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마태복음1장18절-25 (다윗의 자손 요셉아)

남수연 2025. 12. 16. 11:04

https://youtu.be/UOJ1D0hJya4

 

세상 사람들이 제일 못 믿겠다는 성경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천지창조, 동정녀 탄생, 부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산을 넘지 못해 예수님께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신자들은 다 이 산을 넘었을까요?

예수님이 동정녀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그냥 탄생 신화 정도로 생각하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전에 미국에서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장로교인 50%이상이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성육신에 대해 다시 살펴보며 우리 믿음을 굳건히 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예수님은 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셔야 했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에서 이미 주님의 탄생이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암시했죠.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예수님은 모친 마리아만을 통해서 태어나셨다는 것이죠.

예수님이 왜 자연적인 출생이 아닌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는지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천지창조, 동정녀 탄생, 부활은 다 같은 목적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이 자신의 복을 나눠주시기 위해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인간의 배신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엎어졌지만 하나님은 속죄를 통한 구원을 계획하십니다.

그것을 위해 죄 없는 속죄자가 필요했고, 동정녀 몸에서 탄생한 신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이 오신 것이죠.

예수님의 속죄로 죄인들은 부활의 몸으로 영원한 천국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에 대해 사람들은 여자 혼자 임신하는 것이 말이되냐며 일축합니다.

임신은 부모의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양쪽 염색체가 만나야 됩니다.

어떻게 어머니 쪽 난자와 염색체만으로 임신이 가능하냐는 것이죠.

그것은 천지창조를 믿지 못한 데서 기인합니다.

아담의 창조는 정자와 난자의 결합이 아닙니다.

하와의 창조도 그렇죠.

다만 인간의 생육과 번성을 위한 방식으로 난자와 정자의 결합을 설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티끌로도 생명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태 안에서 자신이 속죄해야 할 인간들과 똑같은 몸으로 지어지신 것입니다.

다만 죄로 오염된 유전자의 인격이 아닌 하나님 인격 그대로 오신 것이죠.

신이자 인간이신 이 구속자를 보내시기 위해 택하신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신 것이죠.

그리고 그 후손 가운데 다윗을 택하셔서 그 혈통에서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정하십니다.

이제 메시야를 잉태할 처녀와 메시야를 법적으로 입양할 다윗의 자손을 택하시면 되는 것이죠.

그래야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예언이 이뤄집니다.

그렇게 마리아와 요셉이 선택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부모가 될 요셉과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 된 메시야를 어떻게 받아들였냐는 것입니다.

마태는 요셉의 시점에서 마리아의 잉태에 대해 기록합니다.

누가복음은 마리아의 시점에서 기록하죠.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유대인들의 정혼은 공식적으로는 혼인한 것과 같습니다.

만일 정혼한 상태에서 신랑이 죽으면 신부는 합방도 안 한 상태에서 과부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의 사자가 이 둘을 남편, 아내로 호칭합니다.

보통 약혼 기간은 1년입니다.

약혼한 두 사람은 기대감 속에서 각각 가정을 이룰 준비를 하는 것이죠.

지난 주 기사를 보니 최근 결혼하는 신혼부부들 중 내 집을 갖고 시작하는 비율이 42퍼센트가 넘는다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때는 주로 반지하 셋집에서 시작하는 부부가 많았거든요.

행복하게 결혼을 준비하던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다 알도록 배가 불러온 상태는 아닐 것입니다.

마리아가 잉태한 뒤 유대에 있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을 머물렀으니, 돌아와서 요셉에게 자초지종을 말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잉태를 수용한 것은 정말 용감한 믿음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경외한다 해도 처녀 몸에 임신은 받기 힘든 일이죠.

마리아는 당찬 여성이고 메시야의 나라가 올 것을 기다렸던 성도입니다.

누가복음1장에서 마리아가 찬양하는 노래를 보면 처녀가 아기를 가진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1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을 신사적이고 착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율법을 준수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듣고 요셉은 엄청난 충격과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인생에는 상상해 보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죠.

만일 마리아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면, 의로운 요셉은 당연히 율법대로 해야 합니다.

구약 율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투석형까지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율법을 준수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것은 마리아에 대한 배려나 사랑이었을까요?

만일 마리아의 임신을 외도로 알았다면 사랑한 만큼 배신과 분노에 치를 떨었겠죠.

본문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조금도 감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마리아의 말 대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믿었을까요?

저는 일단 요셉이 마리아는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 믿음도 없이 결혼하려 하진 않았을 거잖아요?

경건한 마리아가 갑자기 불륜을 저질렀다는 건 당연히 안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됐다는 말은 믿기 힘들었겠죠.

이 둘 사이에서 번뇌하던 요셉은 마리아의 신비한 임신을 어느 정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용히 마리아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일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믿었다면 결혼을 진행시켜야 맞는 게 아닐까요?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요셉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겠습니까?

조그만 일만 생겨도 우리 머리가 복잡한데요.

요셉은 무서웠다고 합니다.

20절하,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지금 마리아를 통해 뭔가 하나님의 큰 일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요셉도 느꼈을 것입니다.

메시야를 임신한 마리아와 가정을 이뤄야 할지 말지 확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가 성령으로 잉태된 메시야라면 엄청난 역사의 회오리에 가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출애굽과 같은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잖아요?

유대인들의 생각대로라면 로마제국과 싸워야 할 메시야입니다.

요셉이 자기 인생에 그런 두렵고 낯선 일들이 끼어드는 걸 원했을까요?

사람들은 신앙에서는 돌출되기보다는 평범하길 원합니다.

돌출되어 봤자 목사나 선교사가 되잖아요?

오스왈드 챔버스는 말하길 지금 신자들은 종교적 열심으로 가득찼던 바리새인의 교만을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세리의 교만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결코 성도가 될 수 없어

겸손이 아니라 예수님을 더 바짝, 더 진실되게 따르는 걸 원치 않는 것이죠.

요셉은 일생일대의 큰 고민과 번뇌 속에서 세리의 교만을 택합니다.

나는 메시야의 큰 일에 참여할 자격이 없어.’

요셉의 결정은 자기의 안위를 최우선 생각하는 인간의 선택입니다.

또 마리아를 더 사랑했고 배려했다면 처녀 몸으로 임신한 마리아를 그렇게 떠나 보내려 하지 않았겠죠.

아무리 마리아를 사랑한다 해도 자신을 더 사랑한 것이죠.

결국 사람은 요셉처럼 의를 내세워도 자기 자신을 위해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3.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찾아옵니다.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런데 어차피 천사가 현몽하려면 미리 좀 하면 좋잖아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잉태를 알리고 요셉에게도 바로 알리면 좋았잖아요.

그러면 요셉도 이런 고민 할 필요가 없었죠.

마리아도 이 상황이 정리되기까지 마음 고생 안 했을 거잖아요.

하나님은 이렇게 꼭 한 박자 늦게 일을 하시는 것 같죠.

어떤 때는 한 박자는커녕 한 곡이 다 끝나도 움직이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일하시는 것일까요?

이유가 있으시겠죠.

메시야 탄생에 말려드는 걸 무서워 한 건 요셉의 믿음 상태입니다.

주의 천사가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렸다고 갑자기 믿음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사람이 너무 갑자기 바뀌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사람의 살아온 과거로 현재의 내가 된 것인데 한순간에 그게 바뀌겠습니까?

처음부터 천사가 찾아왔다면 요셉은 준비도 없이 억지로 상황을 받아들였겠죠.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구원 사역을 이루어 가십니다.

내게 복음을 전한 것은 천사가 아니라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억지로 사람을 끌어 들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 나왔던 젊은 부자 청년에 대해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관원이 주님께 묻죠.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 계명을 다 지켰다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가복음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을 더 가까이 따를 기회를 청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청년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본인이 원치 않는다면 억지로 참여시키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잖아요?

요셉은 메시야의 구원 역사에 낄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고민하며 상황을 이해하고 자기 속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요셉은 이 골치 아픈 일에서 빠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제 주의 천사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미 마리아 몸에는 예수님이 자라고 계셨잖아요?

요셉이 자발적 참여를 거절했으니 이제는 설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사람들은 거의 주님의 뜻을 거절합니다.

제가 지난 주 수건과 초대장을 들고 전도대상자인 옆 사무실 실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이미 저하고 친분이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시댁과 남편이 독실한 불교인이라 교회 달력도 못 건다며 아직 때가 아니라고 거절하더군요.

제가 여러 가지 말로 권했지만 평소 모습 같지 않게 아주 완강했습니다.

우리가 초대한 분들이 아무도 안 온다 해도 부끄러워 할 것 없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죠.

사람들을 세속적으로 만날 땐 다 평범하고 유해 보이지만 복음을 들고 만나면 단 한 사람도 만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신자들이라고 주님의 뜻에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들은 설교대로만 순종했어도 우리가 다 훌륭한 성인이 되었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은 택한 자라고 무리하게 꺾어 복종시키지 않으십니다.

그게 인격의 하나님이 우리를 인격으로 대하시는 모습입니다.

 

4. 주의 천사가 어떻게 요셉을 설득하는 지 순서대로 살펴 봅니다.

20, 다윗의 자손 요셉아

1) 이게 핵카드입니다.

의롭고 경건한 요셉은 당연히 메시야의 왕국이 임하길 기다렸잖아요?

그 나라는 다윗의 자손을 통해서 온다고 모든 유대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지난 주 족보에서 살펴 보았듯이 다윗의 적통 후손입니다.

그러나 오백여 년 동안 주권이 없으니 왕손이니 적통이니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이 오히려 수치스럽고 씁쓸하기만 한 것이죠.

요셉은 다윗언약을 전설처럼 묻어 두고 살았을 것입니다.

주의 천사가 그런 요셉을 다윗의 자손 요셉아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있다는 말로 들리잖아요?

천사의 이 호칭은 다윗 자손으로의 사명을 외면하려 했던 요셉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죠.

우리의 존재감이 아무리 미미해 보여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대단한 사명자들입니다.

 

2)천사는 마리아의 잉태에 대해 정확히 설명합니다.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리고 그 아기가 왜 오는지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이 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천사의 말대로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님의 백성인 나를, 내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천사가 한가지 결정적인 증거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그것은 구약성경에 나온 메시야의 예언입니다.

바로 이사야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깨닫게 합니다.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부분은 우리말 성경으로는 마태의 해설처럼 보입니다.

마태의 의견이라 해도 물론 성령님의 감동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을 보면 천사가 한 말에 더 가깝습니다.

천사가 말하는 것이죠.

구주가 처녀 몸에서 나신다 구약성경이 이미 예언하지 않았냐, 때가 되어 마리아의 몸에서 구주가 나실 것이다.

천사도 마지막 확증은 말씀으로 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말씀의 증거만큼 우리에게 분명한 믿음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꿈에 천사가 나타난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 희미해집니다.

모든 기적이 거의 그렇죠.

말씀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신 것은 평생 기억납니다.

말씀은 바뀌지 않잖아요?

기적을 못 보는 믿음도 괜찮습니다.

말씀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폐가 망가져 자가 호흡을 못하는 사람들은 앰부라는 기구로 인공호흡을 합니다.

김온0자매는 14살에 감기로 병원에 갔다가 오진과 의료사고가 반복되며 자가호흡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의료사고를 인정한 병원에서 22년째 입원 생활 중입니다.

이런 억울한 일도 있더군요.

기관에 연결된 앰부를 눌러서 계속 공기를 넣어줘야만 살 수 있습니다.

앰부가 멎는 순간 숨도 멎는 것이죠.

이런 딸을 위해 어머니는 낮에, 아버지는 밤에 교대로 계속 앰부를 눌렀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땀이 비오듯 흘러도 앰부를 놓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딸의 숨이 멎으니까요.

병원에서 밤을 지샌 아버지는 돌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0자매의 병이 나은 건 아닙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12년간 5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두세 시간씩 앰부 봉사를 해서 온유자매에게 숨을 불어 넣어 주었던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병원에서 기계장치를 제공해 지금은 기계로 숨을 쉬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병원인지 참 야박하더군요.

12년 동안 전용으로 쓸 기계호흡 장치를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게 삼천만 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라서 그랬나 봅니다.

온유자매는 처음에 하나님이 고쳐주시겠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꼭 나아서 멋진 간증을 하게 될거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하고 기다려도 점점 병세는 악화되고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나중엔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맞나, 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인가

이대로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좌절과 두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으로 내게 말씀하지 않으시면 그래, 성경에 뭔가 말씀하셨을지 모르지. 성경에서 찾아보자

그렇게 창세기부터 샅샅이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읽던 중 기다리던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보는 순간 의심과 절망이 눈녹듯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내가 주님의 자녀라는 확신과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말씀 한 구절로 온0자매가 변화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말씀의 위력입니다.

앰부봉사를 하러 다녔던 청년이 그러더군요.

처음 봉사 갔을 때 온0자매가 풀메이크업을 하고 있어 놀랐다고 합니다.

어느날은 자기가 열심히 앰부를 누르는 동안 타투 전문가가 와서 눈썹 문신도 해 주더랍니다.

자가 호흡을 못한다 해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아요?

책도 냈다고 하더군요.

예수님 안에서 자기 존재를 알고 나니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온0자매의 삶을 보니 내겐 아직도 가진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자가 호흡을 하는 데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오늘 요셉은 도피하려 했던 다윗 자손의 사명을 천사의 권고와 말씀을 통해 돌이킵니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고 예수님의 법적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요셉이 두려워했던 것은 사실 기우였습니다.

요셉이 예수님을 받아들인 결과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었죠.

나중에 둘 사이에서 낳은 여섯 자녀를 자신이 죽은 뒤 누가 양육했습니까?

예수님이 가장이 되셔서 가족들을 부양했고,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 자신도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거운 짐을 더 지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고 하셨잖아요?

사람의 죄 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십니까?

그걸 우리가 벗었기에 이렇게 홀가분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영혼이 점점 강해지기에 인생의 모든 짐도 넉넉히 지고 가고 있는 것이죠.

앞에 보이는 문제와 환경만 바라보면 오히려 눈이 어두워 덫에 걸립니다.

요셉처럼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죠.

요셉처럼 지나친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 대신 항상 예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예수님만 바라보며 갈 때 우리는 안전하고 복된 길에 서 있을 것입니다.

살면서 쓸데없는 짐을 내가 지려 할 때 다시 주님을 바라고 간구하십시오.

구해도 주지 않으실 텐데라고 기도를 회피하며 스스로를 속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동안 우리도 오늘 요셉처럼 많이 고민하고 또 주님께 설득당해 왔죠.

이젠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드러나는 삶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