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하

웃시야왕의 두 길(역대하26장14절-21절)

남수연 2010. 7. 7. 11:38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충만히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길로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계획하고 원하는 길로 평생 순탄하게 잘 가는 것 같이 보이고 어떤 사람은 무슨 까닭인지 고생 길로 들어서서 평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웃시야 왕은 모두가 부러워한 형통한 길을 걷다가 안타까운 멸망의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왕 이후 드물게 강성한 이스라엘을 이루었던 왕입니다.

본문 1절부터 살펴보면 강력한 군사력으로 숙적인 블레셋과 싸워 영토를 확장하고 암몬 자손에게 까지 조공을 받았으며 그 이름이 애굽에 까지 유명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농업과 건축술과 기술 발전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왕입니다.

그런데 웃시야가 이렇게 강성해 질 수 있었던 이유를 본문 15절에서는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도우셨는 데 모두가 그것을 기이하게 여길 정도로 크게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왜 형통한 길을 걷다가 그 길을 벗어나 패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요?

그의 극명한 두 가지 결과는 무엇 때문인지를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가장 안전하고 복된 길을 발견하시고 그 한 길로만 걸어가는 인생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의 기이한 도움심을 받는 방법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려 합니다.

웃시야에게 임했던 기이한 도우심의 이유는

첫째 본문 4절에 나와 있는 것 같이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편이 되어서 도와주신 이유는 그가 정직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말씀 합니다.

그리고 그 부친 아마샤도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았던 왕이라고 평가합니다.

아먀샤왕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모세의 율법을 기준으로 해서 나라를 다스린 왕임을 본문의 전 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부친을 모반한 자들을 색출해서 죽일 때 그 자녀를 살려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적의 3대 까지를 보통 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모세의 율법에 아비의 죄로 인해 자식을 죽이지 말라고 기록한 대로 자식을 살려준 것입니다.

반역자의 자식을 살려두는 것은 나중에 또 다른 반역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큰 화근이 될 수 있는 일임에도 율법을 따라 순종한 그의 행위는 평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명령대로 정직하게 살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웃시야의 정직을 주목해 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직하시기 때문이고 우리의 정직한 삶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를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시편25장8절에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직이 없다면 무엇을 잣대삼아 만물을 치리하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정직하고 선하시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하나 같이 비인격적이고 괴팍하고 부패한 신이라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신은 이같이 인간의 모습과 꼭 닮은 모순투성이의 신입니다.

술 취해 비틀거리는 박카스 신을 보십시오.

자기 욕심대로 분노하여 직권을 남용하는 제우스신이나 질투에 화신 그의 아내 헤라나 모두가 우리 인간의 모습 그대로 아닙니까?

인간은 자기와 꼭 같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자기의 욕심을 채워달라고 비는 것을 종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정의롭지 못한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끔찍한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주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기에 우리도 정직하게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전도서7장29절에 기록된 것 처럼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그래서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 된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잠언11장 1절 말씀 처럼 속이는 저울과 속이는 말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7장10절에 정직히 행하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거짓은 그 아비 마귀에게서 난 것이므로 우리가 거짓된 말과 행동을 할 때 하나님의 자녀이기보다 마귀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8장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저가 거짓말 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됐음이라

하나님께서 거짓을 미워하시고 거짓과 함께 거하시지 않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시편58편3절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라고 하여 우리의 부패된 본성에서부터 거짓은 자연히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직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지는 다윗에 대한 성경의 평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15장5절에 이르기를 다윗이 헷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축복하고 형통하게 하신 이유가 정직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바르게 행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왕이 업적을 평가할 때 다윗왕과 같이 행하였나 아니하였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열왕기와 역대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정직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정직에는 항상 치루어야 할 댓가가 따릅니다.

그것을 치루지 않으려고 인간은 꾀를 내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죠.

정직해가지고서 이 사악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때때로 요령도 필요하고 적당한 거짓말과 위선도 필요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패된 이 세상에서야 말로 정직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일지 모릅니다

세상과 구별 된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이 바로 정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알려지길 존경할 만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어떤 순간 그가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알려지면 세상은 즉시 기독교를 조롱하며 비웃고 멸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직하게 사는 삶을 결단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고 양심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성령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서 충고하시기에 사람의 눈이랑 상관없이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독교인인을 항상 눈여겨 보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함께 거짓 된 모의를 하면서도 기독교인이 윤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속으로 비웃고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이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기뻐하시고 반드시 축복해주시는 것이라 믿습니다.

정직해서 당장은 손해를 볼 수 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직한 우리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대하며 이용해 먹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직하게 한결 같은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면 결국엔 세상이 자신의 위선과 거짓을 부끄럽게 여기며 우리를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영국 격언에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일년 행복하려면 집을 사고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하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세탁소로 성공한 한 기독교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교사로 일하다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 데 그 곳에서 마땅히 할 것이 없어 세탁소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수입의 일부를 선교사들의 후원금으로 보내며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의 과거와 비교해 볼 때 너무나 보잘것없고 한심한 일이라 생각해서 때려 치우고 싶은 마음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들어온 세탁물 양복 주머니에서 300만원 상당의 달러가 나왔습니다.

그는 투덜거리며 ‘하는 일도 힘들고 자존심이 상하는 데 이젠 시험거리까지 생기는 군’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세탁물 주인이 옷을 찾으러 오자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왜 이런 것으로 날 시험하는 거요!’

얼마 후 세탁물 주인이 다시 찾아와 자신이 부사장으로 있는 항공회사의 세탁 공장을 관리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금 직원700여명을 거느린 사업체의 사장이 되어있습니다.

정직의 힘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1980년대 이랜드그룹의 박성수 사장이 수많은 사업체가 도산되는 큰 위기를 겪게 되었을 때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해외 기업들의 투자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위기에 있는 수많은 기업체 중에 이랜드그룹이 외국인들의 투자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장부가 하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투자할 곳을 심사해보면 모든 회사들이 장부가 두 개 였기 때문에 그런 곳은 투자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화여대 앞에서 2평짜리 옷가게로 출발해 재계 순위26위가 될 수 있었던 이랜드그룹의 성공 비결은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이었다고 박성수 회장은 항상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의 웃시야왕이 정직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버지 아마샤의 정직함을 통해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잠언20장 11절에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통해 사랑과 존경을 받는 수많은 위인들은 어려서부터 그 정직함이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을 정직하게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직한 행위로 하나님께 인정과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장 귀한 유산을 남겨주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가 형통했던 두 번째 이유는 5절에 그가 하나님을 구하였기 때문에 형통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곁에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있었고 웃시야가 스가랴의 살아있는 날 동안만 하나님을 구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잠언29장18절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라고 하십니다.

그가 스가랴의 도움을 받아 율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도를 따라 정직히 행하자 하나님은 원방의 모든 사람들이 다 느낄 수 있도록 기이한 도우심으로 강성하게 해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웃시야를 기이한 도우심으로 강성케 해 주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지키며 살아갈 때 축복을 주신다는 하나니의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북쪽 이스라엘은 물론이거니와 남쪽 유다의 많은 왕들이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우상에게 구하고 숭배할 때 웃시야는 하나님을 구하고 섬겼습니다.

신명기4장40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기이한 축복을 마음껏 주시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못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함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강성하게 되었을 때 교만하여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까 우리의 영혼을 걱정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염려가 현실로 나타납니다.

스가랴가 죽자 그는 점차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죄성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가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등지는 것임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구하지 않게 되자 각 종 죄악들이 종합선물세트 처럼 그에게 드러납니다.

그는 악을 행하는 왕이 되었고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고 율법을 짓밟고 자신을 그 위에 세우는 악행을 두려움 없이 행합니다.

그 어떤 악한 왕도 아론의 후손에게 명한 거룩한 직무를 넘 본 왕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었던 그가 유다 최악의 왕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의 종말은 문둥이가 되어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지고 별궁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웃시야왕을 실패하게 된 요인은 무엇입니까?

본문16절에 보면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라고 기록하여 그의 멸망의 원인이 교만이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형통하게 되어 이웃나라까지 그 이름을 날리게 되자 그것이 자신의 능력인 양 착각을 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 연약한 가운데서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그것이 더욱 커지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되면 은근히 자신의 능력도 한 몫 거둔 것 같은 생각이 고개를 쳐듭니다.

그러다가 점점 모든 공로를 완전히 자기에게 돌리게 되는 것이 죄인의 본 모습인 것입니다.

교만의 최고봉은 사람과 비교하다 못해 그 대상이 하나님께로 까지 견주려하는 영적 교만입니다.

인간의 죄악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교만이라는 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며 하루에 교만한 생각을 얼마나 하는가를 살펴보려고 제 생각과 행동을 분석해 보았더니 하루 10번에서 20번 이상 크고 작은 교만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만은 아담을 타락시킨 최초의 죄성이고 천사장을 루시엘을 루시퍼로 전락 시킨 죄목입니다.

그래서 인간 심연을 들여다 보면 누구에게나 이 교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만은 남과 자기를 비교해서 우월하다고 느낄 때 자신을 높이고 남을 무시하는 마음입니다.

일본의 미우라아야꼬의 글에는 인간의 잠재 된 교만에 대해 얘기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모든 면에서 교만한 지 가령 게를 먹지 않는 사람의 경우엔 그의 마음 속엔 항상 게를 먹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게 못 먹어’라고 말할 때 먹는 사람과 비교하여 묘한 자만심을 보인다고 합니다.

교만이 얼마나 착각이고 불치병인지 인도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해가 저물면 반딧불이는 자기들이 세상에 빛을 준다고 생각 한다

마다가스카라 속담에는 쇠뿔에 앉은 개미는 자기 때문의 쇠머리가 흔들린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갖잔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오지요?

그런데 실상을 밝히자면 우리 모두의 마음 가운데 그런 어이없는 교만이 있기에 이런 속담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죄이고 반드시 심판하는 죄임으로 가볍게 생각해선 절대로 안됩니다.

요즘은 약간 교만한 것을 있는 계층의 미덕쯤으로 미화시키는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만 카페 같은 것도 인터넷에 올라있더군요.

그러나 시편101장5절에 눈이 높고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잠언18장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예레미야 50장 31절에 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교만한 자여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라고 엄중한 경고를 내리십니다.

웃시야가 분향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의 교만의 극치인 영적인 교만이며 결국은 하나님을 견주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변 나라 왕들이 직접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영광을 한껏 드러내기 위해 영적인 영역도 장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것의 내면에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순복하여 섬기려 하는 예배자의 마음이 없고 자기의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부리려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방 우상 신들을 적당히 얼러서 복이나 받아내려는 것 처럼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교만은 예배자의 자리를 거절하는 마음입니다.

예덴 동산 중앙에 있던 하나님이 금지했던 그 나무는 예배의 나무였습니다.

에덴의 모든 것을 다스리며 누리다가 그 나무 아래에 가면 그는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해야 했고 명령을 떠올려야 했습니다.

자신이 피조물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에 그는 덥석 예배자의 자리에서 물러나 하나님과 같이 되려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단이 가장 아름다운 천사로 지음 받아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하는 본분을 망각하고 하나님과 견주려다 심판을 받은 것과 같은 교만한 마음이었습니다.

에스겔28장2절에 말씀하시길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교만의 극치에는 항상 하나님과 동등되게 자신을 높이는 패역이 있습니다.

영국의 호화 여객서 타이타닉의 침몰에 대하여 다 아실 것입니다.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었던 아름다운 영화가 기억납니다.

타이탄은 그리스 신화의 거인족 티탄에서 나온 말이인데요

1912년 4월 10일 영국을 떠나 뉴욕으로 처녀 출항 하던 중 4일 만에 빙하와 충돌하여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사고의 피해를 더욱 키운 것은 타이타닉호의 최고경영자인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호언장담형의 교만한 인물로서 62세에 타이타닉의 선장이 되었는 데 이 배의 선장이 되기 직전에 그가 몰던 올림픽호를 영국 순양함 호크호에 충돌시키는 큰 사고를 냈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라도 이 배를 침몰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라며 호언장담을 하였다고 합니다.

4월의 북대서양 항로에는 거대한 빙산이 떠내려 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속도로 질주했으며 빙하충돌 경고를 계속 무시하며 최고 속도로 질주 했다는 것입니다.

이 호사스러운 유람선은 거대한 빙산에 충돌한 후 6개 방수구역까지 물이 차 들어와 인간의 무력함을 조롱하듯 깊은 바닷 속으로 침몰하여 1,513명의 목숨을 그 자리에서 앗아갔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능력으로 이룬 것을 교만하게 바라보며 자기의 영광에 도취 될 때 뜻 밖의 파멸의 임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흔하게 보게됩니다.

바벨탑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건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고나면 영락없이 불황이 몰아 닥친다는 얘기죠.

첫 마천루가 등장한 19세기 말 미국이 그랬고 당시 세계 최고 빌딩이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세워진 후 대공황이 발생했습니다.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빌딩 완공 직후에는 1997년 IMF 사태가 터졌습니다.

이번에 버즈두바이 빌딩이 완공 되며 두바이쇼크가 일어났던 것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인간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다들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중국 전국시대, 제후국 가운데 어느 나라가 가장 먼저 멸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위나라의 재상 이극(李克)은 오히려 승승장구하던 오나라를 꼽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승리 횟수가 많아지면 군주는 교만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성해졌다는 것을 잊고 그 마음이 교만하여 그의 마지막을 처절하게 보내게 됩니다.

그의 교만에 대한 심판은 즉각 이루어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게 됩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대적하던 미리암에게 문둥병이 발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문둥병은 하나님의 진노를 뜻하는 당시의 병으로 이스라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었고 진 밖으로 내어 보냈던 병입니다.

웃시야 왕은 문둥병이 발하는 즉시 성전에서 쫒겨 났고 왕의 임무를 정지하고 별궁에서 격리되어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그가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하고 묘실 곁에 묻혔다고 26장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만은 처음부터 대단한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사울에게 그랬던 것처럼 인생이 잘 된다고 생각할 때 서서히 마음 속에 자리를 잡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교만은 싹이 올라올 때 잘라내야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우리를 단절시키려 갖가지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은 평소 우리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지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러다가 조그만 기회라도 생기면 곧 바로 사악한 생각을 우리 마음속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교묘하여 마치 우리의 생각인양 아무 경계심 없이 덥썩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사단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뻔한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구사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 많은 사람들이 귀신들려 있었는 데 지금 그 귀신들은 다 어디에 있고 무슨 일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절대 개점휴업하지 않습니다.

매일 전략회의를 하고 시대에 맞게 숨어서 활동 합니다.

미국의 강력한 복음전도주의 전도자 존파이퍼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얼마전 8개월간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는 데 그 이유는 자신의 영혼 안에 존재하는 몇 가지 교만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문제를 점검하고 다루기 위해 모든 사역을 접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와 같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의 정체를 항상 밝혀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정도의 죄쯤이야, 이정도의 교만쯤이야 라고 가벼이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만은 인간의 가장 근본 된 죄성이기에 작은 교만이 싹을 내면 걷잡을 수 없는 속성 성장과 탐스런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를 파버리면 더욱 좋겠지만 우리의 죄성의 토양에선 언제든지 뿌리 뽑혔다고 생각했던 교만이 싹을 티우는 것을 봅니다.

이정도야 괜찮겠지 생각했던 사소한 자랑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무시가 어느 틈엔가 자리를 잡으면 겉잡을 수 없는 교만에 중독 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교만한지라 특히 교만한 사람들을 잘 알아보고 끔찍하게도 서로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년전 불신자를 상대로 종교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기독교에 대한 신뢰도는18.0%로 가톨릭의 35.2%나 불교의31.1%보다 훨씬 뒤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와 교인들이 지나치게 교만해졌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이 교회를 찾고 있는 데 뭐라고 올렸냐면 헌금 강요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은 교회 없냐고 했더라고요.

오늘날 똑똑한 교인은 많지만 겸손한 교회와 성도는 드물다는 지적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뿌리 깊은 교만의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웃시야왕의 죽음입니다.

웃시야왕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 뭔가 기억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부르심을 받던 바로 그 해입니다.

오늘 경배와 찬양에서 우리가 드렸던 그 찬양이 이사야가 본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 것이죠.

웃시야의 아버지도 처음엔 하나님을 정직하게 섬기던 왕이 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가 형통하게 되자 자기가 정벌했던 나라의 우상을 가져다 섬기는 죄를 범하므로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웃시야 역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시작하였으나 강성해 지자 교만하여져 하나님의 법을 져버리게 되지요.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결코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의 과녘을 맞출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나마 강력한 왕권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웃시야 왕이 죽자 선지자는 큰 실의에 빠집니다.

그때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구원의 복안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7장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부르셔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는 이 치명적 죄성을 해결해 주실 메시야를 친히 보내주신다는 말씀을 계속 선포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 그리고 그 중에 우리를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이 지독한 죄 교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 설령 교만한 죄를 지었다 할 지라도 이마에 문둥병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회개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아프게 해서 라도 우리의 교만을 꺽으십니다.

시편12장3절에 여호와께서 자랑하는 혀를 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어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겸손한 사람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이 끊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만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대처는 언제나 단호하십니다.

저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갖가지 죄악들을 어린 학생들 안에서 발견합니다.

그 가운데 제가 가장 심각하게 다루는 잘못은 정직하지 못한 것과 교만한 마음입니다.

교만하여 권위에 순복하지 못하고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무시하는 죄목을 가장 호되게 문책하고 저 자신이 끈기를 갖고 고쳐질 때 까지 다룹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루시기 전에 저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교만을 대적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자기자랑에 빠질 때,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남에게 베풀지 않을 때, 이기적일 때, 남들의 조언을 듣지 않을 때, 허풍스러울 때, 그리고 오히려 지나친 열등감에 빠져있을 때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교만의 덫에 걸렸다는 현상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셔야 합니다.

이미 우리의 모든 교만한 죄 값을 치르신 우리 주님을 의지하여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겸손한 심령이 되도록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낮아진 마음에 임하셔서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흘려보내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원하십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사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이 험난한 세상과 마음의 죄성으로 인해 거친 길을 싸우며 나아가는 우리들을 기이한 도우심으로 도와주시길 원합니다.

아니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그 눈물 골짜기를 통과할 때 우리를 붙들어 주고 함께 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아 여기까지 온 것 아닙니까?

그래서 조용히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따뜻한 손으로 일으켜주시고 도와주신 주님을 향해 감사의 눈물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으로 살아갈 인생 길에도 어떤 난관과 슬픔과 고통이 있을 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잘못하지 않더라고 타락한 세상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은 사고와 고난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며 주님의 법을 따라 정직한 삶을 살며 겸손하게 행할 때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혹시 실패했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 앞으로 나아가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130년전 흑암에 갇힌 가난의 땅 조선에 선교사로 들어온 언더우드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그 기도문을 읽다보니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이한 도우심으로 인도하셔서 오늘날 이런 아름다운 국가가 되었는지 감격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언더우드의 기도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 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 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있는 조선 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있는 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의심부터 내고, 화부터 냄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 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이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기도문에 나타난 그 땟국물 흐르던 흑암의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 였습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의 헌신과 그 복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버렸던 우리 선조들의 믿음으로 불과 100여년 만에 수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소명을 감당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기이한 하나님이 도우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고 간구하며 나간다면 놀랍고 기이한 주님의 도우심을 입어 우리의 삶에 형통한 역사가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삶을 살기로 결단하십시오.

당장은 손해 보는 계산이 나올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손해 이상의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항상 살피고 회개하십시오.

베드로전서5장5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런 댓가 없이 남을 섬기는 삶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착한 마음 겸손한 마음 되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축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힘겨울 때 언제든지 부드러운 주님의 손길을 의지하여 기도하십시오.

기이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와 함께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