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보면 유명 강사들의 강연이 많이 올려져 있습니다.
저도 시간이 날 때 가끔 봅니다.
김창0 교수나 김미0 강사 같은 분들의 강연을 들어보면 일단 강의가 참 재미있습니다.
그걸 보며 설교는 왜 저렇게 재미있고 쏙쏙 들어오게 안될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우선은 강연자의 실력이겠지만 그런 강연은 내용자체가 매일 마주치는 현실의 문제라는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강연 제목만 봐도 그걸 알 수 있죠.
‘자녀와 평생 사이좋게 지내려면 꼭 필요한 것은?’
‘월급쟁이라면 꼭 알아야 할 잘 모으고 잘 쓰는 법’
‘힘든데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한다면’
‘내 상처를 말할까 말까’
제목만 들어도 다 내 문제잖아요?
그런데 오늘 설교제목을 보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입니다.
어떤 분들께는 지난 한 주 동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목부터 벌써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절대로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제목처럼 성령으로 충만했더라면 지난 한 주를 살아가는 데 엄청난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와 능력은 일반 강연이 주는 단순한 공감이나 위안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이 복된 말씀이 진실 되게 전해지고, 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때 반드시 삶과 믿음에 대한 답을 얻으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은 성도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하지 말고 오직 이렇게 하라’는 형태로 되어 있죠.
그러니까 ‘오직’이란 말을 찾으면 우리가 따를 중요한 세 가지 주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그리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입니다.
1. 그러면 먼저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15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빈둥대지 말고 부지런히 살라는 걸 떠올리게 하죠.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기성세대들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네요.
우리 중년세대야 요즘 바쁘게 살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세월을 아끼라는 명령을 잘 따라 사는 것일까요?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단순히 그렇게 부지런히 살라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25년간 호스피스병동에서 일했던 카렌 와이어트란 의사가 쓴 책이 있습니다.
죽음을 맞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 온 세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와이어트교수가 쓴 책에는 죽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 일곱가지가 소개됩니다.
마음껏 사랑해 보지 못한 것, 조금 더 일찍 용서하지 못한 것, 걱정을 내려놓고 행복한 순간을 누리지 못한 것, 마음을 열고 포용하지 못한 것, 열정으로 살지 못했던 것, 아등바등하며 여유 없이 산 것, 있는 그대로 감사하며 살지 못한 것.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 세상 남들처럼 떵떵거리고 살아보지 못한 것이 억울하고 후회될 것 같은데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죽을 때 좀 더 성공하지 못한 것, 부자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또 사람이 부지런히 살지 않은 걸 후회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아등바등 살았던 걸 후회한다잖아요?
그러니까 물질적인 것보다 삶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와이어트교수에 의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죽기 직전에 사람이 이렇게 가장 많이 성숙한다고 합니다.
철들면 죽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땅의 시간들을 정산해야 하는 걸 아는 우리에겐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사도를 통해 우리에게 세월을 아끼라고 하셨습니다.
단지 부지런히 살라는 의미가 아니라면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 말 성경은 원래 이스라엘사람들이 사용하던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성경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 당시 단어들도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기에 어떤 뜻을 취하느냐에 따라 번역이 좀 달라집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도 원어가 가진 뜻을 살려 번역한다면 ‘시간을 구원하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자신도 악한데 시대도 악하니 세상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면 악의 구조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최근 드러난 사법농단 사건들을 보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재판을 놓고 거래를 하잖아요?때가 악하다는 말로 밖에는 이 시대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우리의 시간들을 그 속에서 구원해 내라는 것입니다.
영혼만 구원받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 해도 삶이 구원받지 못하면 죄악 속에서 불행을 열매 맺으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단지 세상이 말하는 대로 쉴 틈 없이 사는 게 잘 사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를 보고 하나님께서 ‘너 참 세월을 아껴서 잘 사는구나’라고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너 지혜가 없어서 귀중한 세월을 낭비하고 있구나’
이렇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월을 아끼는 생활, 우리의 삶도 구원하여 복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2. 17절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합니다.
그러려면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바울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만이 악한 세대에 빠지지 않는 길입니다.
만일 지난 한 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살지 않았다면 세상방법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도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시로 멈추고 지금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일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공부할 때도, 미래를 준비할 때도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나 종종 점검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알기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우리가 자식들에게 필요한 걸 가르칠 때 잘 알 수 있게 정확한 말로 가르치잖아요?
주님의 뜻도 그렇습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말씀을 봐도 알 수 있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쳐주신 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면 됩니다.
저도 이런 간단한 명령들을 수시로 떠올리고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하시잖아요?
살다보면 그렇게 기뻐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나이가 먹을수록 매사가 그저 그렇고 시큰둥하게 느껴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특히 이 말씀을 저는 자주 떠올립니다.
‘지금 내 기분이 왜 이러지? 기뻐하라고 하셨잖아?’
이 말씀을 생각하기만 해도 신기하게 금새 마음이 환해지는 걸 느낍니다.
누가 내 우울한 마음을 생각해 주고, 누가 날 기쁘게 해 주겠습니까?
말씀을 생각하며 스스로 나를 기쁘게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살다보면 일반적인 뜻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많이 생깁니다.
그런 일들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이죠.
직장문제, 진로와 진학문제, 사업의 방향, 이사, 이런 문제들은 급하게 정하지 말고 미리미리 하나님의 뜻을 알려달라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가 생기고, 환경도 열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을 갖고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래야 성급하게 내 뜻대로 시도했다 실패하지 않고 항상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오래, 지속적으로 기도해 온 문제들은 반드시 가장 좋으신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렇게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알아내고, 지키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그 다음 이대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이렇게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평소 잘 해나가던 일들이라고 항상 쉽습니까?매일 하던 일인데도 뜻밖의 실수를 하고 문제가 생길 때가 많습니다.
관계가 좋던 사람하고도 사소한 말 하나로 완전히 틀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살다보니 쉽고 만만한 날이 정말 하루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넉넉히 잘 하는 일을 괜히 거들어 주는 부모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은 정확하게 어떤 의미일까요?
교회를 조금 다녀본 사람들은 성령충만에 대해 다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성령충만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명료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별로 없습니다.
이 말씀도 역시 원어에 가깝게 해석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충만하게 되라.
어느 것이 더 이해가 잘 되십니까?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으로 우리가 충만하게 채워진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선하심, 사랑, 관용, 용서, 능력, 지혜 이런 것으로 우리가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지 않습니까?
성령충만은 갑자기 감정이 뜨거워지고 뭔가 신비스러운 기분이 잠시 되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속한 최고의 것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해 주실 테니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렇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당연히 먼저 성령이 우리 안에, 우리가 성령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은 느낌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에서 일러주시길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은 약속대로 성령을 선물로 주셨을 것입니다.
2)그리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매일 성령께서 좋은 영향력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도록 충만히 임하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시죠?
우리나라가 OECD국가들 중 독주 소비 1위의 오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관대했던 음주문화가 결국 우리 사회에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난 강력범죄나 우발적인 범죄들이 다 술과 더불어 일어나잖아요?
지난주도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한 주민이 만취한 상태로 경비원을 폭행해 혼수상태에 빠트렸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성폭행, 음주운전. 각종 범죄들, 술이 나와 타인의 인생을 파멸시킵니다.
술은 모든 타락한 문화에 중심에 있고 사람들의 올바른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성도들은 술이 내 이성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굳이 술 취하는 문제와 성령충만을 같이 언급하신 것은 술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를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쉽게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셔서 우리를 지배하도록 성령충만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또 성령 안에서 우리가 충만해지려면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우리 영에 가장 좋은 상태이지만 우리 죄성하고는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버려야 할 죄를 깨닫게 하시거나 선을 행하도록 감동하실 때 의지적인 순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마음이 지금 없지만 만일 내가 성령충만할 경우는 용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욕심이 많아 내 놓고 싶지 않은데 성령충만하면 내 놓아야 하고 심지어 저절로 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 성령충만을 받고 나니 성도들이 집이랑 밭이랑 막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 달라고 교회로 가져왔잖아요?
우리가 정말 그렇게 되도 좋겠는지를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성령충만을 구하는 것은 이율배반입니다.
성령충만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 안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지혜와 능력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도 들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공의로운 성품이 우리에게 충만해 지면 양심을 일깨워 정직하고 바른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권하실 때 망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당장은 손해가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손해 보게 하지 않으십니다.
말씀대로 순종해서 망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수원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이 서울대 수학과를 나와서 국비장학생으로 버클리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했습니다.
논문심사를 받는 중에 오류가 발견됐는데 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어 서명만 남겨 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교수도 목사님도 논리가 맞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죠.
다른 논문들도 어차피 다 오류가 있기에 그냥 눈감고 넘어가도 큰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던 중 요한계시록에서 천국에서 예수님을 찬송하는 흰옷을 입은 무리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서 박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하얀 와이셔츠에 잉크가 한 방울 딱 떨어진 것이 상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이 잉크 한 방울의 오염이 없이 거룩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수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더 이상 문제가 풀릴 가능성이 안보여 학위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목사님이 꿈에서 이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진짜 그 문제가 꿈에서 풀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박사학위를 무사히 받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양심도 지키고 학위도 지킨 것이죠.
성령께서 뜻을 충만히 알게 하시면 그걸 순종하는 것이 성령 안에서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절대로 손해보고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 시간들을 구해내며 떳떳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의 자랑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과 거의 같이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말씀, 기도입니다.
성령 안에서 충만하게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늘 발견하고, 기도로 우리 영을 충만히 채워주심을 구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는 시간 내는 게 어렵고 집중해서 오래 기도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도하고 일어날 때 마음은 기도하기 전하고 백팔십도 다릅니다.
얼마나 마음이 담대해지고, 평안해 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는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대로 수시로 멈추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대로 살아감으로 우리 영혼 뿐 아니라 삶도 구원받으시길 축복드립니다.
이 땅의 삶이 복될 뿐 아니라 훗날 천국까지 따라와 영원한 우리의 상급과 자랑이 될 것입니다.
2018년11월4일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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