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17일자 중앙일보에 흥미로운 편지가 공개되었습니다.
24년전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0병철회장이 절두산성당의 0희봉신부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가 죽기 1달 전에 보낸 종교에 관한 24개의 질의서입니다.
0신부는 그 질문서를 카톨릭대 교수에게 보냈고 그는 이회장과의 접견날짜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회장은 그 질문의 답을 미처 듣기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절두산 성당에 묻혀있던 이 질문서가 24년 만에 세상에 다시 드러나며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던진 인생의 질문이 보통 사람들이 가진 문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질문에 답변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좀 어려우시면 6번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신은 왜 히틀러 같은 악인을 만들었는가?
8번 질문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어? 나도 그 문제 궁금했는 데...그러시면 곤란합니다.
이 질문들에 대해 아직 마음 속에 나름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좀 더 열심히 성경을 배워야 할 줄 믿습니다.
인간의 이런 원초적인 질문들은 이미 성경에 정확한 해답이 들어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24번 질문은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구의 종말에 대한 해답을 듣기 전 자신의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역사적인 지구종말 뿐 아니라 그보다 앞서 자신의 개인적 종말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그분의 질문을 보며 인간 내면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안타까운 동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기업을 일구고 세계 기업의 반열에 세웠지만 죽음 앞에선 조심스레 절대자의 존재와 내세를 물을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 고이회장의 마지막 질문인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에 대한 답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992년 시한부 종말론 다미선교회 이후 종말론을 얘기하면 일단 경계를 하는게 현실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아름다운 소망을 마귀의 계략으로 빼앗긴 셈이죠.
정통교회들이 종말론과 계시록 예언에 대한 가르침을 꺼리는 사이 이단에서 계시록 강해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게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역사의 마지막 열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구의 마지막 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고 주님의 가르침대로 대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인류의 마지막을 기록한 요한 사도의 계시록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우리들은 성경에 기록 된 말세의 예언들을 주의해서 읽고 말씀을 듣고 그 교훈하신 것을 지키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성령께서 설교 말씀을 통해 오늘도 우리를 깨닫게 하셔서 종말에 대한 바른 믿음과 결단을 허락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아멘.
먼저 본문의 전체적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주어졌는지를 알아야 좀 더 정확한 뜻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죠.
본문의 상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 고향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최후의 일주일 중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주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죠.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셔서 제사용 동물과 물품을 팔고 있는 어수선한 장사판을 둘러 엎으시고 성전을 청결케 하십니다.
제사장들과 논쟁을 벌이신 예수님은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진리를 거부하는그들에게 결국 심판을 선고하고 성전을 떠나십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노하신 마음은 헤아리지도 못한 채 바보같이 성전이 얼마나 아름답냐고 감탄들만 하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나 제자들이나 바라보는 주님은 한숨이 나오셨을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의 본질을 잃어버린 이 성전이 처참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예배가 없는 교회나 가정이나 개인에게서 주님은 떠나십니다.
제자들은 이 화려한 성전이 파괴될 것이란 말씀을 듣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63빌딩이 무너질 거라는 그런 예언을 들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3절에 보면 제자들이 은밀히 주님께 묻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께서는 로마군의 침략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처절하게 살육 당할 것을 상세하게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 사이 사이에 전 인류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을 섞어 놓으셨습니다.
실제 주님의 예언대로 주후70년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철저히 파괴되고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11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살육 당했다고 합니다.
그 때 유일하게 남은 것이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우는 서쪽 벽 일부입니다.
그리고 말씀 가운데 섞여 있는 인류의 역사적 종말에 대한 예언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입니다.
앞 30절에 보면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건 마지막 종말에 대한 예언이죠?
그리고 재림과 종말에 대한 말씀이 오늘 본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내용이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소중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일어날 확실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곧 오실 예수’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와 목회자 10명이 공동 집필한 이 책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재림 시계의 초침은 이미 멈추었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역사의 가장 끝 부분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이죠.
재림은 예수님께서 직접 여러 차례 말씀하셨고 성경 전체에 재림에 관한 말씀이 318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16장 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1장11절에는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성경에는 구약시대부터 수천 년에 거쳐 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고 불발 없이 모든 예언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마지막 종말에 대한 예언만 실현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길을 거부했던 사람들에겐 환란과 절망의 날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주님을 믿으며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에겐 기이한 영광과 가슴 벅찬 기쁨의 날인 줄 믿습니다.
성도라면 주의 날을 사모하고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요한복음14장 2절에서 주님은 십자가의 구속을 완성하고 떠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은 이 땅에 남아 마귀의 박해와 고난을 당하며 싸워야 할 제자들이 너무나 안쓰러우셨을 것입니다.
얼른 다녀 오셔서 천국의 아름다운 영광을 하루라도 빨리 주려고 서두르시는 마음도 느껴집니다.
어린 자녀를 두고 외출하는 부모의 마음 같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슬픔과 고난이 전혀 없는 보배롭고 아름다운 천국에서 만나시길 하루가 천년 같이 기다리고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가장 고대하고 있습니까?
저는 예수님이 오시는 것 보다 새로운 영혼들이 교회에 나오기를 더 고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청년들은 멋진 배우자를 주님보다 더 고대하고 있을지 모르죠.
월급 날을 고대하시는 분도 있으시겠네요.
물론 이런 것 모두 우리가 이 땅에서 바라고 고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바라고 기도하는 것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만 우리 근본적인 믿음 안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반드시 굳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부가 바랄 것은 오직 신랑이어야 맞는 것이죠.
우리의 신앙 속에는 내 죄를 대신해서 목숨을 걸고 날 사랑하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소망도 기대도 애틋함도 없이 덜컥 주님을 대면한다면 얼마나 낭패입니까?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신 그 주님을 대할 때 정말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생활을 잘 하며 평생을 사는 것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그리고 나서 죽은 다음 천국이 있으면 참 다행이고 없어도 크게 손해날 것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런 믿음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믿음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믿는 우리는 반드시 천국에 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증거는 비록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 해도 천국에 갈 거라는 마음이 자꾸 든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예수님이 재림하고 심판하실 것이 왠지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해서 이 확신과 믿음이 우리 성도님들 속에 더욱 굳게 심겨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다음은 재림하실 때와 시대적인 징조입니다.
본문의 앞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재림에 대한 징조들을 확실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의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같은 선지자들과 신약시대 예수님의 제자들도 계시를 받아 종말의 세대를 아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상이변, 지진과 기근, 나라 간의 큰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2천년 만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할 것이라고 예언되었습니다. 1948년에 이루어졌죠.
지식은 최고에 달하고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왕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면 끝이 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세대가 거의 마지막 세대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 중 죽기 전에 주님의 재림을 볼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41절에 주님이 재림할 때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 가신다는 기록이 있죠?
데살로니가전서4장16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보통 휴거라고 알고 있죠.
성경에 휴거라는 단어는 없고 한자 끌 휴와 들 거로 만든 단어입니다.
이 휴거가 7년대환란 전이냐 후냐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정확히 풀리지 않는 계시에 대해선 그냥 성경에 기록된 만큼만 믿는 게 안전합니다.
어느 날 하늘의 나팔소리가 들리고 어느 한 순간 우리 몸이 부활하신 주님의 몸처럼 영화롭게 변화되어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것입니다.
낮이 될지 밤이 될지 그 순간에 우리가 생존하고 있었다면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예배드릴 때 일어난 다면 정말 좋겠죠?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과 이 영광스런 순간을 기다리고 사모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36절 말씀처럼 마지막 그 날과 그 때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류 종말의 날은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신 비밀입니다.
심지어 예수님 자신도 마지막 날을 알기 위해 신적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마지막 심판 날에 대한 거짓 계시와 추측들을 원천봉쇄하시려는 것이죠.
종말의 대한 예언들 특히 계시록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사건이 기록 된 순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해서 그 날을 알아내지 못하도록 마지막 날의 영상들이 뒤섞여서 기록되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주님의 종말에 대한 예언은 그 날이 언제냐는 관심보다 그 때를 준비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날에 대해 모르셨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작년에 미국에서도 휴거 헤프닝이 있었죠.
헤롤드 캠핑목사와 추종하는 무리들이 5월12일에 지구의 종말이 시작된다고 공개적으로 재림을 기다리다 불발로 끝났죠.
얼마 전 캠핑 목사가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는데 문제는 그가 ‘세계종말이 가까웠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 말한 것입니다.
그 말도 틀렸죠.
그리고 사건의 결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하늘로 들려올라간다는 것은 단지 기독교 광신도들의 믿음이라고 기사화 된 것을 보았습니다.
잘못 된 종말론 뒤엔 사탄의 세력이 있어 진리를 우롱당하게 하는 것입니다.종말에 대한 어떤 개인적 계시에도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그 날과 때를 알리지 않으신 데는 당연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AD33년에 앞으로 2천년 후 종말이 온다고 말씀했다면 과연 누가 목숨을 걸고 신속하게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며 믿음을 지켰겠습니까?
내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올해 까지 놀고 내년에 믿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올해 죽는 사람은 영원히 회개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죠.
복음이 빨리 전해지지 않으면 또 수많은 사람들이 죄 중에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바로 오늘 주님의 재림할 수 있다는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내게 주신 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고 천국을 위한 삶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믿으시길 축원드립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마음껏 다닐 건강을 주시고 또 하루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작은 터전에서 감사하며 주의 날을 간절히 소망하는 성도님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다음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38절에 보면 노아의 홍수 심판 때 사람들이 다 안전하다 생각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날과 홍수심판 때와의 공통점은 이미 일어날 것이 확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100여년에 걸쳐 방주를 짓는 동안 심판과 의를 전파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아의 경고를 무시하고 마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일상을 누리기에 바빴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똑 같다는 것이죠.
분명 기독교는 종말을 예고하고 사람들은 종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구원받을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멀쩡한 태양 아래 홍수가 온다고 배를 짓고 있는 노아가 비정상으로 보였듯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역사를 심판한다는 말을 터무니없다고 듣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그날 방주의 문이 닫히고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당할 사람이 확연히 갈라졌듯이 마지막 날 홀연히 멸망이 이를 때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영원히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40절에 보면 밭에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하늘로 올리워 가고 한 사람은 남겨집니다.
두 여자가 마주 앉아 맷돌질을 하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인류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두 운명으로 영원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운명이 결정 될 그 날을 대비해서 성도들이 할 일은 깨어있는 일입니다.
주님은 깨어서 주님의 날을 사모하며 근신하여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복이 있으리라고 46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마지막 때 악한 영은 구원받은 자라도 미혹하고 시험합니다.
깨어서 믿음을 지키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게 어려운 일이기에 상급까지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긴 인생을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켤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모든 일들을 내려놓고 주일성수 하는 것만도 대단한 믿음입니다.
세상 재미도 얼마든지 우리를 육적으로 만족시켜 주거든요.
운동하고 문화생활을 누리고 풍요한 세상을 맛보며 사람들도 나름 행복을 느끼기에 전도를 하면 종교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의 신앙에서 그것 만큼 도 기쁨이 없고 아무런 감동과 은혜를 느끼지 못할 때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경이로움과 영적 체험으로 감격하여 방주의 설계도를 받습니다.
그러나 100년 동안 그에게 남은 것은 땡 볕 아래 조롱을 받으며 방주를 짓는 하루 하루의 힘든 순종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은혜와 구원의 느낌과 감격은 잠깐이고 남들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믿음을 지키며 매 순간 사는 게 참 힘들죠?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오히려 힘써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눈만 부릅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46절에 착하고 지혜있는 종의 말씀을 하신 것은 깨어있다는 것이 무언가를 행동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믿음은 신기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서 행하는 순간 현실이 됩니다.
말씀을 깨달으려고 억지로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비로서 감동시키십니다.
애써서 기도할 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그 때 비로서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것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마음에 분노를 참고 믿음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 평안과 위로가 부어지는 것이죠.
힘써 주님의 말씀을 지킬 때 우리는 믿음의 증거를 생생하게 체험하며 능히 깨어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시대에 깨어서 할 일이 무엇인지 주님께서 4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돌보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복음을 전하고 또 돌보아야 할 영혼을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우리 가족이고 친지이고 동료이고 먼 데 있는 땅 끝의 영혼들입니다.
마지막 까지 주님의 사랑은 여전히 믿지 않는 죄인들을 향해 계신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에게만 성도를 돌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베드로가 오늘 말씀을 다 듣고 이렇게 묻죠.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당연히 모든 사람, 모든 종에게 하는 말씀이란 뜻이죠.
모든 사람에게 딱 맞는 사명이 크던 작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우리 믿음이 연약해도 섬기라고 맡겨주신 영혼이 있고 그들을 돌볼 때 주님은 신실하게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악한 종은 주인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당시에 진정으로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던 형식적인 종교인들입니다.
또 오늘 날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지 않고 종교생활만 하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을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짐지기 싫어하고 영혼들을 돌보지 않고 방종하고 방탕하게 살아갑니다.
그의 행동을 보면 주인에 대한 존경도 사랑도 충성심도 없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동료들을 때렸다는 것은 믿음을 도와주기는 커녕 바른 믿음을 갖는 걸 방해했다는 것이죠.
그는 주님의 칭찬과 천국의 상급을 위해 이 땅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밴 다이크는 이런 풍자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부자가 천국에 가서 천사의 안내를 받으며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한 곳에 정말 아름다운 멋진 집이 있었습니다.
부자가 깜짝 놀라 도대체 저 집이 누구의 집이냐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거느리고 있던 당신 종의 집이오’라고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부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천국에서 이런 집을 소유할 수 있게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대답합니다.
천국에는 실수도 오류도 없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그가 보내온 모든 재료로 이 집을 지었습니다.
잠시 걷다 천국에 어울리지 않는 아주 허름한 집을 보았습니다.
아니 도대체 저 집은 누구의 집입니까?
천사는 저 집은 당신의 집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내 집이 저렇단 말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대답합니다.
천국은 오류도 실수도 착각도 없습니다.
이 집은 당신이 보낸 그 모든 재료로 지어진 집입니다.
문학가의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지만 오늘 주님의 말씀이 이와 다르지 않은 줄 믿습니다.
천국에 쌓아두는 우리 수고의 영원함을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복 있는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믿음을 도전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재림 전에 우리가 구할 영혼을 건지고 돌보시길 원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깨어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구원의 축복만이 아닌 이 땅의 삶도 풍성한 영적 은혜를 누리는 걸 믿고 행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의 날은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 때와 같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 문을 닫을 때 까지 하늘은 여전히 쾌청했고 사람들은 아무 징조 없이 일상의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그렇게 예기치 못하게 다가옵니다.
이 마지막 세대는 지금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최근 교계가 베리칩 문제로 논란이 많습니다.
베리칩은 개인의 생체 정보와 유전자를 담아 몸에 이식하게 만든 쌀 알 크기의 칩입니다.
이 속엔 메모리와 안테나 등이 들어있어 GPS 기능을 할 수 있고 인간의 체온에 의해 충전하는 방식으로 외부 전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체온 변화가 적은 이마와 손등에 이식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합니다.
이미 미국에서 2001년부터 의료목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최근 전국민의료보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며 미국인 모두에게 칩을 삽입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테러리스트를 식별할 수 있고 위치정보를 제공하므로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고 은행정보를 함께 넣어 신용카드를 대신할 수 있다는 이점을 내세우지만 사생활 침해 논란이 되고 있죠.
교계에서는 이 베리칩이 요한계시록에 나온 짐승의 표 666이니 절대로 받아서는 안된다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므로 다른 어떤 것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으니 베리칩을 이식한다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2천년 전 요한사도는 물건을 사고 병원에 가기 위해 사람들이 이마와 손등에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을 목격하고 놀랍게 여겨 계시록에 기록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종말의 조건들이 갖추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박국 2장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 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예수님은 누가복음21장 34절에서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명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그리고 마지막 날을 두고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은 다름 아닌 내게 주신 사명 내게 맡긴 영혼들을 잘 돌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돌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 내가 섬겨야 할 이웃들, 우리 교회의 가족 된 성도들을 사랑으로 잘 섬기며 착하고 충성 된 주님의 종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이 모든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행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 오실 날을 사모하며 주님께 칭찬받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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