 나사렛 출신인 줄만 알고 사람들이 이렇게 수근거렸습니다.
요한복음7장41절,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 예언은 주전 8백여년 미가선지자에 의해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가서5장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천년 전 성도들이 믿었던 이 성경을 우리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대에 맞게 각색된 성경을 믿는 게 아닙니다.
구약성경 최초 기록자인 모세로부터 마지막 성경 기록자인 사도요한까지, 그 이후 지금까지의 기간이 삼천오백년입니다.
그동안 성경은 더하거나 뺀 게 없습니다.
계시록에서 기록된 대로, 이 말씀 외에 더하거나 빼면 재앙이 있으리라는 것은 경고임과 동시에, 성경이 확고하게 보존될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급진적인 현대 시대에도 이천년 전과 똑같은 진리를 믿는 것이죠.
진리는 결코 변할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구약 성경에 기록된 대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예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기를 어디서 낳아야 합니까?
이 예언이 이뤄지게 하려면 베들레헴으로 원정 출산을 가야 하겠네요?
그래서 마리아가 원정 출산을 떠납니다.
물론 이 일은 당시 로마의 호적령이라는 사건을 통해 이뤄집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인간 역사의 도로 위를 지나간다’
1절,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아구스도는 로마황제 옥타비아누스입니다.
당시 옥타비아누스가 다스리던 로마제국은 거의 ‘천하’나 다름없었습니다.
남으로는 이집트, 동으로는 페르시아, 서쪽으로는 영국까지 지배하던 거대 제국입니다.
인구조사는 대개 식민지에서 세금을 징수할 목적으로 시행하죠.
황제가 내린 호적령에 따라 모두 본적지에 가서 호적부에 이름을 올려야 했습니다.
아무리 마리아가 메시야가 태어날 곳을 알았다 한들, 거기 가서 아기를 낳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삭의 몸으로 140킬로 떨어진 베들레헴까지 간다는 것은 아기를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고 그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왜일까요?
하나님의 섭리의 수레바퀴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필 그때, 본적지에 가서 호적을 올리라는 영이 떨어진다는 게 우연이겠습니까?
‘아, 베들레헴으로 가라시는 뜻이구나’
그런 경험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만삭의 아내를 험한 길에 동행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호적은 남자 혼자 가서 식구들 이름을 올려도 됐거든요.
또 조산이나 노상에서의 해산을 걱정했다면 마리아가 따라 나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또 한번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에 자신을 순종합니다.
인생 여정엔 하나님의 섭리의 수레바퀴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판가름하는 중대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그 수레에 탑승해야겠죠.
그렇기에 꾸준히 예수님을 믿고 귀 기울이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개그맨 박성0 씨가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아주 조용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주일 예배를 빠진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성극을 하는 데 한번 해 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습니다.
거기서 성0 씨가 주인공역을 맡게 되요.
거기서 자신감을 얻고 결국 개그맨이 된 것입니다.
저는 주거비가 계속 올라서 기도하던 중, 경기도 양주 집값이 제일 많이 내렸다는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관심도 없던 곳입니다.
곧 양주로 임장을 갔습니다.
그리고 전세보다 더 싸고, 리모델링도 새로 한 아파트를 사서, 주거비 신경 안 쓰고 잘 살고 있습니다.
차인0 씨는 은평구 응암동 단칸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재산이 370조 금수저란 소문들은 다 가짜뉴스입니다.
이혼한 뒤 아이를 키우기가 힘들었던 모친은 미국 이민비자신청을 합니다.
7년을 기다렸다 세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차배우는 학비를 위해 식당 웨이터부터 잔디 깎기, 페인트칠, 정신병원 보조간호사까지 정말 안 해 본 직업이 없다고 합니다.
일하기 위해선 건강해야 했기에 매일 틈틈이 팔굽혀펴기 운동을 합니다.
당시 유튜브도 없어 할 수 있는 운동이 그것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지금도 몸짱이게 된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팔개월 동안 벤치에서 무가지를 뒤적이며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길거리에 붙은 MBC 공채탤런트 모집 광고를 보게 됩니다.
한번 지원해 볼까하는 마음으로 도전합니다.
수만 명 지원자 중 일곱 명이 합격했고 차인표씨가 일등이었습니다.
차인0 씨가 그 정도로 미남형은 아니잖아요?
나중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때 심사위원들이 이런 심사기준을 세웠다고 합니다.
올해는 잘생긴 배우보다는 직업 경험이 많고, 몸이 좋고, 영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을 뽑자고 정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차인0 씨를 마음에 두고 세운 기준 같지 않습니까?
차인0 씨가 신앙이 좋고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죠.
항상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그렇기에 차배우를 태우실 하나님의 수레 바퀴가 지나갈 때, 기회를 붙잡은 것 아니겠습니까?
지혜와 분별력과 결단력와 책임감이 최고치인 때는 우리가 성령님의 힘으로 충만할 때입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로 성령님이 우리 속사람을 강하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마리아 역시 아기의 출산이 가까워 올수록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지, 하나님께 더 집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온 것을 알자 지체 없이 위험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3절,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절,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절,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만삭의 마리아도 힘들었지만 예수님은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산모가 힘들면 아기가 뭉친다고 하잖아요?
아기도 힘들어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긴장합니다.
가난한 젊은 부부니 분명히 먼 길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혹시 나귀라도 빌렸을지 모르죠.
그러나 울퉁불퉁한 산악길을 나귀 타고 가는 것도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만삭이면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숨이 찰 때잖아요?
그렇게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하는 데는 두 주는 족히 걸렸을 것입니다.
2. 그런데 베들레헴 여관엔 빈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와 예수님을 위해서 따뜻한 방 한 칸을 준비해 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무능하시고, 매정해서 그러셨겠습니까?
그런데도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베들레헴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온 나라가 호적령으로 대이동 중입니다.
작은 마을 베들레헴의 여관은 투숙객으로 다 차버렸던 것입니다.
해산이 임박한 마리아를 받아 줄 따뜻한 방은 없었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쉽지 않아요.
살면서 이런 때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견디기 힘든 상황을 버티고 있는데, 또 다른 문제가 터질 때가 있잖아요?
그것이 꼭 우리가 잘못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오늘 말씀에서 분명히 알아두시길 바랍니다.
마리아가 결국 마굿간에서 예수님을 낳게 된 것은 하나님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신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라면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마굿간에서 탄생하신 예수님 이야기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이만한 강력한 메시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 아기로 잉태되실 때부터 이미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하실 때 이렇게 말하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미 인간의 죄 짐을 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동생 여섯 명을 건사해야 할 가장이 되셨습니다.
살림은 늘 쪼들렸겠죠.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으셨습니다.
아마 평생 차별을 당하셨을 것입니다.
사역하는 동안 오해받고, 제자들조차도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모두를 품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지만, 대적자들은 점점 많아지고, 십자가를 앞 둔 시점엔 모두가 주님을 떠났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주님의 생애 전체가 죄인들이 짊어진 인생의 짐을 이미 담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전에 베들레헴에 있는 탄생교회를 가 보았습니다.
압도 될 만큼 웅장한 교회였습니다.
여러 전쟁을 겪으면서도 교회가 남아 있게 된 것은 이유가 있더군요.
페르시아가 침략했을 때는 교회 벽 모자이크 그림 덕에 교회가 보존됩니다.
아기예수님을 경배하는 동방박사 세 사람이 페르시아 복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 장군은 그림 속 조상들에게 경배하고 교회를 떠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교회 아래 우묵한 동굴이 있는데, 거기가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그 동굴이라는 게 유력한 학설입니다.
저도 오래 줄을 서서 구유가 있던 자리에 손을 대 보았습니다.
당시 동물 우리는 나무로 지은 마굿간이라기 보다는 동굴을 파 들어간 형태였다고 합니다.
베들레헴에는 그런 동굴들이 여러 개 남아 있었습니다.
돌로 된 차가운 동굴에서 마리아는 아기를 출산했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은 강보에 쌓여, 돌로 만든 딱딱한 여물통 안에 뉘어지셨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이 처음으로 사람의 옷을 입으셨습니다.
주님이 처음 입으셨던 옷은 가난한 사람들이 준비한 아기 포대기였습니다.
성경에서 옷은 보통 의미를 담고 있죠.
어린 사무엘은 젖을 떼고 엘리제사장 밑으로 갈 때 부자어머니 한나가 제사장의 에봇을 지어 입혔잖아요?
오늘 이 초라한 아기 포대기를 시작으로, 예수님은 인간의 옷을 입고 삼십삼 년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평생 사람을 배우셨을 것입니다.
처음 사람이 되어 보셨잖아요?
예수님은 배고픈 걸 처음 경험하십니다.
피곤치 않으신 하나님이 고된 행로에 피곤을 느끼고 사마리아 우물 곁에 주저 앉으셨습니다.
자지도 졸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 풍랑이 널을 뛰는데도 배 안에서 곤히 잠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위해 사회에 나오셨을 때, 누가 봐도 삼십 대 청년 사람이셨습니다.
주님은 영광의 찬란한 옷을 버리고, 평생 사람의 옷을 입으시고 완전한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으로 내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혀 주셨죠.
예수님을 감싼 싸구려 포대기를 보며 이 성탄절에 무엇을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도 입혀주신 옷처럼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너무 잘 안되죠.
그래도 우리 평생에 예수님 말씀대로 지키고 주님 닮아가려고 애쓴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를수록 우리는 죄와 악의 고통에서 더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본성이 더 강하게 드러납니다.
수양하고 훈련해서 얻는 교양, 의지, 절제, 도덕, 이런 것들은 그 상태를 유지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됩니다.
에너지가 부족해지는 나이가 될수록 에너지가 적게 드는 본성이 더 드러나는 것이죠.
그래서 더 자주 사람들과 부딪치고, 스스로의 믿음도 불안정하게 됩니다.
물론 성도들의 경건은 자기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닙니다.
성령충만에 힘쓰되 나이 들수록 더 많은 시간을 경건과 믿음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노년에 믿음의 성장을 포기하면 가장 힘든 마지막 시기를 이겨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연착륙하는 게 아닙니다.
모든 인생의 사업들은 서서히 연착륙하겠죠.
그러나 우리 믿음은 계속 성령님의 동력을 힘입어 점점 날아올라 하나님께로 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비천한 인간의 옷을 입으시고 사람을 배우셨듯이, 내게 입혀주신 옷을 입고 함께 주님을 배우길 바랍니다.
좀 잘 안 맞고, 부담스럽고, 성가시다 해도, 잘 맞춰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누가가 그려놓은 지도를 따라 베들레헴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보고 왔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신비는 낮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강제로 끌어내리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낮아지려 하지 않죠.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나쁜 환경으로 내려오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그렇게 될까봐 우리가 불안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를 높이려 좆다 지치고 채워지지 않아서 화가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원칙은 낮은 곳에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은혜이든, 사랑이든, 지혜이든, 삶의 어떤 필요이든, 낮아야 합니다.
낮아지고 비워져야 더 유익하고 영원한 것으로 다시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구유의 예수님을 생각하며 높은 곳에 두었던 우리 마음이 다시 낮아지는 성탄절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예수님이 주신 옷을 입고 주님을 평생 배워가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사렛의 시골마을에서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던 마리아와 요셉을 마음에 잘 새기길 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복종할 때, 메시야의 탄생이라는 찬란한 역사에 공조할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검박하고 남달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예수님이 계획하신 나의 삶을 따르길 의식하고, 순종한다면,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고 이 땅의 삶을 빛나고 보람되게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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