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마태복음을 배우려고 합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예수님 생애와 말씀을 기록한 복음서를 살펴보게 되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은 열두 제자인 마태가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를 예수님의 족보에서 시작합니다.
처음 성경을 대할 때는 누구나 이 긴 족보에 당황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읽혀지길 바라고 이 복음서를 썼다면 마태가 너무 무리수를 둔 게 아닌가 싶죠.
아무도 이런 식으로 글을 시작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앙 경력이 오래된 성도들은 이 족보 중에서 아는 이름을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또 이제부터 말씀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예수님을 족보부터 소개하는 것은 마태의 치밀한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마태복음 설교를 준비하며 본문을 보는 데 좀 설레였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한 눈에 보이고 마음이 웅장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에게도 그런 은혜를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 마태가 왜 예수님의 족보로 복음서를 시작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족보가 있으시다는 것이죠.
다들 족보가 있으신가요?
당시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있다는 것이 특별할 것도 없고 당연한 것이었죠.
모든 사람들이 다 족보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주님의 족보는 중요합니다.
사람이 족보가 있다는 것은 실제 생존했던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빼박 증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족보가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릴 때 아버지가 친척 어른들과 붓글씨로 쓰인 족보 책을 넘기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희는 조선시대 남이장군의 계통이라고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으로 남았다는 것은 주님이 이스라엘 사회의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현대에는 예수님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사탄은 예수님을 가상의 인물로 몰고 가는 아주 영리한 계책을 써 왔습니다.
한탄할 것은 많은 기독 신자들에게도 이 전략이 먹힌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도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이 막연한 신화처럼 되어버린 것이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 땅에서 어떻게 태어나서 사셨는지 주님의 역사성을 아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다 주님 앞에 갔을 때 예수님도 나를 모르시고 나도 예수님을 모르는 그런 신자들이 많을까 걱정입니다.
마태가 이 복음서를 기록하던 때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삼십여 년이 지난 뒤입니다.
그때도 예수님의 족보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수많은 기적들이 믿음을 줄까요?
오히려 실존 인물이라 믿기 어렵게 만드는 반작용이 더 많습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셨다거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거나, 부활하셨다거나.
그런 주님의 기적은 우리에겐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연히 여겨지죠.
그러나 일반 사람들에겐 이미 못 믿겠다는 장애물이 되는 것이죠.
사람에겐 다 그런 심리가 들어있기에 성도들도 예수님의 족보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족보가 없는 이 복음서를 받았다면 어느 이야기꾼의 창작이구나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가상의 인물이라 몰아가는 주장들은 음모론처럼 퍼져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족보를 소중히 알고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족보를 중시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바벨론 귀환자 중에 족보에 이름이 없어서 제사장직을 못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처음부터 흥미를 갖기는 어렵죠.
그래서 마태는 족보의 시작부터 유대인들의 관심을 끌 떡밥을 던집니다.
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단숨에 유대인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이 구원자, 그리스도, 메시야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이루실 것을 구약성경에서 가르쳐 오셨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그 구원자를 자기 민족의 영광을 가져 올 왕으로 이해했죠.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무슨 약속인지 아시겠죠.
아브라함의 혈육을 통해 모든 만민에게 구원을 주실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족보는 메시야가 오실 그 길을 만들어 가신 것을 보여줍니다.
역사가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막후에서 그걸 다 살피시고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도 눈을 떼신 적이 없으십니다.
다윗이 시편139편에서 주님의 기이한 동행을 이 한마디에 표현하죠.
3절,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18절,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이런 경험 있으실 것입니다.
자고 일어나 기도하려는 순간 하나님이 밤새 계셨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죠.
아브라함의 후손들 중에서 다시 메시야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 다윗왕입니다.
역대상17절의 말씀을 요약합니다.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구절뿐 아니라 구약성경 많은 곳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 오실 메시야와 구원을 계속 예고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장 찬란했던 다윗왕의 시대를 다시 열어줄 다윗의 자손을 염원했습니다.
마태는 복음서 서두에 족보로 포문을 여는 것이죠.
‘하나님이 약속했던 그 씨, 그 다윗의 자손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것을 내가 지금부터 증거하겠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마태가 또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마태의 의도는 족보의 조상들은 모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얼마나 잘난 척을 했습니까?
종교 엘리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유대인들도 이방인을 멸시했잖아요?
신자들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아브라함과 다윗을 자랑스러워합니까?
그런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를 보면 하나님 앞에 떳떳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동안 구약성경을 배워서 여기 나온 사람들의 실수와 죄를 좀 알잖아요?
아브라함도 인생에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의 자긍심인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 속에서 허를 찌르는 의외의 여성들을 등장시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3절에 나오는 유다를 보면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고 합니다.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며느리를 통해 나온 자손들이 유다지파인 것입니다.
5절에 나온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았죠.
라합은 여리고성의 기생입니다.
유대인들이 자랑으로 아는 다윗은 어떻습니까?
6절하,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어떻게 남의 아내에게서 아들을 낳습니까?
사실 솔로몬은 밧세바가 다윗의 아내가 된 뒤 낳은 아들입니다.
마태가 다윗의 불륜과 충신 우리야를 죽인 사실을 의도적으로 밝히는 것이죠.
오늘 한 사람 한 사람 공과를 살펴볼 수는 없지만 족보의 인물들은 다 죄인들입니다.
12절부터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다윗왕조의 후손들이 나옵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죄가 쌓였으면 민족 전체를 바벨론에 넘겨주셨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가 죄로 얼룩져 있다는 것이죠.
그들이 의롭기에 메시야가 오셔서 잘 살게 해 주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비참한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라는 걸 마태가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족보도 나와 조상들의 죄의 발자취일 뿐이잖아요?
죄에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이어져 나갈 이 죄인의 족보를 끊기 위해 오셨다는 걸 이 족보가 보여줍니다.
오늘 족보의 마지막이 누구입니까?
16절,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이라는 걸 일단 잘 기억해 두십시오.
요셉 다음 예수님이시고 그 다음 족보는 마침표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이후로는 다윗왕조의 장손은 끊겨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나타날 다윗의 자손 메시야는 없는 것이죠.
그런데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는 유대교인들은 지금도 다윗의 자손이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염원이 허망한 것은 현재 유대인들 중에 족보를 가진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40년 뒤 주후 70년에 이스라엘은 독립을 시도하다 로마제국에 완전히 멸망해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이후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도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게다가 나치독일의 유대인 학살로 600만 명이 죽었죠.
긴 박해의 세월 속에 유대민족의 족보는 다 사라졌습니다.
지금 유대인들 중 자기가 무슨 지파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유다지파 다윗의 자손을 기다린다는 게 말이 안되죠.
예수님은 죄의 족보를 완전히 닫으시고 새로운 족보를 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마태복음12장49절,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절,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를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전에 갖고 있던 죄의 족보를 우리와 자녀들의 대에서 끊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예수님의 족보에서 좀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셉과 혈육 관계가 아니라면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요셉이 낳지 않고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은 요셉이지 예수님은 아니시잖아요?
제가 전에도 이 문제를 설명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권사님이 자기가 궁금했던 것을 이제 알았다고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하지 않으면 속으로 조용히 시험에 들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족보의 난해 부분을 다 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1) 우선 예수님은 요셉에게 친양자로 입양되셨습니다.
친양자 입양은 가문을 이어받고 상속받을 권리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의 호적에 등재되어 완전히 친아들로 입양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 요셉이 로마황제의 호적령 때문에 호적하러 간 것이잖아요?
그때 태어나신 예수님도 요셉의 친자로 바로 호적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유대인 사회도 이렇게 입양한 경우 친자와 똑같이 여깁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친자가 아니라 양자로 입양된 것이잖아요?
로마서8장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걸 보여주죠.
예수님은 법적으로 다윗의 가문을 잇는 요셉의 아들이고 다윗의 자손입니다.
2) 그래도 뭔가 실제 다윗의 혈육이 아니라는 게 미심쩍다면 누가복음의 족보가 해결해 줍니다.
누가복음3장에 보면 아담까지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가 있습니다.
거기 보면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마태복음의 족보와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 다음부터 예수님까지의 족보가 다릅니다.
오늘 족보에서 6절은 다윗 다음에 솔로몬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족보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족보를 읽으면서 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 그런 생각이 혹시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윗 이후에는 완전히 모르는 이름들이거든요.
누가는 3장23절에서 이렇게 족보를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아까 요셉의 부친이 누구였습니까?
요셉의 부친이 야곱이었잖아요?
여기서부터 안 맞죠.
그 위로 모르는 이름들이 쭉 나오죠.
31절까지 올라가겠습니다.
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32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나단이 나오고 그 위가 다윗이라고 하잖아요?
마태복음처럼 솔로몬이 아니라 나단이 나온 것이죠.
나단은 솔로몬의 형제고 밧세바가 낳은 아들입니다.
역대상3장5절, 예루살렘에서 그가 (다윗이)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
밧세바가 아들 넷을 낳았다고 하죠.
그 중 마태의 족보가 솔로몬의 족보를 기록했다면 누가는 나단의 족보를 기록한 것입니다.
한 사람 요셉이 두 조상에게서 태어날 수는 없잖아요?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입니다.
그게 마리아의 족보라고 밝혔으면 좋았겠지만, 그 당시 사회에서 여자들은 족보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주도면밀한 누가가 마리아의 아버지의 족보를 좆은 것이죠.
단 그 시대에 여자의 족보라고 하면 생소하기에 대신 마지막에 남편 요셉의 이름을 넣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혈통적으로도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되는 것이죠.
누가는 마태복음 요셉의 족보를 아는 성도들이 이 족보를 읽을 때는 당연히 마리아의 족보로 이해할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이해가 되니까요.
3) 여기에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게 있습니다.
다윗은 유다지파잖아요?
누가복음을 보면 마리아가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친족입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이 레위지파로 나오거든요.
그걸 단순하게 보면 마리아가 레위지파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엘리사벳이 마리아와 외가 쪽 친척이라면 마리아의 외가가 레위지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레위지파인 마리아의 어머니가 유다지파 남자 헬리와 결혼해서 마리아를 낳았다는 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마리아가 유다지파가 되는 것입니다.
조금 어렵게 느껴졌을지 모르겠지만 잘 이해하셨죠?
우리에게 잘 이해하라고 주신 성경입니다.
평생 너무 성경과 믿음의 세계를 모르는 것은 내 책임입니다.
성경 읽고 기도 하는 경건생활은 억지로 해야 합니다.
제가 지난주 의학 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건강 정보 같은 영상은 족보보다 훨씬 더 흥미롭죠.
요즘 사람들 관심이 많은 도파민에 대한 영상이었습니다.
도파민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도파민은 행복한 기분과 쾌락을 느끼게 하죠.
사람들이 기분 좋으면 도파민 터진다고 하죠.
도파민은 동기부여에 크게 관여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동기부여가 안되면 뭐든 하고 싶지가 않잖아요?
모든 게 시들하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면 도파민 부족이라고 합니다.
배우 공효0씨가 하루 종일 집중을 못해 상담을 받았더니 도파민 부족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요즘 시대는 쉽게 도파민이 터지는 자극적인 것들로 넘쳐납니다.
집에 가서 맥주 마시며 휴대폰으로 숏폼 봐야지, 이불 속에서 게임 해야지.
이런 것들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만 찾다 보면 도파민 중독이 됩니다.
도파민 중독이 되면 뇌에서 스스로 도파민을 만들어 내지 못하게 됩니다.
평상시엔 도파민이 부족해 점점 무기력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떨어진 도파민을 자연적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싫은 일을 해 낼 때 자연 도파민이 올라온다고 합니다.
운동, 싫잖아요?
하면 뇌에서 도파민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동하고 나면 더 의욕이 생기는 것이죠.
경건생활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힘든 일과 사람관계에 시달린 뇌는 쉽게 도파민을 얻는 걸 원합니다.
경건생활은 재미없고 힘들잖아요?
그래도 억지로 성경보고 기도할 때 극복하려고 도파민이 나오는 것이죠.
신앙경력자들은 기도해야 내 영혼이 강해짐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 상태를 놓치지 않으려고 힘들더라도 계속하게 됩니다.
피트니스 운동하는 사람들이 근육 작아질까 봐 계속 하잖아요?
경건생활은 무조건 하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닥치고 하는 것이죠.
너무 따지지 말고 닥치고 믿는 것도 필요합니다.
믿음이 안 생기는 것은 따져도 안되는 지점에서 걸린 것이거든요.
그러면 내 의지로 믿으면 됩니다.
매일성경과 기도생활을 억지로 하루하루 해 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일에도 잘 집중할 수 있는 도파민 충만 상태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도 경건생활 중에 더 충만히 역사해 주시죠.
다소 힘들더라도 말씀을 더 집요하게 추격하고 기도의 줄을 단단히 붙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은 족보가 있습니다.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주님은 실존하시는 분이 아니라 막연한 신화같이 됩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을 계속 살펴볼 때 살아 계신 예수님을 더 확신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오늘 마태의 족보는 지루하고 길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운 한사람 한사람의 생애가 그 이름 안에 들어 있잖아요?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다 아신다는 것을 족보가 말해줍니다.
물론 나에 대해서도 아신다는 것이죠.
이 족보의 인물들을 거쳐 한걸음 씩 내게 오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어떻게 마음이 웅장해지지 않겠습니까?
오늘 16절 뒤에 이렇게 각자의 족보를 기록하면 좋겠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예수께서 남수연을 낳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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