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 신자들이 첫 수확을 하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데서 유래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했던 삼대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인데 공통적으로 다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그 중 유월절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날입니다.
맥추절은 첫 보리 수확을 하고 감사하는 날이고 수장절은 가을에 올리브, 포도 등을 수확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수장절과 같은 의미인 날이라고 볼 수 있죠.
하나님은 복을 주신 일에 대해 반드시 감사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우리도 올해 하나님이 가정마다 많은 복을 주신 줄 믿습니다.
어려운 때도 있었고, 걱정 근심에 하루하루를 지내던 시기도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이 더 많은 한 해였음이 분명합니다.
흔히 감사의 반대는 원망, 불평을 생각하지만 감사의 반대는 ‘당연’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어렵게 선의를 베풀었지만 그걸 당연한 걸로 여기는 사람에겐 큰 실망감을 느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약점과 한계를 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뒤 단 한사람만 돌아와 감사했을 때 섭섭함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무리 자식에게 한없이 베푸는 게 부모라 할지라도 모든 수고와 돌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식에겐 그런 마음이 들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해 주었을 때, ‘엄마, 고마워요, 아빠, 고마워요’ 이런 말을 듣는다면 그 말 한마디로 모든 노고가 사라지죠.
미국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의 크리스 피터슨교수가 ‘행복의 자질’에 대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게 무언지 찾아보자는 것이죠.
돈, 성공, 재능 이런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것은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하기 때문에 연구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런 것은 언제든지 남과 비교하여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또 예를 들면 수백억 재산을 가진 사람이 암에 걸려 두 달 산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더 이상 그 돈이 행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구 결과 사람을 항상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 자질을 발견해 냈습니다.
그것은 희망, 사랑, 그리고 감사였습니다.
이 세 가지 자질은 어떤 조건에서든 항상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피터슨 교수는 감사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행복은 나무처럼 성장할 수 있으며 감사하는 사람이 좀 더 나은 인생을 사는 경향은 매우 뚜렷하다. 누구든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감사하는 태도를 습관화 시켜야 한다.’
세상의 교수들은 연구해서 이런 결론을 내렸지만 성경은 일찍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잖아요?
‘범사에 감사하라’
오늘 바울사도는 로마교회의 성도에게 쓴 편지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자’고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올 일 년 우리에게 주신 풍성한 은혜를 감사하지만 항상 잊지 않고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구원의 큰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절 예배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1. 먼저 우리는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아야 진정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17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의 우상신을 믿고 온갖 죄를 짓던 사람들이 교회에 모인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바울이 감격했겠습니까?
너희가 죄의 종이더니 언제 이렇게 하나님의 종이 되었냐는 것이죠.
전도해 온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할 때 우리도 그런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전에 우리 역시 죄의 종이었습니다.
종은 꼼짝없이 주인의 명령대로 복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말합니다.
적당히, 내 이익을 위해 조금씩 죄를 선택해서 짓는 상태가 아니라 꼼짝없이 죄를 짓는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우리 상태가 죄에 끌려 다니는 종이었다는 걸 성경과 성령은 누누이 가르쳐 주십니다.
사실 그게 인정 되냐 안 되냐가 예수님의 속죄에 대한 진지한 믿음이냐 아니냐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가 미미한 정도이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선을 행할 능력이 있다면 그 정도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와 같은 참혹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것이 앞 뒤가 안 맞는 것이잖아요?
19절에서 죄의 종으로 사는 것은 부정과 불법으로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죄의 종이었던 때는 우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었다는 것입니다.
부정은 깨끗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하지 않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실 분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불법은 하나님의 법이 없고, 그 법을 지키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양심적이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은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냐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불법은 세상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의 핵심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나와 남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아무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산다 해도 타인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하나님 보시기엔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국0교수가 방송에서 닥터헬기 운용의 고충을 토로했었죠.
닥터헬기가 시끄럽다는 민원 때문에 의정부성모병원의 외상센터가 폐쇄 될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불편을 당한 사람들 입장에선 정당한 주장일지라도 내 소음문제 때문에 남의 생명구하는 것을 막는다면 성경적으로 보면 불법입니다.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잖아요?
또 자신에게도 충실하고 심지어 이타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것도 불법입니다.
네 하나님여호와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요.
우리가 과거엔 다 하나님의 법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부정과 불법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이런 죄에서 해방되는 굉장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줍니다.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로마교인들도 그랬고, 우리도 오직 사도들이 전해 준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순종해서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의에게 종이 되었다는 것도 죄의 종의 의미와 똑같습니다.
이젠 거꾸로 의롭게 살아가도록 끌려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젠 조금만 하나님의 법을 어겨도 자책감을 느끼고 마음이 괴롭습니다.
어느새 의로움이 우리 안에 명백히 새겨져서 우리를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의 심비에 새겨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죄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던 데서 의에 이끌려 살아가게 바뀐 것입니다.
올해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 볼 때, 죄에게 끌려 다닌 시간보다 의에 이끌린 시간이 더 많았다고 느끼십니까?
죄가 죄라는 것을 알고 이겨내려는 마음으로 살았다는 것만도 우리가 의의 종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추수감사절 우리가 먼저 감사해야 할 것은 이렇게 우리를 죄에서 해방되게 하시고 의의 종이 되게 해주신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다음은 우리에게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의의 종이 된 우리는 거룩한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절,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13절에서는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우리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죄와 싸우는 무기인 듯이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쁜 일을 하거나 쾌락을 좇을 때도 얼마나 열심히 하나 모릅니다.
사기꾼들 머리 써서 사기 치는 걸 보면 놀면서 적당히 하지 않더군요.
보이스피싱도 요즘 엄청나게 진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휴대폰에 악성코드를 심어서 정보를 빼가는 그런 작업을 하려면 얼마나 연구를 많이 했겠습니까?
많은 신자들이 생활 중에서 단지 하나님을 막연히 인식하고만 삽니다.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을 어렴풋이 의식하고 사는 것만으로는 부정과 불법의 강력한 습관이 나를 끌고 가는 것에 버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매일 성경을 읽고, 시간을 내서 기도하고, 의식적으로 말씀대로 살려고 하나님께 우리 지체를 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지체를 어디에 사용하냐에 따라 죄의 열매나 의의 열매가 매달리는 것입니다.
20절을 봅니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육체의 소욕대로 산 결과 얻는 것은 부끄러운 죄의 열매들입니다.
평생을 그렇게 산다면 그 마지막은 영원한 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열매로 우리를 판단하신다고 하셨잖아요?
한동안 뉴스에 오르내리던 한국미래기술 양진0 회장을 보며 느낍니다.
그 사람의 엽기적인 행각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 마다 과연 이게 실화냐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그런 정신 나간 사람 밑에서 먹고 살기 위해 모욕을 당하며 직장생활이라고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측은해 보입니까?
그게 마치 사탄과 죄에게 종으로 봉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인 것 같더군요.
양회장에게 열린 죄의 열매들을 보십시오.
잔혹한 폭력, 성범죄 불법영상물로 벌어들인 돈, 횡령, 마약.
이런 게 양회장이 일평생 자기 몸을 죄에게 바친 결과물이고 열매들입니다.
자기의 모습이 이렇게 백일하에 드러나는 걸 보고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마음이라도 느낄까요?
뉴스에 나오는 그의 얼굴을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로 악랄하게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작은 죄도 본질로 보면 크기만 작았지 맛은 똑같은 죄의 열매입니다.
우리 지체를 하나님의 의로우신 인도에 적극적으로 맞추지 않으면 신자들의 삶에서도 여전히 이런 죄의 맛이 나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올해 우리가 감사할 것은 거룩한 열매를 더 많이 맺게 된 것입니다.
22절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니라
우리는 어떤 거룩한 열매들을 올해 맺었을까요?
성경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면 놀랍게도 성령의 열매가 우리에게 달린다고 이미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에겐 죄의 본성과 뿌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매달린다는 것입니다.
아직 그 열매는 작을지 모르지만 성령을 좇아 사는 성도들에겐 죄의 열매와는 본질이 다른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열매는 여러 가지 이지만 대표적으로 성경에서 말씀하죠.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런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 인격과 성품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가 행복했고, 가족이 행복했고,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았다면 우리의 본성적인 것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이 성령의 열매로 인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 거룩한 열매는 삶에서도 맺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육체의 삶도 보살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렇기에 인격과 성품에서만 거룩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서도 거룩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같은 돈을 벌어도 죄의 열매가 있고 거룩한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벌면 돈도 거룩한 열매이고 권력도 거룩한 열매입니다.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세속에 속한 것과 확연히 구별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열매들을 통해서만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포도나무고 우리는 가지라고 하셨죠.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며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잖아요?
예수님의 말씀을 늘 생각하고 순종하고 따른 걸 말씀합니다.
그때 맺는 열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악착같이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성공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거룩한 열매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세속적인 차원에서의 성공은 자기에게 영광일지 몰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우리 청소년들, 청년들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이룬 성공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열매가 될 수 없습니다.
성공을 한다 해도 육체의 열매에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열매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결과는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붙어서 살 때만 열매를 많이 맺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내 욕심대로 꼭 목표치를 높게 잡고 큰 꿈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높은 꿈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 보다 자기를 위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다윗은 왕을 꿈 꿔 본적이 없습니다.
목동으로 양떼 돌보는 일을 성실하게 해내며 하나님을 진실 되게 믿기만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베들레헴 촌구석에서 양을 치는 다윗을 불러내셔서 왕을 삼으셨습니다.
요셉이 처음부터 애굽의 총리가 될 큰 꿈을 가진 게 아닙니다.
곡식 단이 절하는 꿈, 해와 달이 절하는 꿈 자체도 하나님이 꾸게 하신 것이잖아요?
그 꿈이 성취되도록 이끌어 주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 꼭 붙어서 말씀을 따르고 성실히 지금 내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장래와 꿈을 반드시 이끌어 주십니다.
높은 꿈이 아니거나, 내 장래에 대한 기대치를 확 낮추어도 상관없습니다.
목표를 낮게 잡는다고 거기까지만 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역량, 성실함에 따라 얼마든지 우리를 끌어주시고 알맞게 성취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 서원이가 그렇잖아요?
서울대학교를 목적으로 했을 때는 실패했지만 신앙생활 착실히 하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진로를 따르다 보니 거기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유학을 준비하지만 아이비리그를 가겠다 그런 큰 꿈을 꾸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믿음 안에서 성실히 준비하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또 가려고 할 뿐입니다.
민욱형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열심히 예배드리며 봉사하는지 성도님들이 다 아시잖아요?
졸업하고 알맞은 직장으로 인도해 주시고, 취미로 꾸준히 하던 캘리크라피 활동을 통해서 또 큰 축복을 내려주고 계십니다.
출판사에서 먼저 책을 내자고 해서 지난번에 책이 나와서 좋은 반응을 얻었잖아요?
이번엔 온라인 강의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영상수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단 기간에 이 백 명이 넘게 신청하는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점점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걸 보게 됩니다.
또 항상 잘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늘 최고로 해 내려면 인생이 너무 힘듭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잘 안 될 때도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도 다 이런 크고 작은 삶의 간증을 올해 갖게 되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하고 열심히 살고 있지만 아직 열매가 없다면 추수할 때가 되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모든 추수에는 인내하며 심고 기르는 시간이 있듯이 때가 되면 거룩하고 좋은 열매들을 반드시 거두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는 영원한 삶, 영생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기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가 누구의 종이 되어 살아가냐에 따라 영원한 결말이 갈라진 것입니다.
죄의 종이 되어 살아온 댓가는 사망, 영원한 심판입니다.
일평생 자기의 악한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의 보좌 앞에서 그 죄를 다 보여주실 것입니다.
평생에 지은 죄가 하나님 앞과 의인들 앞에서 공개되고 영벌을 판결 받을 때 그 수치심과 절망감은 세상 법정에 비교할 수 없이 비참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실로 보면 우리가 살며 짓는 죄가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의 죄보다 더 작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이미 계산이 끝난 우리 죄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기억도 되지 않는다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의 책망하심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를 믿었잖아요?
다시 하나님 앞에서 재 심판은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서겠지만 그것은 상급과 칭찬의 판결인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저 귀하신 분을 위해 무언가 미력을 다했다는 것이 그 날의 가장 큰 감격과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고 하는 자들만 그 죄를 분명히 밝혀 주시고 거기에 따라 벌을 주시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추수감사절, 우리가 가장 크게 감사할 것은 무엇보다도 예수님 안에서 선물로 받은 우리의 영원한 복된 삶, 영생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올 한해 열심히 살았지만 원하는 대로 이루지는 못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발적인 사고나 큰 질환 없이 지내온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래도 저녁이면 들어가 쉴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고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내 가족이 있는 것도 너무 감사합니다.
작은 일터도 감사합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말했죠.
우리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편50편에서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예배를 드린 우리 모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것입니다.
우리를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바꾸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진심을 다해 이 시간 감사를 드렸으니 기쁘게 받으신 줄 믿습니다.
앞으로도 거룩한 열매, 삶의 모든 선하고 좋은 열매들을 더욱 풍성히 맺어 행복한 믿음의 자녀들이 되도록 예수님께 꼭 붙어서 따르고 감사하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018년11월18일 남수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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