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예수님의 세례 (마태복음3장13절-17절)

남수연 2026. 1. 7. 16:35

https://youtu.be/W1Mxr8Kxqwo

 

새해 첫주일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을, 하나님이 올 한해도 꼭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길 축복드립니다.

새해 벽두부터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리더군요.

종각역에서 자동차 추돌사고로 40대 여성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스키 리조트에서는 폭발 화재로 40명이 사망하고 115명이 다쳤다는 소식입니다.

부상자 대부분이 위독하거나 중태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새해 휴가를 보내러 갔을 텐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잠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걸 다시 실감합니다.

지난 주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남사모님을 마포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내려주고 다시 출발하려는 데 계기판에 경고등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뒷바퀴 쪽에 주황색 경고 표시가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펑크가 났나 서둘러 내렸습니다.

뒷바퀴 하나가 완전히 주저앉아 휠이 거의 땅에 닿아 있었습니다.

주행 중이었다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긴급출동에 연락해 기사가 왔는데 타이어가 찢어졌다는 거예요.

결국 다른 견인차가 와서 차를 통째로 싣고 24시간 타이어뱅크를 찾아가 바퀴 4개를 다 교체했습니다.

교체 주기가 좀 지났는데, 그냥 타고 다녔거든요.

자동차 점검 잘 하시길 바랍니다.

기온이 뚝뚝 떨어지던 날이었는데, 다 교체하고 나니 새벽 4시였습니다.

집에 오니 새벽 5시더군요.

새해 첫날부터 신고식을 단단히 치른 기분이었습니다.

불과 일 분 전까지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강변북로 계속 달리다 큰 사고가 안 난 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마침 아파트 주차장이라 안전하게 수습할 수 있었던 것도 정말 다행이었죠.

돌아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도 예기치 못한 일들이 터지겠지만 하나님이 큰 사고에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사인 같았습니다.

이것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마음에 담아두었으면 합니다.

오늘 말씀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내용입니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삼위일체 하나님도 나오고, 예수님과 우리 구원에 대한 엄청난 깊이가 있는 부분입니다.

새해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잘 배워가며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세례의 의미를 좀 말씀드리고, 새해 우리가 어떻게 살면 좋을지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령께서 잘 이해하고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1.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내용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구원을 위한 공적 생애를 시작하시려고 하잖아요?

가장 먼저 있었던 이 사건에 주님이 하실 일이 다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지난 주 세례요한에 대해서 살펴 보았었죠.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이스라엘 사회에 나타내기 위해 준비된 사람입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메시야를 믿을 수 있도록 준비시킨 사람입니다.

그것을 위해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죠.

그런데 오늘 이스라엘 북쪽 갈릴리에 사시던 예수님께서 요한이 세례 베푸는 남쪽 베다니 근처 요단강까지 오신 것입니다.

거리상으로 대략 백 킬로미터 정도입니다.

걸어서 오셨겠죠.

사람이 1시간에 5킬로미터까지 걸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 10시간을 쉬지 않고 걸으면 50킬로, 이틀을 꼬박 걸어야 100킬로를 걷게 되겠죠.

사나흘은 걸어서 주님이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던 베다니 근처까지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먼지와 땀에 젖은 채 세례를 받으려고 모인 사람들 틈에 서십니다.

이런 상상을 해보면 가슴이 좀 뭉클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비루하고 가난한 사람들 틈에 똑같은 모습으로 서 계시다니요.

그러니 예수님이 우리를 또 얼마나 잘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이 나오시는 것을 보고 세례요한이 깜짝 놀라 황급히 만류합니다.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요한이 계속 강경하게 세례를 거절했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베드로가 자기 발을 씻겨주려는 예수님을 완강하게 거부했던 그런 마음과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왜 세례를 받으셨나, 마음에 확 이해가 되진 않잖아요?

지금 세례요한의 물세례는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의미입니다.

죄 지은 사람들이 절대로 쉽게 자백하지 않죠.

요즘은 영상으로 공개되는 재판도 많습니다.

법정에서 피고들이 죄를 인정하는 모습은 거의 못 봤습니다.

죄를 자백하면 그대로 형량이 결정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없는 죄를 인정하시냐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죄가 없는데 죄가 있는 것처럼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위증하는 것은 아닌가요?

주님은 죄가 없으신 것도 맞고, 죄인이 되신 것도 맞습니다.

주님의 물세례 사건은 예수님이 죄인이 아니지만, 죄인이 되셨다는 구원 교리의 핵심을 눈 앞에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선지자들이 계속 예언해 왔던 구원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구원하실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정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구원의 이치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믿고 나면 쉽죠.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씩 알아가듯이 당시 제자들도 똑같습니다.

아마 구원의 지식에 대해선 제자들이 우리보다 더 모를걸요.

세례요한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메시야가 왜 자기에게 물세례를 받는 지 당시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죠.

 

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상상하지 말고 주님이 하신 말씀에서 찾아보면 됩니다.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주님이 딱 이 말만 하시죠.

내가 세례받는 것은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다

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멸망할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오셨죠.

그 방법은 죄인들의 모든 죄를 지고 제물이 되어 속죄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제사 제도를 통해 이것을 합법화시키고 각인시켜 오신 것입니다.

제사법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서 죄를 전가시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죄를 인정하시는 세례는 바로 그 절차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로 전가되었다는 것이죠.

이것은 경험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입니다.

고린도후서521절에서 바울사도가 이 사실을 정확히 규정해 줍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되, 형벌은 예수님이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구원 방식을 택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이시라도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물세례 속에 담긴 중요한 의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세례를 구경만 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성경은 나의 죄가 예수님께로 전가되는 방법이, 믿음과 연합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믿기는 하는 데 연합은 잘 안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나도 주님과 연합되어 죽어야 합니다.

로마서 65절 말씀이 잘 설명해 줍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중요한 것은 나의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영광된 새사람으로 부활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어 죽어야 합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지 마십시오.

더 이상 과거처럼 살지 않겠다, 과거의 나는 죽었다 인정하시면 됩니다.

이미 우리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치는 잘 몰라도 믿고 나면 절대 과거처럼 그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내가 죽는다는 건 내 정체성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과 연합되어 사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사실 과거처럼 그대로 사는 게 뭐가 좋습니까?

과거의 내가 예수님 믿고 난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었나요?

과거의 내 삶이 예수님 믿고 난 지금보다 더 만족하고 행복했었습니까?

아니잖아요.

예수님과 하나 되어서 주님을 닮아갈수록 우리가 복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인 상태에서는 아무리 인격을 다듬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속에는 교만, 야망, 우월감, 자존심, 두려움, 근심, 분노, 그런 본성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타인과도 갈등, 나 자신에게도 괴로운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죽은 성도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속에 있는 그 본성들이 나쁘다는 걸 알고, 믿음으로 죽인 사람들이잖아요?

무엇과 싸워야 할지를 잘 압니다.

올해는 좀 더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과 연합해서 사시길 축복드립니다.

 

어떻게 예수님과 더 연합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점점 닮아가는 것입니다.

과거에 행하던 악습을 버리고 예수님의 성품처럼 살아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변화된 성품도 주시는 건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며 평생 이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는 이미 죽은 옛사람을, 현실에서도 죽여가야 하는 것이죠.

대신 새사람의 좋은 성품과 습관을 덧입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치환이 잘 이루어질수록 우리가 예수님과 잘 연합되고 성도답게 되는 것입니다.

올해도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더 연합해서 살아갈 동기를 계속 얻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에 있는 죄의 본성대로, 세속적으로 흘러갑니다.

주님과 연합하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친교를 더 가져야 합니다.

성경 묵상과 기도가 더 익숙해져야 예수님과의 관계도 깊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좀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격적인 관계의 특징은 서로를 잘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아직 인격적인 관계가 깊게 형성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새해에 더욱 예수님과 연합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나오셨을 때 세 가지 신비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예수님께 일어났던 일이지만 주님과 연합한 우리에게도 똑같이 임하시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연합되어 있으니까요.

우리가 주님과 깊이 하나가 될수록 이 은혜를 더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한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1) 하늘이 열렸습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죄인들에게는 닫혀있습니다.

느낌상으로도 꽉 막혀 있습니다.

놋 하늘 같은 것 아시나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그 하늘이 열립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당연히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늘이 열리면 신비하게도 천국이 장소적인 실체로 믿어집니다.

사람의 특성상 없는 것이 믿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천국이 믿어지면 그곳이 정말 있는 것이고, 그곳에 우리의 거처가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 중에 아직 신앙을 동의하는 상태에서는 확신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열린 하늘을 더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게 됩니다.

어떻게 많은 성도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그렇게 아낌없이 헌신하겠습니까?

하늘이 열리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땅이 전부처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당연한 것이죠.

예수님과 깊이 연합할수록 이 하나님나라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뭔가 알 수 없이 늘 답답하다면 하늘이 막혀서일 수도 있습니다.

새해에는 예수님과 더 연합해서 열린 하늘 아래서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16절하,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예수님께 성령이 임하신 것은 두 가지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6장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을 보고 탄식하며 말씀하십니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죄인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더 이상 함께 하실 수도 없는 것이죠.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 성령이 다시 임하셨다는 것은 주님이 죄 없는 인간임을 인정하신다는 뜻입니다.

대속자의 자격을 인정하시는 것이죠.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은 죄인에서 이제 의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의 자격으로 구원을 이루셔야 합니다.

본인이 가지신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그러나 인성의 힘만으로 세상의 죄와 악의 세력을 상대하시는 게 불가능하죠.

그렇기에 성령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이적을 보이십니까?

모든 이적은 성령님을 통해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새생명을 주시는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우리도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올해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해서 성령충만을 힘입고 모든 일에 승리하시길 축복드립니다.

 

3)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성부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서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예언은 예수님을 기름부음 받은 자, 목자, 고난받는 종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근본은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단 성령의 음성으로도 들을 수 있고, 성경에 기록된 음성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음성을 한번 듣고 싶은 성도들이 많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셨던 말씀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사야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것 이상 어떻게 더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대개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성경만으로도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십니다.

청송교도소에서 교도주임을 지냈던 한 장로님이 이런 경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재소자가 교도소 독방에 들어왔습니다.

눈빛과 얼굴을 보니 징글징글한 죄인인 걸 대번에 알아보았죠.

다른 때 같으면 전도를 했을텐데, 저 사람은 구원받을 사람이 아니다 생각하고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 말씀이 자꾸 머리에 맴도는 것입니다.

악인에게 경고하지 않아서 죄 가운데 죽으면 그 피를 네 손에서 찾는다고 하신 구절이 있잖아요?

그래서 일단 책임은 면하자 생각하고 성경책을 한권 넣어주며 읽어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재소자가 순순히 성경을 받더랍니다.

당시 교도소 안에서 죄수들이 암암리에 물물교환을 했는데 성경책이 꽤 값어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박장로님은 성경만 주고 나서 할 일 다했다고 잊어버린 것이죠.

그런데 어느날 교도관들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그 흉악범이 이상해졌다는 거예요.

매일 울었다 웃었다 정신이 나간 것 같다는 것이죠.

그 순간 박주임이 이상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급히 그 재소자의 독방을 찾아갔더니 등을 보이고 앉았는데,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울고 있었던 것이죠.

박주임이 급히 열쇠를 열고 들어가 재소자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뒤를 돌아다 보는 데 깜짝 놀랍니다.

살기 어렸던 눈빛은 간 곳이 없고 순한 고라니 눈이 되어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랍니다.

그걸 보는 순간, 예수님 만났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울먹이며 대답합니다.

, 저 예수님 만났습니다.

그 순간 둘이 부등켜 안고 삼십 분을 울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출소해서 전도사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더 사모해야 합니다.

그것이 꼭 신비한 체험과 귀에 들리는 음성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데 그렇게 직접 말씀하실 정도로 중요한 일은 없잖아요?

성경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바르고 은혜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특별히 인도하시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일반화시켜 버리면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신앙에서 기적과 신비한 체험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잘 믿는 성도들인데도 그런 체험이 없다고 자기 믿음을 의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못 갖고 불안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죠.

성령께서는 아주 세미한 음성으로, 마치 양심의 소리나 내 내면의 소리처럼 우리를 감화하십니다.

성령께서 큰 목소리로 우리를 매일 지도하신다면 연약한 성도들은 정신 분열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올해도 너무 놀라운 기적만을 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적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은 사실 고달프잖아요?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의 성장에 따라 하나님이 다음 스텝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새해에는 계획하고 바라시는 일들이 주 안에서 다 이뤄지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행복과 기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는 게 그런 것 같습니다.

열심히 잘 달리다가도 돌맹이 차고 넘어져 이마 깨지고 무릎 까지고.

좋은 날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신발 속에 모래 알갱이가 들어있는 것처럼 왠지 그런 불편함이 있죠.

예수님을 믿으면 그런 게 다 없어진다고 사기 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새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할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큰 사고는 막아주시고, 감당 못할 시련은 피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말씀과 기도로 더 친밀하게 연합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이 세례받으시고 나오실 때 임하셨던 그 세 가지 은혜와 기쁨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머리 위로 활짝 열린 천국 하늘 아래서, 성령님의 충만한 감화를 받으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