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동기는 사랑입니다.
그래서인지 세상사람들도 성탄의 절기를 사랑의 계절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경제가 위축된 만큼 기부문화도 꽁꽁 얼어붙었다고 합니다.
연말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광화문 사랑온도계가 100도에 한참 못 미친 20도를 겨우 넘었다죠.
그나마 엘지에서 120억 사랑의 성금을 낸 덕에 3도가 오른 것이라고 합니다.
올 겨울 온정이 절실한 시설들은 혹독한 한파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랑이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같이 식어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한 주 동안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기엔 너무 바쁘고 지쳐있지는 않으셨나요?
혹시 누군가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 사는 게 더 팍팍하지는 않으셨는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지 아시기 때문에 사랑하도록 격려하십니다.
사랑할 마음조차 닫혀 있다면, 늘 사랑에 실패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신앙의 원동력과 삶의 기쁨인 사랑을 되찾는 은혜를 내려주시길 소망합니다.
1. 성경은 사랑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8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하죠.
사랑의 기원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은 사랑이시기에 창조한 세계는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자연과 온갖 생물들을 보면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특히 동물의 새끼들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오잖아요?
저는 요즘 동물 동영상 보며 귀여워 못 견디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지으신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그 작품들에 사랑을 부여하시고 사랑스럽게 만드신 것입니다.
비록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에게도 사랑의 잔재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슬픈 사연을 들으면 동정심이 생기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고 무언가에 애정이 생기는 것은 다 사랑의 흔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큰 위안과 소망과 안도감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모든 동기는 사랑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기대어 살아가는 피조물에 하나님은 계속사랑을 부어주고 충실히 길러 주십니다.
공중의 나는 새와 산의 수많은 동물들을 하나님이 기르시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돌봐주시길 바란다면 하나님은 풍성한 사랑으로 우리를 길러 주실 것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사랑을 받을 때 가장 완전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아지면 예뻐지는 거예요.
사람사회가 왜 비뚤어지고 뉴스는 온갖 부패와 죄악으로 도배됩니까?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죄를 짓기에 사랑이 아닌 진노가 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 아래 그래도 당당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인 것이죠.
사람이 육신의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자란 것도 얼마나 자신 있는 사람이 되게 합니까?
안정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대개 성품이 안정적이고 자존감이 높습니다.
제가 유튜브에서 요즘 인기있는 김00강사가 자기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부모님들이 딸들을 어떻게 키웠는지를 듣고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부모님이 얼마나 극진한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웠는지 자식들이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도 집에 오면 모든 걸 다 잊을 정도로 괜찮아졌다 합니다.
그만큼 집에서 부모에게 받는 사랑이 든든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이 가족 얘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그 어머니로 말하자면 자식들을 위해 기도밖에 한 게 없다고 하지만 평생 양장점을 꾸려가며 손에서 일을 놓아 본적이 없는 희생적인 분입니다.
아버지는 사람은 너무 좋은 데 손대는 일마다 망하는 마이너스의 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딸들 공부 뒷바라지는 주로 아버지가 했다고 합니다.
매일 점심 도시락도 아버지가 날랐다고 합니다.
좀 더 따끈한 밥을 먹이려고 점심시간 맞춰 국과 반찬을 채반에 담아 매일 가져왔다고 하니 부성애도 우습게 보면 안되겠더군요.
심지어 백숙을 삶은 압력솥을 그대로 들고 왔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귀를 의심했던 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여고시절 김강사가 음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수학을 너무 못했다고 합니다.과외도 시켜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죠.
결국 아버지가 특단의 시험전략을 지시 합니다.
앞으로 수학시험은 무조건 1번에만 표기하라는 거예요.
고등학생인데, 너무 황당하지 않습니까?
그 시간에 다른 과목에 주력하면 수학을 20프로만 받아도 합격할 수 있으니 차라리 포기하라는 것이죠.
이렇게 하라고 할 때 아버지 마음은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그러나 자식의 한계를 일찍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 진학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대로 수학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딸은 입시준비를 했습니다.
드디어 수능시험날, 아버지가 김강사를 들여보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정말 문제 풀고 싶은 생각이 들거다. 그래도 마음 굳게 먹고 연습한대로 1번만 써.’
그래서 열심히 연습한 대로 1번으로 쭉 표기하고 편히 잤다고 합니다.
물론 아버지의 작전대로 무사히 음대에 합격했죠.
이 방법이 좋으냐 나쁘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식의 능력과 한계에 눈높이를 맞추고 괜한 기대로 자식을 힘들게 하지 않은 사랑이 대단한 것입니다.부모들이 그걸 빨리 포기하지 못하잖아요?
자식들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몰아 붙이는 부모 때문에 많은 자식들이 자존감을 잃고 마음에 병이 드는 거잖아요?
물론 자식이 더 나아질거라는 기대감을 접기는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저도 서원이 중학교 때 시험문제를 틀리면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짚어가며 꼼꼼하게 야단쳤습니다.
알면서 틀리면 왜 실수하냐, 모르면서 틀리면 왜 미리 안했냐 이렇게 되는 것이죠.
지금은 좀 후회가 됩니다.
공부시키지 말고 기술 가르쳐서 평범하게 제 주변에서 살아가는 걸 보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서원이 장래희망이 개그맨이었는데 그걸 밀어 줄 걸 그랬나봅니다.
평생 머리만 쓰며 사는 직업이 뭐가 좋겠습니까?
물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은 다 다릅니다.
우린 김강사네 같이 부모의 자상한 사랑과 치밀한 지원을 받고 자라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저희 어머니가 여자도 남편 밥만 먹지 말고 일할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네 딸들이 한번도 먹고 놀아 본 적이 없나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친부이십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도 귀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우리의 친부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질을 만드시고 DNA를 고르시고 이목구비를 고심해서 만드셨잖아요?
하나님이 정해주신 이상 아무리 잡아 당겨도 코가 1밀리도 높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우리를 잘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땅의 부모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고 계십니다.
인간 부모도 이렇게 딸의 미래를 설계하고 지도하잖아요?
우리를 맡겨 놓으신 이땅의 부모가 혹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이상 하나님은 정말 충실히 그 역할을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재벌아버지를 둔 것보다 더 없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는 걸 우리 성도들은 경험합니다.
그렇기에 또한 부모 된 우리들은 자녀들이 사랑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2. 성육신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하지만 정말 하나님은 우리를 실제적으로 사랑하실까요?하나님의 사랑이 진실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성탄절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9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실제 역사 속에 내려오신 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단지 경이로운 사랑스러움과 영광에 둘러쌓인 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반드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위해 움직이셔야 맞는 것이죠.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자녀들이 죄악 속에 죽어있었기에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실 수 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제로 수고하고 희생하고 일하십니다.
부모가 아기를 사랑한다고 다정한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기저귀를 갈아주고, 젖병을 물리고, 열이 날 때는 밤새 물수건을 바꿔주며 품에 안고 밤을 지새잖아요?
제가 아는 분은 형제들이 장남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이유는 오빠가 사업을 한다고 부모님 돈을 다 빌려다 쓰고 그걸로 끝이라는 겁니다.
더 갖다 쓸게 없자 사업자금을 빌리는 데 아버지를 보증인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맨 정신에 보증 서 줄 것 같지가 않으니 아버지한테 잔뜩 술을 마시게 하고 취한 틈에 도장을 찍게 했다는거예요.
사람이 돈에 시달리고 궁지에 몰리면 결국 사기도 치고 도둑질도 합니다.
결국 그 사업도 잘 안 되서 아버지 집이 빚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지금 그 집이 있었다면 톡톡히 유산을 받았을 거라며 형제들이 그 오빠를 미워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부모의 희생이 이렇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렴 술에 취했다고 종이에 도장 찍는 줄도 몰랐겠습니까?알면서도 취한 척,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만큼 궁지에 몰린 자식처지가 하도 딱하고 속상해서 찍어 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오늘 타락한 인간 아버지도 그 안에 이런 사랑의 형상이 남아 있는 데 하나님아버지의 본 사랑은 그에 비하겠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인정을 받고, 주는 게 있어야 받는 것이 있다고 경험해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도 그런 생각이 깔려 있기가 쉽습니다.
그런 생각대로 라면 하나님 앞에 우리는 늘 죄인일 뿐입니다.
죄인은 맞지만 죄책감만 갖는다면 하나님 앞을 피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오래 하다보면 마음먹은 대로 잘 섬기지 못할 때가 생기잖아요?
벌은 돈을 계산하면 나갈 게 더 많을 때 헌금도 제대로 못하는 일도 생깁니다.
때로는 일에 치여서 신앙생활도 봉사도 제대로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우리 처지와 속마음을 모르실 리가 없잖아요?또 우리가 좀 충성하지 못한다고 하나님이 일을 못하시지도 않습니다.
우리처럼 좀 시동 거는 게 느리고 속도를 팍팍 올리지 못하는 자녀들 데리고도 하나님은 충분히 주의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유롭고 느긋하시잖아요?
신앙생활에서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은 내 공로에 따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할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최악으로 미울 때도 사랑하셨다고 못 박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5장8절에서 바울사도를 통해서도 밝히셨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어떤 구정물을 뒤짚어 쓰고 앉아 있어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가 하나님의 이 사랑을 알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며 조금씩 성숙해 가길 바라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들으며 그 사랑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깊이 알수록 봉사와 헌신은 겸손하고 진실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실력도 강해집니다.
로마서8장32절 같은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기도하며 점점 더 힘있게 살아가는 것이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성탄절에 그 외아들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두려울 게 없는 것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무엇인들 우리에게 아까워 하시겠습니까?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항상 최고의 선물인 그리스도를 구하시고 또 모든 것을 아버지께 담대히 구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삶에는 서로 사랑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만 있고 가족 간, 성도 간에 사랑이 없다면 행복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요한사도를 통해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7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8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러나 사랑이라는 말 앞에서 우리는 늘 자신감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사랑에 인색하고 긍휼과 이해심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요한사도가 공동체를 향해 이토록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당시 교회 안에도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사회의 특징은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연애 할 때 잠시는 모르겠지만 부부사이도 결국은 상대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처음, 사람이 사랑할 때보면 모든 관심을 상대방에게 기울이게 되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 관심이 서서히 자기에게 더 기울게 되면 사랑의 도파민은 끝난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서로가 필요해 지고,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으니까 적당한 선에서 서로에게 잘 해주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인 걸 다 알기 때문에 내가 더 사랑하는 손해 보는 장사는 점점 더 안하게 되는 것이죠.
부모 자식 간에도 사랑이 자연스럽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죄의 본성 속에서 사랑을 하려니 사랑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또 사람에 따라 정말 이해하고 사랑으로 품기엔 너무 힘겨운 상대가 있습니다.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얼마나 힘듭니까?우리 의지로 밉살스러운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면 결국 마지막은 미운 감정이 폭발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성도들의 모든 삶이 그렇듯이 이 또한 성령님의 충만함을 통해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 순간 자신을 눈여겨보면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음이 닫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사랑의 권고를 항상 생각하고 성령님을 의지해서 계속 사랑하기를 힘써야 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성령충만 할 때는 확실히 사랑하기도 쉽고 사람에 대한 부담감이나 두려움도 적어집니다.
사랑의 실력이 곧 행복이기에 하나님은 우리 실력을 쌓으라고 제일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곁에 두시기도 합니다.
연습은 항상 힘듭니다.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90%나 되는 연습이 좋을리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자기는 강의하는 걸 제일 좋아하는 데 강의 준비는 제일 싫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좋아하는 것이기에 싫어하는 90%의 연습을 해 나가는 것이죠.
사랑이 너무나 좋은 것이기에 우리도 사랑하는 연습을 열심히 해나가시길 서로 격려합시다.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 마굿간에 오신 것은 우리가 완전히 잃어버린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복귀하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 가족으로 서로를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괴롭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행복하잖아요?
사랑하면 어떤 수고와 희생도 기쁘게 감당하잖아요?
저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내려 보내시는데 이를 악물고 결단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데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단지 눈 한번 딱 감고 큰 희생을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셨기 때문에 기대와 소망으로 그 일을 해 내신 거잖아요?
우리가 이 사랑을 점점 더 깊이, 진실되게 깨닫게 되길 축복드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사랑이시란 걸 보여주는 삶이 성탄의 가장 귀한 선물을 받은 우리가 평생 행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친부 하나님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섬기는 성도님들 가정이 항상 사랑으로 넘치길 축원드립니다.
2018년12월16일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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