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하

네 집을 세우리라 (역대상17장1절-15 )

남수연 2012. 9. 12. 14:29

 

성경인물 중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아마 다윗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신앙적으로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인정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가장 존경받는 왕으로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참 부러운 사람이죠.

오늘 본문은 성전 건축을 원하는 다윗왕과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건축의 임무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주어졌고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받으시고 영원한 축복을 약속해주시는 내용입니다.

축복의 내용이 너무 좋은 데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런 축복의 사람이 될까를 배우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합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런 하나님의 과분한 사랑을 입게 되었는 지를 살펴보며 우리도 그 믿음을 따르고 그에게 약속하신 축복들도 우리의 축복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먼저 다윗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그의 인격을 다해 믿은 사람입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사람들의 생각은 주변나라들이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을 섬기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더 화려한 신전을 가진 세속적인 가나안종교를 선망하고 하나님신앙과 혼합시키다 결국 하나님을 배신하게 된 것이죠.

다윗이 그런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바로 알고 믿었다는 것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완성 된 신구약 성경을 다 받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현대 기독교인들 중에도 다윗만큼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인 성전 건축도 하나님에 대한 그의 각별한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랜 고난 끝에 드디어 왕 위에 오른 다윗은 아름다운 백향목 궁전에 거하는 영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절에 보니 하나님의 언약궤가 여전히 천막 안에 모셔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본래 언약궤는 광야 40년 동안 여기저기 옮겨 다녔던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다니기 위해 이동식 성전인 성막안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서로 언약을 맺은 것을 상징하고 그 안에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는 상자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궤 위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성막 위엔 구름으로 가득하게 덮히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 가운데 계신 것을 멀리 있는 백성들이 다 보았다고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막에서는 또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못했을 때 속죄 받는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계명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집트에서 4백년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에게 무슨 고상한 윤리가 있고 양심이 살아있겠습니까?

눈만 뜨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백성들을 위해 소와 양과 비둘기 같은 제물을 대신 죽여서 속죄할 수 있게 한 것이 성막의 제사법입니다.

이 성막 제사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실 예수님의 속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동물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속죄해 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죠.
구약성경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들을 발견하는 게 성령의 은혜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읽을 때 '어, 예수님이시다!' 깨닫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기쁨인 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언약궤와 성막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광야에서 40년 훈련이 끝나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한 백성들은 여전히 성막을 치고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이기려는 욕심에 언약궤를 메고 나갔다가 전쟁은 패배하고 언약궤를 뺏기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언약궤를 탈취한 블레셋은 하나님의 진노로 나라에 전염병이 돌자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냅니다.

언약궤는 바로 국경너머 있는 아미나답이라는 사람의 집에 내려졌습니다.

그 이후 언약궤는 70년이란 세월 동안 그의 집에 거의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얼마든지 주님을 제쳐두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 바로 앞 장에서 왕위에 오른 다윗이 다윗성에 새 장막을 치고 드디어 법궤를 성으로 모셔오고 예배 제도를 확립하는 모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 오는 다윗은 기쁨을 억제할 수 없어 왕의 신분으로 바지가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런 예배의 감격과 기쁨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나 언약궤를 가까이 모셔온 것으로 다윗은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막 안에 모신 언약궤가 마음에 걸린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많은 믿음의 사람들 중에 다윗을 각별히 생각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을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격을 자신의 온 인격을 다해 섬기는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막연하게 혹시 하나님이 계시려나 하나님을 한 번 믿어볼까 하는 생각에서 믿음이 출발합니다.

그러나 점차 살아계셔서 나를 알고 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을 알고 믿는 믿음으로 반드시 변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이 진짜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도우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이 우리가 잘 아는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나타나죠.

아직 소년이었던 다윗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인 장수 골리앗을 보고 격분해서 돌맹이 다섯 개를 들고 싸우러 나가지 않습니까?

그가 무모한 혈기에 앞 뒤 못 가리는 어린 나이라서 그랬을까요?

목숨이 걸리면 아이들도 도망칠 줄 압니다.

다윗이 실제로 살아계셔서 자기를 지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특히 귀하게 여기시고 영화롭게 축복하신 것은 그가 완벽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그도 상당한 죄를 지었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기록한 많은 시편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알고 진심으로 사모했던 지가 잘 나타납니다.

시편 143편에서 이렇게 노래하죠.

내가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격적으로 믿고 있었던지가 나타나는 사건을 또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쫒겨 다닐 때 있었던 특별한 사건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망치던 다윗이 먹을 것이 없자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린 거룩한 떡을 받아먹은 사건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거론하십니다.

마태복음12장 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게 책망입니까, 칭찬입니까?

분명 율법을 어기고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떡을 먹은 다윗을 예수님께서 두둔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율법이 결국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율법이 정한 것이라도 위급한 상황에서라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목숨이 경각에 있을 때 다윗은 자신 있게 하나님의 떡을 먹었던 것이죠.

아버지 것이니까요.

예수님께서 다윗의 믿음이 옳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율법 안 지키고 칭찬 받은 사람은 다윗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저 높은 보좌에 앉아 준엄하게 우주를 통치하는 창조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본문13절처럼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는 그 실재적인 사랑의 관계를 천국에서가 아닌 이 땅에서도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그렇게 인격적으로 알고 섬겼기에 누추한 장막 안에 모셔져 있는 하나님의 법궤가 그렇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죠.

시골 부모님께 다녀와서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 드려야 겠어요 하는 것이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제가 아는 싱가포르에 사시는 한 권사님은 한국에 오시면 장미아파트에 혼자 사시는 친정어머니 댁에서 지내십니다.

나이 드신 노모의 살림이 얼마나 구차스럽겠어요?

권사님이 한국에 오실 때 마다 잘 닦이는 세제라고 무거운 세제통을 한 아름씩 꼭 들고 오는 걸 보았습니다.

화장실이며 가스렌지며 냄비며 자기 있을 동안이라도 반짝거리게 닦아 드리고 깨끗하게 모시고 싶은 것이 딸의 마음인 것이죠.

다윗의 마음이 항상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데 어떻게 하나님이 그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도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고 우리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그러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도 서로를 알고 친해지려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져야 하죠.

하나님이 기록하신 이 성경말씀을 잘 읽고 배우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마음으로 깨달아 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5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올라오게 한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있으며 이 성막과 저 성막에 있었나니

그 백성을 따라 장막에서 장막으로 함께 옮겨 다니시는 하나님을 묵상해 보면 지금 나와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게 되는 것이죠.

또 기도할 때 우리를 들으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알아가게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보혜사 성령께서는 이렇게 바르게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점점 더 하나님을 잘 알고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우리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되고 나를 사랑하는 주님을 깨달을수록 하나님과 관련 된 모든 일이 귀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올 때는 어색했지만 어느새 예배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성도들을 위해 과자도 만들어오고 쌀도 가져오고 화초도 심고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바쁜 하루 중에도 말씀을 읽고 기도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존경과 감사는 눈에 보이는 모양으로 살며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조금씩 더 다가가는 모습을 주님께서 분명히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버지의 영광에 걸맞지 않는 거처를 걱정하는 다윗을 바라보며 다윗의 옛날을 회상하십니다.

그는 이새의 막내 아들로 아무 발언권도 존재감도 없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지금 그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왕위에 오르고 이제 하나님의 처소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깊으신 것입니다.

매일 필요한 거나 사 내라고 조르기만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집 안 살림을 걱정하는 소리를 할 때 부모 마음에 감회가 남다릅니다.

부쩍 성장한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걱정거리를 준 부모 마음에 안쓰럽기도 하죠.

왕의 권력으로 성전하나 짓는 게 뭐 별거냐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왕 시절 이스라엘은 철저히 블레셋과 이웃나라에 탈취당하고 가난한 빈민국이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다가 기가 막혔던 것이 사울왕 시절에 칼을 가진 사람이 왕과 요나단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13장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 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전쟁하러 나간 백성들 손에 들려 있는 게 무기가 아니라 농기구 나부랭이 였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이란 나라가 이스라엘이 병기를 만들까봐 철공을 다 잡아갔던 것이죠.그래서 심지어 괭이나 도끼 같은 농기구를 수리할 때도 블레셋사람들에게 내려갔다고 성경엔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얼마나 이스라엘이 빈곤하고 난감한 상황인 지 알 수 있죠.

그러니 그 뒤를 이어받은 다윗 왕에게 무슨 왕실 재산이 있습니까?

그가 후일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맡기며 그동안 모아놓은 건축에 쓸 모든 것들을 넘겨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다.

그가 모든 것이 주어진 풍족하고 부강할 때가 아니라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길 위해 준비했으니 그 마음이 더욱 소중한 것이죠.

우리나라 전쟁 직후 사진을 보면 처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 애기를 포대기에 들쳐 없은 여인들이 가마니 깔아 놓은 천막교회에서 얼마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까?

그 때 등에 업혀있던 아이들이 다 복을 받은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들 자녀를 위해 기도하시기 축원드립니다.

이스라엘이 빈곤 중에 축복받은 것도 하나님의 종 다윗이 나라를 다스리면서부터입니다.

가난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으면 반드시 벗어나게 되어 있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윗이 아직 도처에 대적들이 있고 수중에 별로 가진 것 없을 때 능력에 지나친 성전 건축을 꿈꿨던 것이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왜 모르시겠어요?

우리가 몸과 마음이 힘든 중에도 애써 주님을 섬기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주님을 따르는 것을 다 알고 기억하시고 계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 땅에 살아가는 날 동안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에 감동을 드리고 잔잔한 기쁨을 드리는 자녀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도 역시 목동 다윗처럼 별 소망도 없는 일에 매달려 힘든 인생을 살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셔서 아버지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까?

내 인생이 눈물과 절망 뿐인 별볼일 없는 인생에서 얼마나 영광스럽게 바뀌었는지를 알기에 우리는 절대로 믿지 않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목동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 다윗으로 바뀐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요내가 죄의 종이던 신분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로 바뀐 것이 다윗이 왕이 된 영광보다 실은 더 한 축복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다윗과의 아름답고 인격적인 관계가 그의 축복의 비밀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은 말씀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인격을 더 풍성하게 깨닫는 지식 가운데 자라나길 원합니다.

그래서 다윗과 같이 항상 주님의 인격을 신뢰하며 진심으로 섬기며 다윗과 같은 축복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다음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축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8절에 보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고 존귀한 이름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과 동일한 약속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다윗은 그 평생에 수많은 대적 가운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지은 74편의 시편을 보면 한결 같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평탄한 길만 있진 않습니다.오늘 약속이 다윗의 대적을 아예 없애버리고 눈에 보이지도 않게 하시겠다는 게 아닙니다.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셨다고 말씀하시죠?

우리의 온갖 대적들이 바로 우리 앞에 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대적이든 하나님이 우리 코 앞에서 그 모든 대적들을 멸하시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로 질병이 가시처럼 우리를 찌르고 재정적인 압박과 가정의 힘든 문제들이 우리 코 앞에 있다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할 때 반드시 모든 문제는 풀리고 모든 고통은 사라지게 하실 줄 믿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어린 청년 다윗이 차기 왕으로 선정 된 뒤 무려 십오년을 그를 시기하고 죽이려는 사울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노숙자가 되어 광야의 동굴을 전전하고 때로 타국에 가서 수염에 침을 흘리며 미친 사람 행세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거친 광야의 날들이 있지 않습니까?

다윗은 먹을 것 없이 떠돌고 땅바닥의 자갈이 잠자리를 대신할 때 눈물도 흘렸지만 오직 도우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포기하고 생명을 위해 타국으로 멀리 도망갔다면 오늘의 다윗왕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도망치지 않고 견뎌야 될 때가 있습니다.

때로 고난의 풀무불에 있을 때에도 믿음으로 주님의 축복을 바라고 인내하면 마침내 대적은 사라지고 형통한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때로 이해 못할 극심한 시련이 바로 코 앞에 닥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삼척에 있는 교회에서 가스폭발이 일어난 사건을 뉴스로 보셨을 것입니다.

은0교회 김0근목사님이 서울에서 목회를 하다 삼척에 있는 탄광촌에 내려가 소외 된 아이들을 돌보고 무의탁 노인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날 돌보던 아이들에게 줄 찐빵을 찌려고 사모님이 가스불을 켜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고 몸에 70% 화상을 입었던 사모님은 결국 며칠 전 소천하고 말았습니다.

새까맣게 그을려 생사를 넘나들며 지독한 화상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들의 치료비만 3억이 넘는다는 데 제가 다 막막하더군요.

김목사님이 하나님 앞에 앉을 때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겠습니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고난들을 지금은 다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모든 환경과 우리의 대적인 원수 마귀를 이기고 승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 김목사님께는 사회단체들의 온정의 손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고난당하는 주님의 교회를 돕기 위해 그 지역 주민들이 팔을 걷어 부쳤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잘 되면 좋겠지만 혹시 잘 되지 못해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여전히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고난을 이기고 명예로운 믿음의 가문을 일으킨 간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정이 그런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또 다른 하나님의 축복은 다윗에게 세상에서 존귀한 이름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기록 된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예수라는 우리 주님의 이름이십니다.

1499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이 바로 다윗이라는 이름으로 104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보다 모세보다 다윗의 이름이 더 많이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얼마나 존귀하게 되었습니까?

다윗이란 이름은 지금도 하나님을 사랑했고 영화로운 인생을 살았던 가장 복된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열정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존귀하신 우리 주님의 이름 앞에서 다윗의 자손이라 불리는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다윗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마음이 있어 존귀한 이름을 받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우리 삶의 중심으로 점점 모셔오기를 축복드립니다.

사무엘상2장30절은 말씀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을 존경하며 예배하는 우리들을 가정과 직장과 인생 가운데 존경받고 인정받는 존귀한 사람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 또한 믿음과 기도로 성장 해 하나님 나라와 이 땅에서 아름답고 존귀한 이름으로 세워지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또 10절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가 너의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누구나 이 세상의 모든 풍파를 견뎌낼 견고한 집을 세우길 원합니다.

돈이 그 울타리가 되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모두 돈을 좇아 죽기살기로 달려가는 것이고 명예와 권력을 좇아가는 것이죠.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세계가 인정합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잘사는 사람들의 연합체인 경제협력기구 OECD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소득2만불 이상, 인구5천만명을 가진 나라끼리 모인 20-50 클럽에 일곱 번째로 가입했습니다.

이 클럽에 들어있는 나라가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입니다.

얼마나 기적 같은 일입니까?

이 정도면 우리 개인의 가계도 든든하고 선진국의 안정과 부를 다 누려야 맞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당신은 얼마나 행복하냐는 설문에 OECD 34개 국가 중 우리나라가 32위를 차지했습니다.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친구가 있냐는 질문에는 우리나라가 꼴찌를 차지했습니다.

국민들의 가정이 세워지는 게 아니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를 살해 한 폐륜 아들의 실형을 판결하며 여판사가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들을 일류로 키워보려는 어긋난 모정은 외고에 떨어진 아들을 골프채로 때려가며 일류대학을 위해 혹독하게 몰아 부쳤습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시달려야 했던 아들은 자고 있는 어머니 목에 칼을 들이 대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의 최후 진술이 기가 막히더군요.

어머니가 찔려서 죽어가며 한 말이 나는 죽어도 좋지만 너는 이러면 인생이 망가진다며 아들을 만류했었다는 것입니다.

죽어가면서도 아들을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어머니의 모정이 남아있었건만 성공이 무엇이기에 아들의 마음을 그렇게 다치게 했는지요.

남들은 돈 있고 똑똑한 아들 두었다고 부러워하는 가정이었지만 모든 것은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어깨를 들먹이고 우는 것을 보던 여판사도 결국 눈물을 흘리며 어미의 마음으로 아들의 장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약속했다는 기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주인이 되셨다면 얼마나 행복했을 가정입니까?

하나님이 가정을 세워주시고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실 때 흔들리지 않고 세파를 이겨나갈 견고한 집이 될 줄 믿습니다.

시편 127장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염려할 때 하나님은 오히려 다윗의 집을 세워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늘 우리 마음을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성도들의 가정을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어 하는 다윗의 간절한 진심을 아셨지만 그의 소원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역대상22장에서 다윗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피흘리고 죽는 것에 대해 무심하지 못하십니다.

온 인류와 생명의 창조자인 하나님께는 참새 한 마리도 아끼시고 한 사람의 죽음조차 큰 고통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상징인 성전은 온순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짓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1절을 잘 읽어보시면 다윗의 씨 중 하나가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히 하신다고 말씀하죠.

이 말씀 속에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사람들은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과 세우신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을 말씀합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예수님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죠.
여기서도 우리가 '어 예수님이시다!'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비밀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의 이 사랑을 항상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마음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을 잘 섬기고 순종해서 우리의 대적을 멸하시고 우리 이름을 존귀하게 하시고 우리의 집을 견고하게 세워주시는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2012.9.9. 주는나의산성교회 주일설교.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