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시험을 받으시러 광야로 (마태복음4장1절-11절)

남수연 2026. 1. 14. 17:49

 

https://youtu.be/t_acXJtCHH0

 

새해 두 번째 주일인데, 벌써 크고 작은 시험들을 당한 건 아니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나눌 말씀은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에 대해서입니다.

이 시험은 물론 예수님의 시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험이 있죠.

그런데 이 시험은 예수님이 사람으로서 당하신 시험입니다.

우리의 시험과도 공통점이 있고, 시험을 이기는 방법도 들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도 성령께서 이 내용을 기록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시험 내용은 우리의 취약한 점이고 마귀가 공격하는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잘 배워서 올해도 시험에서 잘 이겨야 하겠습니다.

시험에 들고 넘어지면 삶이 괴롭잖아요?

 

1. 예수님이 왜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셔야 했느냐입니다.

사실 세 가지 시험은 좀 까다로운 본문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은혜를 받는 분은 별로 없으실 것입니다.

마귀가 낸 시험문제는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고 낸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과는 격이 맞지 않는 시험입니다.

예수님이 이 시험에 정말 흔들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자들 중에도 40일 금식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또 이 시험엔 우리에게 적용해야 할 포인트가 분명히 있지만 그게 금방 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이런 본문은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씨름 선수들이 단 몇 분 안에 승패가 결정되죠.

그런데 짧은 대련 속에는 씨름의 기술 54가지가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좀 그런 면이 있습니다.

겉만 훑어 보아서는 성경이 주시려는 의도를 충분히 알기가 어렵죠.

그래서 좀 깊이 접근해야 은혜를 길어 올릴 수 있습니다.

1) 이 시험을 기획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1절에서 바로 알 수 있죠.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이 시험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는 마귀죠.

2) 예수님이 왜 시험을 받으시냐는 것입니다.

본문 앞에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성령이 임하시고 성부께 아들로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30년의 사적 생애를 마치시고 공적 생애를 시작하신 것이죠.

예수님 사역의 핵심은 죄 없는 사람으로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생 아무런 죄도 짓지 않으셨을까요?

그런 논란이 없도록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것을 검증해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 시험을 사탄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사탄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누가 사탄만큼 집요하게 있는 힘을 다해 주님을 시험하겠습니까?

하고 싶은 만큼 철저히 해 보라시는 것이죠.

3) 예수님은 광야로 들어가 40일을 금식하십니다.

예수님의 금식은 성도들의 금식과 다릅니다.

성도들은 경건을 위해서 금식합니다.

간곡한 기도응답이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도 금식하죠.

예수님은 그런 면에서는 더 하실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금식하신 게 아닙니다.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와 짐승의 위협과 40일간의 금식은 가장 극한 상황에 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고강도 시험을 이기신다면 그 이하의 것들을 증명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예수님은 가장 극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뜻에 백 프로 일치되는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죄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되는 걸 말하잖아요?

물론 이 시험은 인간과 똑같은 조건으로 대속자의 자격을 인정받으셔야 하는 것이죠.

그러니 자연히 기적은 사용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이해하고 세 가지 시험으로 들어가겠습니다.

 

2. 세 가지 시험을 한 가지씩 살펴 보겠습니다.

1) 돌로 떡을 만들라는 시험입니다.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배고픔은 사람의 생리적인 본능입니다.

배고픈 게 죄는 아니죠.

예수님도 40일 금식 후에 매우 주리셨습니다.

극한 환경에서는 사람이 죄에 더 취약해집니다.

사흘 굶고 도둑질 안 할 사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백범일지에 보면 김구선생이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합니다.

고문 중에 신체적 고통 뿐 아니라 굶는 고통도 너무 컸습니다.

옆방에서 누군가 가져온 고깃국과 김치 냄새가 나면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젊으니 몸이라도 팔아서 좋은 음식 좀 해 왔으면 좋겠다.

이게 극한에서 사람의 본능이 죄가 되는 포인트입니다.

이기적인 자기애의 본성이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죠.

살기 위한 기본적인 욕구는 사람의 육신을 가진 예수님도 있으셨습니다.

본능이 위협을 느낄 때를 놓치지 않고 사탄이 시험 하는 것이죠.

사탄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본능을 내세워 죄에 무릎을 굻었는지 너무 잘 알죠.

그렇게 사탄이 파멸시킨 인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마귀는 지금도 우리 각자에게 가장 취약한 것으로 시험합니다.

현재 내 형편이 궁핍하면 돈에 대한 시험을 이기기가 힘듭니다.

배만 고파도 사람이 얼마나 예민해집니까?

40일을 억지로 굶기면 사람들이 어떻게 될까요?

돌로 빵을 못 만드니 돌로 빵집 유리창이라도 깰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그런 환경에 얼마나 약한지를 잘 압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없는 것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것은 타락한 죄성이 없으신 예수님의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성부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사랑과 죄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주기 위해 오셨잖아요?

마귀가 예수님의 그런 사랑을 알 리가 없죠.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셔야 했기에 돌로 떡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과 똑같은 조건 속에서 시험을 이기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죠.

 

예수님은 대신 사탄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이 말씀에 의지해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그냥 이기시면 됩니다.

그러면 왜 굳이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사탄을 가르치시려는 건 아니겠죠.

마귀는 회개하지 않는 자입니다.

마귀에게 소망이 없는 것은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각 시험에 대해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들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잘 배워서 시험을 이겨야 하는 것이죠.

마귀는 처음부터 인간의 본능과 약점을 잘 알고 시험해서 넘어뜨리는 자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께 쓴 기술을 쓸 것이기에 이길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신명기8장 말씀이 배경입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가나안땅 입국을 앞 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광야 40년은 본래 형벌이었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시간에 하나님 백성으로 연단하셨다는 것입니다.

매일 만나만 주신 것은 세상에서 떡을 구하던 옛날 방식을 완전히 고쳐 놓으시기 위해서라는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세상에서 떡을 구합니다.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셨죠.

우리의 양식과 필요를 하나님이 생각하신다는 뜻입니다.

신자들이 떡을 세상에서 구하는 걸로 알면 하나님을 잘 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주시고 결핍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광야와 같은 때가 있잖아요?

그때는 정말 하나님의 손 밖에는 바랄 곳이 없어집니다.

사방이 깜깜하고, 무서운 길을 혼자 가야 하고, 육신의 생명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당하고.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세상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을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이 누가 더 강할 것 같습니까?

전대0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이분이 처음 낸 책 제목이 내가 얼마나 만만히 보였으면입니다.

누가 나를 만만히 보면 불쾌하죠.

전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목숨도 잃을 뻔 한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아주 낮았습니다.

스스로 자존감이 낮으면 남들도 그렇게 봅니다.

교회도 다녔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청년이 되도록 아무 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입시에도 떨어진 날, 겨울 바다에 가 보니 쓰레기들이 스산하게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자기 같았습니다.

우연히 참석한 교회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자기처럼 힘들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길조차 열리지 않았고, 여전히 아무 것도 되지 못한 채 괴로운 나날이 흘렀습니다.

주님은 그 시간에 박작가를 만들고 계셨지만요.

어느날 어머니가 하는 가게 앞에 나와 있는데 술에 취한 국밥집 사장님이 걸어왔습니다.

잔뜩 취한 목소리로 박작가의 가슴을 쿡쿡 찌르며 말했습니다.

살이 왜 이렇게 쪘어, 이러니 되는 게 없지. 우리 아들은 얼마나 멋있고 잘 나가는 줄 알아?

그 당시 자존감이 바닥이라 유서까지 썼을 때인데, 아저씨의 말이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그날 밤 너무 속이 상해서 그 마음을 글로 적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그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다음날 보니 하루 만에 13만 명이 그 글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광야에서 하나씩 쓴 글들이 책으로 출판된 것입니다.

그날의 무너진 마음이 곧 책 제목이 된 것이죠.

지금은 수천 명의 상심한 젊은이들을 상담하고 위로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긴 광야의 생활에서 하나님만 구했던 박작가는 얼마나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또 두려운 광야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견딜 수만 있다면 광야는 우리 영혼의 축복입니다.

오히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은 우리 영혼에 위협입니다.

광야 없이 가나안땅에서 태어난 세대는 결국 망하잖아요?

모든 게 결핍되고, 목숨마저 위태롭다 느낄 때 오늘 예수님이 인용했던 신명기 말씀의 결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명기816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2)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입니다.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원문에 보면 예수님을 억지로 끌고 데려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가진 신통한 능력으로 예수님을 실제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내려다보이는 성전에는 제사하고 예배드리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것입니다.

거기서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가 안전하게 받쳐 줄 것이고, 그걸 보면 사람들이 메시야로 인정할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시험하는 것일까요?

사탄이 들이댄 성경은 시편9111절 말씀입니다.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이 시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강하게 보호하신다는 걸 노래한 시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기뻐하신다면 그렇게 하셔야 한다는 것이죠.

예수님이 이 시험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시는지를 보면 이 유혹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탄이 지금 예수님께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부추기는 것입니다.

관계를 흔들어 메시야 사역을 와해시키려는 것이죠.

예수님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인용하신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들어섰을 때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와 다 죽게 한다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시게 하시죠.

그 사건에 대해 출애굽기177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사탄은 사람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잘 의심한다는 걸 압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심을 넣어주면 덥썩 문다는 것이죠.

제일 먼저 사탄의 이 작전이 성공한 게 첫사람 아담과 하와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까 봐 그 열매를 금지하셨다고 속삭이죠.

사람은 부정적인 걸 더 귀담아 듣습니다.

나쁜 소문 한가지면 백 가지로 공들인 신뢰를 무너뜨리기 충분합니다.

예수님이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야라는 걸 사탄은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이 이때 예수님을 성자하나님으로 알았는지, 아니면 당시 사람들처럼 정치적인 메시야로 알았는지, 학자들의 의견이 나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선택받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사용했고, 정치적 메시야에게도 사용되었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확신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떠보는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이죠.

사탄은 주님의 메시야 사역이 십자가를 통한 대속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랬다면 가룟유다 속에 들어가 예수님이 체포되게 하지도 않았겠죠.

제자들도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잖아요?

그 당시는 누구나 메시야 사역이 로마제국에서 민족을 구원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로마제국을 상대해야 할 예수님이라면 정말 하나님이 나를 시편에서처럼 보호해 주실까 시험하고 싶으셨겠죠.

물론 사탄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응수하십니다.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은 의심이 많아서 남을 떠 보고 이리저리 시험합니다.

시험은 의심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믿고 신뢰하는 관계에서는 시험할 필요가 없죠.

예수님이 굳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응수하신 것도 이런 시험을 당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지 아닌지 시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물을 내실 수 있는지 시험했고, 광야에서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수 있는지 시험했잖아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꼬장 부렸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러시면 안되죠. 제가 어떻게 섬겨드렸는 데 저에게 이러십니까?’

하나님 안 계시는 것 아냐?’

하나님을 섬기는 게 내게 얼마나 큰 복인지 언제가 돼야 알게 될까요?

신자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데 한국의 한 교회에서 청빙이 들어왔습니다.

아이들도 자라고 있었으니, 미국에서 계속 목회를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다 하나님께 이런 조건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 한국교회 장로님들이 전부 같이 와서 청빙을 부탁하면 하나님 뜻인 줄 알겠습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러라고 하신 것도 아닌 데 자기가 상황을 조작하고 멋대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죠.

당연히 한국에서 장로님들이 찾아오지 않았고 청빙은 무산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셨습니까?

40년 동안 만나를 내려주지 않으신 날이 단 한번도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불편한 게 생기면 당장 하나님을 의심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뒤 하나님이 우리를 박대하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를 미워하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주지 않으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고 계심을 의심하지 마시길 축복드립니다.

 

3) 내게 절하면 천하와 영광을 주겠다고 합니다.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런 유혹이 온다면 안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요?

내 자식이 대학에만 잘 들어간다면, 이 사업이 성공할 수만 있다면, 내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하잖아요?

장난으로 하는 말만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성공과 부를 위해 영혼을 파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의 메시야 길은 험난할 게 분명하잖아요?

마귀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이미 세상왕국은 내 손에 있으니 내게 엎드려 구하면 내가 주겠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얻으려는 게 세상왕국이고 세상권력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성공하고 뜻을 이루려는 것은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것 자체가 죄는 아니죠.

그런데 그걸 이루는 방식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면 그것은 죄입니다.

그게 결국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예수님은 그러니 이렇게 유혹을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10,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아니셨지만 우리는 성공에 대해 유혹받을 것을 아십니다.

성공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너무 성공하고 싶잖아요?

사람은 그걸 위해서 마귀가 내미는 손이라도 잡는다는 것입니다.

사기로 전 재산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그런 것 같더군요.

더 쉽게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미끼를 물은 것이죠.

예수님은 나를 더 잘되게, 더 성공하게 할 것 같은 세상에 기우는 마음에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게 거추장스럽다, 성공을 위해서도 바쁜 세상이니 잠시 믿음을 접어두자.

오늘도 이렇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를 피한 신자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러고 싶은 유혹이 있을 때마다 오늘 예수님 말씀으로 물리치십시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은 절대 마귀의 시험에 흔들리실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죄인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을 이길 것은 없죠.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요한일서4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구원받은 성도들도 주님 같은 극한 상황 속에서 죽을지라도 그 믿음을 지켰던 것이구요.

주님이 시험 당하시며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어려운 상황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대로 따르는 훈련임을 믿으시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힘들다고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시험하지 마십시오.

가만히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더 자주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내가 잘 될 수 있다는 사탄의 거짓말을 절대로 믿지 마십시오.

올해도 이렇게 시험을 잘 이기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