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면서 저 사람 참 지혜롭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일하는 것을 보면 불안하지가 않고 참 보기도 좋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여건은 바꾸지 못한다 해도 지혜롭게 처신할 수가 있다면 우리 길에 참 힘이 되겠죠.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타고난 지혜는 사람마다 다르고 노력해도 어느 한계를 뛰어넘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구하면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는 지혜입니다.
세상지혜로도 남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라면 얼마나 더 힘이 되겠습니까?
야고보서 1장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 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5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학생들도, 청년들도, 장년과 노년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은 인생에 대한 훈계를 기록한 성경입니다.
어찌나 인간사를 지혜롭게 해석하는 지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잠언을 읽으면 구절마다 절로 고개가 끄덕 끄덕해 지는 걸 느끼실 겁니다.
그래서 잠언을 지혜서라고 합니다.
잠언은 우리를 가르쳐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말씀의 능력이 있습니다.
어린 학생과 청년들은 아직까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잠언을 통해 배워두면 앞 길의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또 장년세대도 때로 앞이 뿌연 안개 속 같고 문제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진다 생각할 때 잠언을 며칠 계속 읽어보면 상당한 지혜를 얻고 눈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실업인들이 경영의 지혜를 얻기 위해 가장 많이 읽는 성경이 바로 이 잠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영적인 지혜를 받아 훌륭하게 인생을 경영해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인생은 소중합니다.
오늘 잠언 말씀을 통해 삶의 지혜를 잘 배우고 잘 적용해서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내 문제에 대한 모든 해답을 발견하게 되기를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본문에서 첫 번째로 가르쳐 주는 지혜는 우리의 모든 만사와 계획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1절부터 9절까지에서 8절을 제외하면 모든 구절마다 ‘여호와’란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본문의 요지는 한마디로 이 세상과 개인에게 나타나는 강력한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대로 창조한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다만 보이지 않으실 뿐임을 알지 못하고 실제 자신의 삶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없다고 단정하니 참 어리석습니다.
이 광대한 우주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만물의 법칙이 하나님이 아니면 어떻게 생겼겠습니까?
고도의 기능을 갖춘 생명체들과 나란 인간이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입니까?
손봉0교수님이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를 부인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서 시계를 하나 주웠습니다.
시계 침이 정확하게 돌아가는 시계를 보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바위 속에 있는 철분이 오랜 세월 파도에 밀려 뭉치고 깎여서 이런 시계를 만들었네.
어떤 것은 동그랗게 깎여서 글자판이 되고 어떤 것은 뾰족하게 깎여서 시계침이 되고 어떤 것은 울퉁불퉁 깎여서 톱니바퀴들이 된 것이 확실해.
이게 말이 되는 주장입니까?
시계 같은 물건 하나도 만든 사람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데 신비하고 경이로운 우주와 이 정교한 생명체가 어떻게 무에서부터 우연히 우물쭈물해서 만들어졌겠습니까?
하나님의 끝이 없는 지식과 지혜로 이 만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제일 먼저 깨닫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우주에 주인이 있다는 것이고 나를 창조하신 영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만물을 하나 하나 알고 있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포기한 적도, 누구에게도 이양한 적도 없으십니다.
능력의 손으로 거대한 우주와 만상을 돌리고 계신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과 사람의 계획하는 것들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인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내 힘으로 일을 계획하고 아등바등 댄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고 응답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애써 삶을 꾸려가는 것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의 개인마다 가장 알맞고 선한 목적을 갖고 우리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죠.
우리가 마음먹고 인생을 경영해 가되 그 응답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 눈치를 안보고 무작정 내 계획대로 사는 게 용감한 게 아니라 무지한 것입니다.
우리 길을 주도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와 나를 위해 일하심을 믿는다면 쓸데없이 힘 빼고 낙담하는 일이 없어집니다.
우리 앞에 큰 산을 넘으면 깊은 골짜기 있고 골짜기 지나면 건너야 할 급류 있고 참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질 않습니다.
이제 한 숨 돌리려나 생각하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 불쑥 튀어나오고 길지도 않은 인생이 참 험악하다는 걸 느끼게 되죠.
우리 원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기죽지 말고 낙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이 더 완벽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당장 보이는 현실에 따라 마음이 무너졌다, 엎드려졌다 하지 말고 우리 계획과 지금 벌어지는 일의 결과를 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죠.
사람 사는 게 오늘 좋은 일이 있으면 내일 나쁜 일이 생깁니다.
전도서7장14절에서 말씀하시잖습니까?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우리에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이 번갈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오늘 잘되면 내일 힘 빠질 일이 있을 게 당연한 것이죠.
며칠 전 취영0루란 냉동만두업체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매각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거기 대표가 장로님이신데 믿음도 참 좋으시고 경영능력도 뛰어나고 노력도 부족한 게 없는 사람입니다.
십 여년 전 만두업계에서 쓰레기 단무지로 속을 만들었다고 만두파동이 난 적 있습니다.
그 때 물만두만 만들던 취영루는 단무지 쓴 적도 없이 식양청의 오류로 불량만두업체 명단에 발표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루 2억원어치가 반품되어 돌아오는 데 회사의 운명이 다 한 것 같았죠.
그 때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는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직원들과 기도하며 밤을 새우며 인터넷 비난 글에 해명 댓글을 달고 항의전화에도 성심을 다해 진실을 알렸습니다.
다른 업체들은 공장 문을 닫고 전화도 끄고 잠적한 상태였습니다.
석 달동안 100억의 손실을 입었지만 직원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혼연일체가 되어 회사를 살리려했던 미담과 억울한 사정이 알려지며 상황이 급반전되었습니다.
그 사이 만두업체들이 도산하고 취영0루는 만두업계1위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한 때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례들을 발표하는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 연재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시 경영난에 몰려 결국 매각을 결정한 것입니다.
성공신화에도 불이 꺼질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이렇게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합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 갈 때도 있는 것이지 올라가기만 하는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경제도 호황이 있으면 반드시 그 다음 불황이 오지 않습니까?
오늘 장사 잘 되면 내일 잘 안되고 오늘 만족하게 보내면 내일 우울한 일 생깁니다.
인생에 대한 이런 지혜가 없이 매일 날라 오는 주먹을 맞고 감정대로 반응하면 매일이 견디기 힘들고 고통스럽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하나님이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를 믿음으로 연단하며 가르치시고 결국 우리의 경영하는 것을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4장 23은 말씀하지 않습니까?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나님께 우리 마음의 모든 행사를 맡기고 당장 일어나는 낙심할 일에 주저앉지 말고 마음을 견고하게 해야 결말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마음을 견고하게 하지 않으면 내일 무슨 소식을 듣게 될지 모르는 세상에서 불안하고 요동하는 나날을 보낼 수밖에요.
눈 앞에 당장 일어나는 모습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매일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고 손을 드십시오.
우리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기쁘기보다 오히려 슬퍼집니다.
그런데 고개를 들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신기하게 먹구름이 개이고 소망이 솟아납니다.
비록 잠시 고난과 시련이 있다 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지혜로 현재의 어려움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과정이란 것을 믿고 담대하십시오.
요즘 스페셜올림픽 하잖아요?
참가자들을 보면 참 고달픈 인생들인 데 우리보기에 정말 보잘 것 없는 일을 이루고도 참 기뻐하더군요.
그들이 그렇게 기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기뻐할 것이 많습니까?
우리가 장래의 모든 계획을 하나님아버지께 맡기고 매일에 성실하고 안심하고 기쁘게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대로 평안한 중에 우리의 마음의 소원과 경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의 계획과 행사를 어떻게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까?
마음에 다들 아름답게 그려서 걸어놓은 미래의 청사진들 있으십니까?
저도 우리교회에 대한 그림이 마음 속에 있습니다.
또 은퇴 후 노년의 그림도 갖고 있습니다.
세파에 시달리고 기대가 무너지고 어느덧 가지고 있던 그림도 희미하게 빛이 바래지지는 않았는지요?
믿음은 끝까지 소망하는 것이지 체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보다 더 행복해질 내일을 주실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지금보다 아주 조금씩 더 나아지는 삶을 기대하며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한 계단 씩 올라간 정상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계획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우리가 계획한 일과 미래의 그림을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2절에서 말씀하고 있죠.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사람들은 자기 행동의 선악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생의 계획을 세웠다하지만 거의 그 동기가 하나님보시기에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내 생각대로 세워놓은 계획들은 하나님이 온전하게 수정해서 인도해 주시도록 반드시 하나님께 맡겨져야 합니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 내가 가고 싶은 직장, 내가 이루고 싶은 노년의 계획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왜 내가 세운 계획은 안됩니까?그것은 우리가 어리석어서 내게 유익하다 생각하고 세운 계획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표와 방향성에 있어서도 우리는 자신을 너무 모릅니다.
열심히 딴 곳에서 우물 파겠다고 삽질하다 세월과 힘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 없이 창조하신 게 아닙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각 사람도 이 땅에 해야 할 일과 존재할 곳에 적당하도록 지으셨습니다.
내가 꼭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이죠.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계획을 하나님 앞에서 점검받고 인도받도록 기도하는 것이 우리 행사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재능과 적성에 따라 우리 길을 인도하시고 작정한 뜻을 멋지게 이루어주십니다.
때로 하나님 앞에 내가 혼자 계획한 일을 간절히 구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경험있으시죠?
지나고나서 보니 안된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그래서 본문9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하여 낙망하고 눈물을 쏟았던 일도,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과정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아주 사소한 일도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개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도와주고 계세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우리 머리 털 까지 다 세고 계신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를 돌보신다구요.
우리의 계획하는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되도록 한걸음 씩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또 하나님께 우리 행사를 맡긴다는 것은 단지 나만을 위해서 세운 계획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과 자기를 함께 위할 때 가장 완벽한 행복을 누리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나만의 행복을 위한 계획은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만일 우리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목표를 가졌다면 그것이 단지 돈만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당연히 돈을 가짐으로 함께 올 행복을 염두에 둔 것이죠.
대기업 취업이 목표라면 당연히 취업과 함께 따라 올 행복도 생각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내 자신만을 위해 그 목표를 위해 달려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돈이고 단지 취업입니다.
돈은 얻었는데 행복은 얻지 못합니다.
취업은 되었는데 행복이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나만의 행복을 위해 세운 목표와 목적은 혹시 이룬다해도 그것으로 우리를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지 못합니다.
행복을 함께 가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이웃에 대한 배려가 들어있는 계획이어야 합니다.
나만 위해 잔뜩 채워놓은 것은 복이 아니라 결국은 화가 됩니다.
고여 있는 물이 썩듯이 고여 있는 재화들은 반드시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채워져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자꾸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흘려보내야 합니다.
건강이 있으면 그 건강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그걸 통해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도록 흘려보내야 합니다.
재물이 많으면 필요한 만큼만 갖고 자꾸 물꼬를 터서 흘려보내야 합니다.
재물이 고여 있으면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보다 그걸 더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도 자기 안에 갖고 있으면 지식만 커지는 기형적인 신앙인이 됩니다.
그것도 밖으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삶에서 내 믿음을 표출하는 것이죠.
대화중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신앙이야기, 밥 먹을 때 하는 식사기도, 직장생활에서도 남들과 다르게 정해 놓은 믿음의 수칙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흘려보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신앙적인 생활을 하려면 좀 불편하긴 하죠.
믿음을 흘려보냈으면 거기에 걸맞는 인격을 보이고 신앙적인 행동을 해야하니까요.
다른 사람보다 좀 손해도 봐야하고 양보도 해야 하고 이용당하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이기 때문에 주차문제 다 건물사람들에게 양보합니다.
좀 불편해도 다 잘 돌아가고 또 입주자들도 다 알고 고마워합니다.
그러니 우리 믿음을 통해 세상을 유익하게 하려고 의식적으로 우리를 흘려보낼 때 또 다른 이익들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결국 칭찬도 듣고, 복음 전파의 역사도 일어나는 것이죠.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는 나와 하나님과 이웃이 함께 누릴 때 가장 우리에게도 완벽한 행복이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단지 나만을 위해 쓰는 재물로는 행복을 얻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기부를 하겠습니까?
내가 쓰는 것보다 그게 더 행복해서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학위를 얻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고 해도 그것이 나만을 위한다면 행복도 같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계획을 짜서 결재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식을 따라 이뤄야만 진짜 우리가 얻고 싶었던 돈 플러스 행복, 합격 플러스 행복, 결혼 플러스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0솔나무란 플롯연주자가 있습니다.
줄리어드 예비학교시절 카네기홀에서 연주한 천재 연주자입니다.
우리에겐 드라마 허준의 배경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죠.
그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으로 세상에서 누릴 부와 명예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계 80개국을 다니며 연주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아일랜드 술집에서 오 신실하신 주를 불었는 데 술집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다 눈물을 흘리며 듣더라는 거예요.
아무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더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내 현재 직업과 위치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 않습니까?
우리의 경영하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인도하심을 구할 때 우리를 이런 복되고 영광스런 장래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경영하는 것이 이뤄지길 바랄 때 성도가 멀리해야 할 것을 본문에서 생각해 봅니다.
5절에 교만한 마음을 지적합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내 삶에서 배제시키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에스겔28장2절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사람들의 교만의 근본은 자기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그 양심으로 알게 되어있는 데도 경외하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습니까?
하나님의 지배를 원치 않는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내가 인생에 주인이 되고 모든 사람보다 나를 높이고 모든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것이 인간의 교만한 본성입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그런 권력을 얻지 못하기에 불의한 사람끼리 피차 손을 잡지만 벌을 면하지 못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자들이 손을 잡아보았자 자신의 배만 위하는 탐욕으로 시작되었으니 그로 인해 피차 물고 파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17장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 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세상의 권력과 방편을 믿는 교만한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 저주받을 선택을 결정한 것이죠.
하나님을 거절한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아니라 악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에 거하시고 겸손한 사람을 인도해 주십니다.
이사야 57장 15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거룩하고 높은 곳에 거하시지만 기꺼이 자기 죄를 깨닫고 통회하는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겠다고 하십니다.
겸손한 자의 영과 마음을 소생시켜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낙심한 마음과 침울한 영을 하나님께서 소생시켜주실 때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 용기 있게 일어나 소망을 갖고 사는 능력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의 소원과 경영하는 것을 이뤄주시기를 원하십니까?
마음의 교만을 살펴보고 겸손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또 6절에 인자와 진리로 죄악을 속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경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이뤄주시기를 소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의 실체인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합니다.
죄의 본성과 나쁜 행실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속죄의 은혜를 감사하게 받은 자에게 하나님은 기쁨으로 그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속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게 된다고 6절은 말씀하죠.
왜 성경은 이렇게 반복해서 죄를 회개하고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하십니까?
욥기 33장13장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말 안 듣는 사춘기 자식들 귀에 수도 없이 잘못을 질책해도 부모의 훈계에 무슨 그들이 관심을 갖습니까?
갈 데까지 잘못 된 길로 가려는 고집스럽고 미련한 모습에 부모 마음만 타들어가는 것이죠.
하나님이 꼭 그런 마음으로 성경 구절 마다 세상 끝에 있는 멸망을 향해 죄악 된 본성을 돌이키지 않는 인간을 향해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비춰주셔서 마음의 모든 더러움과 죄악들을 드러나게 하시고 끔찍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주셔서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또 불의한 소득을 탐내고 물질에 집착한다면 우리가 안심하고 하나님 뜻에 우리의 행사를 다 맡기지 못합니다.
8절에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죠?
우리 인생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 중 뜬금없이 끼어든 돈 얘기입니다.
결국 돈 문제 때문에 내가 직접 내 인생을 경영하려하고 하나님께 맡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행동에 자리 잡고 있는 원인은 대부분은 돈입니다.
하나님이 내 경영을 이뤄주길 원한다면 그것도 결국 이 세상에서 풍족한 물질을 누리며 살게 해달라는 것이죠.
풍족하면 편하고 좋지 않습니까?
좀 불의하더라도 많은 재물을 택하지 누가 정당하게 얻은 적은 소득을 택하겠습니까?
들키기 전까진 불의한 소득이라도 인간에겐 동경의 대상입니다.
불의한 소득이 줄 것 같은 행복을 쫒다가 결국 파멸당한 사람 이야기가 매일 밤 뉴스에 나오는 것 아닙니까?
최근 뉴스에 등장한 두 인물도 그렇습니다.
불법이라고 아파트베란다에 샷시도 안하고 살았다는 강직한 총리후보자가 물질에 대해서만은 남들 하는 불의한 방식대로 였습니다.
나름 존경받던 인물이 부패한 속물로 드러나고 명예는 실추되었습니다.
재계의 황태자 SK 최회장의 경우도 그렇지 않습니까?
횡령한 회사 돈으로 개인의 부를 위해 투자했다 실형을 선고받으며 그가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도대체 그가 가진 돈이 부족했다는 것입니까?
시편 17장 14절이 이런 사람들을 그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결국 불의한 소득과 함께 만천하에 파렴치한 인격이 발각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오늘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적은 소득이 불의로 쌓은 악한 소득보다 낫다.
불의한 자의 부요한 생활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는 데 돈이 더 필요하고 누구나 부자로 살고 싶지만 그게 다 됩니까?
월급 타는 직장인들 아무리 부자 될 꿈을 가져도 사실 자산이 뻥튀기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사업도 규모가 있는 것이고 아무리 해도 그 한계 이상은 더 벌어지지도 않습니다.
들에 피는 백합화도 입히시고 공중의 새도 먹여서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이 땅에서 살만큼은 적당하게 공급해 주십니다.
부에 대한 허황된 욕심을 버리고 오늘 내게 주신 생업과 직장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감사하게 충실하게 살아가면 때가 되면 승진도 되고 사업도 조금씩 활로를 향해 가게 됩니다.
7절이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보탬이 되려고 수고하면 원수라도 나서서 나를 도와주게 하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무엘상 2장 7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또 예레미야45장4절에서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잘되는 것도 망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신실하게 인도하심을 믿고 우리의 모든 행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요동치 말고 감사하며 평안히 따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는 교만과 죄와 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행위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신실하게 지킬 때 우리 걸음을 반드시 축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013.2.3 주일예배설교 남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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