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에베소서5장8절-14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남수연 2018. 10. 26. 15:28

어렸을 때 커서 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으셨습니까?

그 꿈대로 되어가고 있나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회원을 대상으로 과거와 현재의 꿈에 대한 설문을 조사했습니다.

10명중 9명은 어린 시절에 꿈이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여덟 명은 어릴 때와 지금의 꿈이 달려졌다고 합니다.

어릴 때 꿈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인크루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들이 어릴 때 되고 싶었던 직업은 1위부터 선생님, 과학자, 의사, 가수, 디자이너였습니다.

어릴 때 이런 직업 한번쯤은 생각해 보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재 성인이 된 이들에게 지금 원하는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1위가 잘 먹고 잘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위는 돈 많은 건물주가 되는 것’ 3위는 내 집 마련이었습니다.

최근 청년세대의 어두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응답자 대부분이 장래에 대해 불안을 느낄 만큼 안정적인 기반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청년세대의 계층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죠.

전에 청년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카페에서 서로 나누는 대화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제가 유복하게 자란 친구들을 보면 자기에겐 없는 특유의 여유와 밝은 에너지가 있어서 부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변에서 고생 안하고 자란 사람들을 보면 꼬인 데가 없고, 당당하고, 해맑고, 긍정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고생을 많이 하고, 원하는 직장도 못 얻고, 미래가 막막하다 보니 점점 우울한 성격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있죠?

이미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는데 어쩌겠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빛의 자녀라는 데 자부심을 갖게 되길 소망합니다.

 

1.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바울사도는 에베소의 교인들에게 성도가 누군지를 계속 확인시켜줍니다.

우리는 이 사회 안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갖는 정체성에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편지 서두에서부터 여러 면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 줍니다.

너희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자녀이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상속자다

너희는 사랑받는 자녀이다

그리고 오늘 너희는 빛의 자녀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정체성은 세상의 지식과 경험으로 볼 때는 아주 생소합니다.

어느 회사 과장이다, 어느 학교 학생이다, 누구의 엄마다, 이렇게 사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피부에 와 닿기가 힘듭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정체성에 따라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엄마이기 때문에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식구들을 위해서 상을 차립니다.

사람들은 어디서든 확실한 정체성이 있을 때 자기 할 일을 찾아서 합니다.

우리도 신앙 안에서 정체성을 확실히 알 때 성도답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성도가 누구인지를 계속 강조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손에 잡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 자꾸 되새기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오늘 말씀은 더 이상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빛이 자녀답게 살라는 권고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너희는 빛이라는 정체성을 확신해야 하는 것이죠.

빛의 자녀라는 신분을 확신한다면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빛이라는 것이죠.

신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빛이라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질 중 도덕적 성품의 면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은 어떠실까요?
오늘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있죠.

빛의 열매가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했잖아요?
하나님의 성품이 선하고 의로우시고 진실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 우주만물을 만드실 때 자신의 성품대로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만드셨겠죠.

선하신 하나님이 악하게 만드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특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 도덕적 성품을 나눠주신 것입니다.

물론 타락하기 이전의 경우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엔 이 도덕적 성품이 다 없어진 것입니다.

그 비스므리하게 왜곡 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남아있는 것이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보면 아무리 착하고 의롭고 진실해 보이는 사람도 표면적으로만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완전한 빛의 성품을 보여주신 분이 누구시죠?
,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주셨던 완전한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화려하고 찬란해 보이지만 한 겹만 벗겨보면 어두움과 악이 흉악한 속살을 드러내잖아요?

매일 나오는 뉴스들을 보면 사람은 확실히 어둠의 자식이 맞습니다.

우리만 해도 속을 다 드러내고 살지 못하잖아요?

그랬다간 큰 일 나죠.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규정지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 모습을 보면 그런 성품도 부족하고 세상의 악과도 완전히 분리되지 못한 어정쩡한 중간인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이미 빛의 자녀가 되었고 영생을 얻었다고 분명히 확증해 주십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812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입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말씀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어두움에 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은 것입니다.

여기서 빛은 타락하고 죽은 영이 다시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됨을 말합니다.

과거엔 우리 영이 어둡고 삶도 어둠침침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생명의 빛이 들어오자 달라졌잖아요?

옛날엔 왜 사는지 모르겠다’ ‘사는 게 뭔지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어느새 그런 말이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확실히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제가 목회 9년차입니다.

저와 9년째 신앙생활을 함께 한 분도 계십니다.

성도님들은 자신에 대해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성도님들 심령의 빛이 점점 밝아지는 것이 조금씩 보입니다.

그건 형편이 좋아져서 표정이 밝아지는게 아닙니다.

형편이 좋아진다고 다 표정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형편은 점점 나아지는데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 사람 집안이 다 잘되는 것 같은데 얼굴은 왜 저 모양이야?’

이럴 때 있잖아요.

형편을 떠나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는 성도님들 모습을 보면 그 영혼이 소망의 말씀을 기쁘게 받으며 환하게 빛이 밝혀지는 것이 보입니다.

제가 신령해서가 아니라 관찰입니다.

이렇게 빛의 자녀가 되었기에 금수저라도 흙수저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너희가 스스로 빛을 발하며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를 인도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인도해 가시는 데 장애물이 뭐가 있겠습니까?

사실 금수저든 흙수저든 곧게 난 평탄한 길을 평생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길도 뒤돌아보면 구불구불 굽어 있습니다.

길이 막힐 때 마다 하나님이 다른 방향으로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굽은 길이 된 것입니다.

강물이 곧게 흐르지 않고 굽이굽이 흐르기 때문에 더 많은 생물들이 강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다고 하죠.

우리의 굴곡진 삶도 오히려 영적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가꾸는 자양분이 된 것입니다.

빛은 오히려 주위가 어두울수록 더 밝게 빛나잖아요?

삶의 위기감을 느낄 때 우리는 심령의 빛이 번쩍이며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됩니다.

헐겁게 풀어진 믿음을 다시 조이고 하나님께 바짝 다가가 의지하면 어느덧 담대히 위기를 돌파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시련은 오히려 믿음의 빛을 더욱 강렬하게 할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사망과 심판을 벗어나 그리스도의 빛의 나라에 들어 온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늘 빛 가운데 인도하시고 땅의 모든 어두움을 이기도록 끝까지 함께 하며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2. 빛의 자녀가 된 신분을 알았다면 그 다음은 빛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요구됩니다.

어둠의 자식들과 빛의 자녀들은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행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본문 앞 3절부터 읽어보면 어둠에 속한 사람들의 행위를 지목합니다.

음행, 더러운 것, 탐욕, 나쁜 말, 우상숭배.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물론 우리는 과거 죄악의 습관과 본성으로 인해 불의한 행동을 완전히 벗어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두움의 일을 은밀히 즐기지 않을뿐더러 그런 일을 하면 부끄럽습니다.

대신 빛의 자녀들이 살아야 할 방식들을 받았습니다.

2절에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 행하라고 하십니다.

또 앞 장에 보면 더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

분을 오래 내지 말아라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아라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해라 등등.

이렇게 빛의 자녀답게 말씀대로 살면 빛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가 스스로 착해질라고 해서 성품이 착해지는 게 아닙니다.

진실해 질라고 노력해서 속과 겉이 일치하는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인격수련을 하고 교양 있게 행동한다고 그 사람이 과연 진실 됩니까?

차라리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건설근로자들이 안팎이 더 같을 수 있습니다.

열매는 그 나무의 정체성에 따라 열리는 것입니다.

사과나무기 때문에 사과가 달리는 것이잖아요?
또 양분을 잘 받아먹고 햇빛과 비를 적당히 잘 받고 농부의 보살핌을 잘 받을 때 아름답고 탐스러운 과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라면 빛이 열매가 달리는 것입니다.

또 말씀을 공급받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것을 바울사도는 10절에서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행동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지 아닌지를 잘 분별해서 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에서 시험하라는 뜻은 금속을 제련해서 그 성분을 밝혀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을 살려 해석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고 나서 과연 하나님이 그걸 기뻐하시는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한번 성경에서 가르치시는 명령대로 순종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아닌지 알게 될거라는 뜻입니다.

자녀들이 부모가 요구한대로 착하게 순종한다면 부모는 기쁩니다.

그런데 속으로만 기뻐하지 않고 칭찬을 하든지 상을 주고 기쁘다는 표시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이 계속 부모의 가르침을 잘 따를 것이기 때문이죠.

하나님도 다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습관대로 살다 말씀대로 사는 걸 보면 하나님은 기쁘십니다.

지난 주 설교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러 오신 것처럼 우리도 섬기는 삶을 살자고 말씀을 나누었죠.

제가 지난 주 청소년부와 말씀교제를 하면서 단우에게 설교 중 기억나는 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단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반씩이나 따라 다녔잖아요, 학원으로 말하자면 톱강사이신 예수님께 직접 배웠는데도 제자들이 하나님나라를 오해했으니 지금 내가 하나님나라를 잘 모르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결론이 완벽하지는 않아 좀 고쳐주었지만, 말씀을 이렇게 기억하는 것은 칭찬들을 만 합니다.

설교를 기억해야 지킬 수가 있는 것이잖아요?

지난 주 말씀대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 사람을 섬기려고 노력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사인을 주셔서 하나님이 기뻐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을 것입니다.

관계가 나빴던 사람을 섬겼더니 대하는 게 편안해 졌을지도 모릅니다.

바쁜 중이라도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믿음으로 살려고 했다면 마음에 기쁨과 삶의 즐거움을 허락해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의 변화를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걸 느끼기 어렵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런 선물을 얻기 위해 주고받는 식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의외로 성경의 많은 곳에서 말씀대로 지키고 내가 복을 주나 안 주나 시험해 보라고 하십니다.

왜 그러시겠습니까?

말씀대로 순종하는 게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게 분명한데 우리가 세상적인 판단으로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까봐 당장의 보상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훈대로 사는 것이 큰 희생이고 손해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서 빛의 열매가 맺히면 누가 좋습니까?
먼저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다는 평판을 얻으면 사람관계도 좋아지죠?
도와주고 함께 일하자는 사람도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어둠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인생이 불행한 것이죠.

착하다는 평판이 아니라 저 사람은 정말 악독한 사람이야

바른 사람이라는 평가가 아니라 저 사람은 하는 일마다 불법이야

진실하다는 말 대신 저 사람 말하는 건 믿을 수가 없어

이런 평판을 받는다면 그 인생이야말로 정말 비참한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빛의 자녀들에겐 그 정체성에 의한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빛은 그 특성상 피할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빛이 비취면 어둠이 물러가게 된다는 것이고 어둠에 묻혀있던 것들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11절 이후의 말씀의 의미입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책망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빛의 자녀인 우리가 어둠의 일을 책망하면 그 빛으로 인해 죄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남을 비판하고 책망하는 대신 허물을 덮어주라고 하셨잖아요?
남을 비판하는 자들에 대해 자기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의 티를 보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이 말씀은 눈에 대들보가 떡하니 박힌 줄 모르고 티 하나 묻은 사람을 책망하는 인간의 나쁜 본성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본인이 어둠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면 말이 먹히겠습니까?

너나 잘 하세요하는 말이 돌아오겠죠.

그렇기에 너희들은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죄를 오히려 폭로하고 책망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때에 따라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착한 행실이 어둠의 일들을 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때로는 진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받아 진심으로 권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만 어둠에 속했던 그 죄가 빛으로 인해 죄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책망 받지 않은 것을 죄라고 느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가 죄를 깨닫고 회개할 만큼 양심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의 잘못을 진심으로 깨우쳐 줄만큼 용기 있고 의로운 사람은 우리 곁에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과 설교를 통해 잘못과 죄를 깨닫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에는 잠자는 자를 깨워야 한다는 것과 예수님의 복음의 빛이 비출 때 생명을 얻는다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잠든 사람과 죽은 사람은 겉으론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 또 개인의 경건생활을 통해 적절한 은혜와 영적 자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믿음은 점점 약해지다 아주 사그러져 버립니다.

그러면 잠자는 영혼이나 죽은 영혼이나 잘 구별이 안됩니다.

믿음이 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보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옛날로 돌아간 성도들을 보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자기의 영을 잘 보살피지 않아서 잠든 것일 수가 있습니다.

얼핏 보기엔 잠든 자나 죽은 자나 같아 보이지만 어떨 때 차이가 드러날까요?

일어나라라고 했을 때 눈을 뜨면 잠든 사람이고 눈을 못 뜨면 죽은 사람입니다.

설교와 기도와 권면을 통해 깨우쳐주면 잠든 자들은 깨어납니다.

물론 죽은 영혼도 복음의 빛을 계속 받으면 그를 둘러싼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빛으로 나올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계속 듣게 되면 성령께서 그 심령에 깨닫는 마음을 주시고 복음을 믿게 역사하시는 것이죠.

잠든 영혼을 깨우고, 죽은 영혼에 복음의 빛을 비출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은 빛의 자녀들입니다.

이 사명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최근 최고의 인기와 명예를 누리는 방탄소년단 아시죠?
왜 세계의 젊은이들이 이들에게 열광하고 있습니까?

폭발적인 신드롬의 원인이 한 두 가지는 아닐 것입니다.

아마 음악적 재능과 열정이 가장 큰 요인이겠죠.

그런데 이들이 대형기획사 출신의 금수저들이 아닙니다.

이름없는 작은 회사에서 피, , 눈물을 통해 자기 꿈을 이루고 있는 흙수저 들입니다.

멤버 중 한명이 직접 쓰는 가사엔 가난과 삶의 아픔과 마음의 상처 같은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천원짜리 국수를 먹으면 버스를 타고 집에 갈 수 있고, 이천원짜리 짜장면을 먹으면 두 시간을 걸어가야 했던 연습생 시절의 애환을 노래하잖아요?

그러나 이 시련을 이기고 눈부시게 성공해 가는 과정이 지금 힘든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BTS의 런던공연에 몰려온 팬들의 열기는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런데 방탄의 팬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보니까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자기 인생을 바꿔 놓았다는 젊은이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을 소개해준 친구에게 너무너무 고마워하는 겁니다.

이게 교회가 해야 하는 일 아니었나요?

현실에 작은 위안을 주는 노래로도 이렇게 세상을 들썩이게 하더군요.

우리는 현실에 빛을 비추고 희망을 주는 걸 넘어 영원한 소망의 빛을 비출 수 있는 빛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빛을 등잔대 위에 놓고 많은 어둠을 밝히길 원하십니다.

그 빛의 사명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음 주에 잠자는 영혼, 잃은 영혼, 죽어있는 영혼들을 불러내어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추신다라는 말을 들려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영혼들이 빛의 자녀가 되고 정말 우리에게 고마워하게 될 것을 기대하며 새가족초청예배를 위해 기도하시고 가족들을 권면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8년10월7일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