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빌립보 교회는 바울사도가 유럽 선교에서 세운 첫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빌립보교회가 어떻게 탄생했는지가 나옵니다.
2차 선교여행 중 바울사도가 밤에 환상을 보죠.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는 환상을 보고 유럽 선교를 시작합니다.
유럽에 첫 성이 빌립보성입니다.
거기서 전도해 믿은 첫 열매가 여성 사업가인 루디아와 가족입니다.
그런데 그 성 사람들의 고발로 바울과 실라가 붙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찬송 중에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이 도망친 줄 알고 간수가 자결을 하려는 걸 바울이 막죠.
간수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자 간수와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탄생한 교회가 빌립보교회입니다.
이후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2. 1절을 보면 빌립보교회가 아주 잘 세워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몇 명 안되는 새신자들을 모아 놓고 떠날 수 밖에 없었지만 교회가 잘 성장한 것이죠.
빌립보 교회는 그동안도 바울과 교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근과 박해로 어려운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을 바울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현재 바울사도는 로마 감옥에 투옥된 상황입니다.
당시 감옥은 죄수 스스로 외부로부터 먹을 것을 들여오지 않으면 굶주림을 겪을 만큼 열악했습니다.
감옥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겪고 있을 바울사도에게 빌립보교회가 두 번이나 쓸 것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은혜를 입었다면 보답하려는 마음이 당연하고 선한 마음입니다.
바울사도를 파송한 안디옥교회에서 빌립보까지는 이천 킬로가 넘습니다.
그 먼 길을 바다의 위험과 험난한 육로를 지나 복음을 전해 주었잖아요?
우리가 공짜로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당하신 형벌과 심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수많은 선교사들, 전도자들, 목회자들, 믿음의 선배들과 먼저 믿은 가족들의 수고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그 자신이 빚진 자라는 걸 압니다.
그래서 복음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에 댓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천년 역사 이래로 아직까지 릴레이처럼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5절을 보면 빌립보교회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잖아요?
우리도 복음에 빚진 자라는 걸 잊지 말고 누군가에게 그렇게 복음의 빚을 갚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3. 빌립보교회의 이런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6절,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구원은 하나님의 착한 일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이 그 착한 일을 내게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생각하면 내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서 믿은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할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과거 자기에게 전도하는 사람들을 피하고 한심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마음이 어떻게 하나님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뀌겠습니까?
심리학에서 사람에게는 확증편향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념과 맞는 것만 받아들이고 그 외의 정보는 거부하고 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선호하던 방향으로 기울게 되는 것이죠.
최근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의 갈등도 그런 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웬만한 계기가 없으면 처음 받아들인 쪽으로 점점 더 기울고 고착화되는 것이죠.
사람이 대부분 먼저 갖는 신념은 무신론입니다.
우리나라는 불교, 유교, 미신, 무속 같은 게 사람들이 먼저 받아들인 신념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겠다고 바꾸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된 것이죠.
우리의 신앙 여정을 돌아봐도 그런 걸 알 수 있지만 남들의 간증을 들으면 그게 더 잘 보입니다.
조원0 이라는 개그맨을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개그콘서트 시절에 죄민수로 나왔던 얼굴이 빵빵한 개그맨입니다.
언젠가 대부분의 코미디 프로가 종료되고 일을 못하게 된 개그맨들이 많았습니다.
조원0 씨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한창 잘 나가던 중에 갑자기 생계조차 막막한 지경에 빠집니다.
의지할 데가 없으니 늘 술로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0 씨에게도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개그맨 이성미씨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죠.
처음 신앙생활을 하며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며 들은 말씀과 깨달음, 그리고 기도 내용을 일기로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유튜브채널에서 과거에 쓴 그 일기들을 매일 하나씩 읽어줍니다.
참 놀라운 것은 어쩌면 성경과 믿음에 대해 깨달은 게 그렇게 우리와 같은지요.
그게 당연한 것이지만 나하고 아무 관계도 없고, 완전히 노는 바닥도 다른 그 형제가 하는 생각과 말들이 백 프로 우리 믿음과 같은 거예요.
조원0 형제가 나왔던 간증 프로 밑에 어떤 사람이 이런 댓글을 달았더군요.
전에 회사에서 회식을 하다 식당에 들어오는 조원0 씨를 보았다는 글입니다.
그때 이미 몇 차까지 거쳐 왔는지 거의 돌은 눈으로 비틀거리며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 보았다는 것이죠.
지금 저렇게 자기 믿음을 간증하는 게 너무 기적 같다는 것입니다.
누가 저 형제를 늪에서 건져서 저토록 건전하고, 신실하고, 온화한 성도로 만들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착한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다 똑같은 신앙의 고백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4. 그리고 하나님은 시작만 하고 방임하시는 게 아닙니다.
6절,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계속 착한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나서 나머지 삶을 우리에게만 맡기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믿음이 성장하고 성품이 변화되고 삶이 평안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신앙 환경은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죄의 본성 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쪽은 오르막 경사입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그냥 뒤로 밀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앞에서 끌어주지 않으시면 우리가 지금의 이 지점까지 절대로 올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겨우 몇 걸음 오르다가 한순간 시험에 들어 몇십 걸음 뒤로 밀려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둘째는,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착한 일은 예수님의 심판의 날이 되어야만 끝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열심히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정상이 나오죠.
대학입시일 수도 있고, 취업일 수도 있고, 새로 시작한 사업이나 내 집 장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음의 정상은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정상에 올랐다는 믿음의 성취는 우리 살아생전엔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도 주님의 날까지 우리를 위해 착한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하십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때로 태산 같은 큰 산도 넘어야 했습니다.
발을 잘못 내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오금이 저리는 협곡도 지났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큰 질환이나 사업 실패, 사람 관계의 파탄, 가정의 위기.
이런 문제들은 끊임없이 우리 인생에 끼어듭니다.
그렇다 해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착한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위기가 지났고, 우리 믿음도, 심지도, 더 굳고 단단한 사람들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인생에서 앞으로도 계속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날 것입니다.
지금의 내 형편과 처지를 몇 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 아닌가요?
앞으로도 우리가 예상했던 인생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문제 될 것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위해 착한 일을 계속 해 나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원석형제가 그러더군요.
예수님을 믿고도 한창 힘들 때는 일 년에 몇십만 원 벌이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굶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와서 밥을 사 주고, 누가 뭘 갖다 주고, 어디 가면 먹을 게 있고.
정말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도 이상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착한 일은 우리가 꿈꾸는 일들을 이뤄주시고, 지금 고민하는 짐을 단번에 내려놓게 하시는 건 아닙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어떤 일이라도 결국 이겨내고 통과할 수 있게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이죠.
내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너무 미리 겁내고 쫄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를 유익하게 인도하시는 일은 하나님께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사도 역시 빌립보교회에 대해 확신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뒤에 나오는 편지 부분을 보면 지금 빌립보교회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로마황제의 기독교 박해에 대한 소문에 뒤숭숭합니다.
많은 성도들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런 중에 믿음이 변질되고 십자가에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합니다.
여집사님들 간에 큰 다툼이 있어 교회 분위기도 편하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그런 걸 다 끌어 안고 고민한다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사도는 성도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했기에 빌립보교회가 그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겨낼 것을 확신하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우리 가족들의 문제나 지금 처한 어려운 상황들도 계속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잘 인도받으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5.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기도한다고 위로합니다.
8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저는 이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마음에 확 와 닿았습니다.
바울의 절절한 빌립보교회 사랑이 결국 누구의 마음입니까?
예수님의 심장,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장이 우리를 사모하신다는 것이 너무 황송해서 몇 번이나 이 구절을 읽었습니다.
이것을 성도님들도 잘 기억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도나 가족들이나 이웃을 향해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갖게 되길 기도합시다.
주님의 그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나 자신과 내게 유익한 것만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라면 가족 사이라 해도 서로 자기만 위해달라, 섬겨달라, 사랑해 달라, 왜 그러지 않냐, 늘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천국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예수님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사랑할 수 있었기에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쁘다고 합니다.
이런 우리가 되도록 함께 기도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025년5월28일 수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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