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마태복음2장13절-23절 (성탄 그 이후) 성탄절 설교

남수연 2025. 12. 27. 23:40

 

https://youtu.be/RHiysPSzD8c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주님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찾아오셨다는 게 더 감격스럽습니다.

그 은혜를 깊이 느끼고 감사하는 성탄절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마태사도가 전한 성탄절엔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흰눈이 소복히 쌓인 낭만적인 풍경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 자신의 몸을 죽이는 희생입니다.

그 길이 순탄치도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을 택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고 주님이 오실 계보를 만드셨죠.

그러나 주님의 족보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반역들이 얼룩져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의 백성들은 따뜻한 방 한 칸을 내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기 예수님은 생명까지 위협받게 됩니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낭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엄청난 영적 싸움이 시작된 것이고 지금까지 그렇습니다.

세상을 장악했다 생각한 사탄이 순순히 내 줄 리가 없죠.

우리 안에 주님이 오셨다고 악의 세력이 우리를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듯이 매일 악에게서 구해 주실 것을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죠.

베들레헴 구유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의 이후 행적에서 악의 파상공세를 보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을 뿐 아니라 오늘도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시는 말씀으로 성탄에 모인 우리를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두 가지 주제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나라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과정에 대해서입니다.

1. 헤롯은 유대인의 왕인 아기를 죽이려고 베들레헴의 모든 아기들을 살해합니다.

1) 이것은 단순히 권력에 대한 헤롯의 집착으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이뤄질 하나님나라에 대한 사탄의 분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는 헤롯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에돔 족속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이 구도에서 세상 권세 잡은 사탄의 그림이 보이죠.

영아살인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게 된 사탄의 극렬한 반격입니다.

헤롯은 왕으로 태어난 아기의 행방을 묻는 동방박사들에게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성경의 예언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그 아기가 실제로 태어났다면 돌아와 내게도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대왕 같은 악인의 입에서 경배하게 하라는 말이 나온 게 으스스하고 기괴합니다.

헤롯이 얼마나 끔찍한 악인인지는 역사서에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헤롯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의심하고 살해했던 인물입니다.

심지어 자기 아내와 친 아들 세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기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것은 단순한 권력욕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내가 가서 경배하게 하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헤롯에게 신적인 존재 메시야에 대한 지각이 있었다는 게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찾아 죽이려고 했던 헤롯이 얼마나 사악한 인간인지 입증되는 것이죠.

인간은 신을 죽이려고 할 만큼 무모하고 하나님과 완전히 척을 진 존재입니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철학자 니체가 말했죠.

신은 죽었다.

이미 사람들은 마음에서 하나님을 죽인 것입니다.

위담한방병원 병원장인 최서0박사는 니체에 심취했던 한의학자입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고난을 통해 교회에 가게 됩니다.

성경을 펼쳤는데 창세기11절 말씀이 나왔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신은 죽었다고 믿었던 무신론자 출신에게는 너무 허무맹랑한 말인 것이죠.

역시 기독교는 믿을 게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그냥 책상에 펼쳐 둔 채로 여러 날이 지납니다.

오가며 성경에 자꾸 눈길이 가지만 1절을 보는 순간 또 고개를 돌립니다.

그러던 어느날 무심히 성경을 쳐다보는 데 놀랄 일이 벌어집니다.

그 창세기11절 말씀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두꺼운 성경 첫 시작에 이렇게 당당하게 내가 천지를 창조한 신이라고 밝힌다면 그건 진짜일 것이다.

어느 철학자도, 석가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헤롯은 다윗의 자손 메시야의 탄생이 사실인 걸 알면서도 죽이려고 하잖아요?

하나님을 안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겐 모든 증거를 갖다 줘도 안 믿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님의 탄생을 감사하고 예배하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요.

동방박사들은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갑니다.

16절에서 헤롯이 심히 노했다고 하죠.

노했다는 단어는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할 때도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헤롯이 얼마나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알고 대노했는지 알 수 있죠.

감히 나를 속이다니.

그 살인의 광기가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향합니다.

 

2) 헤롯은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입니다.

헤롯의 나이가 그때 칠십 살이었습니다.

설령 메시야가 태어났대도 얼마 뒤 죽을 자기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헤롯이 아닌 사탄의 광기입니다.

가룟유다가 사탄에게 넘어가 그 생각과 의지를 팔아 넘겼듯이 그런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들을 겨누고 파괴하려는 게 사탄의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 자녀라고 사탄이 얌전히 우리를 떠나가는 게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를 실족시키기 위해 사람과 환경을 얼마든지 동원합니다.

방심하면 곧 미끄러지는 걸 다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계략에 대해 너무 순진무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내어주지 않으시기에 악이 우리를 크게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의 경우 같이 연단이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탄의 시험을 맛보게도 하십니다.

강남침례교회 담임목사 가정의 끔찍한 경험을 참고하면 좋을 것입니다.

최목사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교회를 개척해 열심히 헌신적인 목회를 한 분입니다.

아내는 4대째 신앙을 이어온 믿음의 가정이지만 최목사는 아니었습니다.

수시로 무속인을 찾고 굿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다행히 결혼하고 바로 미국으로 갔기에 아내는 그런 시댁과 큰 마찰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지옥문이 열렸습니다.

산후조리도 부탁할 겸 시어머니를 모셔 와 미국 구경도 시켜드릴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으로 오기 전에 모시는 조상들 전부를 위해 큰 굿을 하고 온 것입니다.

그때부터 아내와 악령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죠.

최목사 사모가 어느 정도로 영적으로 피폐해졌는지가 너무 놀랍더군요.

한국에서 친절하던 시어머니는 미국에 오자 돌변합니다.

쉴 새 없이 폭언과 욕설을 퍼붓습니다.

스스로 자해한 뒤 아들 목사에게 며느리가 때렸다고 눈물 바람을 합니다.

시어머니가 칼을 들고 달려와 던지는 걸 겨우 피한 뒤, 아내의 정신이 완전히 붕괴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운전하다 호수가 나오면 차를 몰고 뛰어들려는 충동을 수시로 겪었다고 합니다.

온몸의 뼈가 뒤틀려 똑바로 누워서 잘 수가 없는 신체적 이상 현상도 나타납니다.

한번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손이 올라가고 무당이 뛰는 자세를 따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젊을 때부터 선교사로 서원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다져왔던 사람입니다.

자신이 악령으로부터 그런 공격을 받을지는 상상한 적도 없었겠죠.

그런 지경이 되고서야 남편도 어머니 말만 믿고 아내를 의심했던 것을 뉘우칩니다.

두 부부가 필사적으로 기도해 겨우 그 위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물론 지금은 그 어머니도 권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좋게만 보았던 어머니가 그만큼 악령에 사로잡힌 것을 그 경험이 없었다면 아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 목회자라고 악령들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악령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우리를 보호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악인들이 우리를 어찌 못하는 것도 성령께서 막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악의 세력과 그 하수인 된 악인들에게서 벗어나길 늘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은 이 아기들은 너무 억울한 것 아니야?’

예수님만 살아서 도망치시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들과 부모들은 희생당했네.’

우리는 이걸 보고 알아야 합니다.

세상 공중권세 잡은 마귀는 이 세상 임금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임금 마귀는 세상 사람 누구든 죽음에 몰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육백만 명의 유대인을 나치의 손으로 죽였잖아요?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혁명파 조직이 크메르 루즈입니다.

그 조직과 지도자 폴포트는 최대 2백만 명의 자국민을 학살했습니다.

전체 캄보디아의 인구 1/4이라고 합니다.

살인마들은 지식인들을 다 죽였습니다.

책만 똑바로 들고 있어도 죽였다고 합니다.

너 글자 읽을 줄 아네?

그럼 지식인이라고 죽였던 것이죠.

이 세상 미친 독재자 밑에서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있습니까?

어제도 푸틴이 보낸 드론이 죄없는 아이를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베들레헴에서 죽으시면 안됩니다.

주님은 삼십삼 년 뒤에 죽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마귀에 저항 못하고 죽을 수많은 영혼들을 구출하셔야 하는 것이죠.

베들레헴 아기들의 죽음과 부모의 애통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에 아이들과 부모가 울고 있습니까?

그 불쌍한 영혼들에 대해선 하나님의 손에 맡기도록 합시다.

 

2. 하나님은 헤롯의 칼에서 예수님을 구하시고 우리의 구원계획을 진행하십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이땅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 원칙들을 배우게 됩니다.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니

예수님의 성육신은 초자연적이며 하나님의 권능이 빚어낸 기적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인간의 행위들 속에서 구원을 성취해 가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신체 조건으로 그냥 삼십 년을 하염없이 사셨잖아요?

1) 하나님이 아기 예수님의 생명의 위협 앞에서 하신 일은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도 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차라리 헤롯을 억지로 회개시키면 되실 일이잖아요?

그게 아니면 헤롯 측근 중에 변심한 자객 한 명 보내시면 되는 것이구요.

우리가 하나님의 일처리를 보며 깨달아야 하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본래 세우신 질서와 원리를 스스로 파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개 순리대로 두십니다.

하나님이 왜 악인을 당장 벌하지 않으시냐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믿음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태도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편의를 봐 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의를 어디까지 봐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조그마한 특혜를 주시려고 우리를 구원하신 게 아닙니다.

아니요, 하나님은 오히려 좀 견뎌볼래?’ 하십니다.

그보다 더한 어려움도 넉넉히 이겨낼 담대함을 주셨는데 스스로를 무능하게 여기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헤롯에게 현몽해 꾸짖지 않으시고 요셉에게 현몽하십니다.

하나님의 계시나 교훈도 받을 만한 자가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라고 하신 것이죠.

 

2) 하나님은 요셉에게 예수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합니다.

애굽으로 가는 것도 하나님만의 묘수가 아닌 것 같죠.

당시 애굽은 로마가 직접 통치했기에 헤롯왕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해 있었습니다.

헤롯왕이 쫒아 온다면 우리도 그런 머리를 굴려 베들레헴 남쪽으로 내려가 애굽쪽으로 피신하려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우리 머리로 생각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 살던 그대로 평범하게 인도해 주시면 그게 감사한 것입니다.

인생이 180도 바뀌는 그런 극적인 일이 많은 게 좋은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늘 살던 대로 익숙하고 편안히 살게 인도하시는 게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타당하고 합리적이면 대개 하나님께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요셉과 마리아가 수년간 기거하려면 대도시로 가는 게 합리적입니다.

산속에 숨어서 까마귀가 가져오는 고기를 기다리는 게 신의 한수가 아닙니다.

목수였던 요셉은 도시로 가서 일거리를 찾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죠.

동방박사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장거리 여행과 초기 정착에 유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떨어졌다고 누가 또 황금을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자기 손으로 일해서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신앙은 하나님을 믿으며 실제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믿음을 비상식적인 영역에 자꾸 구별해서 실제 삶과 떼어 놓는 것이 종교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그냥 내 생각과 삶 전체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3) 요셉은 잠에서 깨자마자 짐을 쌉니다.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긴박했던 상황이 느껴지죠.

아직 첫돌 안팎이었을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긴급히 도망쳐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는 8킬로 남짓입니다.

군인들이 말을 타고 오면 순식간에 덮칠 수 있을 만큼 지척입니다.

갓난 아기를 안고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게 예수님은 한밤중 애굽으로 가십니다.

당시 길고 위험한 여행을 아기이신 예수님이 겪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헤롯이 죽기까지 몇 년을 거주하십니다.

 

4) 헤롯이 죽고 다시 주의 사자가 나타나 이스라엘로 돌아가라고 명합니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악한 권력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에 몰아 넣을 수 있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죠.

그러나 악인은 죽고 다른 악인이 그 자리를 대신 하는 게 세상입니다.

헤롯왕은 죽었지만 그 뒤를 이은 아들 아켈라오는 아버지를 빼다 박은 악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요셉이 이스라엘로 돌아오지만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것을 두려워 할 수밖에요.

하나님은 예수님의 가족을 다른 분봉왕 빌립이 다스리는 갈릴리 지방 나사렛 동네로 가도록 지시하십니다.

그곳은 본래 마리아의 고향이었죠.

아마 요셉도 그곳 출신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왜 처음부터 그곳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라면 태어나셨던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자라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곳은 예루살렘 지척이라 후에 이스라엘 사회에 등판하기 좋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방의 갈릴리라 부르는 곳으로 보내십니다.

그 덕에 예수님은 나중에 나사렛 사람이라는 불리한 별명을 달고 사셨습니다.

어떤 일은 우리 생각에 옳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 다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안 믿을 때는 어디로 갈지 무엇할지를 내가 다 정하면 됩니다.

여기서 더 살 것인지, 이사를 갈 것인지

이 직장에 다닐지, 다른 직장을 알아 볼 것인지.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면 내 결정권이 최우선이 아닙니다.

요셉이 예수님 고향으로 가장 좋다 생각했던 베들레헴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곳이 아니었잖아요?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우리 걸음을 하나님의 뜻에 조율해야 합니다.

요셉에게처럼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라고 현몽해서 말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치 앞을 모르는 세상에서 내 걸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철저한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인도하시길 모든 일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실패하지 않을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오늘 예수님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여정도 그렇게 인도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마태사도는 오늘 예수님 탄생 이후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예언을 구약성경에서 찾아냅니다.

그중에는 베들레헴에서 살해된 무고한 아기들과 통곡하는 여인들에 대한 예레미야서의 예언도 들어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 계시고, 우리에게 있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사건들도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부모들은 오늘 통곡하지만 예레미야서는 마태가 인용한 부분 뒤에 그 결말을 이렇게 냅니다.

예레미야31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울음과 눈물을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탄절,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환난으로 신음하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은 갓난 아기 시절부터 위협을 당하시고 마지막에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겐 구원의 행복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지만 이후 남아있는 죄악과 마귀와의 싸움에서도 잘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