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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8월4일 설교 영상>
지난 주에 로마서 말씀에서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기억 하시죠?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고, 나를 속죄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오늘 본문 13절이 이것을 이렇게 요약해 줍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같은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까지는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세의 구원 뿐 아니라 현실 생활에서도 구원받아야 합니다.
신앙이 실생활에 얼마나 도움을 주느냐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믿느냐와 비례합니다.
믿음의 실력이 곧 살아가는 실력인 것이죠.
왠지 일상이 버겁고 일도 지겹고 모든 게 삐꺽거리는 것 같으면 믿음의 실력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서신서를 보면 먼저 하나님과 인간의 죄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원리로 믿음을 다진 뒤 생활의 문제들을 다루는 것입니다.
믿음이 삶을 이끌고 가는 것이 기독교신앙입니다.
오늘 로마서에서도 역시 구원에 대한 진리와 성도들의 삶을 교차해서 가르칩니다.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면 믿음에 확신을 더해 줄 것입니다.
나쁜 상황이 엉키고 굳어져 삶이 잘 굴러가지 않습니까?그렇다면 오늘 확신을 가진 믿음이 견인차가 되어 답답한 삶을 힘차게 끌고 가게 될 것입니다.
1. 먼저 구원이 이뤄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습니다.
육으로 태어난 사람이 구원을 받고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자기가 알던 세계관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마주칠 때 사람은 충격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티끌이고 연약한 육의 사람임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의 사람으로 바뀌는 과정에 정체성이 얽히는 혼란이 전혀 없도록 배려하십니다.
거듭나서 정체성이 막 혼란스러운 분 계십니까?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그 존재감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일이 절대로 없으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건 믿는 것이지 감지할 수는 없습니다.
자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수상한 영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계란 옮기시는 것처럼 그렇게 세밀하고 자상하게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줄 아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언제 구원을 받았는지, 거듭났는지도 모르게 우리가 영의 사람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지의 과정을 잘 이해하는 게 내 믿음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합니다.
본문말씀은 현재 구원받은 상태에서부터 이전으로 되짚어 가며 과정을 설명해 주십니다.
13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죠?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이 어떻게 예수님을 구원자로 부르겠습니까?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믿어지지도 않은 데 ‘주여, 예수님’ 부르는 게 양심적으로 잘 안됩니다.
그러나 믿고 싶어도 예수님에 대해 듣지 못하면 어떻게 믿겠습니까?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데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기만입니다.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것을 어떻게 믿겠어요?
또 만일 우리가 듣고 믿었다면 누군가 예수님에 대해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전파하는 이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왜 그들이 내게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까?하나님이 가서 내게 전도하라고 그 사람을 보내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우리가 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시간차 순서대로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전도할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전도자가 와서 내게 예수님에 대해 전해 줍니다.
예수님에 대해 듣다보니 어느 순간에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믿음이 생겼기에 예수님을 하나님과 구주로 부르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잘 이해가 되시죠?
생각해 보면 우리도 다 이 과정을 거쳤고 지금 거치고 있는 중입니다.그렇다면 이 과정 중에서 몇 가지 중요한 부분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2. 이 과정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누군가 와서 복음을 전해 준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확히 지목하시고, 누군가를 보내셔서 구원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괜히 직장 동료가 주변에 얼씬 거리며 친한 척하며 다가오더니 어느날 교회에 한번 가보자고 그럽니다.
같이 신앙생활 해보자, 우리 교회 너무 좋다. 이런 말을 자꾸 합니다.
그때는 거절했지만 힘든 일이 생기니 왠지 자꾸 그 말이 생각나 발길이 교회로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데 이런 전도의 방법으로 구원하시기로 정하셨다고 성경은 명시합니다.
우리 교회도 한 달에 두 번, 한번은 성도님들과 함께, 한번은 전도봉사자들과 함께 동네 청소봉사를 하고 휴지를 나눠주며 전도를 했습니다.
가끔 교회주보를 유심히 보다 흥미를 갖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분도 있습니다.
기도를 해드린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서 교회를 찾아오신 분은 없었습니다.
이런 전도가 무슨 의미가 있냐 회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뀐 일이 한번 있었습니다.
얼마 전 제가 걸어서 교회에 오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 아파트 옆에 있는 교회에서 몇 분이 나와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걸어가다 보니 한 노인분이 받은 전도지를 아주 진지하게 들여다 보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다 걸음을 한 번씩 멈출 정도로 꼼꼼하게 전도지를 보고 계신거예요.
제가 그 분을 앞서 지나쳐 가다 너무 신기해서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다 같이 건너가시면 말을 건네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셨습니다.
누군가는 전도에 반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전도의 방식으로 구원받을 사람을 데려 오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시면 될 걸, 하나님이 각자의 꿈에 한번 씩만 나타나시면 될 걸,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미숙한 인간 동료들 끼리, 연약한 성도들의 노력과 수고를 통해 구원하기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눈으로 본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예시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눈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잖아요?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구름과 번개와 천둥과 불 가운데서 하나님의 존재를 목격했고 두려운 음성을 귀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믿었습니까?
안 믿고, 안 따랐습니다.
그게 광야 40년 역사잖아요?
만일 우리 앞에 기가 막힌 천국의 영광과 장차 누릴 행복을 생생히 보여주시면 어쩜 열심히 교회는 나올지도 모릅니다.
신도시에 아파트 하나 분양받은 것처럼 천국을 생각하겠죠.
회개하지도 않고, 부패한 본성 그대로, 천국에 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영원히 살 천국의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인간들이 이 모습 그대로 간다면 거기가 무슨 천국이겠어요?
그래서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복음을 차근차근 설명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형벌을 보고 내 죄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알고,
그동안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겠다 결심하고,
매일 자기의 옛사람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통해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걸 똑같은 죄인이 동료 죄인에게 그들의 언어로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복된 계시는 선천적으로 알아지는 게 아닙니다.
세상 어디서도 이 복된 계시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돈이 생명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성공이 내 인생을 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렇기에 ‘가서, 사람을 데려와서, 교회에서,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복을 누릴 새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알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생기도록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방법으로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반드시 복음을 전하고 듣게 해야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누군가를 하나님이 보내셨다면, 반드시 나를 누군가에게로 또 보내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깨닫고 나를 보내시는 이를 찾아가고 평생 입으로, 삶으로, 섬김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3. 그리고 듣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복음을 듣는다고 저절로 믿어지고 누구나 순종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16절,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서 들으면 사람들은 수용하거나 거부하거나 선택을 합니다.
모두가 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한 것은 교회역사에서 가장 큰 미스테리입니다.유대인들은 제일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 받은 민족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섬겼고 조상 예언자들은 구원자가 오실 것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완악한 마음을 갖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잖아요?
그리고 바울 같은 전도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에게 했던 것처럼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지만 듣는다고 믿음이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전 민족적인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해 이 로마서에서 여러 가지 측면으로 하나님의 뜻을 해석해 줍니다.
본문 18절에서 21절까지는 신명기, 이사야서 예언들을 통해 유대인들의 불순종에 대해 해석합니다.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안착하자 하나님을 배신하고 가나안땅의 풍요의 우상으로 갈아탔습니다.
모세는 이것이 하나님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다고 신명기에서 말합니다.
사랑하는 이가 딴 데 눈길을 줄 때 질투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도 백성이 아니었던 이방인들을 먼저 구원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질투를 불러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질투가 나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죠.
말하자면 이런 경우입니다.
오래 교회를 다녀도 마음이 완악하고, 잘 순종하지 않는 분들이 있잖아요?
이런 분들은 믿음도 삶도 고인물이 돼서 뭔가 답답하죠.그런데 더 늦게 교회에 나오는 새신자들 믿음이 막 성장하고 먼저 권사가 되고 축복을 많이 받는 것을 보고 시기가 나서 다시 열심을 낸다는 것입니다.
전에 어느 프로에서 보니까 매일 집밖으로 탈출하는 강아지 때문에 속을 끓이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걸 해결하는 방법이 뭐였냐 하면 같이 키우는 다른 강아지에게 맛있는 간식을 주고 놀아주고 가출하는 강아지에게 관심을 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자기를 찾으러 나와야 하는 데 그러지 않자 의아해 하던 강아지가 결국 제 발로 집으로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가출하던 버릇이 싹 고쳐졌습니다.
바울이 이런 식으로 유대인이 믿지 않음으로 이방인인 우리에게 먼저 구원의 기회가 왔음을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수준에서 이해하도록 그런 비유를 쓰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국민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하죠.
구원받을 이방인들의 수가 다 채워지면 마지막으로 유대인들도 구원하시는 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라고 합니다.
단 이스라엘의 현재의 불행을 보고 이방인으로 먼저 구원받게 된 로마교회의 성도들과 우리에게 경각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11장 20절부터 함께 보시겠습니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너희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믿음에서 낙오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종하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너무 막연하잖아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구원을 얻지 못했던 것과 반대로 한다면 순종하는 믿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그들이 성경이 예언하고 예언대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믿으면 그것이 순종입니다.
또 20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순종은 복을 구하든, 위기에서 도움을 구하든, 내게 주신 삶을 감사하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매일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찾습니까?
어린 다현이와 우영이가 늘 엄마를 바라고 엄마를 찾듯이 모든 일에 하나님을 찾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또 21절에서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고 거슬러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에도 광야가 있고 가시밭길도 있고 때로 폭풍우도 몰아칩니다.
그게 인간이 선택한 길이기에 어떤 인간도 그 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길을 함께 가시며 안전한 초장으로 인도하실 목자가 되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위협적인 상황일지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보호하여 목적지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 물이 보이지 않을 때 마다, 음식이 떨어졌을 때마다, 앞 길을 가로막는 대적이 나타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거슬러 말했습니다.
그것이 불순종입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만난다 해도 주님께서 반드시 통과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며 주님과 함께 해결해 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돌아다니는 기밀사항이 있습니다.
‘주나산에 붙어만 있으면 잘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죠?
교회에 붙어 있는 게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이니 당연히 잘 되고 있는 게 맞는 것이죠.
이렇게 잘 되기 때문에 붙어 있는 것도 순종일까요?
저는 그것도 하나님이 순종이라 여겨주신다고 믿습니다.
우리 믿음이 거룩한 경지에 도달해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순종하는 게 가능할까요?
성도들이 평생 예수님의 형상을 바라보고 성화의 길을 가지만 노년이 된 성도들을 보면 육체가 늙는 것처럼 믿음도 쇠락합니다.
노년에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젊을 땐 그래도 돈을 벌기 때문에 쓸 곳이 많아도 믿음으로 헌금하기가 쉽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돈을 못 벌기에 있는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합니다.
젊을 때 못지 않게 나이들어서도 쓸 곳이 많습니다.
믿음으로 헌금을 하는 게 젊어서처럼 되겠습니까?
나이들 수록 모든 면에서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바울사도가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11장33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우리가 평생 순종하며 섬겨드린다 해도 위대하신 하나님께 우열을 가릴 것 없이 미미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주에게서 나온 것이잖아요?
심지어 우리가 순종하려는 믿음조차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마지막 날에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가진 작은 믿음의 분량대로 예수님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한마디 깨닫게 해주신 말씀에 나의 최선을 다해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내게 복이라는 것을 알고 복을 받기 위해 예수님께 붙어있으려는 마음도 하나님은 기쁘게 여기시리라 믿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믿음의 과정을 잘 이해하셨나요?
이 전체 과정이 우리 믿음의 여정에 두드러지지 않지만 확고부동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어느 과정에 있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먼저 부르셨기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또 나를 누군가에 보내신다고 생각할 때 순종하며 섬기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영국의 전 대주교인 캐리경은 향후 30년 뒤면 영국에서 기독교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믿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들은 말씀에 순종하되, 특별히 믿음은 들음에서 남을 잘 기억하시고 말씀과 친하고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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