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윗 왕 시대에 있었던 인구조사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인구센서스가 10년에 한번 씩 실시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를 통치하는 데 있어 인구조사와 같은 여러 가지 통계가 필수적이죠.
센서스란 어원이 과세하다에서 나온 것 처럼 세금을 거두고 군인을 징집하기 위해서 인구 통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대 왕들도 자신의 통치를 위해 통계들을 이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 왕의 인구조사로 이스라엘이 큰 곤욕을 치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인구조사에 대한 재앙이 담긴 본문으로 인해 서양역사에서 오랫동안 인구조사가 터부시 되었다고 합니다.
17세기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할 때 비로서 부분적인 최초의 통계가 활용되었습니다.
사망자의 수를 조사해서 전염병이 진정되나 악화되나 사망자통계표를 만든 것이죠.
그런데 그나마 이 통계조사 뒤에 있던 불편한 진실은 왕실이 피난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통계를 이용해 돈을 벌은 일화로 유명합니다.
당시 파리시에서 발행한 복권의 당첨 지급금이 복권 전체 판매금액보다 더 크다는 것에 착안해서 장안의 복권을 모조리 사들여 당첨금을 모두 받아 한 몫 챙겼던 것이죠.
파리시에서 복권을 왜 만들어 팔았는 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어떤 분야건 통계가 없이는 제대로 일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찾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국음식 중 제일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조사해 통계를 냈더니 삼겹살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서울시에서는 이번 통계를 바탕으로 관광아이템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통계란 것이 사실은 허구인 경우도 많습니다.
오죽하면 서양 속담에 세상에는 세 종류의 거짓말이 있는 데 거짓말, 지독한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통계를 조작해서 사용하려는 유혹이 있게 마련입니다.
스타벅0 커피에서 자체 조사한 통계라고 발표한 걸 보니 커피가 몸에 좋다고 생각한 사람이 69%나 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커피가 몸에 좋다고 생각할 지 좀 의심스럽죠?
독립전쟁 중에 미국은 적군에게 위협을 주기 위해 인구를 과장해서 부풀려 보도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 왕도 하나님의 진노를 무릎 쓰고 인구조사를 했지만 요압이 의도적으로 두 지파를 빼놓아 결국 정확한 통계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정치와 땔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통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도 이 통계를 정치에 좀 이용해 보려다 큰 낭패를 당하고 맙니다.
뒷 부분에 보면 인구조사에 결과 이스라엘 백성 7만명이 전염병으로 죽는 징벌을 받게 되죠.
성경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인구조사를 한 것이 무엇이 그리 큰 잘못이라 그런 벌을 받아야하냐고 말합니다.
오늘은 이 이스라엘의 인구조사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와 다윗 왕의 실책을 통해 우리의 믿음과 삶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성령께서 오늘도 풍성한 은혜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첫째로 인구 조사가 도대체 왜 죄가 되는 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민수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켜 출애굽한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게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머릿 수에 들어갔다는 것은 곧 죄의 노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30장 12절부터 모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들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구조사가 금지된 것은 아니고 조사 된 사람들은 반드시 생명의 속전을 드려야 한다는 법입니다.
생명의 속전이 없으면 계수되었다 해도 질병으로 죽고 절대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 성도님들 믿음의 수준이 아주 높아지셔서 이 정도면 이 말씀 속에 내포 된 뜻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리고 그 속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신약성경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6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 할 것이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반드시 드려야 했던 속전은 바로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유일한 생명의 속전도 예수님이십니다.
인구조사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을 세는 것이고 반드시 예수님을 상징하는 생명의 속전을 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수되어진 그들에게 생명의 속전이 지금 없는 것이죠.
당연히 경고되어진 대로 백성들은 질병으로 죽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다윗이 겁도 없고 무식해서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자기의 임의로 통계를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마치 자기 소유물 처럼 세어본데다 속전이 뭔지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인구 조사가 왜 잘못 된 이유입니다.
두 번 째로 그렇다면 믿음이 좋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불리웠던 다윗이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는 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집권 후 국가가 안정되자 다윗왕의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탁월한 영성과 믿음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다윗 왕과 함께 세트로 떠오르는 인물이 골리앗입니다.
다윗과 골리앗, 믿음이 없는 분도 웬만하면 다 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던 블레셋 장사 골리앗이란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아직 어린 나이의 목동 다윗이 그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에 격분했습니다.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 돌을 받아라 하고 물맷돌을 날려 한 방에 그를 쓰려뜨리죠.
그 후 사울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다윗은 이스라엘이 도저히 감당 못했던 가나안의 나라들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서 다 정벌해 갑니다.
그의 작전은 오직 한 가지 였습니다.
하나님을 작전의 총사령관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싸울까요 말까요
지금 갈까요 기다릴까요?
항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이 하란 대로 했기 때문에 승리는 항상 그에게 돌아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써도 세상이 절대 내 시나리오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내 인생을 인도해주시길 맡길 때 주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잠언16장3절에서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뭘 모를 때는 내 힘으로 하겠다고 덤비지만 인생에 크고 작은 실패를 통해 경험이 생기면 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겠다고 나서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의 능력과 지혜는 부족하고 우리를 대적하고 괴롭게 하려는 악한 영의 세력은 우리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님께 아예 몸을 기대고 의존하는 어린 아이 같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오히려 세상에 대해서는 대범하고 겁 없이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천진하게 의지했던 다윗은 그 누구도 당할 수 없었던 강한 장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랬던 다윗이 안정 된 왕권을 갖고 태평성대를 누리자 하나님을 멀리하고 오히려 그 믿음이 점차 약화되고 맙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인간의 죄성이 강해집니다.
부강한 나라를 이룬 자신의 업적에 도취되어 교만이 들어오고 자기의 영광을 자꾸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남들 앞에 더 인정받고 싶고 대접받는 자리는 좋지만 낮고 힘든 자리는 거들 떠 보기도 싫어지면 교만이란 레이더에 딱 잡힌 것입니다.
본문의 앞 장에 보면 1 해가 바뀌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요압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암몬 자손의 땅을 격파하고 들어가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 라고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가나안에 주기적인 전쟁이 있었습니다.
왕들이 전쟁에 앞 장 섰는 데 다윗 왕은 그냥 예루살렘 궁에 있고 군대장관 요압이 나가 대신 싸웠다는 것입니다.
집권 초기엔 주님과 의논하고 주님을 의지해 크고 작은 적들과 싸웠지만 이제 대왕이 된 자신이 저기 나가 싸울 군번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성경은 이어서 한 가지를 빼놓지 않고 기록합니다.
앞 장 2절에 보면 다윗이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왕관을 빼앗아 중량을 달아보니 금 한 달란트라 그들의 왕관을 자기 머리에 쓰니라
역대기의 저자가 묘한 기록을 한 것이 느껴지십니까?
다윗이 요압 장군이 이겨놓은 전투 현장에 슬그머니 나타나더니 전리품인 화려한 왕관을 뺏어 자기 머리에 썼다는 것입니다.
굳이 빼앗았다는 표현을 한 것 속에는 다윗의 이런 믿음의 타락과 함께 인격적인 결함도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왕이라고 부르던 다윗이 스스로 왕관을 머리에 얹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노래하던 다윗이 스스로 왕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았던 이스라엘을 어느새 자기 백성으로 알고 숫자를 헤아려 뿌듯한 영광을 맛보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더 영화롭게 하시고 더 높여주시는 줄 믿습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자신을 높이려던 다윗 왕은 과연 높아졌습니까?
천만에 말씀이죠.
오히려 그의 권위는 추락되고 신하인 군대장관 요압이 그의 잘못을 가르치려들지 않습니까?
그리고 고의적으로 명령을 거역하고 인구 수를 누락시키며 다윗 왕을 무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을 인정받을 때 사람들에게도 인정과 존경을 받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이 세상에서나 가정에서나 존경받는 자리에 세우시고 높이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김대0대통령 시절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옷 로비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건은 당시 신0아그룹 최0영회장이 외화 밀반출 사건으로 구속됨으로 시작됩니다.
최회장 아내가 당시 김0정법무부장관 아내에게 접근해 남편의 석방을 위해 당시 1300만원하던 라스포사의상실의 호피 코트로 로비를 시도했다는 사건입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최회장 부인이 장관부인이 코트비용을 강제로 요구했다고 폭로한 것이죠.
이 사건으로 최초의 특검제도가 도입되고 청문회도 열렸습니다.
그런데 청문회에 출석한 부인들이 제각기 다른 말을 하는 바람에 결국 진위를 캐지 못하고 끝난 황당한 사건입니다.
세간에는 우스개 소리로 이 사건으로 밝혀진 것은 앙드0 김의 본명이 김0남이라는 것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희한한 사건의 중심엔 재임 15일 만에 옷을 벗고 구속 된 김0정법무장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김영0대통령 시절 검찰총장으로 부름을 받습니다.
주변에서는 그의 고향이 호남이라 검찰총장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밤 비밀리에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습니다.
대통령의 몇 가지 질문에 그는 무슨 대답을 하는지도 모르게 잔뜩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의 책상에서 한 아름 되는 큰 검은 책이 튀어 올라오는 환상이 보였습니다.
마치 제트기가 지나가며 바람을 가르는 세찬 소리와 함께 성경책이 그의 앞으로 날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놀라 팔을 휘저으며 각하, 성경이 있네요. 성경이 있네요.라고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책상 위에 작은 성경책 한 권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고 대통령은 아무 소리 않고 그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경솔한 행동을 했으니 다 틀렸다고 생각하며 집무실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모든 사람들의 예측을 뒤 엎고 그는 검찰총장으로 임명됩니다.
김대통령이 몇 년간 책상에 놓아 둔 성경책을 언급했던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는 데 그의 행동이 하도 의미심장해서 그를 발탁했다는 것을 나중에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은 자리에 세우셨다는 것을 알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잘 나가는 자리에 앉자 어느새 교회와 믿음은 뒷 전으로 밀려가고 말았습니다.
술도 잘 마시고 일도 잘한다는 얘기를 들으려고 거의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출세만을 생각했고 점점 권력에 도취되어 갔고 하나님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김대0대통령 정부에서 더 승승장구 하는 듯 하더니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올라갔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가 자기의 능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높은 왕좌에서 추락하여 곤두박질을 당합니다.
임명 일주일 만에 황당한 옷 로비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별의 별 조사와 청문회에 출석 과정에서 자살을 생각 할 뼈 아픈 수모를 당하고 결국 구속 되고 말았습니다.
구치소로 송치되던 중 운전을 맡은 검찰 직원이 갑차기 차를 세우더니 총장님 도망가십시오. 하는 순간 그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한 때 순시했던 구치소에 죄수로 다시 오게 될 줄이야. 그날이 참 추웠더라고 그는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때 기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없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갑자기 그의 마음에서 솟구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둠의 터널에 막 들어선 순간 하나님의 빛이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난생 처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느끼는 순간 수치심도 절망감도 다 사라지고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기쁨이 몰려 왔습니다.
그는 비로서 교만했던 자신을 회개하고 그를 높은 자리에 올려주었던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눈에 변호사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석방 될 무고하게 갇힌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그의 삶에 다시 새로운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 김0정 집사는 억울한 사람을 위해 무료법률사이트를 운영하며 하나님만 그의 삶에 주인으로 모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실 때 겸손하게 감사하며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시길 축복드립니다.
혹 수치와 절망의 나락에 곤두박질 당할 때라도 우리의 이성과 지각을 뛰어넘는 주님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해주시길 축원드립니다.
그 가운데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하고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영적 축복이 반드시 숨어있음을 믿으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아멘.
믿음이 약해진 다윗에겐 교만과 함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인구조사 뒷면엔 가나안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5절에 보면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즉, 전쟁에 나갈 만한 병력을 조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골리앗을 대적하던 어린 다윗이 자기 입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무엘17장47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하나님을 의지했던 손을 놓자 그의 마음에 두려움이 임하고 칼과 창을 의지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놓는 것은 두려움을 붙드는 것입니다.
미래가 두렵고 일의 결말이 두렵고 벌어지지도 않은 걱정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을 잡고 끝없이 우리 앞에 벌어지는 영적 전투와 삶의 문제들을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그리고 다윗 왕의 믿음이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은 데서 온 결과입니다.
신명기17장18절부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장차 왕을 세울 때 규례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그런데 그는 우리가 아까 읽었던 민수기의 생명의 속전에 대해 몰랐습니다.
그의 재임 중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우리가 믿음의 길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말씀을 따라 가야 할 줄 믿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를 받고 인도를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우리의 믿음이 약화되고 말씀이 멀어질 때 우리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에 떨어질 줄 모르고 원수 노릇을 하는 마귀는 기회만 되면 우리가 넘어질 만한 계략을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막이 사라지면 지체 없이 사탄의 공격을 받고 미혹을 받는 것이 연약한 인간입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사건을 기록한 사무엘하 24장1절을 보면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셔서 발생했다고 기록합니다.
다윗 왕만 믿음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기대를 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고질적인 이스라엘의 죄목인 우상숭배와 영적 육적 타락을 말씀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심판 해 돌이키게 하시려고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자 곧 사탄의 공격이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대단한 것 같지만 정말 별거 아닙니다.
작은 시험에도 넘어지고 하찮은 유혹에도 흔들리는 게 우리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지 않으시면 넘어지게 되어있고 보호막을 거두시면 순식간에 마귀에 붙들리는 게 인간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 크게 진노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죄와 악행이 더 두고 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 왕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에 대한 댓가를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것이 우주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 방법입니다.
오늘 이들의 죄의 결과 9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선견자 갓을 통하여 세 가지 형벌 중 선택하도록 하십니다.
왕으로서 마땅히 백성들을 올바른 믿음을 갖고 이끌지 못한 다윗 왕에게 그 징계를 스스로 선택하게 하십니다.
그가 선택한 한 가지 형벌이 그대로 자신과 백성들에게 닥치는 두렵고 곤혹스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본장의 13절에 보면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라고 절규하는 것을 봅니다.
죄의 선택은 곧 형벌을 선택하는 것임을 하나님은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에 닥치는 혼란과 시험과 어려움이 대부분 우리 스스로 선택한 죄의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고 연단하신다고 우리가 말하지만 사실 그러실 수 밖에 없도록 이미 우리가 범죄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결국 다윗은 세가지 형벌 중 전염병이 이스라엘 땅에 퍼지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 전염병으로 7만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바라보던 다윗 왕은 예루살렘을 치려하는 심판의 천사를 보고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백성을 옳은 길로 이끌지 못하고 함께 죄에 빠지게 한 자신의 죄로 인해 백성이 죽어감을 보고 심판의 무서움에 몸서리를 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그런 죄와 심판 속에서 살았을 죄인들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로 믿음의 문을 통과하여 구원의 여정에 들어섰음을 감사드립니다.
매일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고 기도로 이길 힘을 받으며 영적인 승리를 거두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펴볼 것은 심판 중에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본장의 14절은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심판 받아 마땅한 죄인을 심판하시고 오히려 하나님이 후회를 하고 계십니다.
매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싫어하고 죄 중에 살아가는 우리가 뭐 그리 대단해서 하나님이 징계하시고도 곧 뉘우치신다는 것입니다.
뉘우칠 죄를 지은 것은 우리인데도 마땅한 징계를 내리시다 스스로를 뉘우치실 수 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즉시 심판의 천사의 손을 멈추게 하시고 그가 섰던 자리에 제단을 쌓고 그들의 죄를 대속할 희생제물로 제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장소가 어디인 줄 아십니까?
18절에 보면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하는 마당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어디에 또 등장하냐하면 역대 하 3장1절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오래 전에 모리아 산이라고 불리웠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이곳은 바로 나중에 예루살렘성전이 세워진 곳입니다.
최신성서핸드북의 저자인 할레이박사를 비롯한 성서학자들은 이 곳이 신약시대 갈보리언덕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멈추게 한 것은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형벌이 치러질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1000년 뒤 바로 그 자리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할 아들의 죽음을 오늘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죄를 지고 태어 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친히 그 죄를 감당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본문 속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다윗의 실패는 나태해진 그의 믿음의 삶 때문임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늘 깨어있지 않으면 생활의 염려와 세상의 유혹과 본질적인 우리의 죄성에 걸려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실패할수록 영적인 어려움은 물론 육적인 삶에도 곤고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닥치고 이길 힘도 잃게 됩니다.
우리가 죄에게 지고 죄를 선택한 결과에는 반드시 곤혹스런 댓가가 뒤따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생명의 속전이 되어 주신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기다리심을 믿으시고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길 축복드립니다 아멘.
겸손한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평안과 당당함과 기쁨과 만족을 날마다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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