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주의 길을 준비하라 (마태복음3장1절-12절)

남수연 2025. 12. 29. 00:11

어느새 올해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올해 시작은 국가적인 큰 문제로 국민들 모두가 힘들었는데, 그 기억도 벌써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길게는 우리의 일생도 다 지나간 과거의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 땅의 시간이 영원한 나라에 더 많이 기념되게 살아가길 축복드립니다.

세상의 볼일이 아닌 예배의 자리에 있는 이 시간도 천국에서 기억될 것입니다.

오늘은 올해 마지막 예배이고 다음 주 신년 예배를 앞둔 분기점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 볼 세례요한도 구원역사의 분기점이 되는 인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계획 속에서 분기점이 되고 분수령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구원의 분기점이 더 분명하게 보여지는 은혜를 주시길 소망합니다.

 

세례요한이 누구인지를 먼저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에 앞서 세례요한이 먼저 등장합니다.

지난 주 아기 예수님은 헤롯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셨죠.

그리고 몇 년 뒤 이스라엘로 돌아와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 정착하십니다.

그후로 예수님은 삼십 세가 되셨습니다.

예수님 같으신 분이 어떻게 삼십 년을 특출나지 않게 사셨는지 의아합니다.

능력이 많은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것도 실력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유대사회에서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셨죠.

그렇다면 예수님이 바로 구원 사역을 시작하시면 되잖아요?

그런데 주님 보다 먼저 세례요한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세례요한 또한 미스테리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죠.

마태복음만 보면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람이잖아요?

그러나 사복음서를 종합하면 세례요한이 누구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이야기를 자세히 배우는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갑자기 툭 튀어나오신 분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수평적인 구원의 역사를 잘 이해해야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명료해 집니다.

성도들이 믿음에 자신감이 없는 것은 거의 성경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 모친인 마리아와 친족관계였던 엘리사벳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제사장 사가랴였죠.

둘 다 나이가 많아서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했지만 기적으로 요한이 태어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한 육 개월 먼저 사역을 시작하고 예수님보다 먼저 헤롯 안티파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례요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셨죠.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요한 보다 큰 이가 없도다

세례요한은 아브라함 혈통 구원 시대에서 성령으로 태어난 구원 시대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게 9절 말씀입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구원에는 혈통이 필요 없다는 뜻이죠.

세례요한은 구약성경 말라기선지자를 끝으로 성경 기록이 없는 4백 년 침묵기 뒤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선지자를 자기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주님의 뜻을 대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말라기선지자 이후 4백 년 동안 단 한 사람의 선지자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야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침묵기엔 내가 선지자라고 스스로 나선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남달랐던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자칭 선지자가 얼마나 많이 나왔을까요.

자칭 메시야도 수도 없이 나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긴 침묵기는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에게는 불안한 상황이죠.

우리도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은혜가 없으면 신앙이 좀 불안해지잖아요?

조상들에겐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셨는데 왜 우리에게는 안 보내시지?’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떠나셨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세례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에게 열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도 온 이스라엘이 세례요한에게 나와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잖아요?

세례 요한 만큼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유대사회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목수 출신에 내세울 게 하나도 없으셨습니다.

이사야선지자가 예언했잖아요?

사람이 흠모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만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게 아닙니다.

주님의 일생 전체가 죄인의 대표자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영광도 부귀도 인기도 누리실 수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사역에서 백성들로부터 돌아오는 모든 영광을 다 하나님께로 돌리시잖아요?

그렇게 시골청년으로 사신 예수님을 누가 갑자기 메시야로 믿겠습니까?

세례요한이 주님을 보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나하고 비교도 안되는 메시야가 오실거라고 예수님을 소개하죠.

자기 제자였던 사도요한과 안드레에게 주님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요한은 주님이 누구신지 증언하기 위해 준비 된 사람입니다.

 

2. 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맞이할 사람들을 준비시킨 사람입니다.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예언이죠.

그게 바로 세례요한이라는 것입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라는 것은 메시야가 오실 길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길이 없는 곳으로 올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광야에 가 보았더니 사방이 똑같이 황량한 사막인데 거기에도 사람이 다니는 길이 나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어떻게 주님의 길을 준비했는지를 그가 선포한 메시지와 사역에서 알 수 있습니다.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죄인들에게 예수님이 오시는 길은 회개한 마음입니다.

회개해야 주님이 오십니다.

우리도 세례를 받잖아요?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과거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긴 구원의 서정에서 처음부터 회개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 믿음에 이르기까지 대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회개를 먼저 해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도 안 한 상태라면 아직은 그걸 구원받은 것이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회개와 구원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은 창세 전에 정해진 것입니다.

아직 깊은 회개도 없고, 확고한 믿음이 없다 해도 구원의 여정에 발을 내밀었다면 회심과 확신의 단계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세례요한은 너희 스스로가 회개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누구든 자기가 알고있음직한 도덕적인 죄를 우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죄에서 돌아서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세례요한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회개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분문과 같은 내용이 나오는 누가복음에 이렇게 회개하라고 합니다.

31,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또 세리에게는 부과된 것 외엔 거두지 말라고 합니다.

군인들에겐 사람들에게 강탈하지 말고 받은 급료를 족한 줄 알라고 합니다.

회개의 기준이 만만하진 않죠.

회개는 도덕적으로 바른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속이야 회개했는지 안 했는지 사실 누가 알겠습니까?

아마 자기 자신도 잘 모를 것입니다.

드러나는 것은 회개의 열매인 행동인 것이죠.

물론 도덕적인 변화가 다 구원받은 증거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의 회개는 도덕적인 죄악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심이 일어난 뒤에는 어떤 죄가 딱히 없다 해도 내 속마음자체가 그냥 죄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우리 속마음이 얼마나 교만합니까?

우리 모든 행위가 다 자기중심이잖아요?

현대 신자들의 문제점은 구원은 믿되 죄의 회개는 유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다 용서하실 텐데, 굳이 죄를 회개해야 하나?

빠져나갈 구실이 되는 것이죠.

세례요한이 주님이 오실 길이 회개라고 한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하실 때 첫 번째 메시지를 그렇게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 믿은 지가 수십 년인데, 여전히 내 성격, 내 습관 그대로라면 새해엔 열심히 고쳐봐야 하겠습니다.

나는 원래 성격이 이래서 못 고쳐 이렇게 말하는 신자들이 많죠.

하나님이 우리 각자를 개성있게 창조하신 것은 맞습니다.

그 개성이나 기질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어떤 교회나 단체에 다니는 사람들이 획일적이 되면 그건 의심해 봐야 합니다.

이단과 사이비종교를 보면 거기 소속된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게 기이하게 획일적이 됩니다.

그건 중독되고 세뇌된 것입니다.

우리가 울퉁불퉁 서로 다른 것이 다행인 것입니다.

각기 다른 기질이 있기에 주님의 나라가 빈틈을 메우며 건축되는 것이죠.

그러나 각자의 개성이 죄와 결합되는 게 문제입니다.

개성이 이기적 본능과 달라 붙어 인격이 되어버린 경우죠.

그렇게 된 내 성격이 하나님과 남들에게 폐가 된다면 고쳐야죠.

자기 결점을 대개는 알고 있습니다.

모른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고쳐야 할 것을 알았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맺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이 세례를 주는 요단강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나오죠.

요한이 이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모욕을 줍니다.

그런 말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이상하잖아요?

회개하고 세례받으려 나온 사람들에게 요한이 왜 그런 모욕을 주었을까요?

세례요한은 이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세례받자는 게 아님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종교 엘리트였던 말쑥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왜 야인 같은 세례요한에게 왔겠습니까?

당시 백성들이 모두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종교인지도층이 백성들을 상당히 의식했던 걸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할 때도 사람들이 주님을 메시야로 알고 있기에 폭동이 날 걸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한밤중에 사적인 장소인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4백 년 만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온 국민이 믿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백성들 눈치를 보는 이 종교인들은 싫어도 앞장서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세례요한은 그들의 속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들이 자기들 정체성인 유대교에 열심히 있어도 회개할 마음은 없다는 것이죠.

세례요한이 꿰뚫어 본 대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고 십자가에 못 박는 데 동조하죠.

새해 더 복되게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고치지 못한 성격, 버려야 할 죄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해결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요한은 자신의 물세례 뒤에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 오신다고 전파합니다.

회개한 심령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죠.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물세례는 사람 편에서의 죄의 자백이고 믿음의 고백입니다.

모든 이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베푸실 세례를 성령과 불로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성령은 거듭나 구원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불은 심판입니다.

11절과 12절을 함께 보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구원과 심판의 경계선은 뚜렷해집니다.

주님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자기들의 죄악 중에 멸망하는 시험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면만 생각하는 편이죠.

그러나 그 반대쪽 면인 심판도 항상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우리도 심판과 멸망입니다.

이 성령과 불의 세례를 함께 인식해야 내 구원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고 경각심 속에서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또 자기들의 죄 속에서 심판을 받을 내 주변 사람에 대한 믿음의 시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성탄절에도 우리가 내 가족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데려오려고 애를 쓴 것 아니겠습니까?

 

성령의 세례는 세 가지를 포함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죽었던 영을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중생의 사건은 신앙생활 중에 어느 지점에서 한번 일어나는 것입니다.

둘째, 이후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십니다.

셋째,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만 받고 아무 도움 없이 산다면 아무도 신앙생활 제대로 못합니다.

일주일 고생하고 주일엔 집에서 푹 쉬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어떻게 그런 욕구를 이기고 스스로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우리는 본능을 이길 엄청난 도우심을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더 큰 능력도 주십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셔서 제자들에게 그 능력을 주시잖아요?

그때 제자들의 눈에 불의 혀같이 불꽃이 갈라져서 각 사람의 머리에 임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죠.

그리고 제자들에게 갑자기 외국어를 구사하는 신비한 능력이 생깁니다.

그 능력을 성령이 주셨다는 걸 알려주시려 불의 혀 같은 형상으로 보이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말씀을 듣는 중에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누구에게는 지혜로, 누구에는 강한 믿음으로, 누구에게는 소망으로, 누구에는 위로로.

다만 불의 혀같이 갈라져 임하시는 능력이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성령을 모르는 에베소의 제자 모임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모인 사람들에게 임하십니다.

특히 설교를 들을 때 정말 진지하게 들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은혜의 방편으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성도들을 영의 만나로 먹여 기르고 싶어 하십니다.

성령님의 권능은 천지창조의 역사를 이루실 정도로 막강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그 권능이 불티만큼만 임하셔도 어마어마한 능력과 힘이 생기는 것이죠.

성령님의 지혜에 비할 때 인간의 모든 지혜를 다 모아도 티끌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지혜의 불티 하나만 주셔도 세상에 없는 탁월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매일 성령님의 능력을 받고 살라고 하신 것이죠.

새해에는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분당서울대병원 치과에 가면 전신마비환자인 교수가 진료를 합니다.

이규0교수입니다.

이분은 치대 본과 3학년 때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 목이 부러졌습니다.

머리만 살아있고 나머지 모든 신체가 마비되었습니다.

의사를 꿈꾸던 대학생이 하루 아침에 손 하나 까딱 못하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절망했겠습니까?

처음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나중엔 절대로 하나님을 안 믿겠다고 분노하고 원망했습니다.

욕창과 고열과 수술로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 인생을 끝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1년 뒤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복학합니다.

전신마비에 손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치과의사가 되겠다니 교수들도 어이가 없어 하겠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포기하라고 했지만 이교수는 끝까지 해보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해보기라도 하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손을 못 움직이니 누군가 눈앞에 책을 들어줘야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동기들은 강의실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신교수를 보면 힘을 합쳐 휠체어를 들어 강의실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꼼짝 못하고 앉아만 있다 보니 큰 수술을 수도 없이 해야 했습니다.

한번은 엉덩이 근육이 다 썩어서 긁어내는 큰 수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고통도 이교수를 막지 못했습니다.

견디고 또 견디고, 남들보다 열 배는 더 노력해서 결국 치과의사가 됩니다.

이교수는 특수하게 제작한 기구를 손에 끼고 지금 치과의사로 훌륭하게 진료하고 있습니다.

이교수의 얼굴이 얼마나 환하고 선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 과정이 얼마나 처절하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무엇이 이 전신마비 환자에게 소망과 버틸 힘을 주었겠습니까?

성령께서 그 모든 힘을 주신 것입니다.

루게릭병에 걸려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책을 쓴 승일재단 김승일씨가 있었죠.

그 책을 통해 가수 션이 마라톤을 하며 루게릭병원을 세우게 됩니다.

추락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 박위형제도 피나는 재활의 노력으로 비록 휘체어 생활이지만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의 힘으로 최악의 상황들을 그렇게 라도 승리하고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안에도 똑같은 성령님이 계십니다.

이 분들이 성령님을 의지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의지하고 능력을 구하는 새해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 인생이 지금처럼 평범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도 복입니다.

새해에도 우리 모든 성도님들 삶을 평탄하게 인도해 주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러나 그런 일상도 성령님의 감화가 있어야 소중하고 감사한 것을 압니다.

또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성령님의 힘을 구하면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려면 말씀과 기도를 절대로 놓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중에 기도와 말씀 묵상 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하나님도 아십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 영혼이 허약해지고 시험에 넘어져 고통당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사실 바쁘고 힘들 때가 영적으로 위험할 때이거든요.

환경에 시달리고 몸이 지칠 때일수록 믿음을 더 보강해야 합니다.

새해엔 매일성경이 몸에 배도록 결사적으로 손에 들고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하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내 진심을 말씀드리면 그거 이상 든든하고 평안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우리의 죄를 책망하실 때 죄를 도려내는 각오를 다지십시오.

이교수가 고통을 견디며 엉덩이에 썩은 근육을 도려내지 못했다면 하반신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끼고 있는 죄는 내 어느 부분을 통째로 절단하게 될 위기를 만들 것입니다.

최근 박나0, 저속노화의 정희0, 그리고 뉴스에 나오는 수많은 정치인들.

끊어내야 했던 죄와 악이 결국 그들을 추락하게 만들잖아요?

성령님을 의지해서 성도님들 모두 새해엔 더욱 승리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