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4장21절-32절)

남수연 2011. 9. 12. 11:24

오늘의 본문은 바울 사도가 로마감옥에서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에베소는 현재 터키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통로이죠.

아시아의 모든 문물이 이 에베소를 거쳐 로마로 갔습니다.

아시아로 가는 유럽의 물건들도 에베소에 집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엔 항상 전 세계의 배들로 즐비했다고 합니다.

에베소는 전형적인 로마도시로 잘 포장 된 도로에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을 가진 대도시였습니다.

잠실구장이 3만명을 수용하니 그 당시 대단한 규모였죠.

2천년 전에 벌써 강물을 끌어들여 공중 목욕탕과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숭배로 유명했고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르테미스신전이 세워졌던 곳입니다.

돈이 모이는 곳이니 퇴폐적인 향락 문화가 크게 발달 되는 게 당연했겠죠.

길게 늘어선 유흥가 입구에는 대리석 발모양이 있는 데 발을 대보고 작으면 아직 어리다고 돌려보냈다는 재미난 얘기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3차 전도여행 때 이 에베소에 3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을 했는지 사도행전20장에 에베소 성도들과 헤어지는 모습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였더라.

이렇게 예루살렘에 돌아온 바울은 체포되고 로마로 이송되어 감옥에 갇힙니다.

이 감옥에서 교회들에 보낸 편지를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입니다.

옥에 갇힌 65세 노사도의 마음에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특히 향락과 사치와 우상숭배가 만연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 대한 걱정이 컸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믿음을 잘 지키라고 성도들을 권면한 편지가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에베소와 같은 현대도시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잘 살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편지인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바울을 감동시켜 편지를 기록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옛 사람새 사람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속에 전혀 다른 두 성품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썩어져 버릴 낡은 습관을 따르는 옛 인격은 그만 벗어버리고 참신한 새 인격을 입으라고 강권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받고 거듭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이미 구원 받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편지 서두에서 바울은 이렇게 인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편지를 읽을 사람들은 이미 성도이고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라고 하죠?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고 다 성도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이 바로 오늘 주제인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 옛 인격은 유혹의 욕심을 따랐지만 이젠 하나님을 따르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4절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따르게 지음 받았던 본래의 새 사람을 입으라입니다.

원래 창조되어진 목적대로 사는 게 새 사람을 입는다는 뜻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이 거룩한 삶에서 실패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말이 왜 나오겠습니까?

성도다운 거룩한 삶을 포기하고 여전히 옛 죄인의 방식과 습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1970-80년대 조폭계의 3대 훼밀리로 불리우는 폭력조직이 있었습니다.

김태0이 이끄는 서0파와 조0은의 0은이파, 그리고 0B파입니다.

김태0은 13번 교도소 수감에 인생 절반인 33년을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신0당 각목대회 사건과 송0호텔 나이트 클럽 사건으로 사회를 공포스럽게 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교도소 수감 중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출소 후 바로 폭력조직 신우회를 구성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조폭 방식으로 운영한 것입니다.

강제 월 회비를 걷고 협박과 폭력을 사용하다 결국 재수감되었습니다.

출소 후 다시 청소년 선도에 전념하겠다던 김씨는 얼마 후 영화배우 권0우씨 협박 등의 혐의로 또 수감되었습니다.

0은이파 조0은씨의 경우 명동사0이호텔 폭력 사건으로 유명하죠.

조씨도 감옥에서 신앙을 갖게 되었고 출소 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조0기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습니다.

이명0대통령도 그 당시 화환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범죄에 발을 들이기 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마약 밀반입과 조직원 살해 지시로 다시 구속 수감되고 맙니다.

그 후 이제 진짜 신앙생활에 전념하겠다고 신학교에 입학했고 실직 노숙자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에 참가하기도 했지만 해외 도박과 폭력으로 또 다시 수감되었습니다.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죄악이 습관이 되고 죄가 인격이 되어 버린 사람이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게 됩니다.

정말 눈만 뜨면 죄가 생각나고 죄 짓는 게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런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변화되기가 쉬운 일이 아니죠.

이렇게 중도에 믿음에서 낙마한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정말 거룩한 성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을까요?

그들이 다시 조폭의 세계로 돌아가거나 성도들이 다시 점잖게 불신앙의 세계로 돌아가거나 사실 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김씨나 조씨의 경우 워낙 극악한 죄인이라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게 확실히 드러나는 것 뿐입니다.

우리 또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려면 옛 모습을 버리고 매일 새 사람을 덧입으려 애를 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전력 질주해서 싸워야 할 이 땅에서의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과 현실에만 급급할 일이 아니라 내면의 악한 죄성을 벗어버리려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2장4절은 오늘날의 한갓진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다.

우리의 죄성이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죠.

김씨와 조씨를 보니 그들이 과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한다는 게 참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바울이 에베소 교인을 걱정하듯이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걱정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적당히 교회를 다니고 적당히 세상 적인 삶의 방식을 따르며 두 가지를 다 놓지 않으려는 것이 성령님의 깊은 시름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절대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둘 중 하나가 가짜라는 것이죠.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27절에 나와 있습니다.

옛 방식대로 죄를 지을 때 냉큼 들어오는 것이 마귀입니다.

마귀는 온갖 악한 궤계로 우리의 삶을 뒤 흔들어 고통을 주고 믿음에서 탈선하게 합니다.

오직 성령님만 우리 안에 모시고 우리의 삶을 주도해 가실 때 우리가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반드시 벗어버려야 할 옛 사람의 모습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5절에서 벗어야 할 옛 인격으로 거짓을 지목합니다.

참 되신 하나님께 견디기 힘든 것이 우리의 거짓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난 이정도면 정직한 편이고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은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평소 드러나지 않다가도 자기의 이익이나 명예에 관련되면 인간의 머리는 순식간에 자기에게 유리한 거짓을 지어냅니다.

이사야5장18절을 보면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라고 말씀합니다.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고 간다는 표현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요.

청문회에 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만 곧 들통이 나고 그 뒤에 줄줄이 엮인 죄악들이 다 딸려 나오는 걸 보게 됩니다.

우리가 거룩한 성도라면 마땅히 버려야 할 항목이 거짓입니다.

정직하고 솔직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으로 명령하신 것은 구원받았다고 거짓이 사라지고 참 된 행동이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거짓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고 참 된 것은 이를 악물고 노력해야 겨우 됩니다.

사람의 거짓말과 행동은 자기를 좋게 보이고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이라 쉽게 포기하기 힙듭니다.

거짓말해서 사람에게 돌아올 이익은 결과적으로 하나도 없습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이죠.

괜찮은 사람인데도 참 치사하게 작은 이익을 위해 구차한 거짓을 꾸미는 것을 볼 때 실망스럽죠.

누군가와 친분을 쌓다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면 순식간에 그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당장 손해를 보는 것 같고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정직한 게 최선임을 믿으시길 축복드립니다. 아멘.

얼마전 개그맨 김0호씨가 거짓말 없이 살아보기란 프로에 출연했었죠.

PD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10분에 세 번 정도 거짓 된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좀 심하죠?

그래서 사람이 과연 거짓말을 안 하고 살 수 있을 까 궁금해서 이 프로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김0호씨가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할 것 같은 연예인으로 뽑혀 보름동안 밀착 취재를 당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속 마음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규칙입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며 김0호씨 모습이 점점 달라져 갔습니다.

평소 이해심이 많고 얼렁뚱땅 넘어가며 분위기를 즐겁게 했던 모습이 불안하고 까칠해 보이기 까지 했습니다.

늘 입에 발렸던 칭찬을 안 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관계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뜻밖의 자기모습에 그는 당혹해 하며 힘든 프로를 그만두었으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동안 사회생활이란 명목으로 겉과 속이 그렇게 다르게 우리가 살고 있다는 뜻이죠.

마음에 없는 소리하며 사는 게 우리에게 피부같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인간이 진실만을 말하며 살 수 있나 회의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 프로는 살아가는 데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좀 황당한 결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김0호씨는 프로가 끝난 것을 너무 기뻐하며 행복한 일상인 거짓 된 삶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죄인은 타고난 대로 거짓말을 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종일 맘에 있는 대로만 말하고 행동해 보면 김0호씨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사람에게 참 된 것을 말하는 것이 이만큼 어려운 것은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속 마음 다 보였다간 큰일 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거짓을 버리고 진실 되기 위해서는 먼저 조건이 있습니다.

23절의 말씀대로 먼저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심령이 성령님으로 인해 날마다 새롭게 될 때 우리의 내면이 먼저 바뀌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우리는 진실 된 마음과 진실 된 입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우리 입에서 거짓을 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성도들이 거짓말과 행동은 마귀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거짓의 아비라고 하죠.

거짓말 하는 순간 마귀가 아버지인 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라면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시편 101장 7절은 말씀합니다.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작은 거짓말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용감하게 솔직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사람을 두려워 하고 사람을 의식하는 마귀적인 거짓말을 버리고 우리의 폐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된 삶을 선택하기를 축복드립니다.

반드시 사람에게도 신뢰받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아름다운 성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리라 믿습니다. 아멘.

그 다음 벗어야 할 옛 사람은 26절에서 분노하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으려면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인간의 감정 중 분노는 정말 다스리기 힘든 것임을 겪어보아서 아실 것입니다.

분한 마음은 그 현장에서 벗어났어도 두고 두고 우리를 괴롭힙니다.

아니 어떤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분해지는 것을 느껴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27절에 이런 마음은 벌써 마귀에게 틈을 준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분노가 계속되면 자기 마음이 조절이 안 되고 뭔가에 사로잡힌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분노에는 폭발적인 강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가 습관이 되면 그 에너지가 자가 면역세포를 파괴 해 병에 걸리기 쉽다고 합니다.

화를 낼 때는 뇌에서 노어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데 그 독성이 뱀의 독성 다음으로 강하다고 알려졌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 조사에 의하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3배, 심장마비 확률은 5배가 높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분한 일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설사 그 분노가 정당하다 할지라도 분을 길게 품지 말라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 마다 각기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권변호사로 여대생 살인사건이란 책을 쓴 엄상익 변호사는 마음 다스리기 공책이 있다고 합니다.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공책에 그 내용을 계속 쓰는 것이죠.

그러다보면 분을 내지 않아도 되게 마음이 다스려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1년 쯤 지나서 그 공책을 열어보면 그 때 그 일이 사실은 내가 잘못한 일이었네 라고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지나고 나서 보면 화를 내고 분노했던 그 일이 상대방의 잘못이기 보다 자기에게 더 큰 원인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죠.

만일 그 일로 상대방에게 분풀이를 했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그 시작은 별 대단치 않은 일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래 분을 내고 있고 화를 품고 있으면 반드시 마귀는 우리가 크게 시험에 들 기회를 포착합니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했다 점점 화가 나며 걷잡을 수 없이 되는 경우가 가끔 있을 것입니다.

어느새 마귀의 계략에 말려들어가고 있는 걸 느끼면서도 심각한 상태까지 자기도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걸 보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뒷수습을 하고 정상적인 관계로 돌리는 데 무척 애를 먹습니다.

끝까지 상처가 해결이 되지 않고 관계가 파탄 나는 것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록한 사도 바울 역시 이 문제로 크게 시험에 들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13장을 보면 바울과 그의 동역자 바나바가 의견 충돌이 일어난 일을 기록합니다.

전도여행에 누구를 데리고 가느냐 의견이 달랐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를 데려가고 싶어 했으나 바울은 지난 전도여행 때 도중에 돌아가 버렸던 의지박약한 마가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39절에 보면 이렇게 되고 맙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났다더라.

성령이 충만하고 헌신한 그리스도인이었음에도 의견 충돌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자 서로 화가 폭발해서 갈라서게 된 것이죠.

이런 경험이 있었던 사도바울은 분노가 마귀에게 너무 신나는 먹잇감임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성격이나 습관적으로 화가 잘 난다면 오늘 주님의 말씀을 따라 피흘리기 까지 노력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야고보서1장20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때론 우리가 최선을 다해 애를 쓰며 살아온 보람도 없이 힘든 고난이 계속 될 때 분노가 생기기도 합니다.

사이더하우스란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국의 마이클 케인이란 영화배우가 있습니다.

그는 풀리지 않는 연기생활로 크게 낙담할 때가 있었습니다.

보조 단역으로 얻는 수입은 너무나 형편 없었고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철공소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우울한 시기에 아버지가 임종을 맞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이틀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없이 병실을 막 나서려는 데 간호사가 뒤따라와 아버지 파자마에서 나온 것이라며 돈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3실링 8펜스, 우리 돈으로 만원 정도 되는 액수입니다.

케인은 그 순간 분노를 느꼈다고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긴 모든 것이다.

56년간 짐승처럼 일한 결과가 고작 이것이다.

그는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말한 후 어두운 복도를 서서히 걸어갔습니다.

걸음을 옮기면서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결심과 가족들을 결코 가난하게 하지 않겠다는 굳게 결심합니다.

그 강한 의지로 그는 배우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분노도 잘 이겨내면 축복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계속되는 고난과 낙심이 쌓이면 그만 분노가 일어나고 말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길게 화를 품지 말고 죄를 짓지 말라고 주님이 격려하십니다.

고난으로 인한 분노가 일을 때도 그것 때문에 마귀가 틈타지 않도록 믿음으로 물리치고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우리의 모든 고난이 그렇듯 낙심에서 오는 분노도 이 세상을 소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좋은 상을 얻으라는 기회인 줄 믿습니다.

분노가 일어나는 대상과 환경에 집착하지 말고 그 너머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도움의 손길을 준비하실 줄 확신합니다. 아멘.

분노와 화를 사람을 향해 쏟아 붓는 것이 가장 최악의 선택입니다.

그거야 말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던 마귀에게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는 일입니다.

차라리 운동이나 가벼운 문화 생활로 다스리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작고 사소한 화는 그렇게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불붙은 분을 다스릴 방법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격동시키는 분노는 쉽게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서로에게 분노가 생길 때 상대방의 분노까지 가라앉히기는 더 어려운 일입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날 때 기도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디모데전서 2장 8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기도하면 참을 힘을 주십니다.

잠언 12장 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본문 30절에 보면 우리가 거짓과 분노와 악한 일들을 버리지 못할 때 성령님을 근심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성령께 고통을 가하지 말라 입니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의 날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죄에 지고 마귀에게 문을 열어 놓는 우리를 보실 때 성령께서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영이 보잘 것 없는 우리 심령에 찾아오셔서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거짓을 버리고 서로를 위해서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분을 다스리고 인자한 마음으로 서로를 용서하시길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두0교회 김0홍목사님이 안양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동료죄수 중 원0연 대령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기수로 옥살이를 하고 있었는 데 다른 죄수들로부터 진심어린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성직자도 아닌 그의 삶이 얼마나 깨끗하고 존경받을만 한지 김목사님이 너무 부러워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간증을 들려주었습니다.

원대령이 박0희 대통령의 공보실장으로 있을 때 군인은 정치를 그만두고 군으로 들어가자 여러번 건의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반혁명사건이라는 죄목이 씌워져 보안사령부로 가서 고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문이 너무 심해 몇 번을 기절했다 깨나고 했습니다.

한번은 기절했다 깨어나니 온 몸의 마디가 다 빠지고 분해된 것을 알았습니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자기의 몸이 점점 식어가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며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군인으로 나라를 위해 일하다 죽는 것은 떳떳하지만 하나님 일을 하지 못하고 세상 일만 하다 죽는 것을 회개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는 데 천정에서 느닷없이 밧 줄이 하나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게 왠 밧줄인가하고 쳐다 보는 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줄을 잡으라

그 순간 온몸에 불현듯 힘이 솟아 벌떡 일어나 그 밧줄을 잡았습니다.

그랬더니 두 번 째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시는 이 줄을 놓지 말지어다

그리고 온 몸에 성령께서 임재하심을 느끼며 감격에 사로잡혀 엉엉 소리내어 우는 데 고문으로 망가졌던 몸이 순간 완전히 회복이 된 것입니다.

그는 이런 은혜를 받고 보니 힘든 감옥생활 중이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줄을 놓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원대령은 감옥 속에서도 말씀대로 살며 날마다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덧입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역시 아무 소망 없던 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내려 주신 구원의 줄을 잡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이 줄을 놓지 말아라.

거짓을 버리고 참 된 것을 말하고 분을 내지 말아라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모든 악한 일을 버려라

그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의 모든 죄와 허물을 오늘도 용서한다.

세상은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할 이유를 백가지도 넘게 들이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내 삶을 바꾸고 성도다운 삶을 살려는 우리에게 기적과 같은 은혜와 축복이 차고 넘치게 부어질 줄 확신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