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15장1절-7절 (나는 참포도나무요)

남수연 2016. 3. 4. 12:47

 

우리가 자녀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인생에 귀하고 좋은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사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우리 삶에 풍성한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기 하루 전 날,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신 뒤 하신 송별 설교의 일부입니다.

삼년 여를 예수님의 메시야사역에 함께 했던 제자들은 이날 밤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2천년의 역사 속에서 고대했던 메시야의 나라가 코앞에 왔다고 믿었는데 예수님이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목적은 거의 독립군 정도로 생각하면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로마와 모든 나라를 이길 영원한 강국으로 우뚝 서는 것이죠.

그런데 흉악한 십자가형으로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마지막 밤에 다섯장에 걸쳐 정말 긴 설교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혼란스럽고 두려워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 말을 보면 아버지를 보여달라’, ‘지금 어디로 가시는거냐이런 말들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평소에 믿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문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흔들리는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납득시킬만한 말씀으로 계속 답변하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증거들을 신비한 이적을 통해 그날 밤 왕창 보여주시면 되지 않았겠습니까?

요즘 유행되는 사이비 집회처럼 금가루가 다락방에 가득 내려오고, 제자들의 썩은 이가 금니로 바뀌고, 이상한 기운이 만지는 대로 여기저기 쓰러지고.

그런 집회를 한바탕하시면 이들이 예수님을 더 분명하게 믿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왜 예수님은 제자들의 물음에 대답해주시고, 또 여러 가지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뤄질지를 설명하고 그러셨겠어요?

기적을 목격하고 신비를 체험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으로 믿음을 결정합니다.

그런 기적이야 맨발로 작두를 타는 무당의 신내림나 마찬가지죠.

그게 내 삶과 내 문제와 무슨 상관입니까?

예수님은 이들에게 믿음을 더하시기 위해서 퍼포먼스 같은 기적을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이 밤에 예수님은 근심에 가득 찬 제자들을 부드럽고 확신있는 말씀으로 설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엄청난 문제들이 닥쳐올 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과 인격으로 우리를 차분히 인도하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인격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괴이한 일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아니라 삶과 부조화스러운 신앙을 갖게 됩니다.

성빈이만한 나이에도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야 수긍합니다.

수십년 이상 왜곡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우리들이 하나님 생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을 갖고 말씀으로 설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격다짐으로 믿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어쩌다 하나님을 믿어보려고 나왔다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말씀에 설득되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를 잘되게 하기 위한 진실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제자들의 눈에 보이는 현실과 하나님의 나라가 다르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의 가치관도 오늘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더 변화되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 본문에서 예수님이 참포도나무라는 것은 가짜이면서 진짜인척 하는 포도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참포도나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과 관계없는 열매들에 현혹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당시는 대표적으로 바리새인들 같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권력을 가진 세력들을 의지해서 거기서 나오는 안전과 재물로 호의호식하는 그런 종교인들이 누리는 것은 참된 열매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의 동반자로 선택하시고 포도나무로 비유하셨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 문에는 금으로 만든 포도나무가 탐스런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며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축복의 포도나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한 부분이 많습니다.

시편 808절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또 예레미야 221절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그러나 선택 된 민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구원의 열매를 맺는 일에 실패하고 맙니다.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52절에 그것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하나님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원하신 극상품의 포도가 아닌 먹을 수 없는 들포도를 매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돈 잘 벌고 권력까지 가진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결실한 포도나무라 철썩 같이 믿었던 것입니다.

요한사도의 이 편지가 기록되던 당시엔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 중에 누가 하나님의 적자인지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립하던 배경을 참고로 생각하면 이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신들과, 자신을 죽일 권세까지 가진 저들 중에 누가 하나님의 참포도나무인지 이 순간 갈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을 따른 것이 옳은지 순간적인 의혹에 사로 잡혔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우리에게 진짜처럼 현혹하는 인생의 열매들이 주변에 가득합니다.

삼성의 이회장님은 병상에 누운 채로 주식배당금으로 작년에 2백억 가까이를 벌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보통 서민들이야 일 년에 천만원 재산 늘리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우리가 너무 열매 없는 빈한한 삶을 살고 있는 것아닌가 하는 허탈감이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진짜 열매가 무엇인지 구분하라고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참포도나무인 예수님께 접목된 가지에서 열리는 열매가 아니면 그 열매는 가치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중시한 적이 없으십니다.

수많은 돈과 권력이 이 땅에서는 살아가는데 힘이 되었겠지만, 죽은 다음에도 그렇겠습니까?

그들이 열매라고 생각했던 인생의 보물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열매가 아닙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일해서 벌어모은 재산과 학벌과 지위와 안락한 가정 같은 것이 그것만으로는 예수님이 말씀하는 열매가 아닙니다.

다윗왕의 왕위가 영원한 것은 그의 왕권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돈 잘 버는 참신자는 있지만 번 돈을 혼자 독식하는 참신자는 없습니다.

내가 입고 내가 먹는 것보다 천국을 위해 남을 먹이는 게 더 만족스럽고 영원한 것을 점점 깨닫게 되면 우리의 열매는 반대로 점점 더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접목되어 있을 때, 의미와 목적이 분명해지고 방향을 바로 잡아갑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열매들도 예수님 안에서 가장 가치를 발하는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들이 보고 부러워할 만한 열매들만 달려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불편한 열매들이 있습니다.

탐욕과 위선과 불평과 이기심과 가정의 문제들과 관계의 실패 등

이런 나쁜 열매들은 예수님께 온전히 접목되었을 때, 점점 그 사나운 기세가 꺾이고 예수님의 겸손과 선하심과 온유와 담대함의 열매들이 열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병 낫고 부자 되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 눈에 남보다 더 높아지고, 더 잘사는 것이 인생의 축복이고 열매라고 생각되지 않으시길 오늘 말씀을 통해 잘 깨닫게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아버지가 농부라고 하신 것은 결실을 위해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는 농부와 같이 일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목된 가지인 우리들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참포도나무인 예수님을 통해 거두려는 것은 예수님을 닮은 열매인 구원의 자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열매를 위해 땀흘려 수고하는 농부와 같이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에스겔152절에서 말씀합니다.

포도나무가 나은 것이 무어냐?

포도나무는 가구로도 못쓰고, 관상목도 아닙니다.

열매를 맺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최상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잘라내고, 열매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2절에 보면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게 되는 두려운 일은 어느날 예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 보이지 않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농부들이 포도 농사를 지을 때 수시로 하는 일은 열매가 잘 달리도록 가지를 잘라주는 것입니다.

포도농사는 시어머니 비위맞추기 보다 더 어렵다고 농부들은 말합니다.

한 포도나무에서 삼천송이의 포도가 열리는 나무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어마어마한 포도나무였습니다.

탄소농법으로 이 나무를 키운 주인은 어느 가지를 잘라내야 하는 지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이미 병든 게 나타나면 늦는다는거예요.

이와 같이 열매를 맺는 성도들에겐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가지를 돌보지 않고는 계속해서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 병든 일부를 잘라내기도 하고, 오염된 부분을 씻어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환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세속과 죄로부터 멀리하고 깨끗하게 하셔서 점점 더 열매를 맺어가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농부의 칼질이 필요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농부가 칼을 댈 때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인 더 나은 열매를 바라고 우리를 다루신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붙어있는 가지들은 일이 잘 안되고, 예기치 못하게 병이 찾아왔을 때도 그래, 고난이 유익이지 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일하는 농부로 표현하신 것은 열매를 거두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계신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인생이 풍족한 열매를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많은 것을 거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 가져갈 수 가 없는 열매는 오늘 예수님이 맺으라는 그 열매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모은 열매들이 천국에서는 보유할 수 없는 것들이라면 허비한 인생에 대해 한탄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참포도나무인 예수님께서 열린 열매는 예수님의 형상을 닮고 예수님의 맛이 나는 영생의 열매입니다.

오직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여져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며 이런 좋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사는 삶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아멘.

 

3. 그렇다면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오늘 그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예수님 안에 거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거하라는 단어가 여러번 나옵니다.

내일이면 제자들을 떠나가실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라고 거듭 말씀하시는 것은 사실 이해하기가 좀 힘듭니다.

떠나갈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관계했던 것들을 끊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이셨다면 삼년반 동안 모든 것을 가르쳤으니 이제 하산해라라고 하셨겠죠.

이젠 주님에게 의존하지 말고 가르쳤던 대로 이 세상에서 강하게 살아가라고 유언을 남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유언은 정 반대로 너희는 내 안에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진실이고 진리입니다.

세상에서 가치 있는 열매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단 한 개도 맺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사도가 직설적으로 묻습니다.

너희가 과거에 예수님 모르던 때 행하던 일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 아니냐.

예수님을 모르던 그 때, 우리에게 주렁주렁 달려있던 열매들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본성적으로 해 놓는 일이 나와 하나님과 이웃을 다 행복하게 하는 그런 열매는 절대로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열매를 스스로 맺을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교회생활을 잘 하면 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잘 읽어보면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이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0절에서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서 그 말씀이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어떻게 사람들이 압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자라면 하나님의 법을 자랑스럽게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죠.

우리가 자랑스럽게 이 주일을 지키는 게 세상사람들과 다른 것입니다.

지난 달에 제가 미국에 가서 도로를 달리며 놀란게 차들이 다 지정속도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가로운 도로에 차들도 뜸하면 우리나라 같으면 다들 신나게 밟을 텐데 거기 차들은 어느 도로건 다 지정속도대로만 달리더군요.

그런데 어떤 차 한 대가 추월해서 좀 달리는 것입니다.

잠시 가다 보니 앞에 교통경찰에게 잡혀있더군요.

그런 한적한 산악도로에 어디서 교통경찰이 나왔는지 기가막히게 뛰어나와 단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차도 속도를 줄이고 그 앞을 지나려는 데 순경이 막 화를 내며 차를 세우라는 거예요.

이유인즉, 앞에 교통경찰이 차를 단속 중이면 아주 속도를 늦춰서 슬슬 지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좀 빨리 왔다고 아주 범죄자 취급을 하더군요.

미국에서 법규를 안 지키면 완전 범죄자 되잖아요.

우리가 도로에 사고 나면 그거 구경하느라 슬슬 움직이다 아예 정체가 되지 않습니까?
그게 미국법에는 또 맞더군요.

그 큰 나라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은 법을 잘 지키고, 법규 위반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법과 질서는 우리 자신을 위해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에 법칙과 질서를 부여하시고 붙드시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은혜로운 기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주의하고 계속 머리를 써서 내 행동과 생각을 철저히 말씀에 맞춰가며 사는 그런 삶입니다.

이게 번거롭고 내 성질에 안맞는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열매가 맺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 나를 행복하게 하는 열매가 우리 성질대로 살면 절대로 맺히지 않습니다.

6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무서운 처분을 말씀합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른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고 열매가 없는 인생에 대한 경고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에게 위안이나 주고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말씀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든지 진실을 말씀하고, 우리에게 진짜 복된 길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에 권세가 있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진실에는 두려움이 없고 권세가 느껴집니다.

우리가 매일 조바심하고, 눈치보고, 당당하지 못한 것은 진실되지 못해서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자식들에게 조차 입바른 말하기가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더 자식을 위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기분을 맞춰주려고 애둘러 말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진실된 말씀을 누구에게든 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 죄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솔직하고 진실되기만 한 사람은 상대에게 비수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목숨을 주셨잖아요?

우리에게 하신 말씀들은 결단코 우리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신 것이지 주님의 주장이나 이익을 위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해서 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닮은 영적인 성품의 열매인 동시에 이 땅의 모든 자산들을 이용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맺는 열매를 말합니다.

이를 위해 항상 말씀을 배우고 말씀에 맞춰 생각과 행동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절절이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5절의 말씀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나 그것은 반대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내 안에서는 너희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은 무기력하고 정적인 상태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 안에 완전히 거할 때 우리의 삶이 성령의 에너지와 활력으로 놀랍게 바뀌는 것을 봅니다.

주님이 함께 하셔서 역경 속에도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주님의 명령을 생각할 때 가장 안전하고 든든합니다.

그 말씀대로 행함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영생에 이르는 아름다운 열매를 가득 달고 사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아멘.

  2016년2월28일 주일설교 남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