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XEROufNeNQo&feature=youtu.be
<2019년7월21일 설교영상>
오늘 말씀은 다니엘이 인생 말년에 당한 큰 시험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구약성경의 말씀을 읽을 땐 세 가지 정도의 관점으로 보면 됩니다.
우선 이 이야기가 성경 전체 역사 속에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계속 말씀을 들으면 성경 말씀들이 다 머리 속에서 뿔뿔이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하나님과 구원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그리고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로 살펴보면 되겠습니다.
1. 먼저 본문 말씀이 성경 속에 어떤 위치에 있냐입니다.
다니엘서는 이스라엘민족의 두 번째 포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첫 번째 포로기는 애굽에서였죠.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 된 이스라엘이 두 번이나 가나안땅에서 쫒겨나 고역을 당하는 노예가 되었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출애굽은 알지만 왜 애굽으로 내려갔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나안땅에서 살던 야곱의 70명 식구들이 어쩌다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까?
겉으로 보기엔 극심한 가뭄 때문이죠.
요셉이 먼저 애굽에 있었고 식량 때문에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잖아요?이게 하나님이 애굽으로 보내셨다 다시 출애굽을 시켰다가 되면 구원의 개념이 꼬이는 것입니다.
가나안땅에 가뭄이 들었다는 건 이미 죄에 대한 징계를 뜻합니다.
우리 믿음의 삶에 적용시켜도 무리가 없죠.
생활에 가뭄이 들었다는 건 대개는 좋은 사인이 아닙니다.
가나안땅에서 쫒겨 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누릴 자격을 잃은 것입니다.
야곱의 가정사를 생각해 보면 애굽으로 쫒겨간 이유가 나옵니다.
야곱이 네 명의 아내를 가짐으로 가정이 얼마나 불행해 집니까?야곱 가정에서 행복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정사에서 요셉을 죽이려던 형들은 결국 요셉을 종으로 팔아 먹었죠
큰 아들 르우벤은 아버지 야곱의 첩, 서모와 간통하는 패륜을 저지릅니다.
또 여동생 디나를 욕보인데 대한 복수로 한 마을 전체를 몰살시키기고 합니다.
이것은 심판이 작정 된 가나안땅의 여느 부족 못지 않은 죄악입니다.
그래서 결국 가나안땅에서 애굽으로 쫒겨 가게 된 것입니다.
역대하 33장8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솔로몬 성전을 두고 이런 말씀을 과거에 하셨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한 일 곧 모세로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 열조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다시는 옮기지 않는다는 것은 이전에 그들을 그 땅에서 옮긴 적이 있으시다는 뜻입니다.
애굽은 처음에 그들을 환영하는 것 같지만 결국 노예로 삼아 자유를 박탈하고 억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난 인간은 결국 사탄이 지휘하는 노예선 바닥에서 평생 노를 젓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내서 이들을 가나안땅으로 다시 데려가신 것은 자력으로는 헤어날 수 없는 운명에서 우리를 구원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두 번째 포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돌아간 가나안땅의 천년 독립국가 시기 동안 이스라엘은 한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을 잘 지켜 행하면 다시는 그 땅에서 옮기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그걸 못한 것입니다.
결국 바벨론제국의 침공으로 나라가 망하고 다시 갈대아땅으로 잡혀가게 된 것이죠.
두 번째 포로기 역시 자력이 아닌 바벨론을 함락한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에 의해 본국 귀환이 허락됩니다.
이런 역사들이 단순히 한 나라 이스라엘의 역사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으로 부터의 단절과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원리를 이해시키고 가르치는 교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구원의 개념이 들어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오신다는 상징과 지식이 절묘하게 짜여져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족으로 어린 나이에 갈대아땅으로 끌려온 전쟁 포로입니다.
본문은 아직 예루살렘 귀환 전이고 다니엘은 팔십이 넘은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정치적 실세였던 다니엘은 인생 말년에 경쟁자들의 함정에 빠져 사자굴에 던져지게 된 것입니다.
2.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세상 역사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바로 앞 성경 구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0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
이날 밤 바벨론제국이 멸망하고 메대바사제국이 패권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메대 바사 연합군이 바벨론을 공격해 바벨론 마지막왕 벨사살을 죽이고 나라를 얻은 것이죠.
전쟁의 결과 행운의 여신이 누군가의 손을 들어준 게 아닙니다.
그날 밤 벨사살은 성전에서 약탈한 금잔으로 술을 마시는 오만방자한 연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자를 쓰죠.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보았더니 네가 모자랐기에 네 나라를 다른 사람에게 주시겠다는 글이었습니다.
그날 밤 벨사살이 죽고 갈대아 땅을 다리오왕이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한 나라가 뽑히고 한 나라가 세워지는 이 중심에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저울에 달아보시고 판단하고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그걸 더 확실히 하시기 위해 오늘 이 역사가 일어날 것을 이미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그리고 예레미야선지자를 통해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예레미야 51장11절 한군데만 보겠습니다.
화살을 갈며 둥근 방패를 준비하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것 곧 그의 성전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것이라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하고 피비린내 나는 정복전쟁을 일으킨 바벨론을 메대나라를 통해 멸망시킨다는 것이 여호와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예레미야의 서책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뒤에 보면 예레미야의 서책에서 포로시대가 칠십년 만에 끝난다는 걸 다니엘이 알았다고 합니다.
예레미야서에서 읽은 대로 자기 눈 앞에서 바벨론이 메대에 망하는 걸 보았을 때 다니엘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놀랬을까요?
요즘 일본의 수출규제 정책으로 우리 국민들 심기가 아주 불편하죠.
약소국은 언제나 약탈당하고 짓밟히는 인간 역사잖아요?
그러나 하늘의 감찰자께서 인간 나라와 왕들의 역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인간의 뜻대로 다 되는 게 아닙니다.
다니엘서는 이 땅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다니엘 당시 세상사람 눈에는 격변의 역사 속에 왕좌가 바뀌고 누군가 새 시대의 권력을 잡는 것만 보였지만 다니엘은 성경을 통해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는 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다니엘서를 통해 앞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이끄시고 그 결말을 맺으실지를 미리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세상 마지막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보좌 앞에 서는 환상을 보았다고 기록하죠.
또 인자 같으신 이가 하나님아버지 앞에서 영원한 나라를 다스리실 권세를 이양 받으실 것을 보았다고 기록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그대로 이뤄졌듯이 다니엘의 예언도 그럴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영적인 눈이 피곤해지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고 공의로우신 손이 세상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내 삶에 관여하심을 항상 생각하고 현실의 너머를 바라보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이 사실을 깨닫고 믿는 성도들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성도 다니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성경의 모델보다 다니엘은 완벽한 성도의 모델입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배울 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1) 다니엘은 세상적으로도 탁월하게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도 인정받는 성도라는 것이죠.
교회에서만 인정받고 세상에선 무가치한 성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다니엘이 다리오왕으로부터 최고 총리의 지위를 받게 되죠.
다니엘은 전 바벨론제국에서 이미 총리직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갈대아 땅의 새 주인이 된 다리오에게 다시 기용된 것입니다.
정권만 바뀌어도 내각이 다 바뀌는 데, 나라의 주인이 바뀐 상태에서 80세 고령의 다니엘을 총괄 총리로 세웠다는 것은 특수한 일입니다.
게다가 다니엘의 평생 따라 다녔던 주홍글씨가 있잖아요?
‘사로잡혀 온 자’, ‘포로 출신’.
뒤에 다니엘이 왕이 금지한 기도를 했다 사자굴에 들어가게 될 때 대신들이 뭐라고 합니까?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이렇게 부릅니다.
최고의 직위에 올랐는데 여전히 그 전쟁포로란 말이 평생 다니엘을 따라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사람들에겐 누구나 이렇게 신분세탁이 안되는 약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지역색이나 해외 이주자들이 억울하게 차별 받는 일이 있죠.
학력, 가정사, 과거의 어떤 아픔이 평생 주홍글씨처럼 따라 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니엘의 성공을 막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셉도 그렇잖아요?그도 팔려온 노예였지만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에 가는 곳마다 형통했고 애굽의 총리 직위에 올라갔습니다.
우리의 실패와 고칠 수 없는 과거의 문제 때문에 유능한 성도가 되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다니엘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는지 보면 되는 것입니다.
3절은 다니엘의 이런 탁월함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 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다니엘이 어떻게 남들보다 탁월한 민첩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다니엘서1장을 보면 하나님이 학문을 주시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다고 분명히 밝혀 놓았습니다.
또 앞5장14절에서 벨사살왕이 다니엘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다니엘의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은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자, 누구입니까?바로 우리잖아요?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명석함에서는 뭔가 남다른 탁월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남과 비교해서 더 나을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세상에선 내가 가진 것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서 승부하려면 성령님의 지혜와 충만하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의 남다른 민첩함과 탁월함은 하루 아침에 구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하면 기도의 사람이 떠오르잖아요?
매일 반복적이고 일상이 된 기도에서 매일 지혜와 민첩함이 나왔을게 분명합니다.
말씀과 기도생활이 약해지면 믿음만 흐려지는 게 아닙니다.
살아가는 판단력과 지혜가 흐려지는 게 더 먼저 느껴집니다.
꾸준한 경건생활의 힘을 믿으셔야 합니다.
사업도, 공부도, 직장생활과 가정생활도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이 통하지 않는 데는 없습니다.
우리의 성공의 목적이 나의 성취와 세상적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잘 조정되어 있다면 성령께서 구하는 우리를 탁월한 능력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2) 또 다니엘은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사람입니다.
4절에 보면 다니엘을 모함하려는 정치 대적들이 열심히 뒤져 봤지만 아무 허물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었음이라.
이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전에 김상0 청와대정책실장이 들고 다니던 낡은 가방이 화재가 된 적이 있죠.
정말 모서리와 손잡이가 그렇게 닳은 가방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렇게 주변에 청렴하기로 정평이 난 김상0 정책실장도 청문회 때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부동산투기 목적은 아니였지만 어쨌든 주민등록법상 범죄인 것이죠.
청문회에서 온갖 비리가 드러나 창피만 당하고 임명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나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나왔겠지만 세상 도덕 기준에 미칠만한 사람도 그렇게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다니엘처럼 허물이 없이 살기에 도전할 수 있을까요?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들키지 않는다고 되는 게 아니죠.
삶의 기준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지키지 못하는 걸 회개하는 사람들이 세상수준을 넘지 못하겠습니까?
그렇기에 다니엘은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성경대로 살면 이렇게 되야 맞는 것이죠.
‘저 사람 교회 다니니까 믿고 맡겨도 돼’
내가 교회 다니기 때문에 직장에서 내 정직성, 투명성을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이죠.
교회 다니는 성도들이 하는 가게라면 믿고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골목식당에서 백종0 씨가 했던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요리수준은 다 비슷하게 정상에서 만난다는 거예요.
레시피를 주고 연습시키면 비슷한 맛을 내잖아요?
그 다음에 승부가 갈리는 것은 누가 더 손님의 주머니를 안 열게 하냐는 것이냐라고 하더군요.
의외의 말이죠?
사람들은 실력이 생기면 다 남의 주머니를 더 열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손님들 주머니를 덜 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분이 왜 저런 위치에 오르게 되었는지 단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저 정도 마인드를 갖고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고 직장에서 일해야 당연한데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사회에 감동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주신 말씀에 맞춰 산다면 내 스스로가 떳떳한 인격자가 될 것이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점점 더 인정받는 다니엘과 같은 성도들이 점점 되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4.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 흠 없이 살아도 위기가 옵니다.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손꼽았던 다니엘의 생애 역시 거듭되는 시험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삶에 항상 위기와 시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다른 어려움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인간의 죄와 사탄이 얽어 놓은 고통과 시험의 덫으로 가득합니다.
믿음이 깊고 돈독해 진다고 땅을 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성도들을 이런 세상에서 보호하시고 시련을 견딜 힘을 주시며 천국으로 인도해 가시는 것이죠.
청렴결백한 포로출신 다니엘을 눈에 가시로 여긴 사람들은 결국 다니엘을 제거할 덫을 놓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급소가 신앙이라는 걸 알고 왕에게 한 가지 입법을 제안합니다.
새로 즉위한 왕의 신적인 권세를 다지려면 앞으로 한달간 어떤 신에게든 예배드리는 의식을 금지시키라는 것입니다.
만일 어길 때는 사자 밥으로 던지자는 것이죠.
그런 솔깃한 입법을 거절할 왕이 있겠습니까?
결국 이 함정에 걸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지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충성했지만 법령을 어기고 늘 하던 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서로 상충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일 하던 기도인데 한달 동안만 기도를 안 하면 어떻겠어요?예루살렘 쪽으로 난 문을 열지 말고 닫고 기도하면 안됐겠습니까?
믿음이 약한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양해를 구하잖아요?‘하나님, 제 형편 아시죠? 죄송하지만 이해해 주세요’
다니엘은 분명히 덫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도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사람의 성정이 똑같은 데 어떻게 죽음 앞에서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그것은 다니엘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죽음보다 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포기하는 것만큼, 우리가 헌신하는 그 만큼만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잃는 게 더 많다면 그걸 선택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니엘은 지금 자기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목숨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을 알 수 있었을까요?
다니엘은 어려서부터 왕실에서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배웠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들은 말씀들이 저절로 내게 적용된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서 1장부터 보면 청소년인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말씀대로 실제 살기로 작정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들은 왕이 내린 산해진미가 우상신전에 받쳐졌던 음식임을 알고 당돌하게 채식을 요구하죠.하나님은 즉시 이들의 믿음에 응답하십니다.
환관장을 감동하셔서 이들을 보호하시고 육식을 한 어떤 청년들보다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들에게 남보다 뛰어난 지혜를 주셔서 왕에게 발탁되게 하십니다.
다니엘서엔 이렇게 이들이 세속나라와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그때마다 하나님을 선택한 여섯 가지 사건들이 나옵니다.
그 경험 속에서 다니엘은 세상을 능가하는 전능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면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은혜가 죽음의 두려움보다 크기에 다니엘은 감사하며 기도했다고 하잖아요?
그런 믿음의 사람을 마귀가 시험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긴 뒤 다니엘은 점점 더 성공하잖아요?
하나님이 지금 얼마만큼 내게 크신 분입니까?
분명히 다니엘만큼은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하루 아침, 짧은 시간에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꾸준히 서로 한 걸음씩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한번에 성큼 가까이 오신다고 믿음과 신뢰감이 형성되질 않아요.
하나님 편에선 얼마든지 그럴 마음이 있으시지만 우리 때문에 그렇게 안하시죠.
사랑과 믿음과 신뢰는 일방적인 게 아니라 서로 한 걸음씩 다가서야 생기잖아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의 생각, 가르침을 하나 실천하며 한 걸음 주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도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을 보여주시며 다가오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점점 더 깊고 견고해 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결론입니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에 의해, 어떤 감당할 수 없는 환경에 의해 우리가 좌우되지 않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과 내가 주인공이고 함께 아름답게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인격과 실력을 갖춰가는 것은 성도로서 마땅하고 자부심을 가질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을 늘 구하십시오.
그리고 다니엘 같은 시련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때로 큰 위기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절대 내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 다니엘서는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하나님을 믿는 이상 우리에게 절망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이 이 다리오왕 때 뿐 아니라 다음 정권인 고레스왕 때까지 형통했다고 전합니다.
우리 앞에도 하나님은 더 좋은 것, 더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나이가 들어가시는 성도님들, 우리 앞에 더 이상 즐거움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우리를 만족시켜 주시고 여전히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해주시며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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