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미리 알고 싶은 것은 현재만 볼 수 있는 인간에겐 끈질기고 은밀한 갈망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많은 점집이 성업을 이루고 있는 것이겠죠.
우리나라 점집 시장 규모가 2-3조원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5장 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는)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도, 다음 생애도 비밀로 감춰 두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이 인간역사가 어떻게 펼쳐질지 오래 전에 다니엘서를 통해 기록해 놓았습니다.
사람이 미래를 알려는 것은 좋은 일에선 용기를 얻고 나쁜 일에 대해선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겠죠.
오늘 말씀은 미래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용기를 얻고 또 미래를 잘 대비할 지혜를 얻으시길 축복드립니다.
성경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린다면 우리는 모든 인생의 문제들을 지금보다 더 잘 다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느부갓네살이 꾸었던 거대한 신상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7장은 다니엘이 직접 꿈을 꾸며 받은 세 가지 환상을 진술합니다.
먼저 본 환상은 기괴하게 생긴 네 짐승의 환상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인 하나님과 인자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 세 환상들은 함께 살펴보아야 짝이 맞습니다.
그래서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보면 다니엘이 벨사살왕 원년에 이 환상을 보았다고 밝힙니다.
벨사살왕은 바벨론제국의 마지막 왕입니다.
예루살렘성전에서 가져온 그릇으로 술을 마실 정도로 신성을 모독한 자였죠.
결국 벨사살왕은 죽임을 당하고 바벨론제국은 페르시아에 넘어 갑니다.
역사적인 명성이 무색하리만치 백년도 못 채우고 허망하게 멸망한 것이죠.
다니엘은 자신이 해석해 준 꿈이 실현되는 것을 살아생전에 목격한 것이니다.
다니엘은 신상의 금머리 부분인 바벨론시대에서 은으로 된 가슴인 페르시아시대까지 살았습니다.
성경 중에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이렇게 다른 것에 빗대어 은밀하게 표현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묵시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도 묵시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죠.
오늘 다니엘이 본 환상도 묵시입니다.
묵시적 표현은 좀 이상하고 난해하게 느껴지지만 해석하는 방식을 알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묵시는 오히려 사건의 본질까지 암시할 수 있는 독특한 표현방식인 것이죠.
1. 먼저 네 짐승의 환상입니다.
이 네 짐승의 환상은 느부갓네살이 보았던 신상과 똑같은 내용을 다른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환상 중에 바다 위에서 차례로 올라오는 네 짐승을 봅니다.
묵시에서 바다는 아주 혼돈되고 악한 세속세상을 말합니다.
물론 이런 해석들은 그럴듯하게 푸는 게 아니라 다른 성경들에서 실마리를 찾아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유일한 자료는 성경입니다.
4절에 보면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 데 등에 독수리의 날개가 달렸습니다.
자세히 해석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니까 간단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짐승은 사자같이 용맹하고 독수리같이 탁월했던 바벨론제국을 말하죠.
5절에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이 생겼는데 입에 갈비뼈 세 개를 물고 있습니다.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제국인데 입에 갈비뼈 세 개를 물었다는 것은 먼저 일어난 세 왕이 망하고 강력한 네 번째 왕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6절에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이 생겼는데 등에 날개가 넷이 달렸고 머리가 네 개 달려 있었습니다.
날개가 많다면 얼마나 신속하겠습니까?
순식간에 대제국을 이룬 알렉산더대왕의 헬라제국을 말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단 13년만에 파죽지세로 영토를 점령했잖아요?
머리가 네 개 달렸다는 것은 알렉산더대왕이 갑자기 죽고 부하 넷이 나라를 나눠가진 것을 말합니다.
다 실제 일어난 일들이죠.
7절에 넷째 짐승은 가장 무서운 짐승인데 모든 것을 짓밟고 부수는 힘을 가졌고 머리에 뿔이 열 개가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지중해 부근과 유럽 전역을 정복했던 로마제국을 말합니다.
열 뿔은 로마제국이 후에 열 개의 나라로 나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제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로 나뉘었죠.
느부갓네살의 기괴한 신상과 똑같은 내용이지만 좀 더 자세하게 보여줌으로써 각 나라의 윤곽들이 분명히 드러나죠.
여기까지는 이미 역사적으로 다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의 꿈에는 없던 내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그 가운데 기묘하게 생긴 또 하나의 뿔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게 달려있고 입이 있는 데 큰 말을 합니다.
이 마지막 나온 뿔을 가장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과 복음서를 통해 해석한다면 이 뿔은 마지막 때 예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박해 할 인물, 대표적인 적그리스도입니다.
묵시에 따르자면 적그리스도는 고대 로마의 영토 중에서 나오고 유럽 모든 나라보다 더 위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 뿔은 역사와 성경을 근거로 바티칸제국의 교황이라고 보는 게 유력합니다.
지금도 교황의 결정은 성경보다 위에 있잖아요?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적그리스도는 종말에 사탄의 힘을 받아 성도들을 박해하는 주요인물이 됩니다.
이렇게 묵시적인 표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에스겔, 스가랴, 요한계시록 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이 네 짐승의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은 물론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현재 세속세상의 배후와 장차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그걸 알아야 현재를 지혜롭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니엘과 유다 포로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바벨론이 망하고 압제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죠.
그런데 다니엘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바벨론이 망해도 계속 잔인한 압제자들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굉장히 심란해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바벨론 같은 강대국이 나온다면 이스라엘의 운명은 뻔한 것이기 때문이죠.
이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파악할 눈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환상대로 지구가 존재하는 한 짐승과 같은 권력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짓밟고 괴롭게 한다는 것이죠.
심판받고 멸망당할 때까지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권력자들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고통으로 몰아넣잖아요?
나쁜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괴롭습니다.
로마제국이 정복전쟁 할 때 패전국만 고통당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나라에도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남편을 잃은 자들이 나오는 것이죠.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에게 얼마나 많은 나라가 고통을 당했습니까?
그러나 자국민들도 전쟁으로 인해 일상을 잃어버리고 전쟁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잖아요?
다니엘이 본 환상은 이 땅엔 사탄의 힘과 거기 조종당하는 권력자들에 의한 고통이 종말까지 계속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세계가 그렇게 전쟁에, 가난에, 테러에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묵시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성경대로라면 사람들의 바램 처럼 미래의 삶이 점점 나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부가 넘쳐난다고 절대로 평균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가진 자들만 점점 더 많은 걸 차지하고 없는 자는 점점 더 가난하고 궁핍해지는 것이죠.
배고픈 상태로 살아가는 인구가 이미 10억 명에 육박하잖아요?
다니엘이 본 네 짐승의 모습이 점점 흉악하고 더 강포해 지는 게 그걸 말해 줍니다.
환경문제, 기아문제, 난민문제, 국가 간 이익에 의한 갈등 등, 해결하기 불가능한 난제들이 태산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 기사를 보니 백세시대를 맞았다지만 노인의 경우 열 명 중 아홉 명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자녀들 세대는 의료비 부담과 노인세대를 부양해야 할 짐이 점점 무거워지고, 대책 없이 오래만 사는 노인세대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나라 안팎으로 산적해 있는데 권력자들은 딴 데 마음이 있으니 누가 이 숙제들을 풀겠습니까?
국민들은 다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풀어 줄 사람이 없는 것이죠.
다니엘이 처한 현실이나 하나님이 보여주신 네 짐승의 시대나 우리 사는 이 때나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시대를 가장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3.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환상이 필요합니다. 바로 하나님 환상입니다.
다니엘이 흉악하고 무서운 네 짐승의 환상에 심란할 때 다시 환상이 열리고 하나님의 보좌가 보입니다.
9절,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옛적부터 항상 계신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왕좌에 앉아 계십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하나님에 대한 표현도 역시 묵시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머리털이 양털 같다는 것은 사실이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예로부터 원로 법관들의 흰머리는 경험과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법관들은 최근까지 법정에서 흰 가발을 썼죠.
흰머리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10절,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수많은 천사와 수종자들이 모셔선 가운데 심판을 베풀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 심판의 책도 법정에 있는 죄인들의 죄목을 상징하는 것이지 진짜 책을 펴서 심판하신다는 건 아닙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압박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다니엘이 본 이 하나님의 심판의 법정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나를 괴롭히는 모든 악의 세력을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심지어 우리가 두려워하는 사망도 심판을 당한다고 했잖아요?
마침 다니엘이 고개를 돌려보니 하나님을 대적하고 참소하던 그 무시무시한 짐승이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집니다.
누가 더 크고 누가 더 두렵습니까?
사탄과 악인의 종말을 이미 작정하고 이루실 하나님입니까, 지금 내 모든 것을 부서뜨릴 듯 달려드는 저 짐승입니까?
우리가 현실의 위협과 두려움에서 놓여나려면 그것에 빠져있지 말고 저 공의로우신 심판의 하나님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짐승이 두려운 이유는 내가 가진 것을 뺏을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꼭 갖고 싶은 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 있을 때 두려움은 커집니다.
그래서 그것이 생명이든, 자식이든, 건강이든, 돈이든, 명성이든 집착할수록 점점 더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걸로 우리를 조종하고 지배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내가 원한다고 다 가질 수 없고, 내 힘으로 다 지킬 수도 없잖아요?
오직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나가 도움을 구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과 세상의 결말을 알게 됩니다.
시편73편에서 아삽이 현실만을 보다 미끄러질 뻔 했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17절에 가서야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매일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의 보좌로 나갈 때 우리는 그 정해진 결말을 깨닫고 담대함을 얻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는 위로와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정에서 우리는 또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법정은 타인의 죄만 판결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정은 모두의 죄가 다 드러나는 곳입니다.
바울사도는 우리도 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선다고 했잖아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면 반드시 우리의 죄도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매일 하나님께 나가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죄를 보게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신비한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이들은 항상 그 하나님 앞에서 안전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죄에 떠는 사람을 하나님은 큰 안도감으로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늘 불안한 것입니다.
부모 몰래 큰 잘못을 저지른 자식이 불안 불안하다가 모든 게 발각되었다고 합시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큰 벌을 받을지라도 오히려 잘 된 것 같고 안전을 느낍니다.
‘이젠 호적에서 파내겠구나’ 그런 절망을 느낀다면 부모자식간이 뭔가 이상한 것이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갈수록 죄의 자각으로 인해 회개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죄받는 우리의 정체성은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의 든든한 보호와 지원을 받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이죠.
매일 하나님의 보좌와 법정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 순복하면 모든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 이길 힘을 주실 것입니다.마귀는 시련으로만 공격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에 평안할 때, 성공할 때도 하나님의 법정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형통한 중에도 믿음에 실패하지 않은 것은 평생에 기도하며 시선을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입니다.
힘든 때는 오히려 신앙의 위기가 아닙니다.
일상이 내 손 안에서 그런대로 꾸려질 만 할 때, 그때가 더 신앙의 위기입니다.
평안하고 일이 잘 될 때도 우리는 하나님 법정으로 나가 과분하게 많은 것을 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나 순풍을 만나 주위가 다 평안할 때나 항상 다니엘이 본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바라 보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4. 또 다니엘은 하나님 보좌에서 인자 같은 이에 대한 환상을 봅니다.
13절,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이번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다니엘이 본 것은 ‘인자 같은 이’였습니다.
분명 천상의 존재인데 마치 사람처럼 보이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분이 누구인지를 벌써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승천하셔서 인자와 같은 모습으로 지금도 우리 예배를 받으시는 예수님이 아니고 누구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다니엘이 환상 중에 보았던 그 인자 같은 이는 예수님이시기에 스스로 그 호칭을 즐겨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시대엔 구원자에 대한 예언과 계시가 다 꿰어 맞춰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다니엘이 보기엔 그 또한 기이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 이 분에게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저 분에게 그렇게 하시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왜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복되다고 하셨는지 아시겠죠?
다니엘은 자신이 본 환상과 똑같은 일이 역사에서 벌어진 걸 볼 수 없었습니다.
인자 같은 분이 누구신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과 성령과 그것을 입증하는 지나온 역사를 통해 이 모든 것을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의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자도 천국에서는 구약의 선지자 보다 큰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도 성경을 덮어 놓고 살면 계시가 봉인 된 채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짐승에게 짓밟히면서도 괴로워하며 무작정 살아가는 것이죠.
이 환상을 해석해 주는 천사는 다니엘에게 용기를 주는 해석을 보태줍니다.
18절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그 지극히 복되고 영화로운 나라를 인자 같으신 이가 받았는데, 한편 성도들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권세를 받으시니 신부인 교회가 당연히 그 모든 것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악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정으로 나갈 뿐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누릴 영원한 나라의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가 결핍되고 때로 가진 것들을 뺏길 수 밖에 없는 것이 악한 자들의 세상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받고 누리게 될 영원한 지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만 잠시 부족한 이 땅의 나그네 삶도 자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올해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 10명 중 단 1명만 정규직 취업에 성공했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1명은 비정규직, 나머지 8명은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회가 어려울 때 믿음은 시험당합니다.
먹고사는 일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우리를 지배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따르지 않는 한 언제든, 무엇이든,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염려되고 무엇이 두렵습니까?
거기에 조종당하고 집착하면 절대로 그 문제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머리 속에 더 크실 때 문제는 만만해지고 붙어 싸울 만 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는 짐승의 환상 뿐 아니라 매일 하나님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 이 짐승들의 시대를 살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통해 가르쳐 주신대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처럼 생활과 행동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절대 늦지 않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떤 짐승의 시대이든 어떤 두려운 문제든 하나님의 주시는 힘으로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2019년1월27일 주는나의산성교회 남수연목사
<설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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