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앞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후 몇 몇 제자들을 부르셔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계신 곳은 갈릴리 지방의 가버나움이라는 곳인데
이 갈릴리 지방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경멸과 배척을 받던 곳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아 혼혈족과 이방 종교가 성행하였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곳이고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리웠습니다.
예수님은 그 천시 받던 갈릴리 지방에서 자라셨고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첫 장소로 그 갈릴리를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사역지는 종교적 자만심에 가득 차있던 예루살렘 성전 앞이 아니었고 아쉬울 것 하나 없어 하나님도 필요 없는 부요한 도시도 아니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 병도 못 고치지는 자들, 믿음이 없어 귀신들려 사는 가난하고 불쌍한 자들에게 먼저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서9장 1절에 이 사건에 대해 놀라운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에 고통당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여호와께서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고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해 갈릴리 지방에 구원이 임할 것을 예언해 놓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출사표를 던질 때 기왕이면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시작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우선 순위는 언제나 상하고 갈급한 심령이 가장 먼저입니다.
공명심이나 체면이나 위선이나 영광을 추구하는 마음은 예수님 생애 가운데 단 한 군데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늘 사람의 인정에 끊임없이 목말라 하고 잘나 보이려고 애쓰는 것은 가련한 우리 인생들일 뿐이고 예수님은 우리 인생과 다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갈릴리에서 이렇게 시작한 예수님의 사역을 살펴보면 첫째는 병 고침과 축귀사역 즉, 귀신 쫓는 사역이었습니다.
32절에 보면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해가 진 다음에 그들이 몰려 온 것은 해 저물 때까지가 안식일이었기에 안식일을 범하지 않으려고 기다렸다가 주님 계신 베드로의 집으로 몰려온 것입니다.
그 전날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다 귀신들린 자를 쫒아내셨는 데 그 소문이 삽시간에 가버나움에 퍼져 사람들이 몰려든 것입니다.
저물어 해질 때에 이미 날이 어두워졌는 데도 예수님이 계신 그 곳으로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데리고 꾸역 꾸역 몰려 온 것입니다.
온 동네가 다 모였다고 합니다.
인생의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엔 이렇게 해가질 때 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도저히 해결 할 수 없어 하나님 앞으로 갖고 가야 할 애타는 문제들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몰려 든 그들에게 대한 예수님의 행동은 아주 간단 명료 하십니다.
본문에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냥 그들의 절박한 문제를 즉시 해결해 주십니다.
그들의 묶인 것들을 얼른 풀어주십니다.
사람의 신분이나 죄의 경중을 구별하여 사람을 차별해 고쳐주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엔 우리는 다 거기가 거기인 불쌍한 죄인일 뿐이고 빨리 구원해야할 한 영혼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가버나움 사람들처럼 우리는 인생의 이중고를 안고 살아갑니다.
육적으로 병들고 곤고하며 영적으로도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 영혼을 짓누르고 억압해 평안이 없습니다.
모든 인생에 예외는 없습니다
재벌가의 자식들이 육적으로 너무 많이 가진 것 외엔 불편함이 없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영적인 압박에 몰려 자살 까지 가는 일도 많습니다.
우리도 이런 인생의 덫에 걸려있다고 생각하면 즉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육적, 영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뿐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날 밤 아마 밤을 새워 가며 그들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힘든 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적과 능력을 행하실 때를 살펴보면 신적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서 오직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그 사역들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의 신적 능력을 철저히 제한 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은 오직 인간 예수로서만 그 자격이 주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밤을 새워 환부를 만지고 안수하고 악한 귀신들을 내어 쫓는 힘든 일을 인간의 한계를 가지신 우리 주님 혼자서 다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사역 가운데 많은 피곤을 느끼셨습니다.
요한복음4장 6절에 예수께서는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털썩 주저앉아계셨습니다.
마가복음4장38절에도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배가 뒤집힐 듯한 풍랑이 일 때도 고물을 베고 정신없이 잠이 드셨습니다.
마태복음8장20절에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며 피곤한 몸을 편히 뉘실 곳이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사역을 살펴보면 아무리 고단하고 힘든 가운데서라도 손을 내미는 죄인을 뿌리 친 적이 단 한번도 없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어떤 병자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오건 예수님이 피곤하다거나 다른 어떤 이유로 그 간구를 거절한 적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언제나 “그래, 잘 왔다. 믿음이 귀하구나. 내가 지금 당장 고쳐 주마 . 내가 해결해 줄 테니 이젠 안심 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녀들이 죄로 인한 깊은 절망과 세상의 고통 속에서 주님을 부를 때 잠시도 지체하실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저도 결혼 후 직장 생활을 계속하고 있지만 퇴근 후 아무리 지쳤어도 제 얼굴을 보자 마자 어린 딸이 ‘엄마 밥!’ 그러면 옷도 못 벗고 주방으로 먼저 달려갈 때가 참 많았습니다.
부모들에겐 자녀의 필요가 항상 최우선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을 때나 지금 천국에서 영광의 몸으로 계시나 인격이 꼭 같으신 예수님 아닙니까?
지금도 그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간구를 하찮게 여기시거나 무시하시는 법이 결단코 없으십니다.
여전히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진지하게 들으시고 우리의 긴박한 필요에 진실 되게 응답하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병고침과 귀신을 내어 쫓는 사역을 하늘에 올라가실 때이 땅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10장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제자를 부르사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가복음 16장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사역을 지속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 날도 그 육신의 고통과 악한 영의 결박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곤고한 부르짖음이 주님의 귀에 들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령의 기름부으심 사역을 통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남을 보았습니다.
휠체어에 앉았던 불구자가 일어나 걷는 것도 목격했고 수많은 병자들이 기적적인 치유를 받는 현장에도 있어 보았고 귀신이 울부짖으며 거품을 흘리고 떠나가는 것도 목격하였습니다.
이것은 특정한 교회와 사역자들에게만 임하는 능력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이미 이 권능을 받은 것이며 우리를 통해서도 병고침의 은사와 귀신을 내어 쫓는 역사가 일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미국에서 상담사역을 하던 닐 앤더슨박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주 심하게 귀신들린 한 여인을 상담하던 중 예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체격이 우람하고 거친 음성의 그 여인이 상담 도중 갑자기 벌떡 일어나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과 으르렁 거리는 소리로 박사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거구의 귀신들린 사람을 힘으로 방어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귀신들린 사람들의 괴력은 우리가 다 들어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때 닐은 육체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한일서 5장 18절에 근거해서 그 여인을 조정하고 있는 악령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악한 자가 나를 만지지도 못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지금 당장 의자에 앉아
그러자 그 여인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온순해 지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앉더라는 것입니다.
만일 무력으로 충돌했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확고히 서면 사단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영적인 싸움들은 예수님 당시나 초대교회 때나 성행하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영적 전투는 더욱 치열하고 사도행전 때 보다 더 강력한 성령의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영적인 일에는 우리 모두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신령한 일을 더 많이 깨닫고 하늘의 능력을 직접 맛보고 더 강건하게 변화되시길 축원합니다.
영적으로 연약한 어린 신자들이 갖는 오해가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깊은 은혜에 들어가는 일에 다소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것이야말로 사단이 주는 두려움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영적이지 못할 때 악한 영은 언제든지 우리의 삶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기에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환경과 대인관계와 가정생활을 파괴하고 건강을 약화시켜 아무런 선한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물질을 빼앗아 인생이 핍절하여 비참해지게도 만듭니다.
영적이지 않은 상태는 내가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죄가 나를 주장하고 악한 영들이 내 마음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영적인 일에는 다 장성한 사람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4장 20절에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기도회마다 치유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아주 옳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하셨고 우리에게도 이 사역을 맡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이 모든 일을 교회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교회에서 마음껏 활동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역사해 주시길 순종하는 마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영적인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우리의 믿음을 자꾸 도전하고 증진시키길 원합니다.
몸에 질병이 찾아오면 일반적으로 병원 치료를 받게 되겠지만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병고침의 능력을 쳐박아 두지 마시고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자녀를 위해 손을 얹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치유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한다면 점차 신유에 대한 확신도 생기고 우리의 치료도 더욱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귀신을 내어 쫒으십시오.
야고보서4장7절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악한 영을 대적하십시오.
두려움을 주는 악한 영을 쫓으십시오
기도를 못하도록 방해하는 악한 영을 대적하십시오.
마귀가 우리와 우리 가족의 삶에 절대로 개입하지 못하도록 쫒아야 합니다.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악한 마귀는 묶임을 받고 떠나갈 지어다. 라고 담대하게 선포하시면 됩니다.
주님의 이름 앞에 마귀는 떨며 나가 떨어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예수님의 사역은 전도사역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라고 하며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모든 죄인에게 복음을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른 새벽에 기도하러 가신 예수님을 열심히 찾아내어 한다는 말이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라며 원망 섞인 말을 합니다.
동네에서 이렇게 인기가 높아가고 있는 데 왜 이런 광야 한적한 곳에나 계시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모여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기보다 얼른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으셨습니다.
할 수 만 있다면 여기 계신 동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을 구하는 일에 한시가 급하셨습니다.
요즘 교회에서는 지옥이라는 말을 좀 불편해 하는 것 같습니다.
세련 된 기독교 문화로 세상 속으로 침투하자는 현대 복음전도 방식에 어쩐지 지옥이란 단어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나봅니다.
그러나 성경이 심판을 말씀하면 우리도 말해야 합니다.
지옥을 담대하게 말하지 못하는 현대 그리스도인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옥이 없다면 예수님이 뭣하러 그 참혹한 십자가에 매달려 구원을 이루셔야 했습니까?
괜한 수고를 하셨다는 것입니까?
아담의 범죄 함으로 인해 모든 인류는 명백하게 사망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때 그 범죄의 현장에 죄송하지만 우리들도 있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을 때 그 말씀은 즉시 이루어져 이미 모든 인류는 아담의 허리에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에베소서1장4절에도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고 말씀하셨는 데 있지도 않은 우리를 어떻게 택하셨겠습니까?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에 하나님이 그 때 영혼을 창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이미 여섯째 날에 다 창조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낙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셨을 때 빛이 즉시 있었던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시편33장6절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8절에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서11장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라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모든 것을 지으셨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의 언약에서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자 이 말씀은 즉시 효력을 발생하여 일순간에 아담의 허리에 있던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2장1절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라고 말씀하시며
로마서5장12절에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 하나님과 단절되어 곤고한 인생을 살다가 영원한 심판에 이르는 것이 참혹한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요한복음3장18절에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기록되어있죠
심판은 이미 아담의 범죄로 인해 확정되었다는 말씀이십니다.
이 처참한 죽음의 현장에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지금 예수님이 직접 뛰어 들어 오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전도를 위해 얼마나 열정적이셨나를 본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밤새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새벽 아직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광야로 나가 기도하셨던 예수님은 서둘러 전도하러 가자고 하십니다.
팔을 걷어 부치고 얼른 다른 마을들로 가서 주님이 친히 전도하시겠다고 나서십니다.
예수님은 사역 중에 무리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시고 목자 없이 유리하는 양과 같다고 한없이 긍휼한 마음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요나서에서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이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해 죽어가는 죄인들을 사랑하셨기에 공생애 기간 동안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님은 항상 피곤하고 분주한 일정 가운데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또한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마가복음16장15절에 너희는 만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지구에는 하루 14만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 인구를 카톨릭을 포함 해 33%로 잡았을 때 그 나머지 9만명 이상이 매일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게 현실입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울었던 주님의 눈물이 지금도 이 영혼들을 위해 흘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에 대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고리도전서1장 21절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라고 기록되어 전도만이 영혼을 구원할 방법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가복음16장15절에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라고 직접 명령하셨습니다.
이미 십자가로 인해 열려진 구원의 길을 모르고 죄로 비틀거리며 심판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로 우리가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한창 열정을 갖고 전도할 때는 학기의 맨 마지막 수업에게 항상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떤 반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중 계속 한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는 데 복음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눈 빛 임을 느낄 수 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이틀 후에 학교에서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축구 수업을 받던 한 남학생이 쓰러졌는 데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저하고 눈이 마주쳤던 그 남학생이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학생을 천국에 가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복음을 전하기를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 사람의 생명이 어느 날에 거두어질 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기의 유명한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을 아실 것입니다.
그가 어느 날 조찬기도회에서 영원을 준비 하라라는 말씀을 전했는 데 기도회가 끝난 후 케네디 대통령이 백악관에 가서 설교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할 수 있겠느나며 목사님을 청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마침 감기에 걸려 대통령에게 옮기게 될까봐 나중에 가겠다고 했는 데 결국 목사님이 백악관에 방문하기 전에 케네디 대통령은 암살 당하고 말았습니다.
뉴스를 접한 목사님은 간청하던 대통령의 애절한 얼굴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빌리 그래이엄 목사의 전기에는 그 때 가서 복음을 자세히 전해주지 못한 것을 일생 최대의 후회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 내일은 보장 된 날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관계가 서먹해질 것을 염려하고 왠지 구식 기독교인으로 여겨질 것 같아 전도의 말을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지 않는 다면 그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은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며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반드시 그 영혼을 구원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이 모든 사역들을 행하실 때 기도로 감당하셨다는 것을 살펴보려 합니다.
본문45절에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역을 신적 능력을 제한하시고 오직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하셨기에 기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했습니다.
악한 영을 대적하고 병을 고치시고 십자가를 감당하는 이 모든 일에서 주님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존하셨습니다.
마태복음12장28절에 예수님은 내가 만약 성령을 힘입어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라고 하시며 예수님의 능력이 성령을 힘입어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역의 중대 고비마다 기도하셨고 때에 따라 기도하셨고 밤을 새워 기도하신 기록이 성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6장12절에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마가복음29절에 말씀하시기를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라고 하시며 귀신을 내어 쫒는 사역도 기도하심으로 감당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밤새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새벽, 아직 어두울 때 일어나셨고 밖으로 나가셨고 한적한 곳 광야로 나가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하나님과의 연합 가운데 있었던 예수님도 이 땅에서 사역을 위해 혹은 하나님아버지와의 친밀함을 위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기도하셨다면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성경에는 믿는 자들에게 주신 많은 약속과 축복으로 넘쳐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야고보4장2절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기도의 특권을 사용하십시오.
기도의 특권은 오직 기도만으로 3000명의 고아를 먹여 살리고 5만번의 기도 응답을 체험한 조지뮐러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뮐러는 고아들의 끼니가 완전히 떨어져도 절대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고아들과 함께 빈 접시를 늘어놓은 식탁에 앉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손수 음식을 배달해 주셨습니다.
갖가지 이유로 갓 구워낸 빵과 우유를 실은 마차가 문 밖에 도달하는 기적이 수도 없이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영국의 추운 겨울날씨에 보일러가 고장 나 어린 고아들이 위태롭게 되었는 데 보일러를 수리하는 데 1주일이나 걸린다고 했습니다.
뮐러가 기도하러 들어가 1주일간 따뜻한 남풍이 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자 북서풍이 바뀌어 봄날 같은 남풍이 딱 1주일 간을 불었다고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작은 필요로부터 시작해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큰 문제에 까지 하나님의 도움심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의 기도가 아니면 구한 것을 받을 줄 생각 말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배우기 위해서는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교회 저녁기도회가 7시부터 9시 까지 실시되는 데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멀리 사셔서 참석이 어렵습니다.
오히려 다른 교회 분들이 오셔서 은혜 받고 가실 때가 많습니다.
멀리 계신다 하더라도 이 시간을 기억하셔서 적은 시간이라도 반드시 기도하셔야 합니다.
막상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절박한 순간에 쌓아둔 기도의 경험이 부족하면 기도하고 난 후에도 믿음이 생기지 않아 의심하고 결국 응답 받지 못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이며 세상을 향한 강력한 무기입니다.
매일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고 세상을 이기는 축복이 임하시길 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사역을 이젠 우리가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치 못할 것입니다.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을 품고 복을을 전하십시오.
복음전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는 받아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하여 매일 기도하십시오.
베드로전서4장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한주간 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시며 실천함으로써 승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민이 기도하는 집 1 (마가복음11장11절-25절) (0) | 2013.08.20 |
---|---|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마가복음9장14절-29절) (0) | 2013.07.10 |
향유를 부은 여인 (마가복음14장1절-11절) (0) | 2011.04.03 |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4장35절-41절) (0) | 2011.03.22 |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마가복음2장1절-12절) (0) | 2010.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