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로마서16장 (마지막 권면) 송구영신, 송년예배

남수연 2024. 12. 30. 15:50

https://youtu.be/-KT7nQ0nngc

 

올해 달리고 달려서 드디어 마지막 주일까지 왔습니다.

탄핵 정국 속 연말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올해도 예수님을 잘 배우고 따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큰 문제들을 인도해 주셨고, 일상에 평안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주나산의 가족으로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서로 힘껏 섬겨오신 성도님들께도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올해 마지막 주일에, 로마서도 마지막 장을 함께 나누며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로마서를 보면, 물론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했지만, 바울 신앙의 진액을 다 짜냈다는 게 느껴집니다.

그런 로마서의 마지막 결론이라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로 끝냈겠죠.

그렇기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주일에 이 말씀으로 우리 믿음과 삶을 점검하면 좋겠습니다.

뒷부분만 읽었지만 앞 부분의 이름들과 16장 전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바울과 동역하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소개하며 서로 문안할 것을 권합니다.

1) 1절부터 16절까지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 명단이 의미하는 바가 중요합니다.

바울이 거명한 이 명단은 마치 로마교회 성도들을 모아서 찍은 기념사진과 같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군들이 모여서 찍은 단체사진 같은 느낌, 아시죠?

아직 서로를 모르는 로마교회 성도들은 회람되는 이 서신서를 통해 누가 예수님의 교회를 이룬 한 몸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거명된 이름은 26명이고 대부분 가정교회 평신도 대표들입니다.

그런데 아직 사도들이 한 명도 들어가지 않았던 로마에서 예수님의 교회를 이룬 이들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쓰는 현재까지는 한번도 로마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바울이 로마시민들을 이렇게 많이 알고 있을까요?

명단에 나온 성도들은 로마에만 살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유대 땅에서, 혹은 소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살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었거나, 다른 제자들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된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로마에 와 있을까요?

화려한 로마를 동경하고 돈을 벌기 위해 로마에 모인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았겠죠.

사람은 자기 목적대로 살잖아요?
세계의 중심인 로마가 복음전파의 교두보가 되어야 함을 알았기에 하나님나라를 위해 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알아갈수록, 더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 성령께서 알게 하시면 그곳에 있는 것이죠.

미국 애리조나의 나바호원주민 마을엔 황성0선교사님이 사역하고 있습니다.

사방에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에 황선교사님 교회가 외롭게 서 있습니다.

여기서 미국 원주민 나바호족을 섬기며 장작을 패고 라면을 끓여줍니다.

황선교사님은 개척도 했고, 큰 교회 담임목사도 했고, 미국 한인교회를 맡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교회를 지도하며 편안한 사역을 할 수 있었지만 아무 사역자도 가지 않는 곳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의 서신서가 씌어질 당시 성도들은 거의 이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각자의 믿음과 여건에 맞게 하나님나라를 세우게 부르신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고 오 년 뒤 바울은 간절한 기도대로 로마에 가게 됩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재판을 받으러 가게 되죠.

그때 로마로부터 육십킬로가 떨어진 곳까지 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을 맞으러 나옵니다.

죄수의 몸으로 압송되는 바울을 많은 성도들이 둘러싸고 함께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바울이 그려준 오늘 16장 사진의 실사판인 것입니다.

교회는 누군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를 둘러싸고 기도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가족입니다.

올해 어려움과 실의에 빠진 나를 위해 우리 성도들의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이 명단의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은 모든 교회가 이들의 믿음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성도들은 예수님을 전파하고 자기 집을 교회로 내 놓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생업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좋은 근무조건에 많은 월급을 받으며 풍성히 누리며 사는 것은 참 감사한 삶이죠.

그러나 왜 성경은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을 기록해 남기지 않은 것일까요?

그것이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신 가장 중요하고 보람된 목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명단에서 몇 사람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3절에 보면 좀 들어 본 이름이 나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이 부부는 바울사도가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바울에게 숙소를 제공했고, 천막 제조업을 하며 선교사역에 함께 했습니다.

지금은 로마로 돌아와 가정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부부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함께 사역했던 바울사도를 위해 목숨을 줄 만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사랑이 성도들 간에 현실로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함께 헌신하는 우리들도 서로 이런 사랑을 목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 고급 텐트를 짓는 기술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이 부부는 얼마든지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고 편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후로 여러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세웁니다.

각처에 세워진 이방인의 모든 교회가 이 부부를 떠올리며 감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마음 속에 떠올리고 가장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를 전도하기 위해 애쓰고, 나를 교회로 데려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고마울 것입니다.

전에 제가 평신도 시절 구역예배에 갔는데, 새로 나온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사법고시 연수생이었는데 선교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고 계속 웃을 듯 말 듯하던 아내가 입을 엽니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선생님이 저 교회에 데리고 갔잖아요?’

알고 보니 제가 담임했던 반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데려갔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계속 잘하다 좋은 남편을 만나고 선교사로까지 헌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제자에게는 자신에게 소중한 신앙을 갖게 인도해 준 감사한 사람이 저잖아요?

전도는 누구든지, 언제나 할 수 있는 예수님과 사람에 대한 봉사이고 헌신입니다.

우리가 올해도 그런 한 사람을 위해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권하고 섬겼다면 하나님께서 올해 참 잘 살았다고 하실 것입니다.

내년에도 그렇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13절엔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나옵니다.

루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로 올라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입니다.

성경에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지만 구레네 시몬의 이야기만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심한 매를 맞고 피를 많이 흘리신 주님은 자신이 달릴 십자가 기둥을 지고 가실 체력이 남지 않으셨습니다.

시몬은 유월절 예배를 위해 큰맘 먹고 상경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형 행렬을 구경하다 사형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것입니다.

인생 최악의 날이었던 것이죠.

힘겨운 걸음을 내딛는 예수님의 옆에서 분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형장까지 걸었습니다.

시몬은 본의 아니게 주님의 십자가 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형을 집행했던 백부장이 한 말과 똑같은 말을 되뇌었을 것입니다.

백부장이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토해냈잖아요?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시몬도 똑같은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이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내 구원자시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시몬의 삶은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우리도 믿기 전과 비교하면 극적으로 달라졌잖아요?

안 믿던 것을 믿게 된 것이 가장 극적인 변화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시몬이 당시 구레네라는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로, 원주민들의 피부가 검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안디옥 교회 지도자 중에 니게르 시므온이 있었다고 합니다.

니게르는 검다라는 뜻입니다.

학자들은 이 시므온이 구레네 시몬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극한의 고통을 시몬만큼 가까이서 오래 지켜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 고통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았다면 어떻게 섬으로 돌아가 물고기나 잡으며 살겠습니까?

구레네 사람 시몬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게 된 것이죠.

우리 모두가 나를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점점 더 깊이 알아가게 되길 소원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시몬은 죽고, 루포와 시몬의 아내는 로마에서 살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루포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라고 합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시몬의 아내가 바울의 선교사역에 마치 어머니가 자식의 일을 챙기듯, 그렇게 동역했다는 것이죠.

구레네 시골 출신의 시몬 가족들이 대도시 로마에 입성했고, 복음 전파에 일익을 담당할 만큼 영육 간에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가족들이 대를 이어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섬기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하나님은 올해도 그렇게 섬긴 우리와 자녀들의 영혼과 육체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3) 바울이 작성한 이 명단은 성도들의 헌신을 하나님이 기념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성도들의 이름을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수고한 이들을 하나님께서 기념해 주시는 것이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미 성장한 교회에서 많은 신앙생활의 혜택을 누리는 것도 감사하지만 교회를 새로 세우는 부르심은 특별합니다.

올해도 우리교회를 함께 세우며 헌신한 모든 성도님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기념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해 주실 것입니다.

 

2. 서로 문안하는 관계가 아니라 끊어야 할 관계에 대해서도 경계의 말씀을 주십니다.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사도는 밝게만 편지를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17절부터 20절까지 좀 심란하고 어두운 내용을 언급하며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올해 우리 삶에도 밝은 면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어둡던 시간들은 건강, ,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때문이 가장 많았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 관계에서 옵니다.

바울사도는 그런 문제를 앞에서 다루어 주었습니다.

서로 비판하는 문제에 대해 각자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받아주라고 했습니다.

특히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용납하라고 했죠.

그런데 오늘의 문제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교회에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아예 떠나라고 합니다.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 절교해야 할 사람은 교회가 배운 진리와 다른 것을 퍼뜨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 외에는 어떤 사람과도 선을 그어서는 안된다는 뜻도 됩니다.

나랑 성격이 다르고, 생활 환경이 다르고, 믿음이 약하다고 사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됩니다.

바울사도는 앞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자세히 진술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그 대속을 통해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게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항상 거짓 교훈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과 논쟁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미 그런 궤변을 늘어 놓는 이단자들과 너무나 많은 논쟁을 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도 거의 모든 교회들은 이런 이단의 문제로 분란을 경험합니다.

신천0나 안상0하나님의 교회, 여호와 증0같은 것은 성도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단이죠.

5년 전 우리 교회가 여기서 이전 예배드리는 날, 예배 시작 바로 전에 신천0에서 여러 명이 몰려와 자기들 전단지 나눠주고 그랬습니다.

교회가 그런 사람들까지 품을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받아준다면 그들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많은 사람들을 오염시키고 진리에서 끌어 내릴 것입니다.

 

2)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의 특징을 바울사도가 간파합니다.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를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이들은 신앙을 내세우지만 예수님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속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의 모든 봉사와 헌신에도 예수님을 섬기는 것인지, 나를 섬기는 것인지, 시금석을 두고 늘 살펴야 할 것입니다.

현대에 뿌리를 내린 이단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교주를 높힙니다.

교주이건 신도들이건 목적은 자기 집단의 이익입니다.

 

3) 바울사도가 염려하는 것은 로마교회 성도들의 순진합니다.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처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 할 때를 보통 첫 사랑이라고 하죠.

그때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만도 신기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에 어떤 목사님이 한 말입니다.

교회학교에서 칠세 반에 다니는 남자아이가 이렇게 담임선생님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어서 힘들었는데, 하나님을 믿게 돼서 다행이예요.’

바울사도가 지금 멀리 고린도에서 로마교회의 첫사랑에 대해서 듣고 있었습니다.

첫사랑 중인 로마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는 사람들을 잘 영접하고, 친절을 베풀고, 공동체에 쉽게 받아들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사도가 걱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만 그러나’, 우리 말에는 이 그러나가 빠져서 내용이 분명하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로마성도들의 순진한 믿음은 칭찬할만 하지만, 그러나 선과 악을 잘 분별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선과 악을 분별하려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물론 세상 지혜는 아닙니다.

세상 지혜는 우리 믿음을 더 혼란스럽게 할 것입니다.

이단과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는 17절에 나오는 너희가 배운 교훈입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자들보다 무신론자들이 성경과 교리에 대해 더 많이 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기가 막힐 일이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기독교신자 중 28%만 기독교라고 정답을 맞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잖아요?

그것은 언제고 의심할 수 있다는 걸 말합니다.

이단을 분별할 때 뿐 아니라, 우리 안에 그런 의구심이 들 때도 배운 말씀들로 의심을 몰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감정으로 생각한다면 늘 믿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성경에 대해 잘 배웠고, 진리와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더 성장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3. 교회와 성도들의 원수인 사탄의 존재에 대해 주의를 줍니다.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사탄이 우리 발 주변에 있을 만큼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단 사상을 퍼트려서 믿음을 끌어내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아는 사람들을 통해, 심지어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 사탄은 갈등을 조장해 공들여 쌓아 올렸던 믿음을 무너뜨립니다.

사탄은 성도들의 죄의 발화점을 잘 알고 불을 붙이는 데 선수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긴 로마서에서 이렇게 치명적인 사탄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처음 언급합니다.

성경은 사탄에 대해서 아주 한정된 정보만을 가르치십니다.

성경을 벗어나 누군가의 경험을 통해 마귀와 악령들에 대해 배우면 안됩니다.

악령의 말을 듣고 영의 세계를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악령들은 거짓을 지어내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귀신을 내쫒는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귀신 들린 사람이 하는 말에 속아 농락당하기가 쉽습니다.

사탄에 대해서 많이 알고, 많이 의식한다고, 사탄에게 더 많이 승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사람관계에서 악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 비밀이 20절에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사탄을 우리 발 아래 상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사탄을 벌하신다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의 평강이 있는 곳에 사탄의 궤계가 무력화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평강을 유지하면 반드시 마귀의 모든 계략은 우리 발에 밟힙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 때 마귀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서 활동하는 악의 세력들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승리의 비결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평강이 없는 관계에는 반드시 마귀가 더 깊게 개입합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하나님의 평강을 사이에 두어야 합니다.

올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들었다면, 잘 생각해 보십시오.

상대와의 사이에 하나님의 평강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탄을 밟는 게 아니라 사탄이 우리 발꿈치를 물 것입니다.

상대방과의 사이에 마음이 평온치 않다면 절대로 조언도, 의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평강, 사람들과의 평강을 항상 힘써 지키고 더 충만한 새해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올 한해 다들 참 열심히들 잘 사셨습니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충성되게 하나님을 섬긴 이것이 우리 믿음의 고백입니다.

바울이 거명한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기념책에 모두를 기록하셨을 것입니다.

또 그로 인해 올 한해 우리 가정이 복을 받았고, 교회가 복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올해 아쉬웠던 신앙에 대해서는 새해에 매일성경으로 성경과 하나님을 잘 배우고 실천하시길 축복드립니다.

마지막 때 예수님의 진리와 복음을 대적하는 많은 적그리스도들의 출현을 예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배운 교훈으로 철저히 무장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