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2년의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우리교회와 성도님들 가정을 인도해주시고 크고 작은 시련을 이기고 무사히 일 년을 건너오게 해주신 하나님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마지막 주일설교로 무슨 말씀을 나눌지 기도하던 중 빌라델비아교회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 주는나의산성교회와 성도님들에게 하시는 주님의 칭찬과 격려의 말씀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들만큼 완벽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지만 우리 주님께서 그만하면 잘했다. 수고했다. 위로하고 어깨를 두드려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또 지금 좀 부족하더라도 오늘 말씀을 잘 살펴보며 새해에는 조금 더 노력한다면 주님께서 더욱 기쁘게 여기실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한 해 고단했던 삶을 정리하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풍성한 위로와 새로운 소망을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요한계시록은 요한사도가 생의 마감을 앞두고 기록한 편지이고 모든 성경의 종결편입니다.
요한사도의 나이도 백세가 가까웠습니다.
당시 황제를 신격화하던 로마정권은 사도 중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요한을 중범자가 수용 된 밧모섬에 유배시켰습니다.
요한사도는 이 섬에서 돌을 깨는 노역을 했다고 전해오며 지금도 이 밧모섬에는 채석장에서 돌을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는 냉혹한 유배지였지만 지금은 성지순례객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성지가 되었죠.
요한사도가 거주하던 고독하고 차가운 동굴에서 이 서신이 기록되었습니다.
때로 가장 고통스런 시간이 가장 깊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홀로 남겨지고 사방이 벽으로 막힌 것 같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요한계시록엔 지구역사의 마지막과 하나님나라의 완성이 웅장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종말이 반드시 올 것을 경고하며 믿음을 굳게 지키도록 교회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엔 상징적인 표현이 많아 전체가 좀 난해하게 느껴집니다.
또 요한이 미래의 문명을 배경으로 한 환상을 보고 기록할 때 표현의 한계가 있어 아리송하고 기괴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요한사도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제트기가 굉음을 내며 폭탄을 투하하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불을 뿜는 큰 새가 세상의 생물을 죽이고 이런 식으로 기록했을 것을 감안하면 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단지 인류의 종말을 예언한 성경만은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현재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신실하게 살아야할 지를 각성하도록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서의 서두에 이렇게 말씀하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다른 성경과 같이 계시록의 말씀도 읽고 묵상하며 우리에게 종말이 있음을 잊지 않고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요한의 서신은 고난당하는 주님의 교회에 보내졌습니다.
당시 복음이 소아시아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시점에 사탄의 세력도 교회를 무너뜨리려 맹공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힘을 내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도록 격려하는 메시지를 요한사도를 통해 일곱교회에 전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일곱교회들의 믿음을 정확히 진단하셔서 칭찬하시고 또 부족한 것을 회개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일곱 개 교회 중 단 두 교회만이 예수님께 온전한 칭찬을 들었고 그 중 하나가 오늘 살펴보려는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
칭찬받은 빌라델비아교회의 믿음을 살펴보고 부족하지만 우리교회와 성도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이유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8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죠.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느니라.
먼저 내가 네 행위를 안다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이 일곱 교회에 말씀하실 때 공통적으로 내가 네 행위를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교회와 성도의 모든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관심과 마음은 이 땅에 있는 주님의 교회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안보고 계시는 게 아닙니다.
그 관심과 사랑은 물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속에 있는 믿음이나 진실함을 안다고 하지 않고 네 행위를 안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교회와 우리 믿음을 평가하실 때 밖으로 드러난 행동에 주목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자기 자신도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착각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중하게 보시는 이유는 결국 우리 마음이 행동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죠.
우리의 행동은 진짜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한 일을 따라 움직입니다.
건강을 최고의 가치로 둔 사람의 일상은 운동과 건강식품 사는 데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관심을 가진 대상이 생기면 온통 거기 관련 된 물건만 사들이게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루 종일 우리의 삶의 반경을 지켜보시면 굳이 우리 마음을 들여다 보지 않으셔도 다 아신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하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 뿐 아니라 몸으로 주님의 말씀을 행했다면 칭찬받을 믿음인 줄 믿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관심 있게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기길 원합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주변의 다른 교회에 비해 규모나 능력이 다소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작은 교회이고 우리들도 작은 능력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되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이런 작은 능력으로 한 사람 예외 없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려고 애쓰고 수고했다고 믿습니다.
작은 능력에 비해 열심히 주일 예배로 하나님을 섬겼고 주님의 교회를 위한 우리의 봉사와 헌신도 주님께 기쁨이 되었으리라 확신합니다.
이렇게 작은 능력이지만 함께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한 해를 달려온 우리 모두를 부족하지만 족하게 보시고 주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와 같이 축복하시고 칭찬하시는 줄 믿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받은 이유를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내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
주님을 시인해야 할 자리에서 시인했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물론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박해를 받으며 목숨을 걸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소아시아 전체가 이슬람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했던 14세기까지도 빌라델비아에만 교회가 존재했었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작은 능력을 가졌던 빌라델비아 교회가 어떻게 모진 박해 속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그들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을 지 생각하면 참 자신이 없는 일이죠.
그런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끝날 까지 나와 함께 하시고 내세의 모든 것을 확실히 책임지실 것을 믿으십니까? 아멘.
하나님에 대한 이 신뢰가 우리를 끝까지 믿음 가운데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이 있다고 믿고 영원하고 영광스런 상급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믿음은 결코 배반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자신을 주시기로 결정하신 뒤 한번도 그 마음을 바꾼 적이 없으십니다.
고통의 절정인 십자가의 현장에서 제자들이 다 달아나 버리고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도 그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사도의 제자였던 폴리갑이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중 하나인 서머나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서머나 교회 역시 빌라델비아교회 처럼 예수님께 칭찬받았던 교회입니다.
그가 황제신상을 숭배하지 않은 죄로 체포되었을 때 평소 그를 존경하던 서머나의 총독이 그를 살려주려 했습니다.
그는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소. 황제가 주님이고 나사렛 예수가 주님이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하시오. 그러면 당신을 풀어주겠소.” 그 때 폴리갑이 이렇게 말하고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나의 주님은 86년 간 단 한번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으신 데 어떻게 내가 주님을 배반하겠소.’
우리 인생에서 결코 나의 기대를 배반하신 적이 없으신 주님을 온전히 알아 갈 때 우리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눈물과 한숨의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 손을 잡아주셨던 주님을 믿기에 우리도 끝까지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따르리라 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 해, 또 우리의 일생을 돌아보면 결코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배신한 적도 없으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원히 내 곁에서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가고 의지했던 권력도 물질도 건강도 우리를 배신합니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나를 사랑하기로 결정하신 하나님만이 영원히 내 곁에 계실 뿐입니다.
얼마 전 삼0교회 송태0 목사님이 설교 중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자기는 고등학교를 5년을 다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가정이 깨져 학교를 제 때 마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보니 머리 맡에 어머니가 남긴 쪽지가 있었습니다.
쪽지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 찾지 마라. 굶지 말고 다녀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 줄 부모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그 가슴에 휑한 고독과 절망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부모의 사랑마저 나를 버릴 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배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송태0목사님을 거두시고 훌륭한 목회자로 세우셨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누가 우리를 거둬주셨습니까?
그래서 육신의 부모보다 더 큰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한 시편기자는 시편 27장 10에서 노래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신 그들의 믿음은 사실 미약한 우리 신앙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시 소아시아의 교회들이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생명을 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우고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우리를 영원토록 사랑하실 주님을 날마다 체험해 갈 때 우리도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으로 성장해 갈 줄 믿습니다.
이렇게 점점 주는나의산성교회가 빌라델비아교회와 같은 견고하고 장성한 믿음으로 성장해 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다음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약속하신 주님의 축복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지킨 빌라델비아교회에 우리 주님은 엄청난 축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의 믿음과 수고는 허공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갚아 주십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가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일날 자식들에게 생일선물 받고 나면 자꾸 뻔한 아이들 주머니사정이 걱정 돼 슬그머니 용돈을 집어주게 되지 않습니까?
어떨 때는 들인 돈보다 더 많이 받아갑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것은 우리의 충성과 헌신 이상의 넘치는 축복인 줄 믿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께서 주신 축복은 첫 째는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셔야만 우리 장래가 형통하고 들어오며 나가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적은 능력으로 충성한 우리 모두 앞에 문을 활짝 열어주신 줄 믿습니다.
새해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얼마나 축복이 되는 말씀입니까?
우리 교회에는 무엇보다 전도의 열린 문을 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삶에 새해에도 헤쳐 나가야 할 많은 문제들은 쌓여있고 땀 흘리고 애써서 도전해야 할 일도 많지만 주님께서 열린 문을 두신 줄 믿으시기 담대하게 나가시길 축복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인생의 곤고한 짐에 짓눌리고 찌그러진 양푼처럼 살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를 마음껏 발휘해 삶의 영역을 넓히고 기쁨으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뜻을 이루길 원하십니다.
자녀의 앞 길에 문을 닫고 가로막고 섰는 부모는 없습니다.
영화배우 김수0씨라고 아시죠?
그의 아버지가 과거에 이름 있는 가수였고 지금도 지방의 밤무대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해품달로 김수0씨가 한창 인기 절정에 있을 때 자연스레 아버지에게도 관심이 쏠렸죠.
그런데 그 분이 혹시라도 아들의 앞 길에 지장이 있을까봐 정말 철저하게 자신을 가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매스컴에 가급적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항상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인터뷰도 거의 사양한 것으로 압니다.
혹시 자기 얼굴이 알려지고 나중에 책잡힐만한 행동이라도 했을 때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자신을 사리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세상 부모들도 자식이 활개를 펴고 꿈을 이루기를 바라는 데 하물며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우리를 부르신 아버지께서 원하는 자녀 앞에 왜 문을 열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직업 속에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함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작은 능력 밖에 없다 해도 지혜와 능력의 공급자 되신 아버지를 믿고 최선을 다할 때 반드시 우리 앞에 열린 문을 통해 소원하는 것을 이루게 하실 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우리 청년들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세상을 향해 도전하시고 꿈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길 축복드립니다.
이번에 미스유니버스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던 미스코리아 이성0양이 꿈을 이루지 못해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최고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했던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청년들도 그런 믿음으로 진로를 향해 도전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장년들도 지금보다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시고 점점 우리 삶이 안정되고 윤택해지게 하실 것을 믿으시고 새해 더 성실히 노력하길 원합니다.
두 번째 축복의 약속은 9절에 나와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무시하고 괴롭히던 대적들을 네 발 앞에 절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원수가 우리 발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상상하면 얼마나 즐겁습니까?
당시 빌라델비아교회를 심하게 괴롭혔던 율법주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사도의 선교현장에서도 얼마나 율법주의 유대인들이 살의를 품고 박해했는 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 중 몇을 교회에 무릎 꿇리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닌다면 세상 사람들은 은근히 우리를 무시하고 박해합니다.
실제로 직장생활 중에서 믿음을 좀 드러내면 굉장히 싫어합니다.
회식자리에서 술 좀 거절하면 분위기 망친다고 눈총 받죠, 주일 근무나 주일 행사 같은 걸 꺼려하면 혼자 교회다니냐며 야유를 받습니다.
요즘 같은 종교다원주의 시대엔 어디 가서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면 비난이 빗발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경동교회에 승려가 설교단에 서서 강연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종교간 화합을 강조하는 시대에 우리같이 개혁주의 보수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외통수 취급을 당합니다.
‘긍정의 힘’이란 잘 나가는 책을 쓴 조엘 오스틴 같은 목사는 방송에서 절대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같은 프로에서 맥아더 목사님은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말했다 방청객들의 야유를 받았습니다.
직장에서 성경책만 좀 꺼내놔도 괜히 자기 자유를 침해당했다는 듯 편치 않은 얼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어요’란 책을 쓴 정경0주사모가 스튜어디스로 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단지 기독교인이고 전도하고 말씀대로 신실하게 산다는 이유로 정사모님을 지독히도 미워하는 미스터 김이란 남자 승무원이 있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 비아냥거리며 공격하니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어느 날 정사모님과 미스터 김이 함께 일본 상공 위를 비행 중이었는 데 갑자기 오른 쪽 날개 엔진에 불이 붙어 화염이 동체로 번져오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긴급하게 들려온 기내방송은 곧 비행기가 일본해에 비상착륙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행기 사고에서 목숨을 건질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를 아는 승무원들과 승객들은 죽음을 예감하고 순식간에 기내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런데 정사모님은 묘하게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때 비상착륙 시 아무도 일어나면 안되는 규율을 깨뜨리고 미스터김이 정신없이 정사모님 앞으로 달려오더니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탁이니 제발 자기를 위해 기도 좀 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정사모님은 죽음의 공포에 질려 있는 미스터김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셔서 엔진에 타고 있는 불길을 끄시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위대한 분이심을 보여달라고 기도하고 아멘을 하는 순간 안내 방송이 들렸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타고 있던 불이 갑자기 꺼져 비상사태는 마무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숨죽이던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미스터김의 눈에선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 다시는 그에게서 가시 돋친 말을 들을 수 없었고 오만하던 그의 행동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던 사람만 우리 앞에 무릎 꿇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압박하고 지배하며 괴롭혔던 환경도 힘겨운 문제들도 다 우리 앞에 무릎 꿇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박해하던 자들을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 앞에 무릎을 꿇리겠다고 하십니다.
왜요?
주님은 우리가 불의한 세력에 무시당하고 고난당할 때 너무 속이 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앞에 우리를 높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우리를 둘러 싼 힘든 환경이 축복으로 바뀌고 원수가 굴복하는 것들을 통해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시편23편에서 그의 인생에 이런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 다윗왕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런 축복을 새해에 주시리라 믿으시고 더욱 주님만 신뢰하고 조금 더 견디시길 축원드립니다. 아멘.
세번째 빌라델비아교회에 주시는 축복이 10절에 있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리라.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를 주님도 지켜주십니다.
우선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우리 본성과 정 반대가 되기에 그것을 지키려면 대부분 참고 인내하며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저절로 따라지지 않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시는 데 우리 본성은 잠시도 기도하길 싫어합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하시는 데 우리는 저절로 우울감에 젖어들고 염려하는 게 본성입니다.
겸손하라하시는 데 조그만 잘되면 교만이 머리를 듭니다.
우리는 조급한 데 하나님의 약속은 주님의 때까지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매일 이렇게 우리의 본성과 거슬려 주님의 말씀을 삶의 지침으로 삼고 인내하며 지킬 때 주님도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차 올 큰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때는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모든 자를 시험하는 때입니다.
역사의 종말에 모든 인간이 함께 고통 받고 시험받을 대 환란의 시기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이 종말의 날이 아닐지라도 반드시 하나님 앞에 자신을 테스트받는 때가 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죽기 전에 누구이든 이런 불같은 시험을 통해 창조주에 대한 믿음과 선과 악을 선택하게 되는 시험이 옵니다.
부유하게 명예를 누리고 교양 있게 살던 사람도 그 인생이 다하기 전에 반드시 인생의 혹독한 시련을 통해 자신의 교만과 불신과 사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시험을 받습니다.
누구건 극한 상황에선 가면이 벗겨지고 본성이 드러나게 되어 있죠.
그걸 통해 심판자 앞에서 자신이 의롭다고 핑계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 그걸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삶에서 자기 힘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환란을 만났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불같은 시험과 종말의 고통당하는 때를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어린 양의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가는 성도들에게 피하게 하시고 지켜주시겠다고 오늘 우리에게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또 새해에도 우리 앞에 있는 크고 작은 시련과 문제들을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능히 피하고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작은 능력으로 충성한 성도들에게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요긴한 존재가 되게 하고 견고한 기둥 같은 존재가 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상급은 우리를 그냥 아버지 품에 무위도식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의 나라를 떠받칠 능력 있는 자들로 사용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세 가지 이름을 기록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을 기록해 영원한 하나님의 소유를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창조자가 만족하고 보증할 만한 작품에 사인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같이 미련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영광스런 주님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성도가 된 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이요 축복인 줄 믿습니다.
지금도 빌라델비아 성지에 가면 오랜 풍상에 교회 건물은 다 무너져 사라졌지만 아름드리 돌기둥 세 개가 아직도 교회 터 위에 웅장하게 남겨져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이 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견고하고 아름답게 새겨진 기둥 같은 존재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지난 한 해 작은 능력으로 주님보시기 기쁘시게 최선을 다해 달려 온 우리들을 오늘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앞으로도 이 믿음으로 주님을 따를 때 우리 인생에 이런 축복들을 넘치게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계속 우리 믿음을 견고히 다지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할 능력을 받아 새해는 빌라델비아 성도와 같이 더욱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아멘.
2012년 12월30일 주일예배 설교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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