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며 새해를 맞는 모든 성도님들의 새해에 하나님의 인도와 은총이 함께 하시리라 확신합니다.
2014년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사건은 온 국민을 우울증에 몰아넣은 세월호사건일 것입니다.
또 가정마다 손꼽을 만한 큰 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큰 문제들에 어려운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지루하게 싸우고 있는 힘든 일들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 중에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우리의 수고와 눈물 중에도 작은 기쁨과 행복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청년 때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컸었는데 , 나이가 드니 새해가 올해보다 더 나으란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실제로 많은 경제지표들이 새해도 우리 살림이 팍팍할 거라 예측하더군요.
올해도 많이 힘드셨잖아요?
올해 고금리의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60% 정도가 회사원들이라는 소리를 듣고 놀랐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도 돈을 빌려가며 살아야 하는게 현 사회의 실정입니다.
내려갈 줄 모르는 전세금 상승에서 오는 부담감과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염려도 우리를 무겁게 합니다.
나이가 들며 우리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문제도 한구석에 아예 자리 잡은 근심이 되가고 있습니다.
이런 비관적인 새해가 예측되는 가운데 어떻게 마음을 먹고 새날을 맞을 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배우길 원합니다.
우리에겐 걱정되는 내일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를 형통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아버지의 돌보심이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사왕이 구스라는 나라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전쟁기록입니다.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될 소중한 메시지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먼저 본문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적인 배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울왕을 초대왕으로 시작하지만 왕조가 다윗에게로 넘어갑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성전을 건축하고 큰 부귀영화와 뛰어난 지혜로 큰 광영을 누리지만 정략 결혼한 외국인 아내들이 도입한 우상 종교를 받아들여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그에 대한 심판으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나라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집니다.
본문의 아사왕은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왕의 아들입니다.
다윗왕조의 다섯번째 왕인셈이죠.
아사왕은 이스라엘이 세상의 잡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특별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한 왕입니다.
그래서 유다에 남아있는 이방우상들을 대대적으로 척결합니다.
본장2절에 이렇게 아사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아사가 얼마나 철저히 우상을 철폐했는가 하면 모친 마아가가 우상을 세운 것으로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킬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번째 새해를 위한 우리의 지침을 세우길 원합니다.
우리가 새해에 더욱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신자라는 우리 정체성을 똑바로 가져야 합니다.
새해에는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맞춰가며 분별없이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척하는 세상 문화와 권력에 대해서 맞서야 하고 예수님이 세상의 구세주임을 옹호하고 증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모든 것은 골라내 버리길 원합니다.
개혁의 결과는 아사왕이 오늘 승리한 것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사왕은 선조들이 들여온 하나님신앙 플러스 자기를 위한 모든 기복신앙과 우상에 접촉한 행위를 단호히 털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 신앙 안에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나를 위한 우상숭배와 기복신앙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예수님만 온전히 믿고 따르면 다른 안전장치가 필요치 않습니다.
예수님 외에 은근히 의지하는 것들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시한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아사왕은 조상들이 불러들인 그 모든 불결한 악한 귀신들을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 깨끗이 몰아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가정과 우리 마음에 진을 친 악한 세력들을 단호히 몰아내고 대적해서 더러운 발도 들여놓지 않게 지키시길 축원드립니다.
아사왕의 이런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 대해 하나님께서도 보답을 안하실리가 없죠.
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고대 국가들 사이에는 조금만 세력이 크면 작은 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침략전쟁이 쉬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잡아 먹지 않으면 잡아 먹히는 게 이스라엘과 그 주변국들의 피튀기는 전쟁사입니다.
사람들도 사는 게 전쟁터 라고 합니다.
또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매일 마귀의 세력과 영적 전투를 합니다.
믿음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면 마음과 환경에 평강이 있고 전리품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믿음의 싸움에서 마귀에게 승복하면 좋은 것들을 다 뺏기고 마귀의 지배를 받는 구질구질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마귀가 지배하면 더럽고 구질구질해집니다.
모든 우상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아사왕과 백성들에게 평안을 주셔서 여러 해 동안 쳐들어오는 나라가 없게 하셨다는 것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배운 말씀대로 바르게 잘 살고 마귀에게 속한 유혹을 이겼더니 모든 문제들이 평정되고 가정과 직장과 마음에 평화가 임했다 이런 말씀입니다.
새해에 이런 축복이 성도님들 삶에 함께 하시길 축복드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사왕에게 사면의 평화를 주었을 때 아사왕은 가만히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앞 7절을 보면 이렇게 아사왕의 치적을 기록합니다.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하나님이 평안을 주셨을 때,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어 전시를 대비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번 째 새해에 우리 삶의 지침을 발견합니다.
하루 하루를 언제 올지 모르는 위기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게 평탄하고 남보다 나은 안정을 누릴 때도 항상 내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아사왕은 군사력도 증강시켰습니다.
아사의 군대는 유다 중에서 큰 방패와 창을 잡는 자가 삼십만 명이요 베냐민 중에서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이십팔만 명이라 그들은 다 큰 용사였더라
58만명의 용사들을 훈련해서 준비시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자들이 삶을 어떻게 대비하며 살아갈 지를 배우게 됩니다.
틀림없이 적군은 다시 일어나 치고 들어옵니다.
우리 삶에 근심이 사라지고 걱정거리가 물러가고 오랫만에 주변이 평안하면그게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습니다.
환경과 악의 세력은 다시 전렬을 가다듬어 또 침공해 옵니다.
아상왕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팁은 형통하고 잘나갈 때 더 실력을 갖추고 모든 일에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세상의 기업과 직무에도 실력을 갖춘 자가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속한 직장과 학교와 모든 관계 속에서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한의 모든 노력을 기울여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전도서 9장10절에서 말씀합니다.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새해에는 우리가 맡은 분야에서 충실하게 대비하고 최선을 다해 실력을 갖추는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이 실력은 세상적인영역 뿐이 아니라 더욱 믿음에서 그렇습니다.
평온할 때 믿음의 실력을 단련해 두지 않으면 환란이 덮칠 때 마구 흔들리다 얕은 뿌리가 뽑힐 수 있습니다.
아사왕은 영토를 지키기 위해 성곽을 세우고 군사력을 길렀습니다.
또 영적인 모든 악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행함으로 영적으로 자신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나자 아니나 다를까 본문9절을 보니 다짜고짜로 구스인이 침공을 해옵니다.
우리 삶에서도 문제는 예고도 없이 튀어나옵니다.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고 올라왔는데 무려 군사 백만 명을 거느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백만명이란 숫자가 좀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쟁역사 중에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기억하실 겁니다.
거기서 고구려를 침입한 수나라 병사들이 113만명에 이르렀고 보급품을 나르는 군량운반자는 그 배에 달했다고 합니다.
또 여기서 구스라는 나라는 현재 에디오피아로 아프리카에 상당히 넓게 세력을 가졌던 나라입니다.
특히 구스는 노아의 자손 중 함의 자식으로 이집트왕국을 이룬 미스라임과 형제간입니다.
형제간인 구스와 이집트는 당연히 동맹국이 되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병사들은 평소엔 일반인이었다가 전시에 소집되어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백만이 다 정예부대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니 백만대군이 과장이라고 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백만대군을 맞서 싸울 아사왕의 군대는 58만명 밖에 안되었습니다.
병력이 절반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죠.
이렇게 승산이 없는 싸움에서 대개 왕들이 한 행동은 둘 중 하나입니다.
협상해서 조공을 바치고 속국이 되든지, 외교정책을 써서 돈을 주고 이웃나라의 용병을 요청하던지.
그런데 10절에 보니 아사왕이 마주 나가서 전열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아사왕이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할 믿음이 있었고 현실적으로 준비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 중 한가지라도 부족하면 거기에 맞붙을만한 자신감이 생길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할 것을 최선을 다해서 하면 거기에 당당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명령을 지켰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당당함이 있게 됩니다.
사회생활에서도 전문가로서의 이런 철저한 준비가 우리를 당당하게 합니다.
저 사람 신앙은 좋은 데 일을 맡길 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신자로서 구차한 일입니다.
얼마 전 재미있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창업을 하는 데 그 중 폐업률이 가장 낮은 것이 중국집이라고 하더군요.
중국집 간판은 잘 바뀌지 않잖습니까?
그런데 그 이유가 철저한 준비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개 중국집 개업하는 사람들은 주방에서 부터 철저하게 배운 실력자이기 때문에 잘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저도 한 때 요식업을 해보고 알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냥저냥 살아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철저한 준비와 노력 없이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지난해 부지런히 모든 삶을 헤쳐오신 줄 믿습니다.
새해에도 내 손으로 하는 일에 실력을 갖추고 믿음의 실력도 갖춰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11절에서 이렇게 구스인들과 대치한 상황에서 아사왕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여기서 세번째로 새해 우리 지침을 발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고 그 다음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아사왕의 기도에서 우리는 백만대군 앞에서 대치하고 있는 아사왕의 떨리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를 도우소서.
그동안 이렇게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 앞의 문제들은 다 우리의 실력을 초과하는 것들입니다.
우리 실력으로 되면 그게 무슨 문제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아사왕과 같은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죠.
아사왕의 기도에 하나님은 신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구스사람들을 치셨다고 합니다.
우리 앞에 모든 불확실한 미래에도 하나님은 의지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선하게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새해 어떤 일들을 기대하고 계획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모든 능력을 다해 준비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의 소망을 성취할 줄 믿습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적대세력이 있기에 우리 능력대로도 잘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또 최선을 다해 올바르게 판단하고 제대로 했다고 해도 우리의 죄성과 한계로 인해 일이 원하는 대로 좋은 모양으로 성취되지를 않습니다.
아사왕 처럼 주를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의탁해서 우리가 정복하고 헤쳐나갈 모든 일을 믿음으로 승리하길 원합니다.
여기서 아사왕이 ‘주를 의지하고 의탁하옵는다’는 말씀은 하나님께 애걸복걸하는 게 아니라 편안히 기댄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 힘이 부족한 걸 하나님이 뻔히 아시는 데, 우리를 닥친 환경 속에 그냥 두시겠냐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안될 일을 어떻게 우리에게 맡겨만 두시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실 부분은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편안히 기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앞에 큰 일을 당했을 때, 믿음으로 편안하게 하나님께 기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당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더군요.
이 분이 얼마전 맹장수술을 했는 데 단순 맹장염이 아니라 암이라는 것입니다.
재수술을 해서 대장 부위까지 잘라내야 했습니다.
암이라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문제는 수술 뒤에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쉽게 암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암환자가 되고 나니 신기하게 믿음이 없다는 걸 알겠더라고 합니다.
모든 병중에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설교를 그렇게 많이 했건만, 막상 자기가 병이드니 도무지 치유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확신대신 두려움만 충만하더라고 합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병자가 되서 가족과 자신을 괴롭히며,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닌 상태로 스러져가는 것이 그렇게 두렵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위기를 당할 때 우리의 믿음입니다.
결국 김목사님은 시편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던 말씀을 암송하면서 비로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말씀의 힘이 두려움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병과 잘 싸워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앞에 이런 문제들이 생길 때, 믿음으로 하나님께 편안히 기대는 것은 이만큼 목회자들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내 소관을 넘어서는 문제들이 생기면 어찌할 줄을 모르게 우왕좌왕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무조건 의지하게 됩니다.
중병에 걸리고 나면 인터넷을 검색하며 온갖 의과지식을 수집하고 치료에 매달리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신뢰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만 몰두한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환란 중에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면 그 다음은 영원히 자기가 의지한 것에 끌려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용병을 불러다 위기를 넘기면 그 다음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을 뿐 아니라 항상 용병을 불러다 수습해야 하게 약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적진리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돈과 타협한다면 돈 문제로 인한 어려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대지 않고 내 머리를 쓰고 인간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한다면 골치 아픈 일이 끊어지질 않습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아사왕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스인을 마주 했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대신 쳐주시지 않습니까?
아사왕에게 오늘 구스인의 대침공은 왕으로서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철저한 준비와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결과는 그의 나라가 더욱 강성해 졌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구스사람을 추격하다 그랄까지 갔는데 거기서 대승리를 거두어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랄 사면 성읍을 하나님께서 다 두렵게 하시니 그들도 치고 많은 물건을 노략하고 양과 낙타를 많이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한 싸움은 승리 뿐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전리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장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때부터 아사 왕 제삼십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얼마나 행복한 결말입니까?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장을 더 넘기면 바로 뒷장 16장에서 우리는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를 볼 수 있습니다.
전쟁없는 태평성대를 누리던 아사왕이 신앙적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이게 인간의 치명적인 연약함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이 침공해왔을 때 이번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성전과 왕궁의 은금을 주고 아람군대를 용병으로 불러들입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을 이겼지만 선지자들 통해 하나님은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오늘 본문과 대조적으로 끝난 아사왕의 마지막은 하나님보다 의지한 그것이 결국 불미스런 결말을 만든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당장은 위기를 모면한 것 같지만 그후 계속해서 그가 의존했던 아람이 유다의 숙적이 되어 괴롭힙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승리는 하나님과 함께 겪는 위기보다 더 두려운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랬고 아사가 그랬고 히스기야가 그랬듯이 어떤 왕도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이 역대서를 기록한 역사가의 증언입니다.
결국 이런 왕들이 백성들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타락해 바벨론의 철퇴를 맞고 포로로 붙잡혀갔다는 것입니다.
역대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단순히 기록한 것이 목적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렇게 한계가 있는 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의 뿌리에서 보내주실 완전한 목자인 메시야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한 대로 그 메시야왕이 오직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9장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며 우리에게 영원한 평강과 축복을 주실 이 왕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지도하시기에 우리에게는 아사왕과 같은 실패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새해에도 우리 앞에 시련의 폭풍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릅니다.
성경은 오늘 아사왕의 역사에서도 말씀하듯이 우리 인생에 하나님을 잘 믿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우리를 기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었는데도 구스가 쳐들어 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승리의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앙으로 서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육간의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하나님께 편안히 맡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통해 새해 모든 날들이 형통하고 평안가운데 더 견고히 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2014년 송구영신예배 남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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