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행복한 가정을 위한 잠언 (잠언15장15절-20절)

남수연 2017. 5. 10. 18:10

 

가정주일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가정을 감사드립니다.

성실히 주님을 따르는 성도님들 가정을 하나님이 울타리로 두루시고 보호하시고 축복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지난 주에 제가 편한 신발을 하나 사러 구두점에 갔었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팔순쯤 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신발을 골라 드리고 있더군요.

연신 이 신발, 저 신발을 신겨드리며 발이 편한지 물으며 발을 여기저기 눌러보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서야 , 어버이날이지하며 잠깐 저도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어느새 어버이날 신발 하나 챙겨드릴 부모님이 한분도 곁에 계시지 않게 되어 버렸네요.

5월 가정의 달에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는 가족들, 형제들을 잘 챙기고 서로가 감사하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가정에 대한 잠언의 교훈을 배우고 잘 지켜 우리 가정들이 더 행복하고 따스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훈계가 되는 짧은 말을 잠언이라고 합니다.

성경 잠언의 대부분은 지혜자 솔로몬이 지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단지 똑똑하고 인생의 경험이 많아 이 잠언을 지은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이 쓴 전도서에 보면 잠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잠언이 찌르는 채찍 같이 사람의 내면의 깊숙한 것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죠.

또 잘 박힌 못과 같이 견고한 삶의 원리를 갖게 한다고 합니다.

벽에 박힌 못이 헐렁하면 거기다 뭘 걸겠습니까?

사람들이 세상에서 얻는 지혜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불완전합니다.

잠언의 지혜는 튼튼히 박혀 무거운 물건을 걸어두는 못처럼 삶의 무게들을 넉넉히 감당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잠언이 단지 인생의 경험과 사람의 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잠언들이 다 한 목자이신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잠언을 꾸준히 읽으면 세상사는 지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채근담이라고 아시죠?

통속적인 처세 철학과 교훈을 담은 책입니다.

이 채근담도 잠언처럼 세상사에 통찰력을 주고 성공적인 삶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잠언에 있는 지혜는 세속적인 처세술이나 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잠언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은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정합니다.

또 하나는 잠언의 지혜는 성도들에게 실현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채근담의 내용을 보면 세상사를 보는 안목에 탄복하게 됩니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쁜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이 모르기를 바라는 것은 그 마음속에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하고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 마음속에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히죠?

양념을 많이 한 요리에는 진정한 맛이 없다. 진짜 맛은 담백한 것이다. 두드러져 보이는 사람은 인격자라고 할 수 없다. 인격자는 결코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예리하게 사람을 관찰했습니까?

그러나 이걸 읽는다고 사람들이 다 양심적이 되지도 않고, 인격자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게 좋은 것을 알고 그대로 지켰다면 사람들이 다 성공해야 맞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좋은 교훈들을 안다고 사람들이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죠.

잠언의 지혜는 성도들이 다 지켜낼 수 있도록 성령께서 그 길로 인도하시고 지킬 힘도 주십니다.

그래서 잠언을 다시 읽을 때 마다 어느새 그게 우리에게 조금씩 실현되고 이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 하나는 잠언은 다른 성경의 교훈들처럼 반드시 지켜서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즉 잠언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지키도록 계시된 것이고, 그 축복이 보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살펴보는 잠언의 내용들을 잘 지켜서 복된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본문 잠언들은 삶의 지혜를 파격적인 대비를 통해 가르칩니다.

가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생 전체를 통찰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15절 잠언은 이 땅의 삶이 고난이라고 정의합니다.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이 말은 이 땅의 사람들 중 고난받는 사람이 있고 마냥 즐거운 사람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종류의 사람을 그냥 이렇게 관찰했다면 거기 무슨 지혜가 있습니까?

이 말은 땅의 모든 사람들이 고난을 받고 험악한 날들을 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 말을 부정할 수 없이 인생은 참 모질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모진 인생을 다 살아냅니다.

바로 옆에서 폭탄이 쏟아지는 건물 잔해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인간의 위대성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타락한 인간에게도 이런 위대성과 존엄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들의 실책과 죄악에 뿌리내린 세상의 삶은 험악합니다.

그렇기에 가정도 자연적으로는 절대 행복해 질 수가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 우리 집만 이렇게 힘드냐 생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큰 갈등이 있는 가족 속에 살았던 야곱이 노년에 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내 나그네 길이 조상보다 길지 않으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잠언의 저자 솔로몬도 자신 역시 모든 사람이 당하는 일들을 똑같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웃음소리가 들리고 잔치하는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잔치하는 사람은 고난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즐거운 자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사가 고난과 문제 속에서 험난할 수 밖에 없지만 그 가운데서 즐거움으로 잔치하는 인생을 사는 지혜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게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고 보장 된 축복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삶의 경영권을 이미 예수님께 넘긴 사람들입니다.

베테랑 운전자가 운전하시는 데, 목적지에 안전히 데려가시지 않겠습니까?

그 코스가 때로 험악해 보인다 해서 이젠 죽었구나 생각하겠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목자되신 주님의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셨다고 다윗은 극한의 고난 속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시를 지었습니다.

그 길을 지나니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습니까?

곤고한 날들을 지날 때도 하나님은 먹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을 보여주시고, 자식들이 자라는 대견한 모습에 웃음을 짓게 하십니다.

고난 중에도 여전히 감사할 것이 더 많음을 성령께서 보여주시기에 힘겨운 날 가운데서도 웃음을 되찾고 즐거움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견디다보면 반드시 하나님은 영광스런 목적지에 우리를 내려 놓으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약성경에서도 같은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시잖아요?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시고 험악한 고난 중에 있다할지라도 웃음과 행복으로 가정을 잘 지켜나가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16절은 우리의 삶을 험악하게 하는 고난의 실제적 주범 중 하나님인 돈 문제를 다룹니다.

돈 걱정 증후군이란 말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온갖 신경증적, 육체적 질병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열 명 중 아홉 명이 돈 걱정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중앙일보에 보면 고소득층의 49%가 빈곤층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한 민국 모든 사람들이 빈부에 상관없이 다들 에구-머니하며 산다는 것이죠.

나만 돈걱정하며 산다고 불행히 여기셨다면 마음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돈 문제에 대해 잠언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런 잠언은 별로 마음에 안 들죠?

옳은 것 같지만 너무 우리 현실을 모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본성이 순순히 동의가 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나 세상적 판단의 차원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와 사실을 가르치실 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죄성에 기반을 둔 사람들의 지혜와 완전히 상반됩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두배로 되갚는 것이 세상의 지혜라면 성경은 원수를 용서하고 오히려 복을 빌라는 것이잖아요?

오늘 부에 대한 이 잠언만 보더라도 세상사람들이 당연히 생각하는 가치관과 완전히 다릅니다.

잘 생각하고 한번 선택해 보시기 바랍니다.

좀 가난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큰 부자로 살면서 번뇌하는 것과 어느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새 우리 머리 속엔 그것보다는 큰 부자로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3번이 떠오르죠?

지혜자 솔로몬이 3번이 좋다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안 넣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큰 부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없는 큰 번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번뇌라는 말은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혼란과 공포를 말합니다.

부자들의 번뇌가 만만치 않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가난보다 부자를 열렬히 원하지만 부는 아무런 댓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로 살면서 번뇌하는 삶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안빈낙도의 삶을 비교하면 고민할 필요 없이 후자가 복되다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부는 사람들이 꿈꾸듯이 그런 행복을 결코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솔로몬은 전도서59절부터 아주 길게 논의합니다.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왜 잠적합니까?

어디서 듣고 그렇게 수많은 지인들, 친척들이 찾아온다잖아요.

필요 이상의 많은 돈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솔로몬은 이어서 기록합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한도 이상의 재물은 결국 자기에게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고 부자되면 안될까요?

항상 소박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려는데도 점점 부자가 되면 어떡합니까?

사실 기독교신자들이 다 청빈하게 사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보다 분명히 더 안정적이고 부요한 생활이 된다고 저는 경험했고 또 그렇게 믿습니다.

이 경우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원리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쓰고 나머지는 베풀라는 것입니다.

쌓아 둔 재물은 분명히 나와 내 가족에게 해가 된다는 성경의 교훈을 신중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기부와 선행에 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기부로 유명한 가수 부부가 있죠?

이들은 현재 전세 살면서도 누적 기부액이 45억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기부하고 남아난 돈이 있냐, 자식들 공부는 어떻게 시키려고하냐고 누가 물었습니다.

이 젊은 부부가 우리 애들은 고등학교까지만 학비 대주고 대학부터는 자기가 알아서 가게 할거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무책임한 것입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게 자식에게도 더 낫다는 바른 지혜입니다.

많은 돈을 물려주는 게 과연 자식에게 더 좋은 일이겠습니까?

기부대마왕'이 어울릴 것 같은 김장0씨는 기부 총액이 2백억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월세에 살고 있는 김장0훈씨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닥 생활을 하다보니 돈이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장0훈씨는 목사님인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습관처럼 기부를 해오던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재물이 탈이 없으려면 나누면 됩니다.

성도들은 힘 닿는대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실제로 사회의 약자와 소외된 분들을 돕는 일을 교회가 가장 많이 합니다.

우리 교회도 여력이 되는대로 구제와 봉사의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해질 때 또 주의해야 할 것이 마음을 가난하게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가장 큰 함정이 있습니다.

자신이 모든 것에 부요하고 영적으로 부족하지 않다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게 부자들의 함정이라는 것입니다.

부에 대한 오늘 잠언의 훈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돈 많이 벌어 호의호식하는 게 더 좋다고 속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우리가 돈에 대한 이 잠언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가난한 사람들은 늘 부를 갈망하고 현실을 억울해 하며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인 사람들은 하나님을 비웃으며 평생 자기의 돈을 의지하며 삽니다.

만일 우리가 부유하다면 하나님의 선물을 감사하며 적당히 누리고 힘닿는 대로 나누시길 축복드립니다.

또 재산이 많지 않은 성도님들은 믿음으로 담대함을 가지십시오.

다행히 크게 부하고 번뇌한 사람보다, 가산이 좀 적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더 낫다고 오늘 잠언이 진실을 말씀해주십니다.

가산이 많고 적게는 우리 원대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가 힘써서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결코 궁핍하게 두지도 않으십니다.

 

17절부터 20절까지는 이런 기본 여건이 되었을 경우에도 가정의 행복의 큰 변수인 구성원들, 가족들 간의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입니다.

읽어보기만 해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 되실 것입니다.

17절 잠언입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콩나물, 열무김치로 차린 소박한 식탁을 앞에 놓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소고기 반찬을 놓고 서로를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 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가족간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원천인 것이죠.

가족끼리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야 어느 가정인들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타인은커녕 가족간에도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의 최약점은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어 매순간 순종하고 힘쓰며 지켜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에 가깝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고사하고 18절 잠언처럼 우리는 가족들에게 얼마나 분을 쉽게 냅니까?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왜 가족 간에 얼굴을 붉힙니까?

밖에서는 마음껏 분을 내지 못하다 집에 오면 맘 놓고 화를 쏟아내기 때문이죠.

늘 상 보는 가족들, 어차피 같은 혈육이고 가족이니 어떠랴 싶은 가족들에겐 참지 않고 분을 내기가 쉽습니다.

그렇기에 가족간에 소소한 다툼이 늘 있고, 감정이 상하고, 서로 섭섭한 마음이 쌓이다 결국 큰 분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19절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인격과 그 결과에 대한 잠언이지만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가족 간에도 적용을 시켜야 합니다.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이 잠언은 게으른 사람에겐 앞 날이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부지런하면 밥은 먹고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게으른 자와 대조시킨 것은 부지런한 자가 되어야 자연스러울 텐데 정직한 자를 내세웁니다.

둘을 대조시키는 게 좀 어색해 보이죠?

게으른 자에게는 부정직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게으르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회피하며 핑계대고 자기를 합리화 시키게 됩니다.

점점 정직하지 못해지는 것이죠.

지각한 사람은 늘 변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게으름은 인간의 나쁜 본성 중 하나입니다.

이 문제를 행복한 가정을 위해 가족들 간에도 적용시켜야 합니다.

가족들 간에는 이 게으름으로 인해 결국 충돌이 일어납니다.

가족들 간의 싸움은 큰 문제인 경우보다 게을러서 가정의 짐을 좀 나눠지지 않은데서 옵니다.

방청소 좀 하고, 빨래 좀 돌리고, 식사준비하고, 재활용품 버리고, 이런 가사일을 모른 채 하고 게으름을 피우면 결국 가정의 화목은 깨집니다.

집에서 이런 사람들이 사회생활에서라고 크게 다르겠습니까?

결국 자기만 편하려는 게으른 사람의 앞 길은 가시울타리 같을 수밖에요.

오늘 잠언의 경고대로 정직한 자에게만 대로가 열립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부지런하고 정직하다고 평가를 받으면 확신하건대, 그 사람의 길은 대로입니다.

사람들이 다투어 보증을 서주고 소개하고 좋은 직장으로 서로 끌어주려고 할 것입니다.

다들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잘하고 계십니까?

노력 없고, 수고 없고, 희생 없는 가정의 화목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20절 잠언입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이 잠언에서는 자녀들이 반드시 부모를 공경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서두에 있는 지혜로운 아들에 담겨 있습니다.

잠언의 지혜가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했죠?

먼저 부모들은 자식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아들로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똑똑하고 명석해서 성공하는 자식들을 자랑스럽게만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전수하지 못하면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 부모도 업신여기는 불행한 자식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행복한 가정을 위해 우리에게 주신 매뉴얼을 잘 따라야 합니다.

이런 것이 안되면 가정도 힘듭니다, 아니 가정이 사회생활보다 더 어렵게 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기도제목, 상처들이 사회나 타인에게 보다 사실 가족 때문인 경우가 더 많잖아요?

솔직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탕 위에 가정이 서지 않으면 가정을 축복하는 말들은 다 겉치레이고 허상일 뿐입니다.

또 가족은 피붙이고 한 식구니까 괜찮으려니 하지말고 수고하고 희생하며 정성껏 가꿔야 합니다.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은 어느날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잠언을 주셨습니다.

우리 가정이 행복하다면 삶이 지금보다는 훨씬 덜 고단할 것입니다.

성경의 교훈 안에서 가정을 잘 가꾸고 일굼으로 세상 어느 곳보다 만족하고 편안하고 복된 가정을 다 이루시길 축복드립니다.

2017년5월7일 주일설교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