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매일성경 묵상은 여호수아서입니다.
여호수아서 1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이제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야 합니다.
싸워본 적 없는 가나안 전체 부족들과 전면전을 치러야 합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두려웠을까요?
우리도 탄핵정국이 점점 안갯속 같이 느껴집니다.
이러다 우리나라가 두 개로 쪼개져 싸우는 건 아닐까.
현재의 정국은 그동안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이 대립하던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는 물론이고 우리 개인에게도 올해 여러 가지 불안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올해 소비시장 트렌드를 알려주는 단어가 ‘생존’, ‘불황형 소비’라고 합니다.
이런 소식들이 우리 마음에 묵직한 돌덩이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가나안땅 앞에서 지금 여호수아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세 번 나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하시죠.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떤지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지도자로서 역할에 자신만만하다면 이렇게 거듭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할 이유는 없죠.
사실 여호수아는 담력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40년 전 가나안땅을 정탐했을 때, 다른 정탐꾼들은 우리가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다고 절망적으로 보고 하지만 여호수아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죠.
당장 가서 정복하자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망설이고 두렵고 불안해 하고 있을까요?
나이가 먹어서 마음이 약해져서 그럴까요?
물론 나이 먹으면 그런 경향이 없지는 않죠.
그렇지만 미국 대선에서 80이 넘는 사람들이 그 큰 나라를 이끌어 보겠다고 서로 싸웠던 걸 보면 나이 먹는다고 다 나약해지는 건 아닙니다.
나이 든 사람들의 노욕은 터무니없는 데다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죠.
여호수아가 두려워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지도자로서의 무게 때문일 것입니다.
40년 전 여호수아에게는 모세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총대를 맨 사람이고 모든 책임을 졌죠.
여호수아는 모세의 진격 명령만 받고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이백만 명이라는 민족을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니 얼마나 겁이 나겠습니까?
새해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게 무엇입니까?
책임져야 할 것들 때문이잖아요?
가족을 책임져야 하고, 직원들을 책임져야 하고, 내 인생을 내 힘으로 책임져야 하는 데서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이죠.
여호수아나 우리들이나 벗어 버릴 수도 없는 책임 때문에 더 걱정 속에 한 해를 맞이할지 모르겠습니다.
2. 하나님은 이런 여호수아에게 사명을 감당할 수있는 방법을 약속하십니다.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7절,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8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가 지금 걱정하는 문제는 어떻게 전쟁에 승리할 것이냐입니다.
어떻게 모세만을 따르던 저 백성들을 이끌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전술이나 백서를 주시는 게 아닙니다.
이미 모세가 받아서 가르쳤던 그 율법이 바로 전쟁을 이길 병기라는 것이죠.
올해 무엇이 가장 두려우십니까?
계속되는 적자 재정, 낙심되는 건강 문제, 줄어드는 매출, 피곤한 사람관계.
이런 모든 문제들을 뭉뚱그려서 답은 똑같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을 손에서 놓지 않고 묵상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문제 하나하나 답이 다르지 않습니다.
어차피 해결 방법이 없는 게 문제 아닙니까?
방법이 있다면 그냥 하면 되지, 뭐가 문제겠습니까?
그렇기에 이런 모든 삶의 문제들을 어디서 풀어야 하냐면, 말씀을 잘 배우며 그 말씀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님이 주신 방법이니, 실효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 책임 아니시겠습니까?
우리가 그렇다고 성경만 들여다 보고 있고, 사태를 방관하지만은 않죠.
올해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대처할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전쟁 준비를 시작합니다.
삼일 간의 군량미를 비축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은 당연히 하는 것이죠.
올해 우리는 함께 매일성경을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에 하루하루 순종하자고 정했습니다.
주일 설교를 듣고 그것을 일주일 동안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성경 한 장을 묵상하고, 오늘 어떤 말씀에 순종할 것인지 하나를 찾아내고, 실천하고 하루하루 살자는 것이죠.
그것이 오늘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것과 똑같지 않습니까?
주일 설교에서도 본문과 같은 말씀을 나눴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현세의 복이 따라 온다고 했죠.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면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면 복을 안 주시고, 그런 거래하는 관계로 우리를 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시는 일반적인 원칙은 명령하신 말씀 속에 이미 복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6장38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라’ 그 말씀 속에는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라는 말씀이 함께 포함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겸손하면, 그 안에 담긴 높여 주신다는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정도 효력이 없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대로 지키면 그 속에 있는 복도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죠.
오늘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대로 우리 길이 평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유심히 나를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생각나는 데도 짐짓 불순종하면 즉시 넘어지거나, 곧 실족할 일이 생깁니다.
말씀 안에 담긴 안전한 보호와 약속하신 복이 날라 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좋은 복 앞에 있는 조건절을 지키지 않고 형통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걸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9절,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내 고난을 털어놓고 의논할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럴 때 더 두렵고 외롭습니다.
누군가 내 문제를 상담해 줄 경험자가 있고, 함께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위기를 이겨낼 조금의 힘이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지금 그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상담자가 계십니다.
가장 완벽하게 우리의 고충을 들으시고 위로해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계시잖아요?
그런데 5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사람을 쓰다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시면서도 마지막에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발까지 다 씻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걸 아셨다는 것이죠.
왜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버리실 것을 두려워했을까요?
광야 생활 40년에 광야에서 죽은 사람이 육십만 명입니다.
인간의 반역을 똑똑히 본 것이죠.
모세조차도 결국은 므리바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사건 때 불순종해서 가나안땅에 못 들어간 것이잖아요?
모세가 그런데, 내가 그러지 않을 것을 어떻게 보장하겠습니까?
여호수아가 모세 밑에서 잘 훈련되고 준비된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실제로 나중에 이스라엘은 진멸해야 할 가나안 부족인 기브온 사람들을 전부 살려줘야 할 곤경에 빠집니다.
멀리서 왔다는 기브온 사신들의 말을 듣고 여호수아가 화친 조약을 맺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도 잘하다가, 그 문제는 하나님께 묻지를 않았습니다.
중대한 업무를 맡을수록 한계와 잘못은 더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처럼 될까 봐 두려운 것이죠.
하나님은 비록 실패해도, 때로 불순종 해도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항상 하나님 말을 잘 듣겠습니까?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믿고 공경하기로 결심했다면 우리가 잘못한다고 해서 버리지 않으십니다.
믿음에 좀 실족한다 해도 일으켜 주십니다.
바울사도가 그랬잖아요?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오늘 여호수아에게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은 우리 모두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인디애나 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조태0교수란 분이 있습니다.
조교수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고 가난한 할머니 밑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자랍니다.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해 보니 그 초등학생 때 자기가 공황장애였던 것 같다고 합니다.
그때 어쩌다 다니게 된 교회가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가난한 걸 아니까 집사님들이 용돈도 쥐어 주고, 칭찬해 주고, 교회가 어린 조교수를 키웠습니다.
그 후 국비장학생으로 일본 의대에서 공부하고 미국으로 가 의대교수까지 된 것입니다.
제가 그분의 간증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이 특별히 하나님을 위해 한 게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어린 소년이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에게 맡겨진 그 슬픔과 두려움을 지켜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속 돌봐주신 것입니다.
일본에 있을 때는 집을 비워줘야 할 상황이 벌어집니다.
일본은 새집을 얻을 때 보증금으로 석 달 치 월세를 미리 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십만 엔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내일 집을 비워줘야 하는 데 기도밖에는 방책이 없었습니다.
돈을 구하지 못해 막막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봉투 두 개를 내미는 것입니다.
봉사하던 월드비전에서 그날 갑자기 두 분이 이 봉투를 주는데, 너무 떨려서 열어보지도 못했다는 거예요.
조교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보니 한쪽에 십만 엔씩, 두 봉투에 이십만 엔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시며 오늘날 의대교수까지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냥 자식처럼 돌보시고 함께 하신다고 밖에는 달리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하나님이 왜 나 같은 사람을 찾아 오셨을까요?
왜 그 험난한 지난 세월동안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으시고, 여기까지 축복해 주셨을까요?
그게 그냥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호수아와만 함께 하시는 게 아니라 올해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올해라고 별다르게 하나님을 잘 섬기지는 못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올해도 아버지의 사랑으로 섬세하게 보살피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아주 조금만 더 예수님 말씀을 지키려 노력하고, 하나님을 잘 예배하고 공경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025년1월8일 주는나의산성교회 수요기도회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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