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하는 생활이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주님 앞에 예배하는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은혜를 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인류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천상의 혼인잔치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장엄하고 환희가 넘치는 감격스런 혼인잔치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교회와 우리 주님과의 완전한 연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결혼식에 참석해 보아서 알겠지만 결혼은 모두에게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벌어지는 탄생과 성장과 죽음 같은 사건들 중에서 결혼은 인생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엄청난 분기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이란 대 명제를 놓고 현인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결론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스라엘 속담에는 땅을 사려거든 서둘러라. 그러나 결혼을 하려거든 시간의 여유를 가져라 라는 말이 있고
포프라는 사람은 사랑을 할 때는 꿈을 꾸지만 결혼을 하면 꿈을 깬다.
아폴리트 텐은 삼주동안 서로 관찰하고 석 달 동안 서로 사랑하고 삼년 동안 서로 싸우고 30년 동안 서로 참는게 결혼이다.
바이런은 죽음으로써 모든 비극이 끝나고 결혼으로써 모든 희극은 끝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결혼에 대한 명언들은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이 더 많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결혼이 그만큼 죄로 인해 오염되고 파괴되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이디어인 결혼은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고귀하고 완벽한 사랑의 연합이었습니다.
인생 가운데 있는 결혼생활이 비록 죄로 인해 파괴되고 기쁨과 행복을 주기 보다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예수님과 성도들의 이 아름답고 장엄한 결혼식이야 말로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바로 그 완벽한 사랑의 연합이요 구원의 절정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결혼식이 등장합니다.
최초의 결혼은 창세기 2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담과 하와의 결혼이죠.
하와를 처음 본 아담의 입에서 나온 찬사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라는 기쁨과 감격의 언어였습니다.
곧 자기의 뼈를 깎아서 만든 자기 자신 보다도 더 소중한 사랑이란 뜻입니다.
이 아름다운 만남을 주례하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러므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이 될찌니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최초의 결혼에서 이미 인류 마지막 결혼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곁을 떠나 교회와 한 몸이 되어 완전한 연합을 이루시는 것이 이미 창세기부터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울이 깨닫고 에베소서5장31절에 결혼에 대해 말하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맺어진 인류의 마지막 결혼이 오늘 우리가 읽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혼인잔치는 바로 우리의 혼인 잔치가 될 것입니다.
결혼하기엔 조금 늙어 보이지만 우리가 바로 그 주인공 신부입니다.
권사님과 안수집사님은 좀 많이 늙으셨지만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신부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교회와 예수님과의 연합을 신랑 신부의 관계로 표현한 것은 죽음까지 불사하는 그들의 열정적 사랑과 서로에 대한 헌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아십니까?.
아가서4장 9절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고백을 하십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남편에게 이런 사랑의 고백 들어보셨나요?
저는 아직 못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못 들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고백을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사랑을 입었기에 모두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신부로 주님 곁에 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혼인 잔치를 위해서는 신부가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어린양 예수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깨닫고 혼인 잔치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믿고 거듭난 사람만이 어린양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계시록1장5절에 보면 신부 된 우리를 어린양의 피로 사셨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요한복음6장53절에도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1장5절에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통해서도 우리가 어린양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린양의 피로 속죄함을 받아야 그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부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신랑이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 피를 멸시하고 외면하는 사람은 신부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작년에 영화배우 장진영씨의 결혼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과 안타까움을 주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의 남편인 김모씨는 위암으로 죽어가는 장진영씨 곁에서 떠나지 않고 그녀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지켜주었습니다.
살 수 있는 날이 1달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날 성북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인 부부가 되었습니다.
장진영씨가 죽은 후 그가 한 말은 ‘내가 곧 그녀이고 그녀가 곧 나입니다. 혼자 보내기 힘들어 마지막 가는 길에 끝까지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꿈속에서라도 평생 지켜주고 싶었습니다라’ 라고 하며 절절한 그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신부는 신랑에 대해 얼마나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었을까요?
그의 사랑이 진실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도 신랑의 사랑으로 인해 눈물 흘리며 떠났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과 결혼이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준 것은 그 남편이 죽을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가 죽음의 그림자 곁에는 가기를 싫어합니다.
죽음의 위력 앞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죠.
그것을 극복하고 죽을 신부 곁에 선 신랑이기에 모두가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예수님도 죄로 죽었던 우리를, 이미 죽음의 냄새가 나던 우리를 주님의 신부로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죽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보혈로 비싼 값을 치르시고 건져내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에 어떻게 감사와 감격이 없겠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만이 신부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믿는 사람에게만 효력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십자가의 사랑이 고마울 리가 없습니다.
종교생활은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감사와 친밀감이 없고 겉치레뿐인 믿음을 갖고 교회에 나오고 있을 수 도 있습니다.
저는 십자가 아래에서 울어보지 않은 사람은 신부의 자격이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단지 감정을 쥐어짜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지적인 동의와 의지적인 믿음의 결단 위에 우리의 감정이 함께 움직일 때 온전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풍성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주님의 십자가 아래로 나아가 나를 위해 흘리신 보혈을 묵상하며 참 주님의 은혜가 감사하구나 마음 깊이 느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만이 진정한 어린 양의 신부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십니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 곳에 목숨까지 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달려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번잡하게 하는 고통스러운 문제들로 괴로우십니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움켜잡으려 했던 것을 내려놓으시고 그 발 아래 앉을 때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임할 것입니다.
십자가와 보혈은 고난주간에만 묵상하고 일년에 한번 우리를 씻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음 받고 주님의 보혈을 감사하며 찬양할 때 어린양의 신부로서 준비되어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감격을 회복하시는 신부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둘째는 성령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결혼을 앞 둔 신부가 향유로 자신의 몸을 준비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혼인날을 위해서 자신의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을 뿐 아니라 향기로운 기름을 사용해 모든 냄새를 덮고 신랑을 위해 정성껏 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전에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눈물로 씻고 머리털로 닦았던 그 향유는 그당시 여성들이 결혼을 대비하여 준비해 놓았던 것입니다.
에스더2장 12절에 보면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되기 위해 궁중에 들어가서 모든 절차를 거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케 하는 기한을 마치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국의 왕에게 나아가기 위해서도 열 두달 동안이나 기름으로 자신을 향기롭게 하고 정결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 이런 향품과 기름으로 우리를 준비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이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양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며 날마다 성령 안에서 우리를 성결하게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3장5절에서는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신부로 나아가기 위해 향수나 기름이 아닌 거룩한 성령의 기름으로 우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성령으로 거듭나고 날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19절 너희 안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하셨으며
에베소서4장30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행하면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는 걸 아시죠?
에스더가 12달 동안 향유를 바르고 준비했으니 얼마나 향기로운 냄새가 났을까요?
그녀가 지나가면 멀리서도 그 우아한 자태와 함께 향기가 발산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내게서 남다른 무언가를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대 부흥사 챨스 피니가 그냥 길을 지나가기만해도 사람들이 엎프러져 통곡하며 죄를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하나님의 임재가 강력하게 임한 휴스턴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사역을 감당하던 성령 충만한 사역자가 마트계산대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뒤에 있던 사람이 어깨를 쳐서 뒤를 돌아보니 한 여인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지금 당장 하나님을 믿고 싶으니 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역자가 너무 난감하여 계산하기 위해 줄 선 사람들에게 폐가 될거라고 말하자 그녀는 뒤에 있는 여자를 보고 제가 지금 당장 기도를 좀 받아도 될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 뒤에 서있던 여자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물론이죠 저도 같이 기도를 받겠습니다 라고 말하여 그날 두 여인이 동시에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령에 충만할 때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변의 사람들이 무언가 다른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존재라 영적인 것을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에스더의 향유가 온 궁중 안에 가득하듯이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실존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도우시는 성령님이 더욱 충만히 역사하셔서 성령의 향기가 밖으로 흘러 넘쳐나길 날마다 기도하며 구해야 합니다.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신랑을 기다리던 열처녀 가운데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못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한 듯 하다가 세상을 사랑해 세상으로 떠난 데마와 같은 사람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성령 안에서 행하도록 노력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갈라디아서6장8절에서도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하고 못난 부분들, 더러운 부분들을 향 기름으로 덮듯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덧입혀져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보혜사이십니다.
우리가 신부로 준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날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 어린양의 신부로서 온전하게 준비되어 갈 줄로 믿습니다.
셋째는 옳은 행실로 세마포 옷을 준비해야 합니다.
결혼식에서 예복은 많은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생에 한번 밖에 없는 결혼식을 위한 것이기에 많은 여자들은 웨딩드레스에 드는 비용을 아끼지 않습니다.
최근 결혼 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대부분 수천만원씩 하는 드레스를 결혼식 단 하루를 위해서 선택한다고 합니다.
예복은 신부의 자긍심이기도 하고 신랑의 지위와 명예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국 왕실의 결혼식에서 신부의 드레스는 항상 언론의 초관심사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인이 된 다이애나비가 입었던 드레스는 베일의 길이가 4미터나 넘어 왕가의 위용과 번영을 상징하였고 이 아름다운드레스를 입은 신부 옆에 서있는 못생긴 찰스 황태자가 그날은 꽤 괜찮아보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신부의 드레스는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신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구겨지고 더럽혀진 드레스를 입고 신부가 입장한다면 신랑을 무시하는 처사요 신랑에 대한 존경과 사랑도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 8절에 보면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신부가 입어야 할 예복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입니다.
예복이 없이는 그 누구도 혼인 잔치에 입장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22장12절에도 잔치에 청함을 받았으나 예복을 입지 않은 자에 대하여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라고 하며 혼인잔치에서 쫒아내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예복은 우리가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예복을 마련해 주셔야 합니다.
그 옷은 로마서13장14절에 보면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고 라는 말씀과
갈라디아서3장27절에 기록 된 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라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의의 옷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옷이 없으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입장불가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서 성도의 옳은 행실이 세마포 옷을 빛나고 깨끗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입혀주신 의의 옷을 지키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의무입니다.
관리하지 못해 때가 묻은 세마포 드레스를 입고 신랑 되신 예수님 앞에 서면 아무리 천국의 잔치라 해도 창피하고 후회스러울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살펴보면 우리의 세마포 예복을 빛나고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우리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행실을 옳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시편119장9절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라고 하여 주의 말씀을 좇아 사는 삶이 옳은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5장16절에도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셔서 우리가 착하고 바른 행실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자신을 삼가고 말씀의 요구에 따라 살아감으로 우리의 혼인 예복을 깨끗이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윤리는 세상의 윤리적 기준과 비교할 수 없이 높고 순수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기준에도 미달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길을 막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셔야 합니다.
말씀이 용서하라면 용서하고,
말씀이 사랑하라면 사랑하고,
말씀이 전도하라면 전도하고,
말씀이 기도하라면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옳은 행실로 살아가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열매로 그 뿌리를 판단하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좇아 옳은 행실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성을 가진 죄인들이기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우리의 속상함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말씀대로 살아 우리의 행실을 바르게 하려고 생각하지만 번번히 쓰러지고 맙니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 영은 죄와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겨운 호흡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또 결단을 해야 합니다.
포기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의 신부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 주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2년전 8만6천명의 사망자를 냈던 중국 쓰촨 대지진은 정말 참혹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나타난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감동의 장면들을 인터넷서 보게 되었는 데 한 아나운서가 뉴스를 진행하다 지진의 참혹한 현장에 말문이 막혀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는 사진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진은 학교가 무너져 내려 수많은 학생들이 매몰 되 숨진 현장에 건물 잔해 더미로 삐져나온 죽은 학생의 손에는 펜이 꽉 쥐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장면은 여자 경찰이 구조한 한 아기를 안고 자신의 젖을 먹이는 사진입니다.
정말 보는 이의 마음을 찡하게 하는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한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 참담한 지진이 발생한 소식을 듣고 남자가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달려왔습니다.
폐허 속을 헤집고 나흘간의 끈질긴 노력 끝에 여자 친구를 찾아냈는 데 여자는 건물 더미에 깔려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즉시 건물 더미 작은 틈새로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리고 구조대원이 도착해서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18시간 동안 계속해서 사랑을 고백하고 이야기를 건네면서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가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었습니다.
결국 여자는 104시간 만에 구조대원들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고 사람들은 그녀가 생리적 한계시간인 72시간을 넘기고도 기적적으로 생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남자의 뜨거운 사랑 때문이라고들 말합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며 어쩌면 우리 주님께서 인생의 무게에 짓눌리고 죄 가운데 엎어져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신부 됨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서 용기를 주고 있으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신부 삼은 우리를 그냥 내던져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해 차라리 엎어져있고 싶을 때도 주님은 우리 곁에서 격려해주시며 일어나라고 용기를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죄를 멀리하고 옳은 행실로 우리를 준비할 마음만 가지고 나아간다면 언제나 주님은 우리를 붙들어주십니다.
우리가 근본 죄인이며 죄를 짓는 것이 우리에게 더 쉽다는 것을 우리 주님이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 합니다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잔치 곧 나의 결혼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너무 기쁘고 기대되고 가슴이 설레이며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우리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볼 것입니다.
그 날 신랑으로 입장하신 예수님을 본문에서 어린 양이라고 표현합니다.
왜요? 그것은 신부를 위해 목숨을 버렸던 신랑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빛나는 영광으로 둘러싸인 우리 주님의 광체 속에서 못 박혔던 두 손과 발의 상처가 더욱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그 것을 바라 볼 때 우리 마음이 얼마나 깊은 감격과 감사로 넘쳐나겠습니까?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했으나 오늘 본문을 보니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고 말씀합니다.
그 날은 정해진 기약이 있다는 것이고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을 묵상하고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를 준비합시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사모하여 날마다 기도하며 준비합시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옳은 행실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준비합시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그 영광의 자리에 우리 모두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함께 서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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