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신년설교-믿는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자 (히브리서10장23절-25절)

남수연 2019. 1. 23. 23:12

2019년 새해 첫주일 예배에 나오신 성도님들께 올 한해도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셔서 모든 날이 다 형통하고 복되시길 소망합니다.

올해는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대개는 작년과 비슷한 일상 속에서 계획 한 일을 해 나가겠지요.

그러나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도 불쑥 일어나겠죠.

작년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듯이요.

예측 못한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계속해 가야 할 것입니다.

새해 어떤 계획들을 세우셨나요?

우리 나이가 되니 새삼스럽게 뭔가를 시작하겠다는 생각도 점점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만 시간을 해나가다 보면 전문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만 시간이면 하루 세 시간씩 십년 정도가 됩니다.

뭐가 되는 것보다도 꾸준히 규칙적으로 사는 힘의 위대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뭔가 나를 더 성장시킬 취미든 운동이든 배우는 일이든 하나를 정해서 지켜본다면 생활도 활기차고 멋진 결과도 얻으리라 믿습니다.

올해도 주어진 일년의 시간을 내 성장을 위해 아무 것도 못하고, 먹고 살기위해서만 다 쓴다면 후일에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신앙에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올해 우리 믿음의 성장을 위해 작지만 무언가를 작정하고 꾸준히 해나간다면 하루하루가 달라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흔히 작정하는 게 성경1, 큐티, 기도생활, 주일성수 이런 목표들이죠.

해마다 용두사미가 되었다 해도 아무 것도 결심하지 않는 것보다 낫습니다.

또 한번 용기를 내서 결단하는 한 해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올해 우리 교회가 함께 훈련해 나가길 원하는 표어를 결정했습니다.

서로 돌아보고 모이기를 힘쓰자

정말 신앙생활에서 힘써서 지켜야 할 유익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본문 말씀을 통해 왜 이것을 우리에게 강조하시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모두의 마음을 감동해 주셔서 올 한해 함께 이 목표를 갖고 살아감으로 하루하루 행복하게 성장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1. 먼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야 합니다.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새해에도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소망을 확고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완벽한 속죄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구원만이 아니라 현재에서도 완전한 구원을 받았기에 도저히 안되는 절망적인 일은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이 은혜 안에서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흔들리는 믿음은 언젠가는 넘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이 확고부동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도 비신자들과 똑같이 불안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의 소망이 꿈쩍하지 않는 견고함의 근거를 말씀합니다.

이것을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믿음직하시다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세상엔 참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주 어릴 때는 부모가 세상에서 제일 믿을만하고 능력 있는 위대한 존재로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씩 철이 들고 부모의 삶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부모님도 나를 끝까지 책임져 줄 믿음직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은 믿을 만하지만 그 능력은 한계가 있잖아요?사람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언젠가 그 한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믿음직하지도 믿을만하지도 못합니다.

우리 자신을 보면 알잖아요?

우리가 남에게 믿음직한 존재입니까?

그렇지 못하잖아요.

청년들 결혼상대를 고를 때 나를 맡겨도 좋을 만큼 믿음직한 상대를 고르려고 하죠.

나를 책임져주고 영원히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렇기에 세상적으로 좀 똑똑한 사람들은 결혼은 저 남자 믿고 하는 게 아니라 나 믿고 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나를 믿는 게 더 낫다는 것이죠.

그런데 나 자신 역시 완벽하게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잖아요?

나도 때로 무너지고, 약해져서 믿음직한 모습을 잃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만한 유일한 한 분이라고 알려 줍니다.

결혼도 하나님 믿고 해야 하고, 공부도, 사업도 하나님을 믿고 하는 것입니다.

혹 우리의 목적을 잘못 선택해 믿었던 것들이 무너졌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을 대상을 하나님으로 정하고 따른다면 믿음직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것은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아홉장에 해당하는 긴 설교가 나옵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약속하신 구약성경을 하나하나 예를 들어 그것을 예수님이 다 성취하셨다는 걸 확인시키는 작업입니다.

그걸 다 지켜내신 하나님은 미쁘시니 구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펴고 유심히 보면 다 그런 믿음직한 하나님을 가르쳐 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스바냐317절의 말씀을 예로 들어 살펴볼까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는 것입니다.

전능하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능히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이 내게 어떤 감정을 갖고 계십니까?나를 보실 때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작가는 이걸 표현하길 하나님이 나에게 반하셨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구원은 의심할 것없이 확고부동한 사실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구원은 앞으로 받게 될 미래의 것만이 아닙니다.

그가 너를 잠잠히 사랑하신다고 하죠.

이것은 번역이 좀 잘못 된 구절입니다.

본래의 의미대로 하면 하나님이 잠잠히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너를 잠잠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직한 사랑 때문에 내가 어머니 품에 있는 젓 뗀 아이처럼 고요하고 평안하다는 다윗의 시편131편의 고백과 같은 것이죠.

우리가 작년에도 얼마나 많은 순간에 두렵고 떨렸습니까?

그때마다 하나님의 믿음직한 사랑이 우리를 잠잠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과 용기를 주셔서 일을 헤쳐 왔고, 결국 요동치던 환경도 잠잠하게 해 주셨습니다.

미래의 구원 뿐 아니라 현재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가 잠잠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성경 어디를 펴도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올해 믿음직한 하나님을 견고히 따르기 위해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다시 성경을 읽기를 작정하시길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의 소망을 믿음직한 하나님께 두도록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목적을 두고 꿋꿋이 걸어가는 모든 성도님들의 한 해가 평탄하며 마지막에 영화로운 면류관과 금보다 귀한 유업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2. 서로를 깊이 생각하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합시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이 말씀은 성도들의 신앙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이 구절에서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너희가 사랑하고 선행을 행하라는 것과 그렇게 잘 할 수 있게 상호간에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걸 잘 할 수 있도록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열심히 해나가라는 것이죠.

사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가장 많이 사랑도 하고 착한 일도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순종하고 성장해 가는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는 칭찬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제가 요즘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레이너가 한 종목을 할 때마다 그렇게 칭찬을 합니다.

잘하셨어요 회원님. 동작 좋다. 자 할 수 있습니다. 두 개만 더

제가 몸치인데다 처음 배우는 헬스인데 잘 할 리가 없죠.

제 동작이 다 웃길 텐데도 트레이너가 그렇게 칭찬하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한 시간을 훌쩍 보낸다니까요.

그냥 하는 소리인지 알면서도 그게 힘이 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전에 국립국어원에서 가정 내 대화 상태를 조사해서 발표했습니다.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53%가 노력에 대한 칭찬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수고했어이런 말을 듣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우리가 항상 이런 말 하면서 아이들 키우셨잖아요?

그런데 청소년들이 실제로 부모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무엇이라고 답했겠습니까?

1위가 공부 해였습니다.

자식들만 수고에 대한 격려와 칭찬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72%가 수고에 대한 감사라고 답했습니다.

부모에게도 자녀들의 칭찬이 필요합니다.

호집사님이 몸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아픈 데, 위곤자매 돌아올 시간이 되자 저녁거리를 챙겨주려고 몸을 일으키게 되더라는 말을 하시더군요.

부모들은 다 그런 마음으로 자식을 키웁니다.

우리 엄마는 맨날 공부하란 소리만 해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서로의 노고를 알아주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가족들 되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같이 작은 교회는 안 좋은 점보다 좋은 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서로 가족같이 친하게 지낼 수 있고 교회에 오면 여러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어요.

큰 교회에서는 주방에서 봉사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음식만 받아가지 눈을 마주치며 고생한다 말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가대하고 나면 오늘 찬양 너무 은혜로웠다고 누구나 한마디씩 할 수 있잖아요?

음식 만들고, 설거지 하는 분들이 바로 코앞에 있으니 오늘도 너무 수고하십니다말할 수 있잖아요?

청소년부 학생들 아침잠도 많은데 일찍 일어나 나오느라고 고생했다칭찬할 수 있잖아요?

어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고 열심히 성도들과 힘을 합쳐 교회를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교인 수가 한 오백명정도가 되니 그렇게 마음이 뿌듯하고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수퍼마켓에서 교인을 만났습니다.

얼굴은 알 것 같은데 그 분 이름을 모르겠더라는 겁니다.

담임목사가 성도의 이름도 모르니 일 년 내 그 분을 위해 기도 한번 안했다는 것이죠.

그때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합니다.

교회는 그런 대기업이 보다 식구들 끼리 힘을 모아 운영하는 동네 식당 같은 곳일 때 얻는 유익이 더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에 와서 아무에게도 따뜻한 눈빛과 칭찬과 위로를 받지 못한다면 세상 어디서 위로 받겠습니까?

우리 같이 작은 교회는 이제 가족같이 서로의 형편을 다 알잖아요?

그러니 칭찬하고 아껴주고 서로 어려운 문제 걱정해 주고 집에 가서 기도해주고 얼마나 복된 교회입니까?

사실 교회성도들은 동호회처럼 취미가 같은 것도 아니고 학연 지연으로 만난 공통점이 있지도 않습니다.

성격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다르고 문화도 다릅니다.

그걸 맞춰가며 함께 신앙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때로 내가 뭐하러 이렇게 엮여서 고생하나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혼자 남모르게 조용히 신앙생활하면 더 편할 것 같은 생각도 들죠.

요즘 사람들이 그렇게 조용히 은둔하는 걸 선호한다잖아요?

사람들이 밖에서 사람 만나고 어울려 지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대인관계 하는 걸 힘들어 합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공포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목소리로 직접 대화하는 것도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죠.

차라리 카톡이 편하고, 문자가 편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성도들이 사람을 매주 만나는 구역모임 같은 걸 아주 힘들어 한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배우는 게 가장 큽니다.

인생 공부엔 사람이 최고입니다.

신앙 안에서 만나는 성도들에게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심지어 나와 가장 잘 안 맞는 성도와의 관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놀랍게 가르치시고 성장시키십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이해하고 마음을 잘 맞춰가며 함께 믿음의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은 기쁘게 축복하십니다.

새해에는 서로 돌아보고, 착하게 봉사하는 성도들에게 더 많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심히 봉사하고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모든 것을 칭찬하고 계시고 그 말을 성도들 서로의 입을 통해 하십니다.

때로 성도들의 한마디 말이 얼마나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 주고 큰 용기가 불끈 솟아나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게 사람의 말 때문 만이겠습니까?

성령께서 그 사람의 입을 통해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하시는 것이죠.

새해엔 우리 입술이 그렇게 사용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올해는 더욱 모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예배와 모임에 열심을 갖고 참여하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배는 성도들에게 가장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중요한 신앙활동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명령이 있잖아요?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가르치고 지키도록 권하는 것이 예배 설교입니다.

교회예배가 아니면 어디서 누구를 가리키고, 누구에게서 배우겠습니까?

또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게 성찬식입니다.

성찬식을 집에서 혼자 할 수는 없잖아요?

반드시 모이라고 그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올바른 신앙을 배우고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편들이 예배 안에 다 있습니다.

예배나 교회모임에 빠지셨다면 분명히 거기서 받을 수 있었던 귀중한 것을 놓친 것입니다.

거기서 얻을 수 있었던 믿음이든, 은혜이든, 결정적 기도응답이든 놓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 임하셔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잖아요?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그 말씀대로 반드시 어떤 복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죠.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가 모여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중에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중에 지금 계시다는 것이죠.

예수님이 우리 예배 중에 계시다면 그냥 구경만 하고 계시겠습니까?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것을 깨닫게 하시고 힘을 주시고 은혜로 우리 마음을 만져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예배에 나오고 모임에 나오기만 해도 얻어가는 것이 꼭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서는 별로 깨달음도 없고 은혜도 못 받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원을 갖고 나왔던 그 문제가 어디선가 이미 조정되고 있고, 실마리가 풀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열심히 예배와 모임에 참석할 때 서로에게 큰 힘이 됩니다.

모이기를 힘쓰면 서로에게 낙담을 주지 않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 게을러서 예배에 나오지 않는 분이 없다는 것 너무 감사하고 큰 축복입니다.

한 가지 더 오늘 말씀을 통해 권면 드립니다.

이젠 예배를 최우선으로 삶에 중심에 고정시키고 나머지 계획들을 짜시길 바랍니다.

직장 문제로 예배출석이 어렵다면 해결되도록 기도도 하고 방법도 모색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잘 성장하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세 가지 중요한 권면을 받았습니다.

올해도 믿음직한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살아갑시다.

다 같이 사랑하고 선행을 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합시다.

더욱 모이기를 힘씁시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뒤이어 나오는 말씀이 우리를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에서 흔들리다 완전히 넘어져 버리는 불행을 방지하고 이 축복된 믿음 안에서 올해도 승리하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에 결심하신 성도님들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2019년1월6일 남수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