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수넴이라는 동네에 사는 한 여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이 수넴여인에 대해 성경은 4장에서 ‘한 귀한 여인’이라고 소개합니다.
‘위대한 여인’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이 여인에 대해 살펴보면 단지 부유한 여인이라기보다 위대한 여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우리가 잠시 이 세상에서 살다 가는 데 하나님 앞에서 ‘한 위대한 사람’, ‘한 귀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가정의 달에 우리 모든 가족과 자녀들이 다 이런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열왕기서는 다윗의 왕위가 솔로몬에게 이양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의해 왕국이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가며 끝이 납니다.
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역사를 꿰뚫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또 마지막 왕조가 멸망당하던 당대에 살았던 사람일 것입니다.
이 열왕기서의 기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겠습니까?
패망의 회한을 안고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 어쩌다 이렇게 약속의 땅에서 쫒겨났는지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따져보니 보나마나 왕들의 배교로 부터 백성에 까지 총체적인 부패와 타락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서는 그들의 역사와 전쟁기록이니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아닙니다.
열왕기서의 왕들과 나라의 흥망성쇠를 보면 인간역사의 흐름이 보입니다.
또 열왕기서에는 하나님의 특명을 받고 구원의 역사를 전개해 가는 선지자들의 활약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끼어있습니다.
나라들과 큰 사건들이 역사의 중심이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 묻힌 것 같은 우리 한 사람의 인생사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수넴여인의 이야기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왕기 역사 속에 부각 된 평범한 사람들은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또 각 사람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인 되신 이상, 반드시 그 한사람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보신다는 아름다운 한편의 드라마가 오늘 본문인 수넴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름도 없이 그냥 수넴여인이라고 불리우는 보통사람이 어떻게 한 위대한 여인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를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수넴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수넴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4장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수넴여인의 이야기는 그 집 앞을 지나는 엘리사선지자를 붙들며 시작됩니다.
의미가 있죠?
우리가 누구를 붙드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붙잡을 때 하나님의 구원역사 속에 우리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 4장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왜 열왕기 기자가 여인을 한 위대한 여인, 귀한 여인이라고 인정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4장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엘리사가 자주 지나 다니던 수넴이라는 동네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지날 때 마다 간권해서 음식을 대접합니다.
엘리사선지자의 사역을 최선을 다해서 돕기를 원했던 여인은 남편과 의논해 엘리사가 오갈 때 쉬어갈 수 있게 다락방을 만들어 줍니다.
패역한 족속 중에 분투하는 고단한 하나님의 사역자를 도와주고 싶은 것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이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이죠.
당시 불신앙과 우상숭배로 쇠퇴해가던 민족 중에 수넴여인은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또 수넴여인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죽은 아들을 살리러 엘리사를 찾아가는 여인에게 남편이 이렇게 묻죠.
그 남편이 이르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거늘 그대가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냐
여인이 안식일과 절기를 따라 철저하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손흥민 선수가 어렸을 때 부터 남달랐던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소년이 24시간 내내 오직 축구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선수시절에 휴가를 줘도 나가지 않고 축구공만 찼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탁월한 축구선수가 된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의 처형이 보험설계사 일을 30년 넘게 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 중에 최고가 뭔지 야냐, 그게 바로 보험이라는 겁니다.
그만큼 자기 하는 일에 세뇌가 될 정도로 집중했기에 그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며 살고 있더라는 것이죠.
세상에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되면 오늘 성경이 말씀하는 ‘한 위대한 사람’이 되는 줄 믿습니다.
어떻게 세상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일은 안하고 하나님께만 집중해서 살 수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예수님께 주목하며 살려 해도 온 종일 세상살이에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추어 놓고 살다보면 세상일도 하나님의 일도 중심을 잘 잡고 병행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넴여인의 섬김이 아름다우니 하나님은 자식이 없는 여인을 위해 늙은 남편에게서 외동아들을 낳게 해줍니다.
하나님을 잘 믿을 때 우리의 결핍된 것이 저절로 채워지는 것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아들이 갑자기 병으로 죽게 됩니다.
여인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이런 것이 이 여인이 위대한 여인이란 인정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자를 안고 나가 하나님이 살리실 것을 확신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 어떤 여자들은 믿음으로 죽은 자를 다시 돌려받았다고 기록하는 데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이 수넴여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흔들리지 않고 믿을 때 우리를 귀하고 위대하다고 인정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여인의 이야기는 죽은 아들을 다시 돌려받는 데서 끝난 것 같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이어서 우리가 잘 아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와 전쟁이야기들을 기록해나가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놓치지 않고 계속 추적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위경에 있을 때 지체하지 않고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7년 가뭄이라는 큰 위기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 중에서 수넴여인과 그 가족을 빼내시고 돌보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두번째로 수넴여인을 기근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놀랍고도 섬세한 섭리에 대해 살펴보며 우리의 삶을 그렇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1절에 보니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딴 곳에 가서 거주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7년 기근을 보내기로 결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몰아닥칠 극심한 환란을 피해서 목숨을 보존하라는 것이죠.
21세기 현대에도 기근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지금도 기근으로 인해 동아프리카에서는 열 명 중 1명의 아이들이 죽어간다고 합니다.
멀지 않은 우리 땅 북한에도 기근이라는 무서운 사망의 그늘이 짙게 덮혀 있습니다.
세계가 구호에 나섰지만 기근으로 인한 죽음의 행렬을 멈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안한 전망은 앞으로 자연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더 확산될 거라는 것입니다.
이미 지구 생태계의 50%가 파괴되었고 금세기 안에 인구의 10/9가 죽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루 세끼 밥을 두 주간 먹을 수 있다면 지구촌 상위 15%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 그런 부유층입니다.
그러니 금세기에 그 나머지 85%가 더 큰 기근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전망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구약 역사 시대에 7년 기근이면 가난한 사람들은 거의가 굶어 죽었을 끔찍하고 무서운 재앙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의 기근은 인간의 생태계파괴와 전쟁과 정치적인 문제들로 인한 인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과 동식물을 굶겨 죽이실 수 있는 지 의구심을 갖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들의 풀을 입히시고 까마귀새끼에게도 먹을 것을 주시며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얼마나 사랑을 갖고 돌보십니까?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시려는 창조주의 결단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든 희생하실 각오가 되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희생하지 않는 사랑을 어떻게 사랑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리고 자기 백성을 구하려는 하나님의 비장함이 유일한 방법인 그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하기까지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기근을 결정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우리에게도 하나님께도 절실하고 절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리기라도 해서 천국으로 데려가시겠다는 것죠.
엘리야시대에도 삼년 반의 극심한 기근이 있어 시냇물까지 다 말랐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시대에는 그 두 배인 7년의 기근이 발생한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압박이 더 강력해진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경으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이 가시처럼 나를 찌르고 괴롭게 한다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도하시는 바가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고, 그 다음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바르게 성장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환경을 점점 더 압박하기도 합니다.
일도, 사람도, 건강도, 사방에서 압박해 온다면 우리가 믿음의 성장을 위해, 혹은 구원에 관련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상황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엘리사선지자가 이 수넴여인을 불러 기근을 피해 이 땅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점점 더 기근을 느낀다면 거기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죄의 자리에서 복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자리에 복을 부어주시진 않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상주하는 환경이 불신과 죄로 오염된 곳이라면 떠나야 합니다.
2절에서 여인은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족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년을 우거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인의 행동을 정확하게 기록합니다.
일어나서, 엘리사의 말대로 행하여, 가서, 우거했다 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통해 예고하셨을 때 결단은 우리의 몫입니다.
수넴여인의 결단이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7년이나 기근이 올거라는 엘리사선지자의 말을 어떻게 믿고 고향산천을 떠났겠습니까?
풍성한 곡식이 나오는 논밭을 그대로 두고, 갈 수 있는 만큼 더 멀리 고향으로 부터 떨어져 가야만 했을 때 갈등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말씀대로 순종할 때 당장 고민이 있고 손해가 될 것 같다 해도 결단할 때 주님이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수넴여인은 엘리사가 말한 7년간을 다 채우기 까지 블레셋에 머물렀습니다.
낯선 외국의 땅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두고 온 전답과 집도 궁금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 기근이 해결되었는지도 얼마나 궁금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7년이라면 7년이 맞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의 회복을 기다리고 기도응답과 진로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끝까지 정해진 시간을 잘 인내하기를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3절을 보면 7년이 지나고 수넴여인이 드디어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사이 집과 전토가 남에게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당시 여호람왕이 토지를 접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 수넴여인이 왕을 찾아간 것은 누군가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연고지로 국고에 환수된 땅을 돌려받기 위해 나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기에 왕이 나중에 한 관리를 임명해 여인에게 속한 것을 다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수넴여인이 돌아와 보니 일이 난감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나갔다면 그동안 하나님께서 그 재산을 잘 보호해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우리가 믿음대로 살려고 나름 노력하지만 때로 현실이 더 힘들어 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기도하는 데 상황이 더 악화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당황하고 혼란스러워지고 때로 하나님께 화가 납니다.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 무사안일하게 모든 일이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잘 될거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얘기라는 것입니다.
죄악과 탐욕이 뒤얽힌 세상에서 불의한 일은 일어나고 우리 삶에도 손해와 시련이 닥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아예 어려운 문제를 다 제거해 주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무사태평한 인생을 산 의인은 성경에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 인생의 어떤 문제이든 기도할 때 도와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문제를 해결하실 것을 확신하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맡기면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어렵게 하는 하는 것은 사실 문제 자체보다 그 문제로 인해 내 감정이 상하고 마음이 짓눌려 괴로운 것이 한 몫 합니다.
마음이 바뀌면 됩니다.
문제 자체는 막상 당하고 또 해결해 나가면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렵고 절망적인 문제 중에 기도할 때 우리의 생각과 지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우리를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이 복잡하고 감당키 어려운 현실이 너무나 분명한 데 기도하고 나면 거짓말 같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얼마나 자주 경험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귀찮고 힘들고 피하고 싶던 상황들이 다 별거 아니게 느껴지고 험악했던 문제들이 양처럼 순해 보이는 것입니다.
죄가 얽히고 섥힌 세상에서 나 혼자만 모든 태풍을 다 비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태풍이 우리 삶의 정점을 지나갈 때 하나님은 피할 바위가 되 주십니다.
오늘 수넴여인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모든 문제 중에도 얼마나 세밀하게 성도들을 돌보시는 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절묘하지를 보십시오.
수넴여인이 왕에게 호소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마침 엘리사선지자의 수행원이었던 게하시가 왕과 면담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은 엘리사선지자의 사역과 기적에 대해 게하시에게 자세히 묻고 있었습니다.
게하시가 엘리사의 여러 이적들 중에서 마침 죽은 수넴여인의 아들을 살렸던 일을 이야기 할 때, 바로 그 수넴여인이 그 아들과 함께 왕을 찾아온 것입니다.
왕과 대화하던 게하시는 엘리사와 함께 그 집을 드나들었던 사람입니다.
그 순간 나타난 수넴여인을 보고 그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어떻게 7년의 세월 끝에, 바로 그 자리에서 이 둘이 만날 수가 있었겠습니까?
왕이 이런 평민 여인의 호소를 평소라면 귀담아 듣기나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며 감탄과 눈물이 왈칵 나올 때는 이런 절묘한 타이밍을 맞춰 우리 짐을 벗겨주실 때입니다.
가장 절실할 때 직장을 주시고,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도움이 될 이것저것들을 기가 막히게 연결시켜주시는 것을 수도 없이 우리가 경험합니다.
왕은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즉시 한 관리를 전담시켜 여인의 재산 찾아주기에 나섭니다.
이게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왕이 뭐하러 이런 과한 결정을 내려 여인의 재산을 다 돌려주게 하겠습니까?
게하시의 증언을 통해 하나님이 기적에 기적을 더하시는 이 여인에 대해 일종의 경이로움을 느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죽은 아들까지 살려주시면서까지 뒤를 봐주시는 데 잘못했다 어떤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던 것이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만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을 사람들은 무시하지 못하고 조심스레 대합니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을 별로 대단치 않게 여긴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미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사람 앞에서는 누구든 다른 무언가를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왕 앞으로 나가 자신의 소유를 호소하는 이 위대한 여인의 담대함과 당찬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수넴여인에게 거치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잠언28장1절은 말씀합니다.
악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을 체험한 여인의 담대함에 오히려 왕이 기가죽은 듯이 황급히 과한 처분을 내리는 것이죠.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 뿐 아니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에서 난 소출을 다 계산해서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통쾌한 결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났더니 하나님께서 결국 그 재산을 잘 지켜주신 것입니다.
때로 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이 잃은 게 아니라 심은 거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다반사입니다.
여인이 직접 경작하지 않은 밭의 소출까지 덤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자상하게 생명을 돌보시고 일상의 필요를 채워주십니까?
이 집에 돈이 될 만한 것은 이미 다 팔아서 7년을 먹고 살았을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땅과 집뿐인 데 농사를 지어도 당장은 먹고 살 길이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 수넴여인이 남편 없이 아들만 데리고 왕을 보러 온 것을 보면 그 사이 늙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이 된 여인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도록 하나님이 벌써 아시고 배려하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전답이 왕의 수중에 넘어간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왕의 전답이 되었기에 그나마 기근에도 어떻게든 인력과 물자를 동원해서 소출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남겨져 보존만 되어 있던 것보다 얼마나 잘 된 일입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왜 믿고 떠난 수넴여인의 전토를 지켜주지 않으셨냐고 따지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보다 높고 우리보다 지혜로우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보통 한 사람의 일화라면 한 번에 다 이어서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수넴여인의 이야기는 진행되는 중간에 다른 이야기들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엘리사의 기적행위와 나아만장군의 치료와 아람나라와의 전쟁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다시 오늘 본문에 여인이 등장하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열왕기 저자가 의도적으로 공들여 기록한 흔적인 것이죠.
또 여러 왕들이 단 두 세절로 간단하게 평가되는 것과 비교할 때 수넴여인의 이야기는 상당히 길고 비중있게 다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의 일화에 독자들이 집중하여 꼭 깨닫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서를 읽을 독자들은 당시 하나님께 불순종해 가나안 땅을 뺏긴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한 위대한 여인이 땅을 되찾는 것을 잘 보라는 것입니다.
한 여인이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근 중에 살아남고 땅을 돌려받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 순종하며 섬길 때 반드시 땅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잃어버린 가나안 땅을 돌려받는 강력한 염원을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죠.
실제 여인이 7년만에 돌아와 땅을 되찾은 것처럼 열왕기서를 끝으로 바벨론으로 잡혀갔던 이스라엘이 70년만에 돌아오는 것이 묘한 복선처럼 느껴집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오늘 성령께서 무슨 말씀을 들려주고 계십니까?
혹시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까?
혹시 기근이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까?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선을 행하며 살면 모든 것을 되찾게 하시고 험악한 기근도 반드시 피하게 해주실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신 줄 믿습니다.
평범한 수넴여인을 오늘 저자가 한 위대한 여인이라고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사람은 ‘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한 위대한 사람’, ‘한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십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의 자녀들이 오직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수넴여인 처럼 소박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 이들을 봉사하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 우리 모두가 다 한 위대하고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줄 확신합니다.
2014년5월18일 주일설교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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