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호르마의 승리 (민수기21장1절-3절)

남수연 2020. 12. 29. 18:35

www.youtube.com/watch?v=rQVHITzdUlI&t=3144s

 

올해는 우리 평생에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참 별난 한 해였습니다.

그런 한 해의 시간도 부지런히 흘러가 마지막 주일예배가 되었네요.

여전히 교회가 완전체로 모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어디서든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할 수 있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민수기의 말씀을 통해 지나온 일년을 돌아보고, 다시 힘을 얻어 새해를 시작하길 원합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생활을 거의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려는 아주 의미 있는 시점에 일어난 일입니다.

가나안 초입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이 전쟁은 앞으로 있을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전쟁의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는 서론과 같은 부분입니다.

이 말씀에서 가나안 정복전쟁과 같은 우리 믿음의 전쟁을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지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부족했던 점들을 깨닫고 새해 더 승리하는 삶을 위해 꼭 필요한 말씀이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세 절인데 한 절씩 나눠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1. 1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가던 중 급습을 당한 내용입니다.

1절,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땅에 진입하기 위해 최남단 네겝 근처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진격한다는 소식은 가나안 땅 전역에 퍼지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진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40년을 불뱀과 전갈이 득실대는 광야에서 생존한 전설적인 민족이잖아요?

2백만명의 국민을 군말 없이 자기 땅에 받아 줄 나라가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어느 나라도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가도록 빗장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을 간단히 생각하지만 그 과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은 싸워서 차지해야 하는 것이죠.

광야생활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의 여정을 보여준다면 가나안 정복전쟁은 우리가 치러야할 악의 세력들과의 싸움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런 전쟁은 언제고 있음을 알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뺏긴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다.

우리는 전쟁을 쉬고 싶어도 악한 영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 한 주도 편안하고 싶었지만 무한정 편하지만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싸움이 일어났던 이 장소는 이스라엘에겐 의미가 있는 장소입니다.

이곳은 40년 전 가나안 입국을 앞 둔 출애굽1세대에게 실패와 아픔의 장소입니다.

40년 전 부모세대가 가나안땅을 정탐했다 악평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바람에 광야 40년의 징계를 받았잖아요?

그때 뒤늦게 후회하고 모세의 만류를 뿌리치며 가나안족속과 싸우러 갔다 대패한 곳이 바로 여기 호르마입니다.

이스라엘에겐 패배의 수치와 트라우마의 장소인 것이죠.

그런데 거기서 또 급습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에 대한 마귀의 공격도 그렇다고 여러번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상처가 있고, 단점이고 약점이 있는 곳은 항상 마귀세력의 공격을 예상하고 더 잘 방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올해도 생각해 보면 그 부분에서 항상 문제가 발생하고, 가장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싸움에 무지해선 매일 패배의 고통을 맛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진짜 정신 차리고 대항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음습하거나 취약하거나 상처가 많은 부분들을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며 적극적으로 고쳐 가지 않으면 점점 넓고 깊게 파고 들 것입니다.

나중엔 살이 베이는 아픈 시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전쟁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 갔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몇 명의 아군들이 죽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 아내와 자식, 부모가 인질이 되고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갔다는 것입니다.

그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죠.

그러니까 실종 아이를 둔 부모들은 잃어버린 그 순간 삶이 멈추는 것입니다.

2006년에 이스라엘의 국경수비대 중에 한 상병이 이슬람 저항단체인 하마스에 붙잡혀 간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한사람의 상병을 데려오기 위해 5년간이나 하마스와 접촉해 석방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군인이 정말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영상 한 개를 받는데 그들이 요구하는 27명의 하마스 테러범들을 풀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상병을 데려오는 데 다시 추가로 1027명의 포로들을 풀어 주었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아군이 포로가 된다는 것은 군인들의 사기에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의 급습 사건은 이스라엘을 낙담시키고 무너뜨릴 수 있는 민감한 사건이었습니다.

전면전이 아니면서도 진을 빼는 작전을 마귀는 잘 사용합니다.

가볍게 생각하고 짓는 죄, 신중하지 않은 언행, 방심한 사이에 하는 실수.

이런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항상 경계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본토의 싸움에만 신경을 쓰다 이런 급습을 대비하지 못해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작은 것도 신경써야 합니다.

 

2. 2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선제공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로다

급습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겠지만 살면서 모든 일을 다 믿음으로 방비할 수는 없습니다.

원치 않게 잃게 된 것은 찾아와야 하고 잘못 되어 버린 것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바로잡고 회복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혹시 다시 고쳐서 쓸 수 없을 정도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에 다른 대안으로 답해 주십니다.

오래 시달려야 할 큰 어려움이든, 매일 소소하게 살아갈 일상에서의 편안함을 위해서든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법을 오늘 이스라엘이 보여주죠.

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특히 서원한다는 것은 기도 중에서 가장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를 말합니다.

우리도 절박한 순간에 저절로 그런 기도가 나오죠.

하나님, 이번만 도와주시면 정말 제가 이렇게 저렇게 잘 하겠습니다.

가나안의 영적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그 기도는 지금 이스라엘처럼 서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절실할수록 좋습니다.

우리 청년시절만 해도 참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철야기도 때 불을 끄면 깜깜한 어둠 속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늘 들렸죠.

‘주여’를 부르는 소리는 남이 들을새라 입술을 통해 조그맣게 새어나와도 참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요즘은 저도 왠만하게 다급한 내용이 아니면 그렇게 절실한 기도는 잘 되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절박한 성도님들의 사정을 더 느끼며 기도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 재영성도님 요즘 직장 문제로 기도하는 데, 그런 거 오래 끌면 안 좋습니다.

가영자매랑 둘이 같이 정말 간곡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세요.

취업이 될 때까지 간절하게 기도하면,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잖아요?

우리의 기도는 현실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세상 종교의 기도와 다른 점은 실질적인 대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상하며 뭔가 느낌을 찾으려는 것은 세상 종교 중에서 특히 신비한 영의 세계를 접촉하려는 기도입니다.

교회에서 한 때 인기가 있던 관상기도 그런 것이 자연속의 어떤 신과의 영적 교감을 추구하는 이교적인 기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런 기도를 가리키신 적이 없습니다.

바쁜 데 그런 기도 하지 마십시오.

그런 기도는 옛날에 수도사 같은 사람들이나 시간이 너무 많고 이런 기도 저런 기도 해보는 것이지 우리처럼 바쁘고 믿음이 삶인 사람들은 그런 기도 할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도는 눈을 뜨고 하늘의 아버지를 향하셨고, 지극히 현실의 문제를 대화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가 그렇잖아요

우리의 믿음을 위한 현실 기도를 해주십니다.

사도들이 했던 기도 역시 하나님께 찬양하며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간절하게 말씀드리는 그런 기도였죠.

오늘 이스라엘도 분명한 답을 구하는 기도를 하잖아요?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로다

2) 그리고 이 전투의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결정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전쟁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23장7절을 보면 에돔과의 전쟁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니라

본문 바로 앞에 보면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기 위해 이스라엘은 왕의 대로라는 직선 도로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그 도로가 에돔왕국을 관통하는 길입니다.

모세는 에돔왕에게 아무런 피해주지 않고 조용히 지나겠으니 길을 열어달라고 신사적으로 요청합니다.

그러나 에돔왕이 군대를 동원해 길을 막고 통행을 허락하지 않아서 우회도로를 선택하게 됩니다.

왕의 대로를 이용하면 가나안 중심까지 백여킬로면 되는 데 사백킬로나 되는 우회도로를 택하면서도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전쟁은 하면 안되는 것이죠.

내가 매일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는 기도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매일 만나야 하는 일터의 사람들, 가족들, 교회 성도들, 그 중 오늘은 누가 내게 시비를 걸지 모릅니다.

유심히 내가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나 행동을 지켜보면 반드시 누가 나를 기분 나쁘게 하고, 짜증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화나게 하는 언행을 합니다.

그들 모두와 싸우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과의 문제는 그 사람보다는 오히려 내게 있는 문제가 더 클 경우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거의 사람 사이에 갈등에는 더 많은 원인이 내게 있습니다.

정말 부당하게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주의를 요합니다.

적극적으로 해를 끼치는 사람의 경우는 전쟁이 터지면 국부전이 아니라 전면전이 되기 쉽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갈등을 대처하지 못해서 분열되고 교회가 쪼개지기까지 하잖아요?

일방적으로 나를 악하게 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정말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3) 그러나 기도만으로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동안 무엇을 했겠어요?

만나만 거둬서 삼시세끼를 해 먹고 장막에서 빈둥댄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광야 생활 뒤에 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실텐데, 거기 살던 사람들이 순순히 자리를 내 주고 떠나지 않을 것 정도는 압니다.

광야 생활은 전쟁을 위한 훈련입니다.

뒤에 2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총 수를 조사하게 합니다.

처음 출애굽해서 한번 인구조사를 했고,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인구조사를 한 것이죠.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하시니

이십 세 이상은 오합지졸이 아니라 전쟁에 나갈만한 용사로 광야에서 길러졌다는 것입니다.

훈련이 좋은 것은 싸워야 할 때 두려움 없이 맞짱을 뜰 수 있다는 것이죠.

처음 출애굽 세대는 전투 경험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아말렉 영지를 피해서 먼 곳으로 돌려서 인도하셨던 것 기억하십니까?훈련과 실력이 부족하면 인생을 효율적으로 잘 살아내기가 힘듭니다.

믿음의 삶이 마음으로 믿는 것으로만 사는 게 아닙니다.

올해 특히 감사한 것은 우리 믿음에 말씀의 갑옷과 말씀의 검을 장착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통계적으로 석 달을 꾸준히 하면 몸에 습관이 된다고 하죠.

10년을 계속하면 달인이라고 하구요.

우리 성경 묵상방이 어느덧 네 달이 넘었으니 이젠 습관이 되었을거예요.

함께 10년을 계속하면 말씀 묵상과 순종에 달인들이 되리라 믿습니다.

또 내게 맡겨진 일들에 능숙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능히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할 힘이 된다고 믿습니다.

학생들은 공부에 능숙하게 훈련하고, 가게를 한다면 가장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내 분야에서 숙련된 기술과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요즘 어떤 일이든 평생 그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에게 매료됩니다.

그런 분들이 만들어내는 물건들은 참 멋이 있잖아요?일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대단한데, 그것도 참 좋아보이더군요.

우리 성도님들의 사회생활에서 맡겨진 일에 다 그렇게 숙련되고 멋지게 일하는 새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3. 3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들을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신 내용입니다.

3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우리는 이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됩니다.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이기도록 넘겨주셔야 이길 수 있습니다.

전쟁에 필요한 모든 실력을 갖췄다 해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만큼 이길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나안 정복전쟁의 중요한 단어하나를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멸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이 ‘멸하다’라는 동사에서 오늘 호르마라는 지명이 나왔다고 하죠.

‘멸하다’라는 성경의 전쟁용어는 완전히 진멸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여호수아가 진두지휘하는 가나안 정복전쟁은 거의 진멸시키는 전쟁입니다.

고대국가들의 전쟁이 그렇습니다.

내가 다 죽이지 않으면 우리 편이 다 죽는 것이죠.

본문에서처럼 전쟁에 지면 다 죽거나 운이 좋으면 노예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진멸 전쟁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은 나라간의 영토 전쟁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아브라함 때부터 이미 정해진 것이고, 가나안 땅을 죄악으로 더럽히는 가나안의 일곱 부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은 아무도 살려두지 말고 완전히 진멸시켜야 하는 데 하나님은 그것을 나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진멸 전쟁은 결국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과 죄인들의 대한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죠.

저는 가나안 부족들에 대한 진멸을 명하신데서 오히려 아무리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인격을 잔인하게 짓밟는 그런 심판은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봅니다.

당시 고대국가의 전쟁사를 보면 끔찍하게 괴롭히며 죽이잖아요?

사지를 자르고, 바위에 메치고, 부녀들을 끌고 가 종으로 부리고.

하나님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런 모멸과 잔인한 고통 속에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게 그 진멸 전쟁 속에 담겨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죄인들은 그들의 평생 삶에 대한 심판을 받지만 그 심판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받는 것입니다.

가장 공정하고 거룩한 공의로 판결 받는 것이죠.

사람이 만든 심판자 염라대왕을 보면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하게 사람을 벌 주는지 모릅니다.

꼭 인간 속에 있는 잔혹함과 똑같습니다.

심판에도 거룩이 있고 영광이 있고 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나안을 향한 심판의 정복전쟁에 보여지는 것입니다.

혹여라도 하나님의 이 진멸시키는 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완벽하게 첫승리를 거두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의 명령에 따라 그들의 성읍을 완전하게 진멸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전쟁에서는 어떤 죄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죽이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후일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의 정복전쟁을 치릅니다.

그러나 진멸하지 않고 남겨 둔 가나안인들이 결국 이스라엘을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갑니다.

우리의 죄성은 진멸하지 못하지만 죄성에서 나오는 매일의 죄는 진멸하도록 싸우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난 일 년이 어찌 보면 광야이고 어찌 보면 영적 전투의 한복판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함께 해주신 하나님이 계셔서 행복이 더 많았던 한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에 기도하며 우리 교회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으며 큰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교회가 작년 12월에 이곳으로 옮겼잖아요?

생각해 보니 그리고 나서 올해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게 터진 것이더군요.

그 전에 교회 내부 공사를 다 마치고 이전하게 된 것이 얼마나 절묘한 인도이셨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올해 공동체 예배가 비대면일 때가 많고, 성도님들 재정에도 코로나 영향으로 어려움이 있었기에 교회 재정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곳으로 옮겨와서 특히 임대료와 전기요금에서 매달 백만원이 절약되었습니다.

또 코로나 와중에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성도님들을 통해 재정을 채워주셔서 오히려 교회의 묵은 빚도 갚게 해주신 놀라운 한 해였습니다.

비대면으로 많은 성도님들이 못오시는 가운데도 늘 현장에서 함께 예배하며 힘을 모아주신 성도님들도 있으셨구요.

대면예배로 전환되면 다들 밝은 얼굴로 다시 모여주시는 성도님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올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셨기에 우리 교회를 이렇게 안전한 곳에 옮겨 놓으시고 코로나시대를 이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정에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런 은혜로 함께 하셨으리라고 믿습니다.

내년에도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도 더욱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 기도와 말씀에도 힘쓰고 더 주님을 따르는 모두가 되시길 축복드립니다.