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창립주일 설교 (마태복음13장31절-33절) 겨자씨와 하나님나라

남수연 2025. 2. 20. 12:16

https://youtu.be/wNG4W4jw0YU

 

우리교회 창립15주년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우리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함께 이 자리를 지켜주신 성도님들의 의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야 집 앞에도 있잖아요?

우리 교회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믿고, 그 믿음에 대한 의리로 여기까지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고, 우리 성도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모든 성도님들께 칭찬과 위로가 되게 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이 들어있는 마태복음13장에는 일곱 가지의 천국비유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장이라고 불립니다.

일곱 가지 비유로 다양한 각도에서 천국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 제일 먼저 하셨던 말씀을 아십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천국을 알리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값을 대신 받으시고, 그것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천국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가장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그래서 천국 비유는 이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비유부터 시작합니다.

구원의 복음을 잘 받고 믿으면 우리 안에 천국 생명이 심겨지는 것이죠.

예수님을 믿는 우리 안에는 이 천국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가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믿으면 됩니다.

나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냥 세상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 같지만, 이제 내게서 하나님, 예수님을 완전히 빼버린 삶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 안에 시작된 이 천국을 겨자씨와 누룩의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해 주십니다.

 

1. 먼저 겨자씨 비유입니다.

비유의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성장해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와서 가지에 깃들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크게 성장한다는 뜻이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사역이 그렇죠.

제자들을 통해 복음이 세상으로 전파된 것이 해당됩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임한 구원과 하나님의 일도 확장됩니다.

이 비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서 나와 연관을 시켜 보겠습니다.

1) 하나님나라의 시작은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작은 시작 때문에 의심하지 말고, 좀 더디게 자라도 의기소침해지지 말라시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작은 것을 가리킬 때 좁쌀만 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선 겨자씨만 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지금 죄인을 구원하실 천국 사역을 시작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자들 눈에나 사람들 눈에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라면 최강 로마군대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군대를 데리고 이스라엘의 옛 영광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나사렛 시골 목수 출신의 청년 예수님은, 메시야를 기다리던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 비유를 가르쳐 주시기 바로 직전에도 바리새인들에게 무시당하셨습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서 시작되는 믿음도 그렇게 미미하게 보이는 게 당연합니다.

믿음이 너무 작아서 때로 내 믿음이 아직도 남아있나 의구심이 들 때도 있죠.

그러나 우리 안에 심겨진 믿음은 반드시 자랄테니 염려하지 말라시는 것입니다.

한 십오 년 전, 어느날 아침이 아직도 제게는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아침에 학교에 출근하려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제 속에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개척 교회를 한번 해 볼까?’

전날 밤 잠들 때까지도 그런 생각을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살면서 그런 생각을 정말 해 본적이 없습니다.

평소 교회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잠자는 사이 누군가 제 마음에 겨자씨 한 알 같은 하나님나라를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게 뜬금없는 생각이었다면 곧 잊어버렸겠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가 백 가지는 됐으니까요.

그런데 천국 씨앗에 생명력이 있어 자라는 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겨자씨 믿음은 생명력이 있어서 조금씩 자랍니다.

속도가 빠를 수도 있고, 더딜 수도 있죠.

가물고, 영양분이 없는 메마른 시간을 지날 땐 다 말라 버린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교회도 그렇고, 개인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죽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안에 이 생명을 심어주셨기에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날 제 마음에 심겨진 하나님나라가 오늘 이렇게 자란 것입니다.

 

2) 이 비유를 잘 보면 우리 믿음의 결말은 한마디로 쇼킹 그 자체일 것입니다.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이 믿음이 가져올 결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사실 이스라엘에서 겨자는 지천에 깔린 유채꽃처럼 생긴 풀입니다.

가끔 쌈밥집 채소 중에 톡 쏘는 겨자잎이 나올 때가 있죠.

이스라엘의 겨자풀은 꽤 크게 자랍니다.

자라면 어른 키를 넘기고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서 나무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작은 새들이 무성한 잎사귀 사이를 드나듭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풀이 나무가 되지는 않죠.

당시 예수님 말씀을 듣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을 것입니다.

겨자 풀에 새들이 둥지를 짓는 일도 없으니까요.

예수님이 그걸 모르셨겠습니까?

이런 반전이 예수님 비유의 묘미입니다.

미미한 겨자씨 한 알로 시작한 하나님 나라의 결과는 겨자 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상상을 뒤집는 천국의 위대함을 말씀하는 것이죠.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천국은 모든 면에서 우리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이 기대감을 늘 갖고 믿음을 잘 지키시길 축복드립니다.

 

3) 우리의 겨자씨 믿음은 속에서만 자라는 게 아니라 밖을 향해서도 자랍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나라가 확장되는 것이죠.

우리 성순례집사님 얘기를 좀 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부군 되시는 장용헌성도님이 소천하셨습니다.

제가 안수집사님과 김광해권사님과 함께 먼저 조문을 한 뒤, 발인예배를 인도하기 위해서 다음날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남아 계신 친지분들과 운구할 아드님 친구 중에 신자들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발인예배를 드리는 게 사실 어려운 상황이죠.

먼저, 믿음이 없으셔도 고인을 편히 보내드리는 마음으로 함께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가 준비한 말씀은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에서 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교회 안 다니시는 분들이 많을 걸 예상했기에 천국 복음을 담아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모두 잘 참여해 주셔서 고인을 환송하고, 가족들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오며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성순례집사님이 늘 나는 성경도 잘 모르고 믿음도 부족하다 그러십니다.

그런데 성순례집사님 속에 있는 작은 겨자씨 믿음 때문에 그날 십여 명의 친지들이 엄숙하게 복음을 듣게 된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가 아니면 스스로 교회에 나가실 분들이 아닙니다.

몇몇 가족들은 아주 교회를 싫어하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모두가 진지하게 천국 복음을 들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겨자씨 같은 믿음의 결과 아니겠습니까?

성순례집사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도님들 모두의 삶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로도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든 세상 안에서 역사합니다.

그러니 우리 작은 교회도 큰 나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한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골의사라는 유튜버가 있습니다.

시골 병원에서 노인들을 진료하며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을 올립니다.

그런데 아주 짧은 시간에 구독자가 오만 명이 넘었습니다.

사람이 진솔하고 소탈해서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의사가 조금씩 자기 신앙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댓글 창에 논쟁도 생기고 해서 부담이 됐던 것 같습니다.

한 몇 개월 영상을 끊더니 몇 주 전부터 다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아주 대놓고 신앙 얘기를 합니다.

이 영상을 보고 교회를 떠난 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더군요.

어차피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교회 가자고 말할 기회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솔직하게 빨리 운을 떼는 게 더 좋을지 모르죠.

지난 주는 아예 주일 교회 생활을 올렸더군요.

가족들이 다니는 교회는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읍내에 있는데 30년째 다닌다고 합니다.

아침 일찍 온 가족이 서둘러 교회를 갑니다.

시골의사는 음악전공자가 없어서 성가대 지휘를 합니다.

치과의사인 아내는 유치부 교사를 하고, 낮에는 주방에서 열심히 설거지를 합니다.

오후가 훌쩍 지나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시골 의사는 집에 와서 어항에 물고기 밥을 주고, 고양이 똥을 치웁니다.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버립니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서 , 내일 출근하기 싫다며 영상이 끝납니다.

부부가 의사라면 보통 상위 계층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소탈한 일상 속에서 진실되게 예수님을 믿는 그런 모습이 오만 구독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이 자라 많은 새들이 깃들이게 될 것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시골의사가 다니는 읍내 교회 성도 수가 한 이백 명이 넘습니다.

시골치고는 꽤 큰 교회죠.

그런데 올해로 교회가 105년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목사님 가족들로 개척했을 교회가, 백년 동안 이백 명의 성도로 불어난 것이죠.

우리교회도 백여 년 뒤에 이백 명 성도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우리의 믿음도, 삶도, 조금씩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 다른 누군가도 천국에 보금자리를 얻게 하는 복된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4) 이 비유는 기적적인 성장, 성공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영광스런 하나님나라를 설명하시는 데, 하필 하찮은 풀로 비유하셨습니다.

사람들 생각에 매일 보는 겨자풀이 무성해 봤자 대단치가 않거든요.

화려한 성장, 남보다 빠른 성공에는 독풀이 자랍니다.

천천히 성장하는 게 중요한 것은 재산이 불어나고, 인기가 올라가고, 일이 잘되는 것과 그걸 감당할 내 인격이 함께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아침에 성공을 이룰 때 사람이 그걸 감당 못해 반드시 탈이 생깁니다.

진선0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무명시절이 길었던 진선0 배우는 범죄도시에 악역으로 알려졌고 나중에 신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배우가 말하길 사람들은 실패했을 때 하나님께 매달리며 믿음이 성장한다고 하는데 자기는 반대라고 하더군요.

신인상을 받고 갑자기 사람들의 주목을 받다보니 그게 그렇게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시작한 1시간 기도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비유가, 믿으면 모든 게 크게 성공한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필 겨자씨잖아요?

창대해져 봤자 겨자풀이지 백향목이 아닙니다.

왜 내 믿음이 남들처럼 성장하지 않나, 내 인생이 언제나 잘될까, 큰 비전은 언제 이뤄주시려나 답답하기도 하죠.

예수님께는 그게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냥 겨자 풀로 살아도 온갖 것을 품을 수 있는 풍성한 인생이 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민초잖아요?

그러나 31절 말씀대로 하나님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 풀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잡풀 같은 우리들을 정성껏 심고 가꾸어 가십니다.

우리 교회가 남들이 보기에 초라해 보이고, 우리 삶이 화려하지 않다 해도 하나님이 소중히 가꾸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의 비유입니다.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제한 된 부분의 변화에 대한 비유입니다.

천국 생명이 있다면 변한다는 것이죠.

빵 만들 때 이스트를 넣으면 밀가루가 부풀어 부드러운 식감으로 바뀌 것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바꾸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바꾸는 것이 세상이라면 지금 같지는 않겠죠.

바뀐 성도들 덕택에 세상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이죠.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여전히 이면서 새로운 속성을 품은 내가 됩니다.

생 밀가루가 발효된 밀가루 반죽이 되는 것이죠.

사람은 본래 평생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이 바뀌는 기적이 이 누룩의 비유입니다.

한 사람 변하는 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 아시죠?

한 사람은 미미한 작은 존재인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세계가 우주만큼 큽니다.

누구든 이 우주에서 자기가 중심입니다.

그것을 알았는지 정현종이라는 시인이 방문객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이 큰 존재인 사람이 바뀌는 것이 쉽겠습니까?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어서 전부 부풀게 했다고 하죠.

서 말로 번역된 본래 원어의 단위를 계산하면 20킬로가 좀 넘는 양입니다.

요즘 집에서도 쌀을 십 킬로 넘게는 잘 사지 않죠.

어쩌자고 이 여인은 밀가루 20킬로에 누룩을 넣어 부풀게 한 것일까요?

천국 생명으로 바뀌어야 할 기존의 것들의 작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 전체가 죄의 본성에서 유래되었잖습니까?

바뀌어야 할 것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기존의 나는 적은 누룩이 변화시켜야 할 가루 서 말 만큼 큽니다.

그렇기에 죄에서 생성 된 내 인격과 습관이 바뀌는 것은 평생 갑니다.

생명이 들어오면 변하지만 그것이 변화되는 것은 평생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계속 생 밀가루로 남아 있겠다고 고집 피우면 더 늦어지겠죠.

우리가 그리스도인처럼 부드럽게 변화되도록 성령님의 인도에 협조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하신다면 혼자서 원맨쇼를 하시는 게 되잖아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선한 성품으로 변화될 수 있냐는 방법이 중요하겠죠.

오래 교회에 다녔지만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네 가지 밭의 비유와 연동해서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아무 결실이 없는 세 가지 밭의 문제를 제거하면 백배의 결실을 하는 밭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결실하지 못한 세 밭은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 밭입니다.

길거리 밭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단단해진 밭입니다.

세속적인 생활의 분량이 너무 많아 신앙에 관심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죠.

이런 경우는 시간과 노력을 좀 더 믿음을 위해 집중해야 합니다.

예배, 말씀, 기도, 찬양, 그런 것의 비중을 좀 더 늘려가면 되는 것이죠.

돌밭은 말씀을 잘 받지만 흙은 얕고 밑에는 돌들이 포진한 밭입니다.

처음엔 뿌리가 내리는 듯 하지만 흙이 얕아 시험이 오면 결실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변화되지 않은 돌덩어리 같은 성격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돌을 거둬내고 더 좋은 흙들이 덮이게 하면 되겠죠.

내 성격을 고칠 사람은 나입니다.

말씀이 내 문제를 보여주실 때, 그 묵직한 돌을 들어내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보고 배운대로 좋은 흙으로 마음밭을 채우면 되겠죠.

겸손, 용서, 인내, 사랑, 긍휼, 충성, 희생, 온유, 이런 것들입니다.

가시덤불 밭은 생활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걸려 삶에 결실이 없는 밭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믿지만 세상 염려와 돈 문제가 발목을 잡아 결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요즘 한 달 120만원으로 네 가족이 생활할 수 있을까요?

두 아이를 둔 젊은 주부가 그렇게 산다고 하더군요.

남편에게 월 120만원 생활비를 받아서 사는 데 살만하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봉사단체에서 운영하는 학원이긴 하지만 아이들 학원도 보내고, 자기는 구청 스포츠센터도 다닌다고 합니다.

맞춰서 살면 살아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쓰고 살려다 보면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돈은 벌 수 있을만큼 벌되 물질이 많아야 행복하다는 가시덤불을 자꾸 거둬내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사람이 내면이 공허할수록 부와 성공을 더 갈망하게 됩니다.

돈이 집착한다고 더 모아지지는 않죠.

믿음이 내면을 채워주면 가진 게 적은 상황도 더 잘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은지 오래 되었는데, 천국 누룩으로 부드럽게 변하지 않은 성품들이 다 있습니다.

시인과 촌장이 부른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아실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이 노래를 녹음하던 당시 하덕0씨가 새벽기도를 다녔다고 하더군요.

믿음으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본 노래입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가시나무 숲 같네.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겨자씨 믿음이 나무처럼 자라긴 했는데, 성품이 부드럽게 변하지 않아서 가시나무가 되었다는 것 같죠.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크게도 자라지만 주님을 닮아서 이웃이 기댈 수 있는 그런 내면의 성장도 이루게 되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2025년2월16일 주는나의산성교회 창립15주년감사주일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