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니엘서에서 한 번 더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니엘이 포로소년으로 끌려가 바벨론과 페르시아 두 제국에 거쳐 특출한 정치인으로 살았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던 말씀 안에 정답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었다면 다니엘은 소년 포로에서 시작해 노인 포로로 생을 마감했을 지도 모릅니다.
다니엘서는 하나님이 국가와 권력과 역사를 주도하신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역사의 종말에 하나님이 악을 심판하고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영원한 나라를 세우신다는 것을 여러 환상을 통해 보여주시죠.
그것을 계시하는 데 다니엘의 기도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영적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다니엘처럼 살아가는 우리도 다니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절대로 기도와 무관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오늘 다니엘의 기도를 통해 기도의 힘을 깨닫고 다니엘의 기도를 배우는 복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이 뜻을 정하셨어도 이뤄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다니엘은 모든 위기마다 목숨을 건 믿음의 기도로 돌파했습니다.
이제 다니엘은 팔십이 넘었습니다.
1절에서 알려주듯이 바벨론제국은 망하고 메대바사제국으로 넘어갔습니다.
후에 페르시아제국이죠.
그 시기에 다니엘이 예언자 예레미야의 책을 읽다 놀라운 부분을 발견합니다.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 만에 그치게 될 거라는 예언이었습니다.
2절, 다리오왕의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칠십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기록된 예레미야의 예언 문서가 바벨론까지 전해져 다니엘의 손에 들어온 것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해방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엄청난 예언을 알게 된 다니엘은 작심하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3절,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 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팔십 노인이 음식을 끊고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 쓰고 기도에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발견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예레미야서29장10절이었을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예레미야는 정확하게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할 것을 예고하고, 칠십년이 지나면 다시 본국으로 귀환시킬 것을 예언한 것이죠.
이걸 발견했을 때 다니엘의 심장이 얼마나 요동쳤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셨다면 가만히 있어도 칠십년 뒤 독립이 이뤄지는 게 아닌가요?
이제 몇 해 남지 않았으니 그대로 이뤄질 걸 지켜보면 되잖아요?
그런데 다니엘은 이 예언대로 이뤄주시도록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일을 놓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줍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응답이 정해졌어도 기도해야 한다니 다른 일들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죠.
하나님은 포로사회 속에 살던 에스겔선지자에게도 이스라엘이 본국으로 귀환될 것을 알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에스겔36장37절에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이 뜻을 정하셨다 해도 기도해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청사진을 갖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어느 집에 태어나게 하고 어떤 성격과 무슨 재능을 가졌는지도 이미 그 청사진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태어난 조건이 나빠서 내 인생이 늘 뻔할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닙니다.
좋은 재료들로만 좋은 인생을 만들 수 있다면 하나님이 아니시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해도 우리를 위한 가장 완벽한 플랜을 갖고 우리의 인생을 활짝 꽃피우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기도로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르쳐 주셨죠.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이미 정해졌지만 땅에서 이뤄지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학교도 준비하셨고, 직장도 준비하셨고, 배우자도 준비하셨고, 사명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저절로 주시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함께 그걸 이뤄가도록 정하셨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에 하나님이 얼마나 빠르게 응답하시는지를 보십시오.
21절에 보면 저녁제사 드릴 즈음에 가브리엘이 응답을 갖고 그에게 날아왔습니다.
23절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이렇게 말하죠.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고령의 다니엘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길 위해 음식을 끊고 기도의 짐을 지려고 엎드렸을 때 하나님이 오래 뜸을 들이지도 않으십니다.
기도는요, 우리가 외롭고 힘겹게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 앞에 쓰라린 마음을 갖고 나가 외마디 탄식소리만 내도 하나님이 응답을 시작하십니다.
오늘 다니엘의 기도대로 다리오왕 후에 등장한 고레스왕이 이스라엘 포로를 본토로 돌려보내는 기적이 말씀대로 역사에서 성취됩니다.
한 국가가 국가의 막대한 재산인 포로집단을 아무 조건 없이 해방한다는 건 인간 역사에 유례없는 일입니다.
그때 귀국해서 성전과 예루살렘 성곽을 중건한 이야기가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성경입니다.
시편 126편은 이 때의 감격을 노래한 시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들에겐 꿈꾸는 것 같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지만 하나님은 칠십년 전에 계획해 놓으셨고 믿음의 기도를 통해 이뤄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정해졌어도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모르겠다면 더욱 더 기도해야죠.
다니엘이 기도하는 이유가 항상 무엇이었습니까?
‘깨닫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것은 깨닫기 위해서, 아는 것은 이뤄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간절히 원하던 것 그 이상으로 완벽하게 준비하신 모든 것들을 성취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왜 기도하기가 힘들까요?
바쁘고, 게으르고, 믿음이 부족하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오늘 다니엘의 기도에서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이치가 하나 있습니다.
기도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적인 세계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1절을 보면 다니엘이 작정하고 기도하는 중에 천사장인 가브리엘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브리엘이)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천사가 그 기도가 응답되는 과정에 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응답의 초자연적인 과정을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지혜와 총명이 오고 문제의 답이 보이는 걸 경험하잖아요?
우리 머리가 스스로 그걸 깨닫는 게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 때로는 영계의 천사들을 통해 이런 기도응답 과정이 이뤄지는 것이죠.
그런데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다니엘이 10장에서 했던 또 다른 한 기도에서 드러납니다.
10장에서 다니엘이 큰 전쟁 환상을 보고 그 뜻을 깨닫기 위해 다시 기도하는 게 나옵니다.
기도의 능력을 알수록 이렇게 매사에 기도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기도는 꽤 오래 이십일일 동안 지속됩니다.
응답이 늦다는 뜻이죠.
이십일일 뒤에야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10장21절,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때도 첫날부터 기도가 응답을 받아서 천사가 알려주려고 출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2절, 23절을 이어서 보면 천사를 가로막는 세력들이 있어 이십일일동안 지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를 놓고 영적 세계의 교전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 뜻을 이루는 일에 방해하는 악한 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기도의 응답들이 지체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많은 기도들이 정해진 응답을 받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인내하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이지만요.
이것이 낙망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보통 신자들은 기도를 시작하는 그 단계에서 가장 많이 시험을 당합니다.
악한 영의 방해에 시작도 못하고 넘어지는 것이죠.
우리가 기도를 통해 강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만큼 믿음이 성장하기 때문에 악령들은 필사적으로 방해합니다.
성령께서는 지금이 오늘 중에서 딱 기도할 찬스라고 말씀하시는 데, 게으른 본성과 악령들은 수많은 핑계거리를 생각나게 합니다.
저는 요즘 나오는 금연광고가 좀 섬찟하긴 합니다만 볼 때마다 악령의 역사와 비슷하단 생각을 합니다.
성령께서는 기도하도록 사인을 주시지만 악령은 사람의 마음에 빨판을 박고 그 생각을 빨아들이고 마음을 조종하는 것이죠.
기도의 수고보다 그냥 편히 있고 싶은 마음, ‘기도 안 한다고 별일이야 있겠어’ 하는 안일한 유혹, ‘기도도 잘 못하는 데 뭐’
이런 생각들을 주입해서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영적으론 인공호흡기를 달고 겨우 숨 쉬는 믿음의 약체들로 만들어 놓는 것이죠.
기도에는 이렇게 영적 방해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온갖 핑계를 주며 기도를 방해하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굳세게 이겨내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신년에 한번만 결심해서는 안됩니다.
매일, 오늘도 기도에서 승리하겠다는 결심을 계속 되풀이 하고 계속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승리하면 정말 큰 힘을 얻습니다.
그걸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루 중 문득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뒤이어 온갖 구실들이 생각날 때 잘 이기시고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3. 기도하는 사람만 받게 되는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계획하신 삶으로 인도받을 뿐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믿음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본문을 잘 읽어 보면 사실 다니엘의 기도내용과 가브리엘의 응답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백성의 죄를 회개하며 본국으로 돌려보내주실 것을 기도하죠?
가브리엘의 응답 내용이 무엇인지 24절에서 한번 보시겠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얼핏 보면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세워진다는 응답 같지만 내용상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선 일흔 이레라는 수수께끼 같은 숫자가 등장하죠.
이 천사의 말도 묵시입니다.
‘환상’이 아닌 ‘말’로 보여주는 묵시인 것이죠.
이 숫자만 빼면 다니엘보다 더 많은 진리를 알고 있는 우리 신약성도들은 이 묵시가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힙니다.
허물이 그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고, 환상과 예언이 다 성취되고,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의 죄를 속죄하시고 왕이 되실 것에 대한 예언이잖아요?
일흔이레란 숫자는 묵시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에 여지가 있습니다.
만일 숫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70곱하기 7로 490년이 됩니다.
490년 뒤에 예수님이 오셔서 불완전한 이스라엘이 아니라 완전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연대기 적으로 계산할 때 예수님의 탄생하신 때와 일치합니다.
다니엘은 수년 내에 일어날 이스라엘의 재건을 기도했는데 응답은 어떻게 왔습니까?
먼 미래에 예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으로 응답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뒤 다니엘의 기도대로 유다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성곽을 중건하지만 이들은 과거의 죄를 똑같이 반복합니다.
이들의 근본이 안 바뀌었는데 해방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앞에서 다니엘이 고국의 해방을 놓고 기도하면서 자기와 민족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약속대로 귀환을 시켜주셔야 하는 데, 자기 민족을 보니 달라진게 하나도 없으니 과연 그 약속대로 해주실지 고민스러운 것이죠.
바로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천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준 것입니다.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원히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거룩한 이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순히 역사적인 포로귀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시는 죄와 악이 반복되지 않고, 어떤 악의 세력도 없는 완전한 예수님의 나라가 이 예언의 타겟이었던 것이죠.
다니엘은 지난 주 인자 같은 이의 환상을 보고 의아해 했죠.
이젠 그 분이 바로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것만 응답하시는 게 아니라 더 귀한 선물인 예수님의 속죄와 구원을 알게 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걸 알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예수님을 잘 모르겠으면 늘 뭔가 허전하고 불완전하다는 걸 자기가 압니다.
기도하면 예수님을 알고 기도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렇게 모든 일에 기도하며 문제를 해결 받고,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을 깨닫는 사람이 은총을 크게 받은 자인 것입니다.
가브리엘이 그렇게 말하잖아요?
너는 크게 은총을 받은 자라 그런즉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이 땅의 삶은 이렇습니다.
시련을 만나 간절히 기도하며 겨우 넘어가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납니다.
이 문제만 지나가면 좀 살 만하겠다 생각했는데 숨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일이 터집니다.
다시 기도로 씨름하며 해결되고 나면 틀림없이 또 다음 일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대로 페르시아가 망하자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오고, 그 뒤엔 다시 로마의 잔혹한 말발굽이 지배한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놓고 하나님 앞에 하나씩 기도로 씨름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예수님의 속죄와 구원에 대한 놀라운 믿음들이 쌓여 갑니다.
그것이 사실 기도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모두가 이렇게 큰 은총을 받은 분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4.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도하지 않는 것의 심각성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장 완전한 뜻과 무관하게 살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불행한 손실일 뿐 아니라 그 내면으로 볼 때 에덴동산의 범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자기 왕국을 각자가 세우겠다는 것이죠.
하나님 없이 세운 왕국은 거미의 집 같고 모래 위에 성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은 이 땅은 낙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쫒겨날 때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잖아요?
너희가 살아갈 땅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며, 이젠 더 이상 밭을 갈아도 정직한 수확을 얻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 땅에는 가시덤불이 자라 너를 찌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 말씀대로라도 생각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다들 먹고 살기 위해 항상 허덕거려야 합니다.
우리 삶의 터전은 우리를 찌릅니다.
그렇다고 누가 수고한 만큼 충분히 댓가를 받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이 땅은 창세기에서 말씀하신대로 혹독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게 정상입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도 기도해야 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나치게 부를 긁어 모은 사람들은 정상이 아닙니다.
부모든 본인이든 부정과 불법, 탈세, 착취, 투기, 그런 걸 동원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업했다면 개인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래도 내 힘대로 살아보겠다면 평생 근근이 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심은 대로 거둔다고들 하죠.
그런데 사실 더 많은 경우에 그걸 무력화 시키는 예측불허의 신비한 힘이 작용하잖아요?
사람들은 그걸 운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능력이 있고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잘 될지 안 될 지는 복불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았는데 뭔가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마십시오.
그건 하나님이 하신 게 아니라 복불복인거예요.
다음엔 잘 안될 수도 있어요.
어차피 기도하지 않고 행운이 따른 일에 진정한 감사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고,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잖아요?
우리가 일반인들처럼 복불복의 운을 따라 살아가겠다면 기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고, 어쩌면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쪽이든 내 영혼에 이익이 없고, 하나님의 일과 무관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복을 나누는 인생은 안 될 것입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과 인생을 함께 하기로 한 사람도 남들이 보기엔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잘 될 수도 있고 못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쪽이든 영혼은 늘 충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로 인해 누군가도 복을 얻는 그런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생애가 그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고난의 사람이었지만 고비마다 기도했고 점점 더 존귀한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다니엘은 기도를 통해 이방의 강대국 제왕들의 무릎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꿇게 했습니다.
그의 기도와 응답과 여러 환상들을 통해 이천년이 지난 지금 성도들에게 교훈을 주고 도전을 주고 진리를 밝히는 횃불이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도 남들처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산다는 것은 이 모든 일을 열심히 하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길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결심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내가 세상에 방치되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과 관리를 받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는 것은 일반인처럼 복불복 운에 따라 살겠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복된 플랜을 따라 사시길 바랍니다.
처음엔 기도해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매일 하는 기도는 값진 기도의 습관을 만들어 냅니다.
기도의 습관은 매일의 지혜와 하나님의 인도와 내일의 문을 열수 있는 황금 열쇠가 될 것입니다.
젊은 세대는 학업문제, 직업문제, 결혼 문제로 어려움을 느낍니다.
장년세대들은 살림살이와 노후문제와 건강문제, 자식들 문제로 마음이 늘 복잡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지혜와 총명을 기도를 통해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기도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좋은 것들을 찾아내고 누리며 사는 모두가 되시길 다시한번 축복드립니다.
2019년2월3일 남수연목사
<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5WHeZOpA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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