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동방박사와 야곱의 별 (마태복음2장1절-12절)

남수연 2025. 12. 22. 11:50

https://youtu.be/l3i_Sw-rm4s

 

오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모두에게 임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전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에서 꼭 성극을 했죠.

그때 단골 소재로 나온 게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굿간, 그리고 동방박사였습니다.

동방에 살던 박사들이 먼 이스라엘 하늘에 나타난 특이한 별을 발견합니다.

박사들은 그 별이 위대한 왕이 태어난 징조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먼 길을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선물을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려서 들어서인지 마치 아름다운 동화 같죠.

우리들 모두는 각자가 발견한 어떤 별에 이끌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 별을 따라 막 여정을 시작했고, 어떤 분은 그 별이 가리키는 예수님을 만나 예배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랜 역사를 준비하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동방박사처럼 나도 인도하심을 깨닫는 은혜 주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초대되어 오신 분들께도 잘 이해되는 은혜를 주시길 축복드립니다.

 

1. 동방 박사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탄생에 끼게 된 의미입니다.

사실 동방박사들은 미스테리한 인물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죠.

'이 사람들은 왜 갑자기 나타난 거야?'

뭔가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이죠.

사람들은 집 바로 옆에 있는 교회도 찾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방박사들이 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랑 별 하나를 관측하고 찾아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죠.

또 어떻게 별 하나를 보고 유대인의 왕이 났다고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확인해야 할 진실이죠.

예수님 탄생과 성장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도록 하는 책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도 구원, 동방박사 이야기도 구원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모든 이방인들이 구원받을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난 과정이나 우리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함께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동방박사의 여정을 떠나 보시겠습니다.

 

1) 실제적으로 이 동방 박사들은 누구냐입니다.

제일 안 좋은 것은 동방박사에게 동화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동방은 이스라엘의 동쪽을 가리킵니다.

그냥 동방이라고만 기록한 것은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하던 당시엔 동방 하면 어떤 나라인지를 다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곳은 과거 이스라엘 조상들이 포로로 끌려갔던 바벨론 지역을 말합니다.

이후 페르시아가 되었고, 현대 국가명으로는 이란입니다.

박사라고 번역한 헬라어 마고스는 보통 점성술사를 말합니다.

천체와 별을 연구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점치는 사람들이죠.

마고스들은 왕의 자문관이기도 했습니다.

바벨론제국은 점성술이 일찍 발달했습니다.

고대 바벨론 때 이미 목성, 금성, 토성, 수성, 화성 다섯 개 별을 발견했고 그 별들에 자기들 신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고스는 신의 사제로도 인정되기에 상당한 권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박사들은 별자리 뿐 아니라 갑자기 나타나는 혜성 같은 특별한 별들도 연구했습니다.

별만 관측하는 건 아닙니다.

각 나라의 책 속에 나타난 별을 연구하는 것도 점성가들의 일입니다.

박사들은 당시 존재하는 문헌들 중에서 별에 대한 내용들을 완전히 섭렵한 사람들입니다.

고대엔 바벨론과 페르시아가 중동의 모든 나라를 지배했습니다.

이스라엘도 바벨론에 패망하고 포로로 끌려가 70년 노예생활을 했죠.

페르시아에는 패전국에서 탈취한 귀중한 문서들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의 경전인 구약성경도 있었죠.

바벨론 포로 중에는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페르시아에 남은 유대인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 유대인들의 신앙은 바벨론 본토인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 태어난 시기엔 이미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이 당시 공용어였던 헬라어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박사들이 성경을 접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죠.

구약 성경에는 특별한 별 이야기가 하나 나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별은 다 별들이라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단수로 되어 있는 딱 한 별이 있습니다.

그게 민수기에 나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하진 않겠습니다.

민수기 24장에 발람이라는 사람이 한 예언입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점성가인 박사들은 즉시 이 별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먼 훗날에 이스라엘에서 특별한 한 왕이 태어나 악을 멸한다는 예언입니다.

처음엔 이런 게 뭐 맞을까,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예언되고 태어나는 인물은 없잖아요?

박사들 기억에 성경에서 본 이 별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멀리 이스라엘 쪽 하늘에서 예언처럼 빛나는 새 별을 발견합니다.

아마도 갑자기 나타난 혜성과 같은 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사들만 이 별을 관측한 것은 아니겠죠.

중국의 천문학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탄생 연도로 추정되는 해에 염소자리에 초신성으로 보이는 새 별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별이 무려 70일간 관측되었다고 합니다.

박사들이 관측한 별과 같은 별일 가능성도 있죠.

아니어도 그런 종류의 별을 보여주신 것이겠죠.

별을 보는 순간 박사들은 그 유대 왕의 별이구나, 유대인의 왕이 나셨구나’, 직감했습니다.

동료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죠.

그렇기에 함께 유대 땅으로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이건 누가 설득해서 따라올 문제가 아니죠.

 

2) 아무리 그래도 박사들이 굳이 아기를 보러 올 이유가 있을까요?

남의 나라에서 누가 태어나든 나하고는 상관 없잖아요?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입니다.

사막은 말이 아니라 낙타를 타고 이동하죠.

낙타로 그 거리를 왕복한다면 최소 몇 달은 잡아야 합니다.

뜨거운 중동 땅을 몇 달 동안 낙타로 건너는 것은 살인적입니다.

박사들은 왕궁에서도 맡은 일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 먼 길을 찾아와 아기를 보려 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고가의 예물입니다.

지금도 금값이 비싸잖아요?

사람이 어떤 선물을 하느냐를 보면 받는 이의 지위를 알 수 있죠.

박사들은 태어난 아기를 단지 먼 나라 왕의 탄생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서 경배했다는 것에서 이해가 될 것입니다.

경배는 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 앞에서 절을 한다 해도 그것을 경배라고 하지 않습니다.

박사들은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신적인 분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박사들은 실제로 별을 보고는 성경을 더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든 만민에게 행하실 놀라운 계획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조상인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만민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세오경만 읽어도 충분히 이런 내용들을 알 수 있잖아요?

믿을 것이냐 아니냐가 문제지,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닙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이 고통이 가득하고 의문투성이 인생을 괴로워합니다.

사람의 속에는 이런 인생에서 구원받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지혜자일수록 더 하죠.

양심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이 이 세상에 만족해한다면, 그건 그 사람을 잘못 평가했을 것입니다.

청년들조차 세 명 중 한 명은 무기력과 탈진 속에 산다는 게 최근 통계입니다.

사람이니까 살아내지 살만한 세상이 아닙니다.

박사들도 우리와 똑같은 죄악 속에서 구원을 갈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유대에서 태어날 왕이 고통에서 구원할 분임을 깨닫고 믿게 된 것입니다.

성경 한 권 있으면 다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막을 건너 예수님을 경배한 것이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게 된 성도들의 일생도 박사들의 여정 못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주님을 따르는 길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3) 이 모든 구원의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에게 성경에서 한 별을 보여주셨고, 그 별은 박사들을 점점 예수님께로 이끈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께 인도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가는 중에 하나님은 예수님께로 인도할 특별한 별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예수님께 인도하는 사건은 각각 다릅니다.

우리나라 나노과학 분야 최고 권위자는 현택0교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가장 권위있는 상 세 개를 모두 받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분입니다.

이분이 시골에서 살다 상경해 서울대에 들어갑니다.

옛날엔 서울 학생들의 삶과 시골 학생의 삶의 차이가 컸죠.

그런데 동기들이 서로 어울려 주고 받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잖아?

뭔가 철학적이고 심오한 말들을 하는 데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습니다.

너희들 그게 무슨 말이야?

동기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는 성경에 나온 이 유명한 말도 모르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때 너무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은밀히 기독학생 동아리를 찾아갔습니다.

그 걸음이 현교수님을 예수님께로 이끈 것입니다.

사실 과학자가 상을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을 하는 건 왠지 잘 안 맞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현교수님은 시상대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강의실이든 누구를 만나든 항상 자신이 예수님 믿는 사람임을 밝힙니다.

성도님들은 어떤 별을 통해 예수님께로 나오셨나요?

그냥 각자 인생을 살다 마음에 들어온 한 사건이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첫 사회생활로 회사를 한 1년 다녔습니다.

그때 같이 근무하던 여직원이 있었습니다.

아주 착한 사람이었는데, 속은 단단했습니다.

집안이 어려웠는데, 기도하면 된다며 풀이 죽지 않았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 여직원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평범한 경리 직원이 왜 저렇게 달라 보이지?

저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서 그런가?

그때 제 마음에 하나님, 예수님, 기도, 이런 별을 하나님이 띄워 놓으셨던 것이죠.

얼마 뒤 저는 순위고사 준비를 위해 회사를 나오고 그 여직원과는 헤어졌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저는 예배당에 앉아 있게 됩니다.

그 여직원을 통해 하나님이 제 머리 속에 별을 떠오르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삶에만 몰두했다면 계속 하늘의 별을 볼 수 없었겠죠.

화려한 이 세상이 있는데 누가 처량하게 하늘을 올려다 보겠습니까?

땅의 삶이 고통스러운 시련을 통해 저는 계속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도님들 마음에 심어주신 어떤 사건이나 생각이 모두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별이 되길 축복드립니다.

 

2. 박사들의 긴 여정을 추적해 보겠습니다.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행 준비는 꽤 준비는 오래 걸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동방박사 세 명만 길을 떠났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일행이 없이 위험한 길을 떠난다는 건 무모한 일입니다.

이들의 신분을 생각할 때 시종과 경비병을 이끈 대규모의 행렬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국가 고위직이잖아요?

3절에 보면 동방박사 일행의 등장으로 큰 소동이 일어난 걸 알 수 있습니다.

세 명이 달랑 찾아와 아기를 찾는 것만으로 예루살렘이 술렁일 수는 없죠.

박사들이 발견한 별은 이들의 여행을 계속 인도하지는 않았습니다.

9절에 보면 나중에 그 별이 다시 나타났다고 하죠.

처음에 별을 보고 큰 확신으로 출발했지만 도중에 별은 사라졌다는 것이죠.

우리 믿음의 여정에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떠오른 별을 따라 교회에 나왔지만 신비하고 특별한 일은 계속 일어나지 않습니다.

때로 마음 속에 별이 사라지고 내 믿음에 혼란이 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동방박사 일행은 걸음을 되돌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에 믿음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드시지 않았다면 우리도 벌써 과거의 삶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박사들은 왕이 태어났을 왕궁을 찾아갑니다.

별은 사라졌지만 가장 타당하게 예수님을 만날 여정을 이어간 것이죠.

우리를 인도하는 별이 희미해질 때도 스스로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며 그 별이 선명해지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말씀에 나오죠.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박사들은 왕궁을 찾아가 묻습니다.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야곱의 별, 유대인의 왕이라면 당연히 왕궁에서 태어날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 당시 유대를 다스리던 헤롯왕은 다윗왕조를 이은 왕이 아닙니다.

바벨론 포로기를 거쳐 일부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귀환해 다시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속주국이었던 이스라엘에 다윗 왕조가 이어지진 못합니다.

현재 헤롯왕은 로마제국에 막대한 돈을 주고 왕으로 임명받은 사람입니다.

게다가 유대인도 아니고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입니다.

헤롯왕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에 몹시 당황하고 위기를 느낍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의 많은 예언들은 다윗의 후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릴 왕이 나실 것을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왕이 태어날 곳이 어딘지를 캐 묻습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답을 내 놓죠.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어떻게 이들은 쉽게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알았을까요?

구약성경에 이미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가라는 예언자가 주님 탄생 7백여년 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미가서56, 또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나실 것을 예언한 것이죠.

박사들은 유대의 왕이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이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왕궁이 아닌 곳에서 태어날 것이 예언되었다는 데 더 놀랐을 것입니다.

박사들이 이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그때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다시 나타나 길을 인도합니다.

박사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우리는 헌신한 만큼 기쁨을 맛봅니다.

헌신할수록 예수님이 왕이고 구주시라는 사실이 더 뚜렷해지기 때문입니다.

박사들은 집에 들어가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고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리고 보배합을 열어 준비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기꺼이 예물로 드립니다.

그들이 주님께 받을 구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몰랐다면 아마 그런 귀한 예물을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계산적입니까?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 계산하지 않게 된 우리가 복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유대왕의 탄생 소식을 듣고 소동했던 예루살렘은 무엇을 했을까요?

왕궁과 예루살렘 주민들의 분위기는 뒤숭숭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대로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왜 동방박사들처럼 기뻐하지 않고 불안해 했을까요?

지금 이스라엘은 로마제국과 꽤 사이가 좋은 헤롯왕의 통치로 그나마 안정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메시야가 온다면 나라는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메시야의 탄생이 그래서 기쁘기보다 심란했다는 것입니다.

구세주를 기다리는 건 좋은 데, 구세주를 맞이하는 것은 싫다는 것이죠.

많은 신자들이 막연히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건 원치 않는 신자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지금의 내 삶을 어떻게 하실까봐 왠지 불안하다는 것이죠.

솔직히 내가 원하고 내가 계획한 대로 되는 인생이 좋잖아요?

탤런트 권오0씨도 그랬다고 합니다.

아내를 따라 교회에 다니며 교회 봉사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안내위원을 하면서 예배가 시작되면 설교도 듣지 않고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다니며 종교생활은 했지만 술 마시고 방탕하게 사는 삶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권오0씨가 과거에 그렇게 욕설과 음담패설의 대가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예수님을 진짜 알고 나니 이전처럼 살 수 없었습니다.

술도 끊고 욕도 끊고 음담패설도 끊었습니다.

돈이 안 되는 기독교 영화에 출연하고 선교단체를 돕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 수입이 없는 것이죠.

신자들이 그런 걸 두려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 치킨 광고가 하나 들어옵니다.

치킨광고는 연예인 중에서도 꽤 끗발이 좋은 사람들에게 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몇 년 방송을 쉰 권오0씨에게 연락이 온 것입니다.

당장 수락했는데 마지막 씬에 맥주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국 광고를 거절합니다.

내가 술을 끊었는데, 양심상 술을 권하는 광고를 못하겠다 한 것이죠.

광고주로서는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래서 신자들이 믿음 좋아지는 걸 원치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거절하고 나서 얼마 뒤 다시 연락이 옵니다.

권오0씨만큼 이 광고에 맞는 사람이 없으니 술 대신 콜라로 가자는 거예요.

그리고 광고료도 더 올려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찍은 광고가 바른치킨 광고라고 하더군요.

예수님을 더 가까이 믿고 더 진실되게 따르면 당연히 내 삶에 변화가 옵니다.

권오0씨의 경우가 그 변화를 잘 보여주죠.

이전엔 술에 빠져 온갖 방탕과 음란을 행하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다 낙심하고 지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실되게 믿으니 당연히 그 모든 게 변합니다.

술도 끊고, 가정은 다시 살아났고, 자신의 믿음을 당당히 증거하며 성도로서 덕이 되는 방송활동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얼마나 삶이 정돈되고 평안하고 행복한지 우리도 잘 알잖아요?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메시야 탄생에 소동만한 예루살렘 사람들 같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베들레헴에 달려간 사람은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거리는 10킬로가 안됩니다.

저도 예루살렘에서 숙소인 베들레헴 호텔로 이동해 봐서 압니다.

관광버스로 이십 분도 안 걸립니다.

걸어서도 갈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메시야가 태어난다는 것을 알았고, 다윗왕국의 번영은 원했지만 메시야를 환영하고 영접하지는 않았습니다.

후에 예수님이 더 위협이 된다 느끼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영영 구원받지 못할 길을 유대인들은 걸어간 것이죠.

보이지 않는 두려운 선이, 먼 길을 희생하며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박사들과 그들을 갈라 놓은 것이 보이십니까?

우리는 동방박사처럼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를 알고 주님을 경배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