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서9장)

남수연 2015. 8. 11. 16:40

 

성경에 보면 세상의 실력과 믿음의 실력을 다 갖춘 부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셉이나 다윗 같은 사람들이죠.

그리고 오늘 다니엘서를 기록한 다니엘도 그렇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패망하고 포로로 끌려갔다 느브갓네살왕에게 발탁되어 총리까지 오릅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왕은 느브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고위층이 다 경질되는 게 정석인데 네 명의 왕에게 등용된 것은 다니엘의 인품과 업무 능력의 탁월함을 말해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 필요한 실력만 갖추면 되지만, 성도들은 거기에 믿음의 실력까지 갖춰야 합니다.

성도들의 세상살이가 그런 면에서 좀 더 힘든 점이 없진 않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믿음의 실력이 삶의 바탕이 될 때, 세상을 사는 능력도 탁월해 진다는 것을 보여 준 사람들이 바로 앞에서 말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실력이란 한정 된 우리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다 쓰는 것이기에 세상 사람들의 실력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에서 이집트의 총리로, 다윗은 목동에서 왕으로, 다니엘은 포로에서 바벨론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조건은 남보다 불리했지만 오직 믿음의 실력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람들만큼 대단한 일을 할는지 못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애를 최상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오늘 다니엘의 믿음을 통해 도전을 받고 용기를 얻어 세상과 믿음에 성공하는 삶을 시작하게 되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말씀을 연구하던 다니엘이 바벨론에 붙잡혀 온 이스라엘이 칠십년 만에 본국으로 귀환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길 작정하고 기도했고, 하나님은 가브리엘천사를 보내셔서 응답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믿음의 실력자인 다니엘의 진면목을 몇 가지 찾아보며 우리 신앙의 귀중한 교훈을 삼길 원합니다.

먼저 다니엘은 거대한 하나님의 역사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온지는 칠십년이 지났습니다.

이미 구십세를 바라보는 고령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추억만 남은 예루살렘보다 바벨론이 더 고향 같았을 것입니다.

정치인으로 왕과 국민들의 신임을 굳혔고, 그가 평생 일군 모든 것이 바벨론땅에 있습니다.

해방이 된다한들 늙은 나이에 머나먼 고국에 돌아가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해방된다면 기쁘기야 하겠지만 다니엘에게 득 될 것도, 또 생애가 크게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자 작정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3절을 보면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했다 합니다.

이 말은 그냥 단순하게 조국의 독립을 위한 기도제목으로 기도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령에 금식하는 것은 목숨이 위태할 수 있습니다.

거친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 쓰고 응답받기까지 식음을 전폐한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에 목숨을 걸었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실력은 바로 내 개인을 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를 일치시키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진행되는 것에 관심이 있고 끊임없이 갈망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속한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항상 마음을 쓰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진전되고 있고, 내 주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바르게 믿음생활을 하는 지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와 삶이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없는 자기 영달과 성공을 위했다는 것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관계없는 신자들의 삶은 사실 존재해서는 않됩니다.

다니엘은 항상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기도하고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세상에서 높여 주시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큰 계시를 보여주시고 기록으로 남기는 특별난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이걸 보고, 세상에서 잘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깨달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성숙하고 실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주님의 날을 향한 인류 역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주목하며 우리의 관점이 우주적인 하나님의 관점으로 점점 넓혀지는 것을 말합니다.

당장 눈앞에 이익과 생활문제에만 매달린다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지금 이상의 삶은 사실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놀면서 아무 것도 안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열심히 해도 고만 고만한 삶이고 까딱 잘못하면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을 만나 깊은 수렁에 빠지고 바닥에 때려 눕혀지기도 합니다.

세월이 가면 뭔가 점점 나아지고 삶이 여유로워질거란 생각은 희망사항일 뿐일지 모릅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고 안정되게 살려면 지금처럼 전적으로 세상일에 매달려 승부수를 던져야 할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내 인생에 승부수로 띄워야 한다는 것이 성공한 믿음의 선조들의 교훈입니다.

우리가 믿기 전이면 모를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엔 우리 삶이 하나님나라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사도가 그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산다고 쓰고 있지 않습니까?

당시 성도들은 그 말에 다 수긍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삶을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대속받은 사람들입니다.

나 자신의 행복과 성공만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안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도 이젠 원하는 대로 안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사는 것은 터진 웅덩이를 파고 물을 붓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물을 계속 붓지만 터진 쪽으로 계속 흘러 나가 버린다는 것이죠.

우리가 세상에 전념할수록 하나님은 둑의 한 쪽을 자꾸 허무십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터진 웅덩이 같이 우리를 만족하게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내 것을 더 챙기고 가둬두려는 삶이 아니라, 천천히 고요하고 풍부하게 흐르는 강물 같은 주님 안에서 매일 매일 필요한 것을 받아 먹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신앙과 조화가 되지 않으면 주객이 바뀝니다.

돈이나 성공이나 어떤 목적에 집착할수록 점점 그걸 다루기가 힘들어 집니다.

결국 거기에 끌려 다니며 신앙도 정상적인 삶도 다 어그러지는 것이죠.

최근 모그룹 왕자의 난을 보며 다 느끼시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가졌으면 얼마든지 존경받게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니지 않습니까?

거대한 아성을 쌓고 은밀히 행하던 불법들이 결국 불거져 나오지 않습니까?

모아놓은 것들에서 썩은 물이 밖으로 흘러 나온 것입니다.

야고보사도는 이런 부자들을 일컬어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른다고 책망했습니다.

평균임금이 10대 기업 중 가장 낮은 곳이 롯데라고 하더군요.

해명이라고 한 것이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서 그렇다고 했다죠.

94세가 되어도 노욕을 부리며 자식들을 갈등 속으로 몰아넣어 손가락질을 받게 하면서 그렇게 많은 재물을 모은 것이 과연 복된 인생입니까?

이 땅의 탐욕은 절대로 어느 정도 채웠으니 충분하다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돈이 얼만큼 모이면 이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으십니까?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없어서 그런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지 우리가 나을 것이 없고 그런 사람들이 남달리 악인이라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탐욕은 항상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누리고 이룰 기업을 정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많은가 적은가에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내게 부여하신 삶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몇 퍼센트 헌신했냐가 영원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고, 적게 받은 자에게는 적게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항상 코 앞을 향하는 우리의 시선을 원대하신 하나님께 돌려 우리에게 주신 값진 인생을 영원한 것을 위해 돌리고 헌신하는 복되고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또 다니엘의 믿음의 실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데 있습니다.

2절입니다.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연구하고 가까이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합본 성경이 아직 없던 때이고, 유대 땅과 멀리 떨어진 바벨론에서 구약성경 두루마리들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니엘은 여러 경로를 통해 성경 각 두루마리들을 수집하고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 중 옛날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두루마리 성경을 얻었을 때, 바벨론 포로생활이 칠십 년 만에 끝난다는 엄청난 계시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죠.

예레미야서2910절을 보면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 놀라운 예언을 발견했을 때 다니엘은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을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을 때, 우리 영혼이 망치로 맞은 듯 세차게 울립니다.

말씀을 깨닫고 확신하는 것들이 우리 믿음의 실력이 되고 현실을 통찰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듣고 지나친 말씀이 아니라 깨달은 말씀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고 경영할 방법과 각 길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시고 우리를 지도하십니다.

성경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를 깨닫고 그 길을 따라 가면 실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고 사는 것은 안개 속 같은 앞을 더듬 더듬 가는 것입니다.

언제 덫에 걸리고, 웅덩이에 빠지고, 벼랑 끝에 서게 될지 모르는 것이죠.

물론 신앙의 관점으로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죄성이 반기를 들고, 당장의 이익들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은 결국 세상 사람들이 기이하게 생각할 놀라운 지혜이고 그들에게 없는 탁월한 실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성경이 가르치신 대로 우상의 나라에서 하나님만을 온 우주의 주인으로 섬겼고, 대적자들이 모함할 것을 찾으려고 털었을 때 흠잡을 게 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은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직장에서 월급 받는 시간을 개인적으로 쓰지 않는 것이 성경의 관점입니다.

직장의 물건을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성경의 관점입니다.

공공의 물건을 공짜로 챙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너들은 이런 것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봅니다.

대인관계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거짓말을 하지 말고 뒤에서 험담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런 성경적 관점들이 바로 세상을 잘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이것을 지킨다면 반드시 직장에서 인정받고 존경받고 점점 더 큰 일을 맡게 될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십중팔구 나쁜 평판을 듣게 되고 사업이든 직장이든 점점 그를 돕는 사람이 없어집니다.

아마도 구조조정에서 일순위로 짤릴게 분명합니다.

고리타분하게 신앙을 고수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렵고 중한 일을 맡길 땐 결국 그런 사람들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의 원칙을 가진 사람을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마음으로 인정합니다.

, 세상없어도 주일엔 교회 가이런 성도들을 사람들이 만만치 않게 봅니다.

그런 성도들 뒤에 왠지 하나님이 배경이 되신다는 걸 느낍니다.

술 먹고, 담배피우며 전수되어 온 신앙의 원칙을 대수롭지않게 여기는 신자들, 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하나님께 신실한 믿음은 결국 사람들 마음에 깊은 신뢰를 줍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데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께 진실한게 아니라 세상에 마음이 있고, 사람들을 다 자기 성취의 도구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지킬 때, 우리가 거룩한 백성으로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잘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성경이 증명합니다.

 

다음은 다니엘은 기도의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뜻을 세웠다 해도 그걸 위해 우리가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이루시는 데 우리의 기도를 반영하시겠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동일하게 전했던 에스겔선지자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에스겔 3637절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수단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매고 푸는 것이 하늘에서 그대로 이뤄진다고 예수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비장의 무기라는 것을 모르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위해서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시지만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걸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죄성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은 우리 힘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가 평생 그렇게 잘 살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은 절대 우리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령님의 인도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악의 세력들이 보이지 않게 우리를 시험하고 미혹합니다.

하루를 사는 중에도 걸음마다 유혹이 있고 시험과 시련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바로 고비를 넘었다고 한 숨 돌릴 시간을 마귀는 절대 주지 않습니다.

믿음이 좀 잘 나가고 있다고 안심하는 순간, 곧 넘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는 마귀의 일은 육안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마귀의 일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시고,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영적인 안목으로 이것을 우리가 감지하고 대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일부터 원대한 일까지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다니엘의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 국가에서 노예로 부리던 민족을 순순히 해방시켜 주는 일이 가능합니까?그걸 위해 금식하고 재를 뒤집어쓰고 죽기 살기로 기도한다면 사람들은 다니엘이 늙어서 노망이 났다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고, 하나님 앞에 어떤 장애도 없다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보시기 바랍니다.

23절에 보면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려졌다고 가브리엘천사가 말합니다.

우리가 진실 되고 간절히, 우리를 받아주시는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순간 이미 명령이 내려지고 응답은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진실되게 구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을 하십니다.

우리 자식들이 정말 간곡하게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어떤 부모가 그것을 묵살하겠습니까?

다만 다니엘 같은 사람도 그 응답이 항상 오늘처럼 즉각적이지는 않습니다.

다음 장에 보면 다니엘이 고레스왕 때 다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때는 세 이레, 즉 삼 주간 동안 기도해서 응답을 받습니다.

항상 즉시’, ‘원하는 때바로 응답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삼 주 만에 천사가 응답을 가지고 도착했지만 1012절에 보면 네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길 결심하던 첫 날 부터 이미 네 말이 응답을 받았다라고 합니다.

응답되기까지의 과정은 악의 세력의 방해든, 일이 꾸며지는 기간이든 적절하게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와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순진하게 믿고 기도하는 성도들은 점점 단순하고 경쾌한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항상 한숨을 짓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인도를 기다리는 성도들은 지나치게 초조하거나 무리한 염려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다만 오늘 다니엘의 전반적인 기도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구하기 전에 먼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는 항상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놓인 장애물입니다.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동하실 것을 기대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먼저 분명한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깨달았을 때 그것을 지키기 위해 결심했다는 것입니다.신앙은 항상 결심해야 됩니다.

다니엘의 삶을 보면 종종 드러나는 게 그가 뜻을 정했다’, ‘결심했다’, 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처음 바벨론 왕궁의 포로로 잡혀 와 환관에게 교육을 받습니다.

이제 잘 보여야 할 사람은 왕이고, 환관입니다.

그들의 손에 자신의 운명이 달린 것 아닙니까?

그런데 청년 다니엘은 왕궁의 급식이 우상의 제물이란 것을 알고, 채식을 먹겠다고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18절을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니라

그 결과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셨고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닫는 신비한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그 이전에 없던 능력들입니다.

왕이 그의 학문을 시험해보니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학자보다 열배나 뛰어났다고 합니다.

또 기도를 금지한 법령이 내려진 것을 알면서도 그가 뜻을 정하고 해오던 대로 하루 세 번의 기도를 계속하다 사자굴에 갇히기도 합니다.

다니엘의 생애를 보면 그가 결심하고 믿음으로 승부수를 띄울 때 마다 한 계단씩 상승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오늘 예언을 깨닫고, 70년이 다 되어 가니 이젠 저절로 예루살렘의 회복이 이뤄지겠구나 소극적 자세로 있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실력은 깨달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때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결코 구경꾼으로 있지 못합니다.

성경을 잘 배우고 잘 깨닫기만 하고 결심하지 않는다면 실력이 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믿음이 보기 좋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앙을 위해서 결심하고 행하지 않는 그 사람을 보고 모래 위에 집을 지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련이 오고 큰 유혹이 오면 믿음의 기본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립니다.

말씀을 깨달았다면 지켜내는 것만이 신앙의 실력이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근성들은 한 번에 하나씩 결심하고 벗어버려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은혜 받으면 모든 죄가 다 깨달아지지만 모든 것이 순간에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왜 죄와 피흘리기 까지 싸우라고 하겠습니까?

성령께서 기도할 때, 혹은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죄를 지적하시면 결심하고 털어버려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옳은 일을 결심할 때, 번번히 죽음을 각오했다고 합니다.

오늘 많은 것을 결심하지 말고, 딱 한 가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내 신앙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버려야 하고 싸워야 할 것을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든 성령께서 주시는 음성을 따라 결심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죄를 점점 벗어나는 거룩한 삶이 성도들의 영광이고 세상을 향한 믿음의 실력인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1절에서는 다니엘이 기도한 때를 다리오왕 통치 원년인 주전538년이라고 명시 하고 있습니다.

고레스왕의 칙령에 의한 예루살렘으로의 1차 포로귀환 연도는 주전537년입니다.

1년 뒤 하나님의 말씀했던 대로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의 응답으로 포로귀환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다니엘은 내 기도 때문에 이스라엘이 해방되었다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한 사람의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기도의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뜻을 위해 기도한 사람에게 기꺼이 공을 돌려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 외에 하나님은 오늘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장차 종말에 일어날 또 다른 새로운 환상까지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작은 일에 결심하고 기도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더 넓은 다음 길을 보여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렇게 매일의 삶이 하나님과 주님의 나라와 밀착되어 살아가는 것이 곧 우리 믿음의 실력입니다.

이런 삶을 우리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도록 노력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2015년8월9일 주일설교 남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