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일 아침 일어나셨을 때 무슨 생각을 제일 먼저 하셨습니까?
혹시 염려스런 일이 먼저 생각나셨다면 오늘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사실 염려 없는 인생이 있겠습니까?
우리 모든 생각 끝에 보면 끈덕지게 달라 붙은 게 염려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마음을 장악하고 묵직한 무게로 짓누르죠.
아무 걱정과 염려가 없으면 오히려 뭔가 이상할 만큼 우리 인생에 염려가 껌 딱지 처럼 들러붙어 있는 것을 봅니다.
염려란 뜻의 영어 worry란 말이 목을 조르다, 질식시키다에서 왔다고 합니다.
염려란 이렇게 우리 목을 조르고 우리 심령을 질식시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를 짓누르는 이 뭉근한 염려에서 벗어나 우리 심령이 새털처럼 가볍고 화창한 날이 언제였습니까?
예수님은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오늘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걱정 근심에 쌓여서 전전 긍긍하는 자녀들을 본다면 우리 마음이 속상하듯이 여러 문제로 염려하는 우리를 보고 하나님 아버지도 안타까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이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명할 때 바다가 잠잠해 진 것 처럼 오늘 염려하지 말라 명령하실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의 모든 염려를 사라지게 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5장,6장,7장에 이어지는 산상수훈의 일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 사역을 시작하신 초기였고 주님의 병고치는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산에 올라 앉으셔서 무리들을 가르치신 이 내용을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새롭게 건설하실 천국의 새 계명이고 천국백성의 새 윤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방식을 가르쳐주신 것이죠.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원수를 사랑하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비판하지 말라 이런 말씀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 중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읽은 말씀도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 자녀라면 반드시 따라야 할 말씀인 것이죠.
그냥 위로의 말씀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삶의 중요한 원리요 계명인 것입니다.
걱정, 근심, 염려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여전히 내일을 염려하는 것은 말씀대로 살지 않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봅니다.
결국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지 못하고 주님의 성실하신 인도와 사랑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이기에 염려는 죄입니다.
우리가 염려하고 있는 순간은 하나님 보다 그 문제를 더 크게 보고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들으려 몰려온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일상의 근심과 염려를 보셨습니다.
돌아가서 마련 할 끼니 걱정과 소망 없는 막막한 미래가 짓누르는 근심어린 얼굴을 보고 마음이 짠하셨던 것 같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마음에도 잠시 접어 둔 걱정거리를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2천년 전 본문에서 예수님이 제자와 무리들을 향해 말씀 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아무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예측불허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어떻게 걱정거리가 없겠습니까?
염려는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날까봐 드는 불안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염려할 상황에선 최악의 결과를 미리 각오하고 준비하는 것이 정신 건강상 좋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염려했던 일이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원치 않았던 최악의 결과가 하나님의 최선의 결과라는 걸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가 원했던 게 아닐 뿐이지 하나님은 믿고 기도하는 우리의 인생을 가장 좋은 길로 항상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주님께서 의식주를 염려하고 살아 갈 길을 찾아보려 노심초사하는 무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빌립보서 4장 6은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가 들 때 오직 모든 구하는 것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면 능히 염려에서 벗어 날 줄을 믿습니다.
오늘 주님이 하신 말씀 속에서 염려에 대한 몇 가지 깨달음을 나누길 원합니다.
첫 번째로 염려는 우리의 목숨과 영혼에 독이 됩니다.
염려가 질병을 불러 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염려가 많은 사람 끝까지 건강한 인생을 살지 못하는 걸 많이 봅니다.
염려는 우리 육신의 목숨 뿐 아니라 더 소중한 우리 영혼을 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비유에서 염려가 말씀이 뿌리 내리는 걸 가로 막는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가 많으면 믿음도 견고하게 성장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염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25절을 보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 염려하는 것이 마치 우리 목숨을 위해서 할 수 없이 하는 것 같죠?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잘 보면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않냐고 하십니다.
우리가 목숨보다 의식주를 더 중하게 생각하기에 염려가 많다는 것입니다.
본질이 아닌 것들로 인한 염려가 결국 우리 뼈를 상하게 하고 목숨을 위협하고 영혼을 쇠약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염려와 근심은 점점 우리의 몸과 영혼을 지배하고 암 같은 질병을 일으키고 심하면 죽음까지 불러옵니다.
우리에게 목숨 보다 더 소중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죽음의 사선 앞에 서 본 사람만이 사는 것에 대한 깊은 경외감을 느낍니다.
최근 차0태 아나운서가 다시 방송에 복귀했더군요.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실텐 데 17년간 장학퀴즈를 진행했던 국민 아나운서입니다.
그 땐 왜 퀴즈 프로그램에 그렇게 열광했는 지 아무튼 사람들 장학퀴즈 참 좋아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죠.
차 장로님이 지금도 생각나는 친구가 경상도에서 올라온 한 학생이라고 합니다.
그 때 문제가 뭐였냐면 조엄이라는 사람이 일본에서 들여온 식물이 무엇이냐는 거였는 데 정답이 '고구마'였습니다.
그 친구가 벨을 삑 누르더니 '고메'라고 했습니다.
고구마의 사투리죠.
고구마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정답으로 처리해 줄 수 없어 한번 더 기회를 주었습니다.
'정답은 세 글자입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물고메'라고 하더랍니다.
한번은 박대통령 아들 지만씨를 한번 장학퀴즈에 내보내겠으니 문제를 좀 가르쳐 달라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그럴 수는 없었기에 고민하다 3김 아들도 함께 출연시키면 더 큰 의미가 있지않겠냐고 했더니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림프암을 선고받았습니다.
9번의 항암치료를 받으며 밤마다 그렇게 울었다고 합니다.
림프암은 눈물로 푼 내 인생의 장학퀴즈라고 그는 말합니다.
병상에 있으면서 그는 욕심도, 소망도, 계획도 목숨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질병은 그가 자신을 포장했던 방송인, 교수, 장로가 아닌 목숨을 갈구하는 한갓 보잘 것 없는 인간이란 걸 깨닫게 했습니다.
퇴원하고 처음 친구들 만나러 나가는데 자기 손으로 와이셔츠 단추를 모두 채운 것이 너무 대견해서 울었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목숨보다 무엇이 더 중하겠습니까?
우리의 목숨과 영혼이 이렇게 소중한 데 뭐 그렇게 좀 더 가지려고 염려하며 인생을 괴롭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난 4월에 중국의 한 소년이 인터넷을 통해 장기 매매 중개업자와 만나 신장 한쪽을 팔았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신장 매매의 댓가로 우리 돈으로 368만원을 받았고 그것으로 아이패드와 휴대전화를 장만했다고 합니다.
신형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아들을 보고 부모가 캐물어 신장 한쪽을 팔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 마음이 얼마나 황당하고 충격이었겠습니까?
잠시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해 평생 사용해야 할 중요한 몸의 장기를 팔아버린 것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죠?
그런데 우리가 의식주의 문제로 염려하며 우리 영혼과 몸을 망치는 것이 이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27절에 주님은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고 말씀합니다.
원문대로 보면 키를 한 자 더한다는 말을 목숨을 하루 연장한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염려한다고 키를 자라게 할 수도 목숨을 연장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걸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보겠다고 애쓰는 거나 우리가 내일 먹고 살 문제로 잔뜩 염려하고 있는 거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키를 자라게 하고 생명을 주시듯 우리 먹고 사는 문제도 하나님 소관이라는 말씀입니다.
제발 그만 좀 염려하라고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염려하고 집착한다고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습니다.
건강염려증도 자기 힘으로 자기 몸 지키려고 집착하다 생긴 병 아닙니까?
건강하려고 염려하고 애쓰면 더 건강해져야지 왜 되려 질병이 됩니까?
건강도 우리 힘으로 안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대인의 건강 염려증 뒤에는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해 약을 팔아먹으려는 제약회사들도 한 몫한다고 합니다.
각종 건강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많이 질병에 대해 친절한 정보를 제공합니까?
그게 다 염려를 유발해 과잉 치료를 받게 하는 전략이랍니다.
혈압약을 더 팔아먹기 위해 표준 혈압을 슬그머니 낮추었다는 것 알고 계시나요?
5년 전엔 정상으로 분류되었던 130혈압이 지금은 기준이 120으로 조절되는 바람에 고혈압이 되 버렸다는 겁니다.
더 많은 고혈압 환자를 만들려는 제약회사의 상술이었다고 합니다.
충격적인 것은 약을 많이 팔아먹으려는 제약회사의 마케팅이 의학전문가들과 미국 FDA의 묵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건강 상식 서비스에 매일 접하다보면 어느새 정상인 사람도 건강염려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는 결국 질병이 되어 목숨을 위협하고 우리 심령을 허약하게 하는 것이기에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줄 믿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 하심이니라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모든 염려와 걱정을 다 주님께 맡기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두 번 째로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와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필요를 다 아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침 머리 위를 날아가는 새를 가리키십니다.
26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냥 멋있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피조물을 만드실 때 그것이 무얼 먹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다 마련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를 만들고 알아서 먹고 살라고 산에 던져 놓으신 게 아니라는 것이죠.
새는 창조의 목적대로 노래하며 그날 그날 하나님이 먹이로 주신 곡식과 벌레를 물어다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동물도 인간처럼 평생 먹을 걸 한 탕에 벌어보겠다고 덤비지 않습니다.
미국 네브래스카주에 넓은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곳에 메뚜기 떼가 출몰했습니다.
메뚜기 떼가 쓸고 가 폐허가 된 농장을 본 주변사람들이 농장 주인에게 "이일을 어쩌면 좋냐고 걱정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메뚜기에게 자신의 곡식을 먹이시는 것이니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참 대단한 농장 주인이죠?
메뚜기 떼도 곡식들도 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메뚜기 떼도 먹이시니 자기도 책임지지 않겠냐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해두지 않으셨겠냐고 말씀합니다.
우리 옛날 어른들이 아이가 또 태어나 심란해 하는 집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자기 먹을 밥그릇을 갖고 태어난다고.
또 주님은 28절에 들에 핀 백합화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한 갓 들풀에 입히실 옷을 고르시는 데도 얼마나 마음을 쓰셨는 지 좀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을 들이고 지혜를 다해 설계하셨으면 이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 째 날 힘이 들어 푹 쉬셨겠습니까?
한 송이 백합화에게 입혀주신 아름다운 향기 나는 옷에도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 자기의 영광으로 한껏 차려 입은 왕복도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한 것이죠.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를 입히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냐고 예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약속은 단지 하나님이 우리의 의식주만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이 아닌 줄 믿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와 우리의 꿈과 소망과 기대를 하나님이 다 인도해 주시는 줄 믿으시길 축복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이 주시는 게 성에 안찰 것 같아 직접 챙기셔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게 하시고 유행 지난 옷이나 입게 하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자식을 키워봤으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알 것입니다.
우리는 한 물간 공짜 휴대폰을 사려고 가게를 기웃거릴 때도 우리 자식들에게 필요하다면 최신형 스마트폰 사주는 게 부모 마음입니다.
최근에 재벌하나님, 나의 아버지란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얼마나 부자 아버지를 갖고 있는 지 이0태 목사의 생생한 간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목사님은 태어나기 전 어머니가 아들을 주시면 주의 종이 되게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목회자의 삶이 싫었습니다.
성인이 되자 진짜 하나님이 살아 계실까 나를 알고 계실까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 방황하며 하나님이 진짜 계시다면 내게 기적을 베풀어 보시라며 반항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엔 전봇대를 들이 받더니 그 다음엔 트럭을 들이 받는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어머니가 책망하며 회개하라고 했지만 그 말이 싫었습니다.
어느 날 가족들을 태우고 차를 후진하려는 데 뭐가 걸려서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예요.
그래서 앞으로 전진했다가 있는 힘껏 후진을 했는 데 바퀴가 심하게 요동하며 물체를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앞을 보니 아뿔싸 자기가 넘어간 것이 17개월 된 여자아이였습니다.
즉사했을 상황이었죠.
사색이 되어 나가보니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되었는 데 아직 목숨이 남아있었습니다.
구급차에 싣고 달려가며 이 목사님이 그제사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이 아이가 장애 없이 살아난다면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3주후 아이는 완전히 회복되어 퇴원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의 부모도 이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목사님은 군입대를 하고 정말 열심히 주일성수하며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군 제대 후 한전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안정 된 직장에 다니다보니 신학을 하겠다던 약속도 점점 부담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도 싫었구요.
하나님은 13년간을 더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과 여행을 가는 데 중앙선을 넘어오는 차와 정면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또 났습니다.
다 죽을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목사님만 다치게 하셨습니다.
더 버티다간 정말 큰 일 날 것 같아 제가 살아나가면 진짜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퇴원하고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뉴질랜드로 신학공부를 떠났습니다.
한국에서 신대원 공부가 어려워 나름 머리를 써 쉽게 신학을 공부하고 눌러 앉아 선교센터 같은 데서 일해 볼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학생활은 고통과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 간 돈은 아무리 궁핍하게 살아도 점점 줄어드는 데 정말 피가 마르는 것 같았습니다.
가고 싶던 선교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다 자원봉사자였고 어느 곳도 자기 같은 동양인을 취직시켜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하고 한국에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에 하루 하루를 고통속에 살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매일 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보고 신학 하라고 이곳까지 인도하셨는데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돈도 다 떨어져 갑니다.’
밤마다 눈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데 어느 날부터 기도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5년 안에 너의 영어학교와 선교센터를 세워주겠다.' 당장 집세도 낼 수 없는 형편에 믿기지 않는, 또 믿을 수도 없는 음성이었죠.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일 밤 동일하게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도 없어 귀를 의심했지만 밤마다 너무나 강하고 들려오는 말씀을 믿기로 했습니다.
3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느닷없이 실버데일이라는 지역에 가서 땅을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 지역은 푸른 초장에 양과 소 밖에 없는 목장지역입니다.
갑자기 땅을 사라고 하시다니? 무슨 돈으로 땅을 사며, 여기다 무얼 하란 말씀이신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역할 수 없는 명확한 음성에 실버데일로 갔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실버데일에 17만평의 땅이 12억에 나와 있었습니다.
16년 전 시세입니다.
주인을 만나 얘기나 한번 해보자고 말을 꺼냈는 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땅 주인이 2년 동안 시간을 줄 테니 땅 값을 그때 달라는 겁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리고 그 2년 동안 자기가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땅을 이목사님 명의로 넘겨 주고 땅 값을 담보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돈 한 푼 없이 땅이 그의 수중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50년도 넘어야 개발 될 땅을 사서 어떻게 할 거며 이자를 어떻게 감당하냐며 걱정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부동산에서 그 땅을 팔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32억을 준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마음이 너무 떨려 하나님께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는 64억에 팔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무일푼으로 매입 한 땅을 10개월 만에 정확히 64억에 팔았습니다.
땅 값을 갚고 남은 50억으로 오클랜드에 있는 100억 짜리 빌딩을 반 값에 구입하게 하시고 또 다른 아름다운 빌딩을 한 채 더 주셨습니다.
모두 정확히 5년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금 수백억에 달하는 두 빌딩은 선교센터와 기독교 영어학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통 큰 재벌하나님이신 것 인정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근근이 먹고 살 것이 아닌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큰 재물도 맡기시고 높은 지위와 명예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니 모든 염려를 내려 놓고 주님께서는 33절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설교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은 제일 중요한 팊은 바로 이 말씀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의식주에 얽매여 모든 인생을 소모하는 게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위해 우리 혼신을 다해 쏟아 붓고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설령 인생의 절정에 올랐다 해도 허무와 불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상을 탈환한 선수들이 더 이상의 목표가 없어 깊은 슬럼프에 빠지는 걸 종종 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봤던 지혜자 솔로몬은 말합니다.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쳤는 데 완전한 행복으로 다시 충만해 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 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내 시간과 마음을 드릴 때 오는 만족과 보람은 이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진화론을 만든 다윈은 평생을 갖가지 질병으로 고생하다 죽었습니다.
구토와 심장병, 두통과 정신분열증과 건강염려증, 맹장염, 헬리코박터 감염증 등 셀 수 없이 많은 병을 앓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이 결핵으로 먼저 죽는 고통스런 인생을 삽니다.
하나님을 밀어 낸 자리엔 염려와 질병과 저주가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은태 목사님에게 주신 풍성하고 놀라운 축복은 그 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믿음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생활의 염려는 다 믿음으로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삶을 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합니다.
34절에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예수님은 죄 짐을 지고 이 땅에서 허덕이는 인간들을 이 땅에서 30년 이상함께 사시며 보셨습니다.
주님도 로마의 학정아래 모든 것을 수탈당하고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 틈에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우리가 인생고와 마음의 짐과 질병으로 하루 하루 힘들게 사는 걸 다 아시기에 내일 일 까지 미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한 날의 괴로움으로도 족한 것이 우리 사는 인생입니다.
내일 일은 우리가 염려할 일이 아니고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내일이라는 미래 속에 해결 될 실마리를 준비했으니 내일이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게 두라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재벌 아버지 십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상속해 주실 것이고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아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이미 약속 된 의식주를 위해 미리 염려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성도들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염려와 걱정이 우리 마음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 때 하나님아버지를 바라보시고 신뢰하십시오.
우리의 모든 염려는 물러 가고 하나님의 넘치는 공급과 축복이 우리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채워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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