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잘들 보내셨나요?
연휴 며칠만 보내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어색한 느낌이 들죠.
인생에 큰일을 겪으면 그동안의 삶이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 됩니다.
현재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고 과거도 그게 다 무엇이었나 싶죠.
전쟁이 나면 그렇습니다.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그런 일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소년들이 믿음을 지켜내고 세상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정확히 알고 믿는다면 그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연히 모든 상황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결국은 이겨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소년들만 그렇겠습니까?
우리도 이 믿음을 잘 깨닫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다니엘은 왕궁의 음식을 먹지 않기로 뜻을 정한 뒤 실행에 옮깁니다
이 사건은 다니엘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보여주는 암시적인 사건입니다.
바벨론왕은 자신이 점령한 나라의 젊은이들을 데려와 인재로 키웠습니다.
언제든지 인재는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존재이죠.
하나님 나라도 똑같이 믿음 인재가 필요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오자마자 왕궁에 들어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삼천 명의 다른 포로들과 똑같이 처참한 전쟁포로의 행색으로 1600킬로를 걸어 왕국에 도착했겠죠.
3개월 정도가 걸리는 거리니 도중에 죽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포로들은 어딘가에 갇혀있다 노동을 위해 여기저기로 불려 갑니다.
그 가운데 다니엘과 귀족 청년들 일부는 왕궁으로 불려 들어오게 된 것이죠.
전쟁 포로가 왕궁에서 교육 받고 일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청년들은 그런 기회를 얻은 것이 꿈만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 처지에서 다니엘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한가지 뜻을 정합니다.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닐 것입니다.
전쟁포로가 파리목숨이라는 걸 끌려오는 중에 수없이 목격했잖아요?
다니엘은 훈련생 중에서 눈에 띌 정도로 똑똑했고 또 성실했을 것입니다.
환관장 마음에 들 정도의 시간도 흘렀습니다.
그런데 왜 다니엘은 왕의 음식을 먹지 않을 뜻을 정했을까요?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여러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기준과 비슷할 것입니다.
우선 세속적이고 화려한 바벨론 문화에 빠지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세상 문화를 다 수용하지는 않잖아요?
또 왕이 주는 음식이 우상에 바쳐졌던 제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4장에 명백히 우상의 제물을 금하셨습니다.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우상 제물을 먹은 것으로 하나님이 전염병으로 징계하신 기록이 나옵니다.
우리도 우상숭배의 문화를 항상 멀리해야 합니다.
또 레위기 율법상으로 금지된 음식들을 걸러낼 수 없다는 문제입니다.
율법으로는 피가 남아있는 고기는 먹지 못합니다.
돼지고기처럼 되새김질 안 하는 육고기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또 염소새끼를 어미 젖에 삶지 말라는 것 같은 조리방법의 규정도 있습니다.
지느러미나 비늘이 없는 생선도 먹을 수 없습니다.
요즘 식탁으로 치자면 돼지고기 빼고, 오징어 빼고, 순대국 선지국 빼고, 고등어 조림, 햄 소시지 다 빼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음식 규정이 꽤 까다로웠습니다.
당시 남유다 멸망 전 유대인의 신앙은 우상종교와 혼합되어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보면 부모의 신앙을 알 수 있죠.
다니엘이란 이름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을 누가 지어 줬습니까?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죠.
많고 많은 좋은 이름 중에 아들의 이름을 지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떠올렸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신앙은 타락하고 사회는 부패한 나라를 보며 부모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했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다니엘은 부정한 음식을 한번도 먹은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싫어서 평생 안 먹는 음식들이 있죠.
저는 산낙지, 닭발 그런 걸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걸 누가 억지로 먹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입에 대지 않았던 금지 된 음식들을 먹을 때 다니엘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포로로 끌려오는 동안 굶주림을 겪었고, 음식이 귀한 것도 처음 알았을 것입니다.
함께 궁에 들어온 소년들은 왕궁의 고기반찬에 감지덕지 했을지 모릅니다.
이제 바벨론에서 살아야 하니 바벨론식으로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그러나 예루살렘에 계시던 하나님이 바벨론에는 안 계십니까?
예루살렘에서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이 여기서는 먹어도 된다고 하십니까?
그렇지 않잖아요?
다니엘에겐 여전히 똑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있을 때나, 집에 있을 때나 회사에 있을 때나 우리를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이 같으시잖아요?
외국에 가도 하나님의 전지하신 눈길이 똑같이 느껴집니다.
다니엘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가나안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다면 여기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는 것이죠.
‘내가 포로민들에게 신앙을 일깨워줘야겠다, 후일에 믿음의 상징이 되어야겠다.’
그런 마음을 가진 게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잖아요?
오늘 내가 예배하고 봉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 하나님이시니까, 나의 주님이시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성실함으로 섬기는 거잖아요?
성도들은 다른 목적 없이 이렇게 평생 하나님을 섬깁니다.
오늘도 명절 끝에 피곤해도 일찍 일어나 이렇게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겨우 교회 나오는 것 밖에 못 하는 것 같지만 이게 굉장한 것입니다.
만일 누가 막는다면 어떻게든 돌파하고 나올 것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다니엘에게 하나님을 부정하는 그 음식들은 송구하고 괴로운 것이죠.
왕궁 생활에 익숙해지며 다니엘이 점점 마음을 굳혀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환관장에게 부탁을 하게 됩니다.
왕궁에서 쫒겨나 다시 포로민들 속으로 돌아갈 각오를 한 것입니다.
왕에 대한 도발로 단칼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다 알고 하나님을 위해 정한 뜻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생각도 하고 실행에도 옮기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 다니엘의 생각과 결심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셨고 그 뜻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불가능한 상황도 바꾸실 수 있습니다.
9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하십니다.
물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꼭 인정받아야 할 대상이라면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잠언 16장7절 말씀하시죠.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중국에서 탈북민들을 돕는 목사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몇 년 전, 탈북민을 태국에 있는 유엔난민수용소에 보내려던 중에 중국 공안에 붙잡히게 됩니다.
탈북민들은 어딘가로 끌려가고 목사님은 중국 감옥에 갇힙니다.
공안에 잡히면 감옥에서 삼 개월 이사 지나야 정식 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기간 동안 좁은 감옥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좁은 방에 목욕탕 의자 같은 작은 의자에 수감자들이 줄을 맞춰 앉습니다.
그 상태로 8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먹는 것, 자는 것, 위생 상태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열악했죠.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수감자들이 항상 서로 욕설을 퍼붓고 거의 피 터지게 싸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는 수감자 천명을 다스리는 깡패두목 죄수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고 사람을 보내 데려갑니다.
두려운 마음에 붙들려 가 보니 강남스타일을 한번 불러 보라고 하는 거예요.
강남스타일 듣기는 했어도 부를 줄은 몰랐죠.
그래서 솔직히 모른다고 얘기합니다.
두둘겨 맞을 줄 알았는데, 화를 안 냅니다.
기왕 왔으니 아무 한국노래나 하나 해 보라는 거예요.
갑자기 생각난 게 군대에서 떼창으로 유명한 실로암이라는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온 뒤 처음으로 힘차게 찬양을 불렀습니다.
두목이 끝까지 듣더니 하는 말이 처음 들어보는 한국 노래인데 너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내일도 와서 노래를 불러 달라는 거예요.
깡패와 목사님이 무슨 공감대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왠지 목사님과 찬양에 호감을 가진 것입니다.
그 뒤로 두목에게 다니며 계속 찬송가를 불러주게 된 것이죠.
그러다 두목이 자기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며 대신 내가 중국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합니다.
그럼 한국어 교제로 신약성경을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감옥의 우두머리니 어디서 당장 성경책을 구해오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자기는 중국어를 배우게 된 것이죠.
그 중국어로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이 가르쳐준 중국어가 다 욕이 섞인 비속어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욕을 섞어서 복음을 전했던 것이죠.
하나님이 깡패 두목 같은 사람에게도 호감을 느끼게 해 주신 것입니다.
환관장 마음에도 그렇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해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럴만하게 행동을 하기도 했죠.
그러나 우리가 잘 한다고 남들이 다 좋게 보진 않습니다.
내가 잘할수록 싫어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다니엘이 드디어 환관장에게 자기 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내게 됩니다.
아마 유대민족의 음식법에 대해서 설명을 했을 것입니다.
다짜고짜 나를 더럽히는 고기는 주지 말라고 했을리는 없죠.
사실 자기 민족의 음식법을 꺼내는 것만도 환관장 눈에 날 일입니다.
이제는 바벨론 사람인데, 자기 민족성을 운운하는 것은 큰일 날 일이죠.
그러나 환관장은 호감도 있었지만 다니엘의 경건한 신앙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존중해주고 싶었던 것이죠.
10절을 보면 환관장이 다니엘의 요구를 묵살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를 대며 이해를 구하는 게 느껴지죠.
왕은 무서운 사람이다.
만일 채식만 먹다 너희 몸이 축나기라도 하면 내 머리가 위태롭다.
환관장 마음에서 여지를 느낀 다니엘이 이번엔 감독관에게 제안을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말을 꺼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환관장이 안된다고 했는데, 다시 그 아래 감독관을 찾아가서 부탁한다는 건 최악의 작전입니다.
환관장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도록, 곁에 있는 감독자에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한 것이죠.
열흘 동안만 시험적으로 채식과 물만 먹게 해 달라.
그리고 다른 소년들과 비교해 보고 그때 결정해 달라고 합니다.
옆에 섰던 환관장이 감독자에게 그러라는 사인을 주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감독자가 허락을 한 것이죠.
그렇게 열흘이 지나고 다니엘과 친구들을 보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5절, 더욱 아름답고, 더욱 윤택하고,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왜 아니겠어요?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얼마나 마음이 편합니까?
성령께서 어떤 일에 대해 우리 양심을 자꾸 일깨우실 때가 있죠.
그때 내 생각과 성령님의 소욕이 치열하게 싸우게 됩니다.
결국 내 생각을 꺾고 말씀에 순종하면 속이 후련하고 담대해집니다.
그러니 소년들의 얼굴이 얼마나 편안했겠어요?
율법에 금지된 음식들을 먹으며 근심하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얼굴색이 환했을 것입니다.
어차피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다 채소를 먹고 만들어진 단백질이잖아요?
걔네들 거치지 않고도 하나님이 다니엘의 몸에서 채소로 영양소를 만드실 수 없겠습니까?
어쨌든 열흘간의 시험 기간을 통해 소년들이 인정을 받게 됩니다.
삼 년 동안 채식을 먹게 허락이 된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인내가 시작됩니다.
다른 소년들이 맛있게 고기를 먹을 때 얼마나 먹고 싶겠어요?
우리도 고기 며칠 안 먹으면 생각나잖아요?
옛날엔 추석, 설 명절이 고기 먹는 몇 안 되는 날 중 하나였죠.
그것도 지금처럼 맘껏 구워 먹는 게 아니었습니다.
고기 한 근 사다가 큰 솥에 넣고 끓여낸 고깃국 정도죠.
추석이면 어머니가 토란 넣고 끓여주던 소고기국이 생각나네요.
다니엘이 원래 채식주의자가 아닙니다.
이후로도 계속 채식만 한 것도 아닙니다.
뒤에 10장을 보면 다니엘이 큰 전쟁에 대한 환상을 봅니다.
그때 21일간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나중엔 율법의 허용 안에서 고기와 포도주를 먹었다는 것이죠.
그러니 식욕이 왕성한 나이에 남들이 먹는 맛있는 음식을 참는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소년들이 이렇게 대단한 결심을 했다고 고기가 싫어지게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3년 동안 매일 힘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 소원에 기적으로 개입하시길 원하죠.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자연 체계 안에 자꾸 기적을 개입시키시면 이성과 상식의 이 세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안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신앙이 기적도 없이 항상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믿음의 테두리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는 게 기적입니다.
다만 우리 믿음이 일상에 묻히지 않도록 각성하는 건 우리 몫입니다.
다니엘은 고기를 참을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잊지 않으려면 작은 것이라도 뜻을 정해야 합니다.
매일성경 묵상이든 기도이든 미디어 절제든 화를 안낸다는 것이든, 작게라도 정하십시오.
그리고 인내하며 지키십시오.
실패하면 내일 다시 결심하면 됩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성공하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잖아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2) 네 소년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결과에 하나님은 상을 주십니다.
17절,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바벨론 왕이 기르는 것보다 하나님이 훨씬 더 훌륭하게 기르십니다.
결국 왕은 이 네 명의 소년들을 관직에 발탁합니다.
왕이 대화해 보니 온 나라 지혜자보다 열 배는 더 지혜로웠다고 하죠.
하나님을 믿다 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지혜를 주십니다.
사실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큰 지혜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면 이미 큰 지혜를 받은 것입니다.
물리학자인 권진0교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드러나는 것은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다.
한 때 빅뱅이라는, 대폭발 이론을 우주의 기원으로 믿는 과학자들이 많았죠.
그러나 우주과학이 더 발전한 지금 그게 틀렸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사실 그런 과학은 증명된 게 아니라 다 설명일 뿐입니다.
가설이죠.
더 근사치가 발견되면 먼저 주장한 것들은 계속 오류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현재 먼 우주를 관측하는 최고의 망원경이 제임스우주망원경입니다.
2021년에 우주에 쏘아 올렸는데 여러 개의 은하를 찍어서 보냈습니다.
그중 120억 광년 떨어진 곳에 삼천 억개의 별을 가진 줄롱갤럭시가 있습니다.
빅뱅 이론대로라면 첫 폭발하던 당시 그런 은하가 이미 생성되어 있다는 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론이 틀린 것이죠.
잘 못 알아들으시겠지만, 어쨌든 빅뱅이 우주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 과학자들이 믿는 것은 우주의 미세조정입니다.
지구가 존재하기 위해서 우주가 아주 미세하게 다 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물질의 기본입자인 전자부터 우주까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죠.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거잖아요.
태양계 중에서 화성이나 금성 같은 위성 하나만 없어도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지구의 부피가 10%만 더 크거나 작아도 생명체가 존재하지 못합니다.
전자가 0.1%만 질량이 바뀌어도 지구의 생명이 다 사라집니다.
무한대에 가까운, 지금도 팽창하는 우주도, 그래야 지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 지구에 인간이 살도록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알고 성경을 아는 우리는 다 아는 이야기들이잖아요?
하나님이 그 지혜로 우리 각 사람을 창조하시고 각자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세계를 알고, 내 인생의 목적을 안다면 세상 지식으로 가득 찬 도서관보다 더 지혜로운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가장 큰 지혜를 받은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처음 상황은 이랬습니다.
나라가 망했다.
나는 노예가 되었다.
내 미래는 절망이다.
그러나 21절은 이렇게 서둘러 결과를 알려주죠.
다니엘은 고레스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페르시아 고레스왕 원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본토로 돌아가라는 귀환 명령이 떨어진 해입니다.
다니엘이 잡혀 온 후로부터 70년이 된 때입니다.
십 대에 잡혀 왔으니 80이 넘었죠.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가 들어온 그 왕궁에서 다니엘은 여전히 고레스왕을 보좌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세상나라의 주관자이심을 알리는 중대 임무를 수행합니다.
특히 예수님나라가 세상나라를 이긴다는 정확한 예언이 다니엘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걸 다니엘이 예언합니다.
다니엘은 왜 자신이 포로로 끌려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니엘을 높여 주신 뒤 과거가 해석되는 것이죠.
알고보니 다니엘이 전쟁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와야만 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믿음을 더 정금같게,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더 존귀하게 살도록 하시기 위함인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고 말씀대로 성실히 살아가면 인생이 잘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과거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해석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허용하신 것은 우리가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고,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키시기 위함이고, 더 하나님나라를 위해 보람있게 살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해석되고, 또 해결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기에 온 열방에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임하실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죠.
그 일을 이방에 알릴 하나님의 메신저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이미 이들에게 주신 왕족의 신분, 지혜와 통찰과 외모의 준수함까지 다 그 일을 감당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어떤 재능과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까지 올라 제국을 다스립니다.
총리가 된 것이 좋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총리가 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우리 직업을 감당하지만 항상 하나님나라의 인재로 살게 되길 축복드립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과 건강과 재능으로 세상적인 성취만을 위해 사는 것은 토저목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종이 인형을 오리며 노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더 고귀하고, 보람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나와 이웃을 기쁘게 하는 신나는 인생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처럼 내 믿음을 위한 목표를 늘 정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정하시겠습니까?
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바뀝니다.
하나님은 결심하는 우리를 축복하시고 능력과 지혜를 더하고 더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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