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짐승의 표(요한계시록13장1절-18절)

남수연 2014. 10. 2. 13:22

이 달 초 애플사에서 애플워치라는 신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제 나이만 되도 이런 종류의 신제품에 별로 관심이 안 생깁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애플워치는 스마트폰의 기능을 가진 손목시계입니다.

그런데 애플워치를 소개한 미국의 타임즈 기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애플워치를 소개하며 앞으로 인간과 컴퓨터가 결합할 미래가 멀지 않았다고 소개한 것입니다.

컴퓨터가 이제 우리의 몸의 일부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죠?

인간과 컴퓨터의 미래에 대한 또 다른 예민한 논란은 베리칩에 대한 것입니다.

베리칩은 인간의 몸 속에 주입하는 실리콘소재의 생체용 칩입니다.

쌀 알 정도의 크기라 주사기로 간단하게 주입할 수 있습니다.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GPS기능과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입력해 몸에 심어 넣을 수 있는 것으로 이미 미국에서는 의료용으로 상용화 되고 있습니다.

이 칩을 이식하면 유괴된 아이들이나 치매로 길을 잃은 노인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도 있고 또 범죄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 추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발명품들이 결국 인간의 자유를 통제하고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자칩을 주입받은 쥐 실험에서 한결같이 암이 발생했다는 연구보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판독기만 있으면 개인의 정보가 대책 없이 털려나갈 수 있습니다.

맘만 먹으면 이 시스템을 이용해 권력자가 인간을 자유자제로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베리칩의 기능과 이식방법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마지막에 있는 짐승의 표를 연상시켜 기독교계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하필 베리칩이 이식되는 곳이 오늘 본문의 짐승의 표를 받는 부분과 똑같이 손등과 정수리 부분, 즉 이마입니다.

또 지금은 개인정보만 담겨있지만 장차 은행시스템과 연동하면 오늘 본문 말씀처럼 분명히 매매의 기능을 갖게 됩니다.

시작은 위치추적과 신원파악으로 시작했지만 편리하니까 자꾸 다른 기능들을 추가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베리칩이 666이라는 논란으로 베리칩회사는 주가가 바닥까지 내려가고 현재는 회사 이름도 바꾼 상태입니다.

오늘 베리칩에 대해 처음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 한인교인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바마대통령의 의료보험개혁인 오바마케어 시행안에 베리칩을 이식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는 루머 때문입니다.

실제 비슷한 내용이 시행안에 들어 있었지만 부결되었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시행될 가능성이 있겠죠.

그래서 이게 짐승의 표가 아니냐, 받으면 구원을 못받는 거냐 하는 심각한 논의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목회자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일까요?

우리나라도 이미 이런 기능들이 개발되고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자태그나 전자칩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동물에게는 이미 주인의 정보가 담긴 칩을 애완견의 몸 속에 주입하거나 전자태 목걸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S기업에선 이미 인체에 주입할 수 있는 바이오칩 허가와 승인을 미국 식약청에서 받아놓은 상태입니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되면 효과적인 진료를 위해 환자들에게 이 바이오칩을 이식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칩을 이식받고 그 안에 개인의 정보를 입력해 놓으면 원격진료가 가능해 지는 것이죠.

몸 안에 있는 칩과 스마트폰이 연동해서 정보를 병원에 보내주면 의사가 처방전을 보내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베리칩과 같은 문제에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은평구의 모 교회에서는 앞으로 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은행거래를 못한다고 25억원어치의 금괴를 사두었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감리교단 대형교회 김목사님은 베리칩이 666이니 받아서는 안된다고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저 건너편 오륜교회 김목사님은 베리칩은 666이 아니니 받아도 된다고 설교했다고 합니다.

각 교회의 입장이 이렇게 분분하다보니 교단별로 베리칩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해서 입장을 정리해서 발표를 했습니다.

저희 총신대 측 예장합동에서는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해석이고 베리칩과 구원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베리칩에 대한 논란과 두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일하고 공부하고 살림하고 먹고 마시는 일에 정신이 없으니 우리가 타고 가는 지구열차가 지금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지 관심도 못가지시죠?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짐승의 표와 사탄의 활동을 살펴볼 때 성령께서 우리를 바른 진리로 인도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요한계시록을 펼치는 것도 두려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종말에 있을 성도들의 환난도 무섭고 하나님의 심판도 두렵다는 것이죠.

모른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과 뜻을 알 수 없는 숫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해석하기가 좀 난해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모든 성경의 주석을 썼지만 계시록은 제외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요한계시록은 덮어놓고 믿는 성경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목사님들 사이에서도 계시록 설교는 안하는 게 지혜롭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분명히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도 다른 성경처럼 당연히 성도들이 읽고 지켜야 될 말씀이고 오히려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비밀로 가득 찬 감춰진 책이 아니라 열려있는 책입니다.

계시록22장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인봉하지 않았다는 것은 비밀스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더욱 깨어있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성경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그 어떤 성경보다 직접적으로 영적인 세계에 대해 많이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상황들뿐 아니라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 배후에 있는 사탄의 활동이 어느 성경보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시록을 잘 읽으면 겉으로 드러난 이 세상을 뒤에서 주무르고 있는 사탄의 마수를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깁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계시록이 소망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땅의 일들 위에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하시고 결국 성도들이 승리할 것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의 세력은 영원히 심판을 받고 예수님과 성도들이 최후의 영광을 누리는 모습을 요한사도에게 미리 보여주시고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한 성경이 없습니다.

이상한 상징과 숫자가 도대체 무엇인지에만 너무 골몰하지 말고 전체를 읽는다면 정말 역경을 이겨낼 힘을 주고 믿음을 강하게 해주는 말씀이 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그럼 먼저 논란이 되고 있는 짐승의 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오늘 배교의 표식인 짐승의 표 육백육십육 같은 경우 어디를 찾아봐도 관련 성경이 없습니다.

그래서 육육육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추측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 말씀 안에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고 합니다.

기록당시 문화 중에는 헬라어 알파벳마다 고유 숫자가 부여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ㄱ하면 1, ㄴ하면 2, ㄷ하면 3 이런 것입니다.

사탄의 꼭두각시인 짐승이 누군지를 알려면 그 이름의 철자를 숫자로 환원시켜보면 666이 된다는 의미로 본문을 해석해 볼 수가 있겠죠.

역사적으로 이름값이 666이었던 사람들은 많습니다.

당시에 성도들이 이 말씀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리고 재빨리 이름값을 계산했다면 그 사람은 단연코 네로황제일 것입니다.

네로라는 이름의 숫자를 더하면 과연 666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미 네로는 죽은 다음이기에 그에 못지않은 광란의 황제가 또 나올 것이라고 예견했을 것입니다.

3절에도 짐승은 죽은 것 같았다 다시 살아났다고 말씀합니다.

계속해서 사탄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짐승과 관련되어 의심받고 있는 컴퓨터의 이름값도 666이 나옵니다.

교황이 쓰는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삼중관에 써 있는 글귀도 666이 나옵니다.

짐승과 짐승의 표는 마지막 인류종말에 일어날 한 사람이나 한 사건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미혹하는 짐승과 짐승의 표들은 당연히 당연히 존재합니다.

또 이마와 손등에 표를 받는다는 것이 꼭 어떤 물체를 삽입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다음 장에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마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이 써있다고 합니다.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누구의 소유가 된다는 뜻임을 생각할 때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사탄을 숭배함으로 그의 소속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베리칩은 짐승의 표가 아닙니다.

짐승의 표는 이천년 지구역사 속에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성도들을 미혹해왔습니다.

그러나 배교를 강요하는 집단이 이 베리칩을 사용한다면 어느 시점에서는 짐승의 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짐승의 표에 대한 우리의 교훈은 무엇일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마지막 종말의 때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야기 중에 삽입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이 지구의 마지막 미래에 일어날 일을 계시하는 내용일까요?

답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아서 읽는 사람들은 로마제국 치하에서 고통당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2천년 뒤의 일들을 주로 쓴다면 누가 그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고, 확신을 가지며 믿음을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분명히 1장1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그러니까 일단 요한계시록은 2천년전 고난당하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씌어졌고 그 당시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성경이 그렇듯이 모든 시대에 적절하게 적용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계시의 말씀을 읽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이중 삼중의 예언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세대 뿐 아니라 당연히 인간역사의 마지막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또 당시 사람들에게 이 서신이 곧 임박한 역사의 종말로 예고하며 말씀하셨다면 지금 우리에게도 이 시대를 역사의 종말로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지구역사의 종말이 실감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생역사의 종말은 어떻습니까?

길어야 백년인 우리 생명의 역사는 얼마나 짧습니까?

또 백년이 다 보장되지도 않았으니 우리야 말로 급박한 종말시대를 각자가 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각자가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2천년전 로마황제들의 끔찍한 박해와 관련 된 말씀이지만 우리 세대에도 정확하게 적용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왜 그렇게 많은 상징과 계산이 딱 떨어지지 않는 숫자들로 되어 있는 것은 모든 세대에 적용되기 위해서일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어느 시대이건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세상은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것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우선 본문에 보면 사탄과 관련 된 인물이 셋이 나옵니다.

사탄을 상징하는 ‘용’과 ‘첫번째 짐승’과 ‘두번째 짐승’입니다.

사탄의 삼두체제라고 하면 적절할까요?

보이지 않는 사탄을 대신해 역사 속에 드러나게 실제적으로 일하는 하수인이 이 ‘짐승들’입니다.

첫번째 짐승은 마귀에게 권세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이 세상 국가나 거대한 조직이나 세력을 말합니다.

1절에 보면 첫번째 짐승의 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 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이렇게 말씀하죠.

여기서 뿔이나 머리, 왕관 이런 것들이 실제 존재했던 국가와 왕들을 가리킨다고 17장에 확실하게 해석을 해줍니다.

당시 이 편지를 받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걸 읽을 때 머리 속에 지독하게 성도들을 박해하던 어느 어느 왕들을 쉽게 떠올렸을 것입니다.

여기 일곱 머리는 일차적으로는 당시에 로마를 통치하던 네로황제를 비롯한 일곱 황제들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그 짐승이 하는 일이 5절, 6절에 보면 하나님을 비방하고 7절에 보면 성도들과 싸워 이긴다는 것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의 국가나 조직들에 권세를 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게 하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그 배후에 사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순교했습니까?

육이오 때 공산당에 의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와 공산당에 굴복하지 않은 순교자 수가 2천 6백 여명으로 추산됩니다.그 때가 분명히 당시 성도들에게는 이 말씀대로 종말이 아니겠습니까?

김일성의 표를 달지 않거나, 천황의 식민으로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짐승의 표의 의미가 이런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이슬람국가나 공산주의, 나치주의 이런 배경에 누가 있는지를 요한 계시록은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짐승의 우상은 꼭 피흘리는 박해로만 우리 곁에 오지 않습니다.

서구교회들의 몰락이 무엇을 말해줍니까?

번영과 과학과 인본주의, 개인의 행복과 현세의 축복, 이런 것들을 통해 믿음을 다 가져갔습니다.

이게 피 흘리는 박해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어려워진 상황에는 분명히 사탄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현재도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고 고난을 조장하는 데는 사탄의 세력이 우리 삶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인지를 해야 합니다.

권력이 있는 세력이 우리의 신앙을 가로막는다면 그 배후에 사탄이 존재합니다.

만일 우리 청년들 삼성에서 입사하는 조건으로 주일에 근무하고 대신 월요일을 쉬라고 한다면 어떡할 것 같습니까?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시죠?

청년들 결혼했는데 시댁에서 제사를 지낼 뿐 아니라 제사상에 절을 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아는 여전도사님이 그런 고민을 이야기 하더군요.

시댁이 믿지 않는 경상도분들인 데 그동안은 제사상에 절하지 않는 것을 묵인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 갔더니 이젠 아이들이 컸으니 아이들은 절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는 오늘 본문과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거부하면 끔찍한 가정 불화가 일어나고 남편과 갈등이 생기고 명절마다 전쟁터가 되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이런 세력에 대해 보이는 반응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4절, 이들이 용에게 경배하고 짐승에게 경배하며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우리의 신앙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너무 큰 문제라 그 앞에 다들 굴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을 약화시키려고 등장하는 짐승이 표들이 만만히 볼만큼 대단찮은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8절에 보십시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 경배할 수밖에 없는 압박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우리가 믿음을 뒤로 하고 더 경배하고 쫒도록 강요하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건강입니까, 돈입니까, 세속적인 자랑과 허영과 성공입니까?

그것들과 맞짱 떠서 믿음으로 승리하라고 이 계시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지금 못하는 데 무슨 위기의 시대에 믿음을 보일 수가 있겠습니까?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든 일들 중에서 신앙과 불신앙을 구별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르기를 지금 선택하지 못하면 위기 때는 더욱 신앙을 지키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런 경각심을 가지라고 오늘 계시록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선망하고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들이 모두 허망하게 무너져버릴 것이라는 것을 계시록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시지 않습니까?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우리를 시험하는 짐승과 짐승의 표에 맞서 믿음의 곧은 길을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고 영광스런 길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짐승은 11절에 보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사로잡는 종교적인 인물이나 사회적으로 부각되는 인물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12절에 보면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교황과 같은 종교지도자가 어떤 나라와 결탁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더 큰 세력이 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코교황이 행복십계명을 발표했는 데 그 중에 이런 계명이 있습니다.

5계명은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쉬자입니다.

가족과 함께 쉬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 보다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9계명은 개종시키려하지 말자입니다.

천주교는 근본적으로 전도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어디로 이해하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유엔에서도 이미 종교모독금지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다른 민족의 종교를 침해하는 선교를 원천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선교를 막으면 어떻게 참혹한 처지에 빠진 인간들이 구원을 받겠습니까?

이런 세력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 지 확실히 아시겠죠?

하나님 없는 세계평화를 모토로 하는 유엔의 지도자들이나 종교적인 인물이나 정치적인 인물이 바로 두번째 짐승인 것입니다.

이런 류의 존경받는 인물이나 인기 있는 인물들이 언제든 예수그리스도께로 돌아올 사람들을 크게 가로막습니다.

김수환추기경이나 법정이나 성철 같은 승려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요즘은 인기있는 연예인들이 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멤버 중 두명이 사망한 걸그룹이 있죠.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형적인 사탄숭배 사상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들 멤버를 상징하는 다섯개의 인형을 사탄 앞에 인신제물로 바치는 그런 장면이 들어가 있습니다.

영화와 문화예술과 아이돌 같은 인기 연예인들을 통해 사탄은 영혼을 무더기로 미혹하고 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즐기고 좋아하는 것들 중에 얼마나 반기독교적인 것들이 섞여 있는 지.

제가 아는 집사님이 다음 달 딸을 결혼시킵니다.

어제 함이 들어온다는 데, 함이면 그 안에 사주단자라는 게 들어있지 않습니까?

온 가족이 다 믿는 사람들인 데도 그 딸이 전통방식대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루떡을 해서 그 위에 사주단자를 올려놓고 또 바가지도 깨뜨리는 의식을 해야 된다고 해서 결국 바가지를 사왔다는 것입니다.

이게 전통이라지만 그 배경이 귀신에게 결혼 신고식을 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하며 결혼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전통적으로 그랬으니까 따라하지 않으면 뭔가 찝찝하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비기독교적이면 거의 그 안에 사탄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냥 호기심으로 점을 보고, 길일을 택하고 이런 배경에 사탄의 세력이 있고 귀신을 끌어들이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문화도 잘 선별해야 합니다.

무슨 곡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좋다고 듣는 음악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본의 아니게 사탄의 사상을 수용하고 지지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사탄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점점 잔혹하고 기괴하게 세상을 결박하여 지옥을 향해 끌고 가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단지 사탄의 세력과 세상을 통치하는 짐승의 권력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5절을 보면 이들이 활동하는 기간이 마흔 두 달로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성도들의 인내로 우리에게 다가온 고난과 박해들을 믿음으로 견디면 그것들은 끝이라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사회적인 불이익을 감수하고 때로 순교까지 한 성도들이 결과적으로 받을 영광이 다음 장에 나타납니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우리를 미혹하고 신앙의 길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뒤에 누릴 그 영광을 우리가 상상인들 할 수 있겠습니까?

불신의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때 우리 앞에는 정말 상상치도 못한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먼 미래의 영광 뿐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도 하나님은 좋은 것들을 예비하신 줄 믿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당할 불이익이 두려워 짐승을 경배한 자들이 당장은 그 세대에 이익을 누리게 될지 모르지만 그들의 결말 역시 다음 장에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짐승의 표가 베리칩은 아닙니다.

현재까지 베리칩은 그냥 바코드와 같은 문명의 이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혹시 진짜 지구의 종말이 임박했을 때 오늘 본문이 문자적으로 그래도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미 준비되어 있고 오늘 본문이 분명한 어떤 실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당장의 이익 때문에 지금 현재 세상의 신인 사탄에게 머리 숙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0절 말씀대로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히리라, 칼에 죽을 자는 칼에 죽으리라. 이런 믿음의 담대함과 용기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으로 살아낼 엄청난 평강과 강함으로 우리를 세워주십니다.

우리는 그렇게 약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보일지 몰라도, 겨자씨 한 알 만한 크기의 믿음이라 해도 우리 앞의 위기와 짐승의 표를 이기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게 바로 믿음의 능력입니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죄값을 치러주시고 지금도 동일한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예수님께만 끝까지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축복드립니다.

2014년9월28일 주일설교 남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