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성경 본문이 누가복음으로 넘어왔습니다.
오늘은 개요를 간단히 정리하고 누가복음의 문을 여는 세례요한에 대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누가복음의 저자는 바울사도의 주치의였던 의사 누가입니다.
누가는 먼저 자신의 복음서를 저술하게 된 이유를 1절부터3절에서 밝힙니다.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지요.
1절,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절,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1)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은 실제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의원 누가가 있지도 않은 가상의 인물 나사렛 예수를 소설처럼 기록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이 복음서가 기록되던 당시엔 얼마나 많은 목격자가 살아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설교하실 때 수천, 수만 명의 군중들이 모였었잖아요?
또 있지도 않은 일을 이야기로 남기겠다고 많은 사람이 나섰다면, 그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예수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진실입니다.
2) 누가는 오늘날처럼 가짜 뉴스가 진실을 왜곡할 것을 걱정했습니다.
구전되던 이야기들은 기록되는 과정에서 변질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이야기를 기록했지만, 성경으로 인정된 것은 단 사복음서 밖에 없는 것이죠.
누가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사실에 근거한 복음서를 기록하기로 작정했습니다.
3절,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여기서 살폈다는 단어는 의사가 환자를 세밀하게 문진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누가가 의사이니 만큼 누가복음에는 헬라어 의술용어가 많이 나옵니다.
누가는 예수님을 아는 신빙성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모시고 있던 어머니 마리아를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본문의 세례요한의 탄생 기사부터 밝혀지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마리아와 세례요한의 어머니가 친족관계이고, 본문 뒤에 보면 마리와와 엘리사벳이 서로 만난 이야기도 나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만큼 정확한 탄생 기사가 나오게 된 것이죠.
성경은 사실에 근거한 진실임을 누가가 서론에서 쐐기를 박는 것입니다.
2. 누가는 왜 복음서의 시작을 세례요한에게서부터 시작했을까요?
예수님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도 되잖아요?
1)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구약성경 마지막 예언서인 말라기서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말라기의 예언은 메시야가 오기 전, 먼저 엘리야 같은 선지자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안 오면 예수님도 못 오시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세례 요한의 존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세례요한이 왜 먼저 와야 합니까?
예수님이 그냥 오셔서 구원 사역을 못 이루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굳이 세례 요한을 먼저 보내셔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게 하셨을까요?
또 메시야의 길을 어떻게 예비한다는 것일까요?
세례 요한은 여러모로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례 요한을 아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 대속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결국 성경의 모든 인물과 사건들은 예수님의 구원을 가리키는 단서들인 것이죠.
1) 세례요한의 사명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이후 예수님 오시기까지가 400년 침묵기라고 말씀드렸죠?
그동안 하나님 말씀을 받은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적으로 무지와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말씀이 내 인격과 삶을 가르치지 않으면 영적인 어둠 속을 더듬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엔 구약성경의 정도를 벗어난 유대교가 민족 종교가 되어 있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런 신앙으로 백성들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신다고 하셨죠.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종교 특권층입니다.
종교의 특권과 각종 이득을 누리며 사람들을 영적으로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불의를 파헤치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세례 요한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짧은 시기에 이 모든 일을 하실 수 없는 것이죠.
주님은 속죄 사역에 집중하셔야 했습니다.
사회적, 종교적 불의에 대한 부분을 세례요한이 먼저 담당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켰던 것이죠.
2)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 준비한 것은 백성들에게 회개의 물세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물세례가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이때까지 죄 용서는 구약의 제사에만 달려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전파한 물세례는 회개에 따른 죄용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1장4절도 이렇게 말씀하죠.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제사 외에 새로운 구원의 원리를 예고하는 게 세례요한의 물세례입니다.
구약시대 속죄 제사를 가지고 대신 속죄라는 구원의 원리를 심어 놓으셨다면, 이제는 회개라는 당사자의 몫을 개봉하는 것입니다.
제가 구약성경에서 회개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의외로 몇 개가 안 나왔습니다.
구약성경 시대에는 성령께서 개인에게 임하시지 않았기에 사실상 본질적인 회개는 불가능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도 아테네 전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7장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아무리 주님이 십자가의 구원을 다 이루셨다 해도 사람들이 죄를 모르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모르면 속죄와 짝이 안 맞는 것입니다.
이번 주일에 믿음과 행함이 굿 파트너라고 했죠.
회개와 구원이 또한 굿 파트너입니다.
세례요한이 뒤에 보면 회개하지 않고 세례받겠다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합니까?
3장7절,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절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 세례 요한의 회개 촉구처럼 우리 마음의 죄를 강타하실 것입니다.
항상 말씀 앞에 겸손히 나의 죄악된 모습을 살피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감사하며 깨닫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3.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례요한은 가문으로 볼 때 누구나 인정할 만한 신분이었습니다.
본문 앞에 보면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은 둘 다 제사장 가문입니다.
지금은 부모가 목사다 하면 좋은 가문으로 치지 않지만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제사장을 존중하는 종교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받아들이기에 별로 장애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보내실 때, 세상이 무시 못 할 그럴 하나님 자녀의 신분과 함께 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항상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세례요한의 출생 기사가 빵빵합니다.
기적적인 출생이라는 것이죠.
사람들이 기적 좋아하잖아요?
세례요한의 부모는 늙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대로 기적적인 잉태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좀 주목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
가브리엘 천사의 말이죠.
너의 간구함이 하나님께 들려서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가랴가 기도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왜냐하면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이미 아기를 가질 수 없을 만큼 늙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계속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그런 넌센스가 어디 있겠습니까?
경건한 사가랴는 백성을 대표해 분향하는 시간에도, 또 평소에도, 당연히 국민들과 나라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로마 압제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기도했겠죠.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위안을 받지 못하고, 유리하는 양떼 같은 백성들을 다윗과 같은 메시야가 오셔서 다스려주실 것을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누가 와야 하죠?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먼저 와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웬만한 유대인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묻잖아요?
메시야가 오기 전에 오기로 했던 엘리야가 왜 안 오냐고 묻죠.
사람들이 그 선지자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가 바로 세례요한이라고 하시죠.
사가랴는 메시야가 오시기 위해 또 그 선지자를 보내주시길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사가랴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가랴에게 바로, 그 아들을 보내주신 것이죠.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은 ‘기도한 사람’에게 그것을 맡기시고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기도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일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세상살이는 항상 빡빡합니다.
일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가정을 꾸려가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이 쏜살같이 갑니다.
우리 평생이 그렇게 순식간에 다하고, 우리 연수가 신속히 가니 날아간다고 모세가 시편90편에 기록했죠.
그렇게 다 보내기엔 우리 일생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지 않습니까?
천국에서 누릴 영원에 비해 이 땅의 구십 평생이 정말 티끌처럼 짧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이 땅의 일들이 영원히 기념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하나님을 위해 행한 일들은 영원히 기념이 된다고 예수님이 여러 비유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일은 영원히 남습니다.
사가랴처럼 하나님과 주의 나라의 일을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일을 내게 맡겨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일 나를 어디에 쓰시겠다면, 그럼 하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의 능력보다 나의 결심을 우선으로 보십니다.
모든 일에도 내가 원하고 기도해야 하나님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려운 지경에 있는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내 가족과 가정을 위해, 직장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시든 귀하게 헌신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025년2월12일 주는나의산성교회 수요기도회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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